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
제24화
며칠 뒤, 주말. 유리는 릴림과 함께 처음으로 가문 밖으로 외출을 나섰다.
그들은 영지 북쪽에 있는 역으로 향해 마나 열차에 올랐다.
마나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마나 열차는 가격이 더럽게 비싸지만, 마차로 일주일 걸릴 거리를 하루도 안 되어서 갈 수 있었다.
한 번도 안 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타본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워낙 편리해서 평일 포함 항상 만석이었다.
유리는 가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특등칸을 빌려서 올랐다.
아무도 없는 널찍한 공간에서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릴림은 나른한 눈길로 창밖을 구경했다.
“태어나서 마나 열차는 처음 타 봐요. 심지어 특등칸이라니.”
“돈이 이래서 좋지.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으로 하는 외출이네.”
“근데 도련님.”
릴림이 나른한 눈빛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진짜로 플레온 기사단을 인수하실 거예요?”
“어, 진짜로 해야지.”
그들의 목적지는 도시 국가 세벨.
대륙에 몇 안 되는 중립국가로 여타 귀족들과도 맞먹을 정도로 땅 크기가 작고 인구수도 적었다.
하지만 세벨의 ‘플레온 기사단’은 도저히 작은 국가에 맞먹는다고 할 수 없었다.
기사단 전체가 막강함을 넘어서서 개개인의 역량이 기본 6서클을 넘었다. 여타 기사들이 서클을 달지도 못하는 걸 감안하면 예사롭지 않은 집단이었다.
‘그런 기사단이 미래에는 망한다.’
세벨의 현 국왕 때문이다.
선대 국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갑자기 어린 아들이 즉위하면서 섭정이 들어선다.
이 섭정은 한 마디로 개판으로 국정을 운영한다. 사치에 빠져 국고를 바닥내고, 군사력을 개 취급하며 아무렇게나 부려먹는다.
결국 플레온 기사단은 강제로 해단되어서 차후 역사에서 그 자취를 감춘다.
릴림도 세벨과 플레온 기사단에 대해 떠올리며 물었다.
“세벨의 섭정이 기사단을 많이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이래저래 귀찮게 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창단이 아니고 인수에요?”
“대놓고 창단했다간 반역죄로 몰려. 가문 내에서 사병들을 소유하는 건 안 되잖아.”
어느 귀족가든 간에 각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은 오롯이 가주가 소유하고 운영한다.
당연한 법도다.
다른 사람이 병력을 가지고 있다간 누가 보더라도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지 않은가.
물론.
유리에겐 다른 사연이 있다.
플레온 기사단은 원작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몸담아 검을 배우는 곳이니까.
‘그곳에서 주인공은 한동안 종자로 오랜 시간을 보내. 그걸 줄여야 해.’
지금쯤 원작의 주인공은 노예 시장을 전전하며 팔려 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를 가엾게 여긴 플레온 기사단 단장이 그를 거두게 되고.
주인공은 기사단 아래서 검을 배우며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때 기사단에 들어가고 바로 검을 배우지는 않게 되는데, 시작은 한 기사의 종자로 출발하여 무려 10년 정도를 보낸다.
유리는 이 기간을 줄일 계획이었다.
‘10년이란 시간은 너무 아까워. 빠르게 수련하고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나이트워커가 나쁜 가문이 아니라는 인식도 심어줘야 돼.’
그 10년이 지나면 본격적인 원작의 시작이다.
그 틈에 주인공은 원작 시작점보다 훨씬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별 무리 없이 악마들을 막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릴림은 여전히 유리를 걱정했다.
“그러면, 인수도 문제가 되는 걸요. 가주님께서 가만히 안 있으실 거예요.”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해결 할 거야. 그보다―”
“실례하겠―”
특등실로 한 여인이 들어서면서 유리가 하던 말이 끊겼고, 여자도 말이 끊기면서 입구에서 주춤거렸다.
로브에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모양새가 딱 봐도 신분을 감추려는 듯했다.
날이 추워진 걸 감안하더라도 행색이 영락없이 엉성했다.
유리는 후드 사이로 튀어나온 머리카락과 그늘진 이목구비를 보고 단번에 여자를 알아봤다.
“이자벨 님?”
“시, 실례했다!!!”
“릴림, 잡아.”
“네.”
다급히 돌아서려던 발길을 릴림이 후드를 잡아당겨 막았다.
당황한 나머지 이자벨은 중심을 잃고 유리 반대편 의자에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벗겨진 후드 속에선 역시나 이자벨이 나타났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후드를 썼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이자벨 님을 여기서 뵐 줄이야. 심지어 세벨 행 열차에서 만날 거라곤 예상치도 못했네요.”
“무, 무슨 소린지, 모르, 겠군!”
“계속 그렇게 나오시면 일부러 절 미행했다고 해석할까요?”
“아니다! 미미미미, 미행은 무슨!”
기어코 이자벨이 얼굴을 드러내면서 소리쳤다. 혈색이 터지기 직전이다.
유리는 이자벨의 미행을 진즉 알고 있었다. 딱히 눈치챌 필요도 없이 워낙 미행에 미숙해서 릴림마저 알아봤다.
그때부터 그냥 놔두라고 했지만.
설마 같은 특등칸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암살이나 암행은 절대 못 맡기겠어.’
유리가 피식 웃었다.
“세벨에 여행이라도 가시나보군요. 지인을 만나는 건가 본데. 마법사 가문이니 마법사 지인이겠어요. 아, 세벨 행이니까 마법사가 아니라 연금술사일까요? 연금술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참고로 저는 일하러 가는 중이죠.”
“그으……렇게 되는 거군.”
“그런 거죠.”
노골적으로 만들어주는 사연에 이자벨도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했다.
이 사이에서 릴림은 자연스레 챙겨온 초콜릿 더미를 테이블에 풀어놨다.
아직도 초콜릿이 성장기를 돕는다고 믿는 그녀였다.
성의가 있으니 하나 뜯어서 먹었다. 최상급 초콜릿답게 입에서 자연스레 풀어지면서 끈적임 없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잠시 후 열차가 출발하자 유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자벨 님, 아티팩트는 어떠신가요?”
“어? 아, 음! 그래. 덕분에 통증이 확 줄어들었다. 오히려 통증이 없어져서 어색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어떤 형태로 만들었는데요?”
“이거다.”
이자벨이 손가락으로 제 머리에 묶인 머리끈을 가리켰다.
매번 포니테일을 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머리끈은 재질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끈 같으면서 금속처럼 매끈한 반사광을 냈다.
“머리끈에 절대영도 마법 술식을 새기신 건가요?”
“머리끈은 항상 하고 다니는 거라 이것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물건이 없었다.”
“재질은…….”
“유니콘 가죽에다가 정령수를 부어서 마감했다.”
“듣기만 해도 가격대가 상상이 안 되네요.”
내색하지 않았으나 유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니콘의 가죽이야 내구성이 뛰어나서 말할 것도 없고, 정령수는 마나의 근원이라 불리는 순수한 에너지 결정체라 자동으로 마나 충전이 가능했다.
이 재료들을 모아서 따로따로 팔면 어지간한 저택 여러 채를 살 수 있다.
심지어 술식을 저 작은 곳에 새기는 실력은 솔리드녹스쯤 되니까 가능하리라.
근데 그런 재력과 기술로 만든 머리끈 아티팩트라니.
[터무니없네. 아니지, 솔리드녹스답다고 해야 되나. 레드 드래곤도 귀한 마법이라면 자기 뿔이라도 내줘서 바꾸려고 했었지.]‘그 조상에 그 후예라는 건가.’
여하튼 안색이 좋아진 이자벨을 보니 유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자벨은 헛기침을 뱉으며 물었다.
“그런데, 유리. 들어보니 플레온 기사단을 인수한다고?”
“엿들으셨어요?”
“그냥 들린 거다!”
“뭐, 그런 셈 치고……. 네, 인수하려고요. 요즘 경제적으로 지원을 못 받아서 운영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려고 합니다.”
기사단 운영은 벌써부터 망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기사단 예산이 어디론가 줄줄 세서 제대로 된 무기조차 못 들고 다닌다던가.
“가문에서 문제삼을 텐데. 어째서 인수하려는 거지?”
“반역 얘기라면 아까 말했다시피 제가 알아서 처리할 거고, 음. 인수 하려는 이유는 그냥 아까워서 그렇다고 해두죠.”
“아깝다?”
“플레온 기사단의 명성에 비해 받고 있는 대우가 형편없잖아요.”
순간 이자벨은 할 말을 잃었다.
보통 망해가는 기사단을 놓고 안타까워하는 부류는 없다.
특히나 자기 영역이나 세력이 아닌 집단의 기사들이 망해간다면 두 손 두 발 들어서 반겼다.
언제 적이 될지도 모르는 강력한 집단일수록 특히.
플레온 기사단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중립 국가에 있으면서 누구의 편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기사단이라 균형추라고도 불렸다.
그런 기사단을 안타깝게 여겨서 사겠다니.
‘벌써부터 미래에 세력을 쌓기 위해서인가. 13살짜리가 할 발상치곤 과감하다 못해 발칙하군.’
이자벨로선 그를 말리거나 막아야 되는 입장이었다.
상대 라이벌 가문에 플레온이라는 막강한 세력이 생기는 거니까.
그러나 이자벨은 그를 도와야 되는 입장이었으며, 동시에 돕고 싶기도 했다.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입었기에.
“……세벨의 섭정은 쉽사리 플레온 기사단을 넘겨주지 않을 거다. 돈으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이자벨이 묘하게 확신에 차서 말했다.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아시는 게 있나요?”
“세벤의 현 섭정은 탐욕스러운 자다. 플레온 기사단을 사겠다고 하면 당장 팔겠지만, 그는 더 많은 걸 요구할 거다.”
세벤의 섭정은 현재 국왕의 숙부인 닐룽이라는 자가 차지하고 있다.
설정집에선 간악하고 약삭빠르나 머리 회전이 좋아서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어지간한 돈은 다 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원하면 다른 것도 줘야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자벨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듣는 귀가 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아무 기운도 감지되지 않다고 확신이 들어서야 그녀의 입이 움직였다.
“솔리드녹스가 이미 인수하려고 접근했다.”
“솔리드녹스가요?”
원작과 설정집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에 유리는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러나 곧 납득이 되었다.
“플레온 기사단쯤 되니까 솔리드녹스도 움직였나보네요.”
“당연하다. 플레온 기사단의 기사들은 놓치기 아까운 인재들이다. 예전부터 물밑에서 접촉하면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거 가문의 비밀 아니에요?”
“중진 원로들이 뱃속을 채우려고 하는 짓이라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알려주는 거다.”
아아, 그랬군.
유리는 어렴풋이나마 이자벨을 이해했다.
추후 원작에서 솔리드녹스가 악마를 없애는 데 앞장선다고 하지만, 그 속이 마냥 깨끗한 집단은 아니었다.
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더러운 물이 있듯이, 솔리드녹스의 중진 원로들 중 일부도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쁜 탐욕 덩어리였다.
원작에서도 꽤나 골치여서 곤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벌어졌다.
‘안 그래도 그쪽 문제도 나중에 처리하려 했는데. 음, 이참에 골려줄까.’
[솔리드녹스를 벌써 건드리겠다고?]‘살짝 놀려주는 것뿐이야. 진짜로 찔러서 피를 내겠다는 게 아니라.’
[차라리 찔러. 그러면 나이트워커에서 수습이라도 해주지. 어중간하게 놀렸다가 어떤 수모를 당하려고.]‘그것도 그렇긴 하지.’
건드릴지 말지는 나중에 정하고.
어찌 됐든 쓸모 있는 정보가 들어왔다.
솔리드녹스의 개입이라…….
이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유리는 걱정보다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가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