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33
제233화
용언을 할 수 없다.
유리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그래서 빅스터에게 어떻게 하면 용언을 쓸 수 있을지 물어봤었다.
“적에게 용언에 대해 묻는 겁니까.”
돌아오는 반응이 그리 쌀쌀맞지 않고 오히려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빅스터에게 물을만큼 벤헬링턴과의 대련은 답답하게 흘러갔다.
악마와의 전쟁에서 용언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원작에서 솔리드녹스가 카이를 도와 전쟁을 할 때 그 힘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유리는 상대가 빅스터인데도 물었다.
“대답만. 어떻게 하면 용언을 쓸 수 있지?”
“……못 본 사이에 말이 짧아졌군요. 예의 없는 사람은 싫은데요.”
“난 가주 대행이다. 가주님과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있어.”
“치졸한 이유군요. 하지만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가주 대행께서 가주와 대련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용언을 따로 배우실 필요는 없을 텐데요. 그쪽 가주가 아무나 대련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회를 저한테서 배우는 건 손해 같아서 말이죠.”
“그게 무슨 말이지?”
“뭐, 그건 아실 필요 없고. 아무튼 용언을 배우고 싶다고요? 결론만 말하자면 당신은 불가능합니다.”
“왜지?”
“인간이니까요.”
태생이나 혈족의 문제가 아니다. 빅스터는 말했다.
“가주 대행께서 아인이라든가 수인이었다면 됐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론 용언을 배울 수 없습니다.”
“알아.”
“안다고요?”
“인간은 용의 언어를 모르잖아.”
용언은 말 그대로 용의 언어로, 용들이 쓰는 마법이자 동시에 그들의 의사소통 방법이다.
각 언어에는 단순히 표현만이 담겨있지 않다. 언어를 쓰는 주체만의 습관이나 문화, 민족성이 있다.
동양인이 서양인의 마인드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듯이.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용언을 이해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었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인간은 용언을 쓸 수 없었다.
드래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문화, 그들 종족만이 가진 특이성을 전혀 알지 못하니까.
마법과 다른 점이자, 마법과 달리 쉽게 용언을 배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용언을 쓰려는 게 아니야. 어떻게 쓰는지 알아서 파훼하려는 거지.”
“파훼라……. 파훼까지는 모르겠군요. 용언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몇이나, 라는 건 있었다는 뜻이군.”
“한 명 있었습니다.”
“누구지?”
“그건…….”
* * *
쿠구구구!
바닥 곳곳이 충격파에 패이고 부서지고 날아가면서 돌덩이와 흙먼지가 대기를 휩쓸었다.
숨을 쉴 때마다 먼지가 목구멍을 찌르면서 따가웠다.
유리는 검을 최대한 추켜세우고 날아드는 형체 없는 공격들을 방패처럼 막았다.
그러나 단단하기론 서러울 것 없는 티르빙조차 용언을 곁들인 벤헬링턴의 공격에 수시로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갔다.
[으으, 아파라. 이거 블랙드래곤 아저씨보다 더 아프잖아.] [그만 투덜대고 집중해요. 계속 검이 부서지려고 하잖아요.] [나도 알거든?]티르빙이야 내색하지 않았지만,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혀 가는 마당에 티르빙에 소모되는 피도 점점 모자라지기 시작했다.
티르빙에 소모되는 피는 패널티를 줄였을뿐,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아스칼론의 도움이 있어서 유지 시간이 현격이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벤헬링턴과의 대련은 10분도 못 되어서 끝났다.
‘결국 빅스터한테선 아무것도 못 얻었고, 젠장. 더 버티는 건 의미 없어.’
그럼 어쩌지?
첫 대련을 시작한 뒤로 늘 양상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버티고, 무너지고, 패배하고.
고민하려 해도 벤헬링턴은 그럴 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할 수 있는대로 몰아붙이다가 죽이기 직전까지만 끌고 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나 다름없는 대련을 마주하고 나면 그제야 유리는 어떻게 용언을 이겨낼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버티고 있다고? 내가 생각까지 하고 있고?’
벤헬링턴과 검을 마주한 채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유리도 첫 대련 때만 하더라도 일합에 무너졌으며 한 합씩 늘어가더라도 시간적으로 초 단위에서 쓰러졌다.
그러나 유리는 오늘 처음 검을 맞대고 버티는 중이었다.
벤헬링턴이 봐주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럴 성정을 가진 사람이던가.
용언을 부리다 못해 유리가 본 적 없는 검술까지 써가면서 벤헬링턴은 모든 전력을 유리에게 쏟아 부었다.
‘내가 이 정도로 강해졌다?’
말도 안 된다.
유리는 분명 8서클 내외의 수준에 머물렀다. 1서클을 올리기까지 남들보다 빠르긴 했어도 8서클 내외가 10서클을 넘나드는 벤헬링턴과 맞설 수 있다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됐다.
그때 문득 빅스터가 했던 말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네. 그런데…… 가주 대행께서 가주와 대련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용언을 따로 배우실 필요는 없을 텐데요. 그쪽 가주가 아무나 대련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회를 저한테서 배우는 건 손해 같아서 말이죠.”
벤헬링턴이 어지간한 사람과 대련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문 내에서 유명했다.
기사들 사이에선 벤헬링턴이 너무나 강력해서 대련이 성립되지 않아서 대련을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유리도 그리 알고 있었고.
그러나 현재 대련을 해내는 중이다. 벤헬링턴이 봐주든 말든, 혹은 대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부러 실력을 낮췄든 간에.
어쨌든 유리가 그를 대항하고 있는 건 불가능했으며,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있는 상태였다.
이를 설명하려면 하나로밖에 설명이 안 됐다.
‘지도 대련.’
자유의 관에서 숱하게 겪어봤던 훈련법으로, 기사들에겐 아주 당연한 대련.
상급자가 하급자를 가르칠 때 말로 안 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던가.
허나 지도 대련은 도리어 지도 받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똑같이 검을 휘둘러서 따라 해보라 해봤자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천재는 가능하겠지만.
벤헬링턴 같이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검술을 보고 따라하는 천재야 말로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벤헬링턴의 지도 대련이 놀라웠다.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었어.’
여전히 눈과 머리로는 벤헬링턴의 검술과 용언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지도 대련이 알아서 유리를 강하게 만들어줬다.
‘드래곤 하트를 가졌어도 난 용언을 배울 수 없어. 용인의 피가 반이 섞였다고 해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해.’
빅스터는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어쩌면 용가가 순혈주의를 고수하는 건 용언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인간의 피가 섞인 유리는 처음부터 용언 전승이 불가능했다.
벤헬링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용언 전승을 해주겠다며 대련을 반복했다.
‘용언 전승은 아니다. 지도 대련을 통해서 날 강하게 해주시려는 게 용언 전승이었어!’
카가각!
깨달음을 얻는 동안 12번째 검격이 티르빙을 긁으면서 불꽃을 튀겼다.
처음으로 10합을 넘겼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전에 재차 용언이 발산됐다.
“굴(屈)!”
허리가 절로 앞으로 굽으려 했다. 허리만이 아니라 검과 고개가 앞으로 기울어진다.
억지로 힘으로 버티려던 유리는 티르빙을 바닥에 꽂아 몸을 지탱하려다가 말았다.
‘용언을 받아들인다!’
의지가 발현된 힘인 용언을 꺾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계속 당해보면서 대응해보려 해봤기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알았다.
물론, 대항하지 않았다간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후웅!
쓰러지는 뒤통수 위로 묵직한 검격이 내리 그어졌다.
그 순간.
캉!
검이 머리카락에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검에 가로 막혔다.
무형검의 기본인 초(初)였다.
이를 본 벤헬링턴이 흥미로운 듯 크게 미소를 지었다.
“놀랍구나! 클라우드 하트에 다녀왔다고 들었지만, 정말로 고대 드래곤의 유산을 배워오다니!”
그 동안의 대련에선 무형검을 써볼 시간도 없이 패배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분명히 달라졌다.
무형검을 써서 방어를 하고, 다른 무형검으론 반격까지 날렸다.
그냥 무형검을 날리고 휘두르는 게 아닌, 벤헬링턴이 썼던 검술을 기묘하게 따라하기까지 했다.
“후웃!”
처음으로 벤헬링턴이 뒤로 한 발 빼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가벼이 막아내다 못해 무형검을 그대로 박살 내버리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반격을 하면서 용언이 풀리자 유리는 대련장 반대편으로 빼서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벤헬링턴이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이제야 좀 나와 검을 제대로 맞댈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구나. 허나 자만하지 말거라. 내 본래 힘에 2할도 쓰지 않았으니.”
“그렇습니까.”
유리도 아직 힘이 넘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기까지 버틴 경우가 처음이라 힘이 남아도는 것일 뿐.
유리 옆으로 두 자루의 무형검이 피로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무형검에 색이 들자 벤헬링턴도 더욱 흥분한 얼굴이 되었다.
“나 또한 배워보려 했었으나 드래곤께선 기억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었다.”
독백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유리도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무형검에도 집중했다.
떠올려야 한다. 체득으로 벤헬링턴의 검들을 배웠다면, 이젠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근간을 모른 채 본능과 체득만으로 검을 익혀봤자 사용해야 할 제 때를 모르고 힘 낭비가 되기 십상이다.
‘떠올려라. 할아버지께서 어떤 식으로 검을 쥐고, 어떤 기세, 어떤 마음과 의지로 내게 검을 휘두르셨는지……!’
이건 지도 대련이자 전승이고, 나이트워커의 정수를 익히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단순히 대련을 통해서 시험을 통과하고 배움을 얻는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니, 이건 ‘다르다’ 못해 완전히 ‘틀렸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여기며 심연을 향해 걸어가라.”
처음 듣는 격언 같은 것을 내뱉은 벤헬링턴, 그의 검에 점점 검은 그림자가 모여들었다.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림자를 빨아들이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벤헬링턴의 그림자는 이미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심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끌리지 않은 유일한 그림자는 유리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었다.
‘아칸 검법, 종식(終式)?!’
아칸 검법을 배운 뒤로 유리조차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세상의 그림자를 빨아들여 심연으로 키워 제 무기로 삼는, 아칸 검법의 최종장.
유리의 놀란 표정을 보고 벤헬링턴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아칸 검법을 배웠다고 들었었다. 이번엔 책으로도 봤을 테니, 몸소 보여주는 걸로 제대로 배워 보거라!”
아칸 검법의 종식은 10서클로도 배울 수 없는 검술이라 서적에 나와 있었다.
마나의 농도나 양이 문제가 아닌.
아칸 검법에서 그림자는 존재성을 가리켰다. 자신이 아닌 것을 베고자 만든 검술이 존재성을 가져가고, 심지어 주인의 존재성마저 가져가기 때문에 배워도 쓸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유리는 종식까지 익히려 애를 써봤었으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그런 검술을 직접 펼치는 벤헬링턴을 보고 유리는 이채를 띠었다.
‘벤다.’
유리도 모든 무형검을 한 곳으로 모아 대검을 형성하고 높이 치켜들었다.
피보라가 몰아쳤다. 온 몸의 피를 다 뺐다고 해도 무방한 혈액이 티르빙을 구성했다.
하늘이 검붉은 빛으로 들어찼다. 어둠을 드리우던 달빛은 더 이상 그 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그르르륵!
마침내 사악한 이빨을 드러낸 심연이 좌에서 우로 갈랐다.
반대쪽에 있던 붉은 핏물들은 위에서 아래로 추락했다.
그림자에 피가 섞이고, 피에 그림자가 섞이길 반복.
대련장은 곳곳에 물감이 터진 것처럼 색이 물들었고, 물든 자리는 폭발을 일으켰다.
곧 두 사람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공파가 퍼져나가며 천지를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