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38
제238화
바쁘게 모든 것이 흘러갔다.
유리는 군대를 주둔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모아 해변에 함대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규모 작업인지라 대외적으로 함대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고, 유리는 그 소문을 딱히 막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와 나이트워커를 중심으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유리.”
함대를 비롯해 항구가 건설되는 걸 지켜보던 유리 옆에 이자벨이 다가왔다.
“진짜로 이걸 계속할 건가?”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지. 오래 전부터 세웠던 계획이라서.”
그간 유리가 업무를 본답시고 책상머리 앞에 계속 붙어있던 이유는, 단순히 가문 내부의 일만 있어서가 아니었다.
동맹을 맺을 가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들에게 계획 일부를 알려주면서 참여를 종용했다.
악마와의 싸움은 전쟁이다.
개인 대 개인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몰래 준비해왔던 절차라서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알고 있던 이가 극히 적었다.
기껏해야 블레이크나 최근엔 겔런과 빌 정도?
그러니 항구를 만드는 모습을 목격한 이자벨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유리, 넌 그러니까…….”
“폭군이라고?”
“……여전히 거침이 없구나.”
“알고 있어. 폭군 소문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다국적 군대를 연합하고 남의 가문 앞에 함대를 만들고 있으니. 좋게 보면 이상하지.”
태연자약한 말투에 이자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답답한 거다. 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악마들이 빠르게 침공을 가속하고 있다고 해도, 이건 방식이 너무 과격하지 않나.”
“과격한 거 안다니까.”
“근데 왜…….”
“악마들의 침공이 빨라지니까.”
답답한 대화의 흐름 속, 이자벨은 그제야 유리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뉘앙스를 느꼈다.
그 부분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유리가 먼저 잘라 말했다.
“미안, 이자벨. 지금 당장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괜찮다. 그대가 그러는 거라면 마땅한 사연이 있는 거겠지.”
유리로부터 선택하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 이자벨도 처음부터 선택지는 하나였다.
유리를 위해서 싸운다.
그저 그녀의 성품이 남들보다 훨씬 기사스럽고 고지식해서 감정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다.
오죽하면 블레이크조차 이자벨에게 “저보다 더 어른스러운 거 같습니다.”라는 소리까지 들어봤었다.
그러니 유리가 어떤 걸 감추고 있든 간에 이자벨은 기꺼이 묻지 않을 수 있었다.
“유리 가주님!”
그때, 멀리스 블레이크가 모래 사장에 폭풍을 일으키듯 말을 몰려 달려왔다.
“무슨 일이지?”
“그게, 척후병들이 악마의 형상을 보았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벌써?
유리와 이자벨이 서로를 그런 말을 하듯 바라봤다.
드디어 악마들이 동쪽 대륙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악마의 형상을 보았다는 곳으로 유리와 블레이크가 향했다.
어둑어둑한 숲 그늘이 가득한 곳, 그 중앙으로 걸어가더니 얼마 안 되어서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누군가가 있던 흔적이 있었다.
타고 재가 된 모닥불, 사람이 누워있던 흙의 흔적.
그리고 익은 살점이 붙은 뼈까지.
문제는 그 뼈였다.
“사람 머리입니다.”
먼저 도착해있던 빅스터가 발치로 해골을 살짝 걷어찼다.
바닥을 정처 없이 구르던 해골은 잿더미가 된 모닥불 앞에서 멈췄다.
“인육을 먹은 겁니까?”
블레이크의 질문에 빅스터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럼 이게 뭐로 보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고 하지만, 가끔은 믿어보는 것도 재미있다네.”
“…….”
“유리 가주께선 어떠십니까?”
말이 없던 유리는 조용히 해골에게 다가가 살폈다.
“인육은 아니야. 인육을 먹은 것치곤 피와 살의 흔적이 하나도 없어.”
“호오, 역시 안목이 좋으시군요.”
“의식 같은 걸 치룬 건가?”
“실패했지만요.”
“실패했다고?”
빅스터의 지팡이가 한쪽 나무를 가리켰다. 나무 표면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만이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6 그루의 나무에 각기 다른 문자가 새겨졌다.
처음 보는 문자의 형태였다. 아니, 문자라기보다 그림에 가까웠다.
유리가 물었다.
“이게 뭔지 아나?”
“악마 강림술입니다.”
“……!”
“아무래도 강림 시도를 해보려 했던 모양입니다. 성공한 건 아니고, 실패해서 급하게 도망갔을 겁니다.”
실패했다는 건 유리도 알 수 있었다.
해골이 그 증거였다.
강림에 성공했다면 그 육체에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다. 강림이라는 건 결국 육신을 빼앗는 행위니까.
“실험을 해봤겠군.”
“실험이라고요?”
“이 자들은 악마추종자만이 아니라 다이올드 추종자일 수 있어.”
“흐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군요.”
“악마를 믿어야지만 강림이 가능하지. 그렇다면 현재로서 강림의 재물이 될 법한 사람이 누가 있지?”
“다이올드군요.”
서쪽 대륙의 악마추종자들에게 강림은 아주아주 쉬운 마법과 같았다.
딱히 마나가 필요하지도 않고, 제물과 필요한 술식, 믿음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강림을 성공할 수 있다.
술식과 믿음이 생각만큼 쉽게 가질 수 없는 거라서 그렇지.
이 자리에 있던 이들도 비슷했다. 술식까진 알고 있다. 문제는 제물로 바친 이의 믿음이 없었다.
그러니 강림에 실패하고 죽었을 터.
실패를 모르고서 한 강림은 아니다.
말 그대로 실험이었다.
진짜 강림을 해보기 위한 사전 실험.
“블레이크.”
유리는 해골을 주워서 블레이크에게 손짓했다.
손짓의 의미를 알아들은 블레이크가 알아서 작은 주머니를 열면서 다가왔고, 그 안에 해골을 넣었다.
“다른 뼈도 추슬러서 피해자 유족을 찾아 전달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척후병들과 정찰병들을 모두 철수시켜. 만타티스 가문 근처에만 남겨두면 돼.”
“이들의 흔적을 더 뒤쫓지 않으시고요?”
상식적으론 여기에 흔적을 만든 이들을 쫓아야 했다.
이들은 악마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이 근처에 왜 왔는지 모르게 흔적을 지우기는커녕 흔적을 남겼다.
어떤 이유와 의도를 품은 채.
“놔둬. 그들이 대놓고 흔적을 남길 정도라면 이미 만타티스 가문으로 들어갔을 거다.”
“정식으로 항의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다이올드를 내놓으라고? 악마랑 접촉했으니?”
“……듣고 보니 내놓지 않겠군요.”
처음부터 유리와 척을 지기로 결심한 만타티스 가다.
내놓으라고 해도 내놓지 않았던 그들이, 악마를 들먹여봤자 오히려 유리를 악마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서신을 보내놓기만 하자고. 지금도 보내고 있지?”
“요 며칠 동안은 편지를 받으려 하지 않아서 채럿 님이 새로 가주의 방 앞에 나르고 있습니다.”
만타티스 가에서 퇴짜를 맞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서신과 편지를 보내면서 다이올드를 내놓으라고 종용함과 동시에 나이트워커의 군세에 합류할 것을 촉구했다.
내용 중에는 당연히 악마에 관련되어서도 적어놨으며, 믿지 않을까봐 미앵비슈와 벤헬링턴의 이름까지 언급했다.
유리를 믿지는 않아도, 전대 가주와 가주 후보였던 자까지 안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타티스에서의 반응은 한결 같이 무시로 일관했다.
요즘 들어서는 블레이크 말대로 서신을 아예 반려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추가해서 보내.”
“그런다고 달라질까요.”
“달라지지 말라고 하는 거야.”
“예?”
유리는 만타티스 가문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악마추종자들이 움직였으니, 그들에게서도 반응이 오리라. 그때 가서도 이처럼 무시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 * *
만타티스의 가주 비쥴레는 여느 때처럼 집무실로 출근을 하다가 문 틈 아래에 놓인 서신을 발견했다.
봉투와 봉투에 찍힌 봉인지는 누가 보더라도 나이트워커에서 보낸 것이었다.
편지를 본 비쥴레의 미남자 같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뒤이어 따라오던 보좌관은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모르다가 편지를 주우려 허리를 굽히는 주군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서신을 몰래 넣었나보군요.”
“나이트워커의 새 가주는 원래 이렇게 무례한 건가? 타 가문에 몰래 서신을 넣고 다니고! 우리 가문의 방비가 허술하다고 대놓고 우롱하는 꼴이잖아!”
“면목이 없습니다, 가주님.”
“아니야. 자네 탓을 하는 게 아니야.”
만타티스 가문의 현재 군사력과 개개인의 능력을 따지면 당연히 나이트워커의 사람들보다 부족했다.
언제든 가문의 담을 몰래 넘나들 수 있고 이런 편지쯤이야 쉽게 넣고 도망가겠지.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과 ‘한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유리가 보낸 서신은 비쥴레에게 있어서 할 수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명백한 도발이니까!
“보좌관, 다이올드는 어디 있지?”
“가주님!”
“넘겨주려는 거 아니다. 우리 가문도 대비를 해야지.”
“……본부하신 대로 방에 가둬놓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나이트워커에 뚫렸다고 다른 악마추종자들이 절대 그 자와 접촉해선 안 된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가주님!”
겨우 화를 가라앉힐 즈음이 되자 다른 보좌관이 뛰어와서는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급하게 달려온 그는 숨이 넘어갈 듯이 켁켁 거리면서도 전할 말을 꺼냈다.
“다이올드가, 탈출했습니다.”
“뭣?!”
안 그대로 편지 때문에 화가 났던 마당에 다이올드가 탈출하다니!
“혹시 나이트워커가 빼간 건가?!”
“그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젠장, 일단 내가 가봐야겠다.”
그 길로 비쥴레는 달리듯이 바삐 걸어서 다이올드가 갇혀 지내던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은 만타티스 가의 한쪽 면에 자리한 절벽 아래에 있었다. 비쥴레는 그 절벽 아래로 통하는 계단을 능숙하게 내려갔다.
계단은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벅찰 정도로 좁고 가팔랐다.
바람과 파도가 계속 괴롭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고 내리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러나 비쥴레를 포함해서 만타티스의 사람들은 이 계단을 익숙하게 여겼기에 크게 어려움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다이올드가 갇혀 있는 감옥은 절벽 제일 아래 암초 지대 사이에 있었다.
교묘하게 파도가 들이쳤다가 빠지는 곳이었으며, 철문 세워졌고 그 안으로 어두운 동굴이 다시금 위로 올라가는 형태로 자리했다.
평소엔 철문이 굳게 닫혀있고 안쪽에 병력이 있어야 했지만.
철문은 구겨져 부서졌으며 병력들은 축축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외부에서 들어온건가.”
부서진 철창이 동굴 안쪽에 나뒹굴고 있다. 충격이 외부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이다.
흔적을 봐선 단순히 힘으로 철문을 뜯어낸 느낌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다른 철창들도 상태는 똑같았다.
“나이트워커 짓인 거 같습니다.”
보좌관 중 무관인 자가 그리 말했다.
“이 철문을 오로지 힘을 뚫을 자들이라면 그들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현재 나이트워커에 협조하는 어떤 다른 가문이던가요.”
“솔리드녹스나 리펠리온?”
“솔리드녹스는 아닐 겁니다.”
그들은 힘이 아닌 마법을 쓰는 자들이니까.
마법을 썼더라면 더 흔적이 남았으리라.
“리펠리온이라는 거군.”
“어쨌든 리펠리온도 나이트워커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따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리펠리온이 유리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건 대륙에서 유명했다.
둘의 관계가 각별한 건 알고 있으니, 따로 볼 필요 없이 한 몸인 건 분명했다.
그저 리펠리온마저 이리 나온다는 사실이 새삼 쓰라렸다.
“누구보다 미래를 알고 있을 자들이 이런 선택을 하다니.”
불 같이 솟구쳤던 화가 가라앉은 비쥴레는 감옥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속이 뒤집어져도 그는 가주였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고 가문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러니 여기서 더 화를 낼 순 없었다.
“보좌관, 병력을 내보내라.”
“하지만 가주님, 그랬다간 나이트워커가…….”
“나이트워커가 아니라 악마추종자들이 벌인 일일 수도 있다.”
“예?”
“어쨌든 이 참에 피아식별을 확실히 해주는 수밖에.”
아직까지 만타티스 가의 상황은 누구의 편인지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비록 다이올드를 데리고 있었다지만, 유리가 폭군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망쳐 온 불쌍한 가주 후보에 불과했다.
물론 핑계였지만.
비쥴레는 슬슬 자신들도 제대로 세상에 나와야할 때임을 직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