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0
제240화
“알고 있습니다.”
유리는 그리 말했다.
“알고 있다고요?”
“예상했었다가 이제 알게 된 거죠.”
“…….”
“뻔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범죄자 다이올드를 인계하지 않고 데리고 있을 이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였겠죠. 물론, 보호만이 아니라 간을 봤겠지만요.”
간을 봤다는 표현에서 비쥴레의 눈 사이가 잠시나마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다이올드가 사라졌나봅니다.”
섬뜩한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만큼은 비쥴레조차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불쾌한 심정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비쥴레가 군대를 끌고 온 건 다이올드를 되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고, 비쥴레는 조금은 바보 같이 유리를 떠보았다.
다이올드를 데려가지 않았냐면서.
어눌한 대화방식이었지만, 덕분에 유리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다이올드를 누군가에게 빼앗겼다.
‘빼앗겼다면 악마들이겠지. 그리고 이 자들은 빼앗길 때까지 악마와 나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지 계산하고 있었을 거야.’
유리의 편에 섰을 거라면 다이올드를 바로 인계했으리라.
반대로 악마 편에 섰다면 악마에게 다이올드를 넘겼을 테고.
그러나 어느 쪽에도 서있지 않던 만타티스와 비쥴레는 다이올드를 가둬놓았고 악마와 유리 두 군데 중 어디로 인계할지 계산했다.
그러나 이는 악마와 유리 모두에게 의심을 사는 행위가 되었으며, 다이올드가 탈출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만타티스는 확실히 편을 정한 것이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악마 편에 서면 저희 가문과 군세에 먼저 몰살당할 겁니다.”
“그 말은 제가 하고 싶군요, 유리 가주.”
“우릴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비쥴레는 침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대로 악마와 맞섰다간 용인 일족은 멸할 겁니다.”
“악마를 너무 과신하고 계시군요.”
“과신이 아닙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제가 본 ‘미래’가 있기 때문에.”
“미래?”
“……더 이상 자세한 말씀은 곤란합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악마의 편에 서십시오. 그러면 가문과 동료들만큼은 지킬 수 있습니다.”
적대적으로 나왔던 비쥴레의 태도는 읍소로 점점 바뀌어 갔다.
미래.
유리는 그 한 단어에서 또 다른 사실을 알아챘다.
‘비쥴레도 원작을 본 건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예언?’
사실 지금까지 비쥴레의 행보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상식적으로 악마와 맞서야 하거늘, 그들은 악마와 싸우기는커녕 악마의 존재를 알고도 의연했다. 최근 들어선 유리와 맞서고 있고.
‘애초에 원작과 상관없이 창조주의 예언을 봤을 수도 있어. 할아버지와 빅스터도 예언에 대해 알고 있잖아.’
66명만 살아남는 미래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멸망을 필연으로 믿고 있다면 그들의 선택이 이해되었다.
그럼 만타티스와 비쥴레는 어떤 미래까지 보았던 걸까.
멸망? 아니면 만타티스 가문이 없어지는 세상?
“당신이 봤다는 미래엔 우리가 없나보군요.”
“유리 가주.”
“질질 끌지 말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린 이로서 적이 됐으니까요.”
유리도 아스칼론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는 티르빙을 뽑으며 말에서 내렸다.
이미 검을 뽑고 내렸던 비쥴레를 봐선 마음을 굳힌 게 확실했다.
“실망이군, 유리 가주. 가주씩이나 되어서 용인의 생존을 져버리다니. 그대는 미래를 모르겠지만, 내 말을 이해할 줄 알았다.”
“헛소리 마시길. 용인의 생존은 곧 투쟁입니다, 비쥴레 가주. 비열하게 누구의 편에 서는 게 아니라요.”
“……!”
“지조와 신의를 갖고 싸워서 자신을 관철하는 존재가 용인. 그래서 전 당신이 더 실망스럽습니다.”
“인간 주제에!”
쾅!!!
발끈한 비쥴레의 검이 먼저 움직였고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전투가 일어나자 블레이크는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전군! 30보 뒤로 후퇴!”
만타티스 가문의 기사들도 전장으로부터 멀어졌다.
가주들의 대결은 한낱 기사들이 끼어 들어선 안 되었다.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하지만, 가주들이 나선다는 의미는 모든 병사를 대신하여 싸운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즉, 둘의 싸움만으로 이 전쟁의 승패가 갈라진다.
“인간 놈이 용가의 가주가 되었다고 하더니, 정말로 자신이 용인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비쥴레의 말투는 더 이상 존대가 아닌, 유리를 하대하고 있었다.
먼지 속에서 그를 올려다보던 유리, 그리고 그런 유리를 내려다보는 비쥴레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솔직히 비쥴레는 유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용가야 그렇다 쳐도, 고작 인간이 용가의 가주가 됐으니. 세간에서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인간 유리가 가주가 되어서 기대하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인간이 용가를 이끌어봤자 얼마나 이끌겠다고.
그러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 사이에선 걱정도 아닌 웃음거리로 여겼다.
인간이 끌어봤자 얼마 안 가서 망할 거라며.
비쥴레는 그런 유리가 용인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생각했다.
“더 이상 용인에게 수치를 주지 말고 꺼져라. 마지막 경고다!”
“가주치곤 예의를 밥 말아먹었군.”
“인간이 용가의 가주가 된 것부터 예의가 아니지!”
후웅! 쿵!
비쥴레가 뽑았던 검은 어느 샌가 연검처럼 길어지고 휘어지면서 유리를 공격했다.
끊어질 듯 굽었던 검이 아스칼론과 부딪히자 다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 속에서 방어를 하던 아스칼론을 충격이 발생하는 순간 뒤로 뺐다가 티르빙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러나 아스칼론을 빼는 데는 실패했다.
연검이 아스칼론을 감쌌기 때문이다.
[주인님!]‘티르빙!’
[귀찮은 검이네!]오른손의 티르빙이 조금 짧아지면서 아스칼론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검신을 감쌌다.
그곳으로 마나를 넣자 아스칼론의 성력과 반발을 일으켰다.
꾸득, 퍼엉!
검신을 감쌌던 연검이 튕겨 나갔다. 그 주인인 비쥴레도 갑작스러운 폭발에 서둘러 뒤로 몸을 뺐다.
‘뭐, 이런!’
마검의 주인이라고 다이올드에게 듣긴 했지만, 아스칼론에 대해선 듣지 못했었다.
하물며 마법도 아닌, 마나를 불어넣기만 해도 이만한 위력을 내뿜는다는 사실은 비쥴레에게 충격이었다.
더 충격인 건, 그가 보기에 아스칼론은 성력에 특화된 검 같았다.
마검과 성력이라니.
그야 말로 공존할 수 없는 힘을 유리가 부리고 있었다.
‘성가시긴 해도 그래봤자 무기는 무기에 불과하다!’
어떻게 성력을 쓰는지 몰라도, 유리가 쓰는 마나의 형태를 봐선 파괴적인 방식 밖에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성력도 별 의미는 없을 터.
‘더 과감하게 간다!’
물러나던 비쥴레는 뒷발에 힘을 주고 재차 앞으로 활시위처럼 나아갔다.
순간 찌르기로 들어오던 연검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각 갈래에는 희미한 물줄기가 감싸면서 물방울이 튀었다.
갈라진 물줄기와 검은 사방으로 퍼졌다가 유리를 덮쳤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를 막더라도 다른 검이 유리의 목을 노리리라.
하지만.
그 타이밍에 유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바닥에 티르빙을 수직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렇게 떨어진 검은 바닥에 꽂히지 않고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무형검, 혈계. 본(本).”
붉은 티르빙이 허공에 5자루가 생겨났다.
원래는 3자루가 최대였지만, 한 자루는 수련을 통해 늘렸고, 다른 한 자루는 티르빙 본체였다.
무형검을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스칼론이 만들어지면서 고안한 방식이었다.
물론, 아스칼론이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당장 아스칼론은 방어용에 가까웠다.
크극! 크극! 크극!
세 개로 갈라졌던 물줄기가 무형검과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푸른 물줄기는 붉게 물들면서 무형검과 엉켰다가 이내 힘을 잃고 빗물처럼 추락했다.
그 아래를 뚫고 유리는 비쥴레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이 뭔!”
무형검에 놀라기도 전에, 비쥴레는 검을 거둬들였다. 아스칼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을 거두려 해도 무형검이 된 검들을 붙들고 있는 탓에 시간이 지체됐다.
물론, 고작 2초다.
하지만 2초만으로 유리의 아스칼론이 살의를 품고 덤비기엔 충분했다.
“크윽!”
검이 더 빨리 돌아올 것인가, 아스칼론이 더 빨리 피를 볼 것인가.
스르르륵! 캉!
다행히도 비쥴레의 검이 더 빨랐다. 아스칼론이 짧은 덕이었다.
비쥴레는 안도를, 유리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했군.”
“어디서 잔기술을!”
“드래곤에게 직접 전수받은 검술을 잔기술이라 하다니. 빈 퀴네님이 들었다간 노하시겠는 걸?”
“뭣?!”
빈 퀴네가 언급되자 부서질 듯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까 들었던 어떤 말들보다 비쥴레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리 악마의 편에 섰어도 용가의 가주이고 그들이 모시던 조상이다.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그러나 도리어 화가 나는 건 유리였다.
“빈 퀴네님이 어떤 마음으로 내게 무형검을 전해줬는지 안다면, 네놈들은 목숨으로 그분에게 속죄해도 모자라.”
세드리치를 만났던 클라우드 하트에는 세드리치만이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도 함께 있었다.
세드리치의 기억이니까 그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기억도 함께 담겨 있었다.
드래곤들 모두가 멸망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유리에게 전부를 전수한 것이다.
그들의 노고와 멸망에 향한 불안감을 비쥴레는 알까.
“네놈이 감히 빈 퀴네님에 대해 뭘 안다고!”
“내가 알긴 더 잘 알지. 만나봤으니까.”
“만나, 엇!?”
알 필요 없다.
빈 퀴네의 의지를 져버린 이들은 유리에게 있어서 더 이상 협조를 구할 이들이 아니었다.
그저 없애야 할 적.
슈르르륵.
맞대고 있던 아스칼론에 붉은 검신이 점점 자라났다.
티르빙 본체였다.
티르빙은 검신처럼 자라다가 촉수처럼 뻗어서 비쥴레의 얼굴을 노렸다.
아쉽게도 고개를 틀어서 뺨을 스쳤고 작은 생채기가 실금 같이 생겼다.
“학습 능력이 없군, 비쥴레.”
그러나 머리를 노리려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아스칼론의 성력이 티르빙과 합쳐지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이번엔 비쥴레가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래도 뒤로 몸을 빼보았고, 이윽고 폭발이 그를 덮쳤다.
*
결투의 밖에서 지켜보던 모든 기사들은 가주들의 싸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한 번씩 충돌할 때마다 수 십번의 칼질이 오고 갔다.
유리의 무형검은 마법 같으면서 검술과 비슷했고, 비쥴레의 연검도 각각의 줄기가 개성을 갖고 무형검과 맞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두의 관심은 유리의 오묘한 검술에 쏠렸다.
무형검, 아스칼론, 마검, 이어지는 잔악하면서 화려한 핏빛 줄기들.
‘저것이 정말 한 사람이 쓰는 검술이라는 건가?’
블레이크도 유리의 진짜 실력을 오랜만에 보다보니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무형검이 각자의 의지를 갖고 싸우는 건 아니었다.
모든 검과 검술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설령 손에서 멀어져도 똑같다.
그런데 유리가 다루는 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웠다.
어떤 무형검은 공격을, 어떤 무형검은 방어를, 그러면서 아스칼론을 쥔 유리는 틈새를 만들거나 공격의 이음새 역할이 되었다.
마치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블레이크는 그 점이 가장 놀라웠다.
‘한 사람의 의지로 여러 역할을 한다니. 대체 그간 어떤 수련을…….’
과거 블레이크가 유리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렴풋이나마 따라 잡을 실력이었다.
아니, 당시에 정확히는 블레이크가 더 강했다.
그저 유리가 가진 가능성이 자신보다 높았다고 생각했던 블레이크는 더 이상 막연히 ‘높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정점이다.’
과연 나이트워커의 가주가 될 만한 재목이었다.
다른 기사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기사들은 가문간의 싸움이 아닌, 경외어린 시선으로 결투를 지켜봤다.
쾅!
그때, 비쥴레와 유리가 부딪히자마자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 폭발은 도저히 두 사람 모두 피할 길이 없었다.
동시에 블레이크가 허리를 세웠다.
“가주님!”
아무리 유리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본인이 일으킨 폭발에 스스로 말린 꼴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다.
원래는 그들의 싸움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나서면 안 됐지만.
만타티스 가문과 블레이크는 너나 할 거 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