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2
제242화
모두의 동공이 터질 듯이 커졌다.
정말로 악마가 나타났다고?
아니, 어떻게?
그러나 이런 반응 속에서도 유리만은 여유를 유지하며 되물었다.
“어디지?”
“항구로부터 북서쪽으로 떨어진 산입니다. 그곳을 정찰 중이던 정찰병이 방금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가?”
“아, 그게…….”
이 대목에서 기사가 망설였다.
“악마들이 나타났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고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블레이크와 이자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껏 동쪽 대륙으로 넘어왔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군세가 약한가? 약한 악마가 동쪽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유리가 말했던 대로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유리가 동료들에게 계획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진 않았다.
그 중 하나가 악마가 강림했을 때였다.
만에 하나 범람이 아닌 강림으로 악마가 나타나면, 1순위 악마인 바알조차 쉽사리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그때 했던 설명과 지금의 상황이 딱 맞았다.
“병력들의 태세 등급을 상승시키고 대포들을 준비하도록. 마법사들도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유리가 동료들을 돌아봤다.
사뭇 결연함이 돋보이는 얼굴은 긴장한 듯 하면서도 상기되었다. 그래도 동료들을 긴장하게 하지 않으려고 모든 감정을 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표정과 말을 하지 않아도 자리에 있던 모두가 마지막에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 * *
몇 주가 지나도록 악마들의 움직임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최초로 악마가 나타난 자리엔 전혀 본 적 없는 거대한 공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검보라색 동공은 작은 오두막 크기였으나 점점 크기를 키워 이젠 어지간한 성보다 커졌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자란 동공에 병사들의 불안감은 나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대체 몇 주째야. 저거 저러다가 폭발하는 거 아니야?”
“허어, 또 쓸데없는 소리! 저게 무슨 폭탄이냐?”
“폭발이 아니라면 악마가 자라고 있겠지!”
항구 외곽 성벽 위, 기사들이 각각의 대포에 모여서 정비를 하고 있었다.
대포알을 나르던 기사들은 벌써 지척까지 자란 동공을 바라봤다.
“확실히, 내가 봐도 저건 폭탄보단 악마가 자라는 둥지 같아.”
“폭탄에 이어서 둥지라고?”
“악마가 살고 있으니 둥지는 둥지지!”
“뭐, 말은 된다만.”
“그리고 쑥쑥 자란 악마가 성체가 되는 순간 튀어나와서 우릴 공격할 거야. 어쩌면! 저 안에서 자기 새끼들을 잉태하고 풀어낼지도 모르지!”
“어흠! 그, 그런가?”
헛소리라며 타박하던 동료 기사도 어느새 온갖 추측에 동감했다.
단순히 동공이 커져가고 있어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동공이 생각 외로 단단해서 더욱 불안했다.
안에 무엇이 들었던 간에 무언가를 보호하려고 껍질이 있으니, 껍질을 부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5번씩 대포와 마법을 난사해서 동공을 부수려고 시도했다.
물론, 전부 실패했지만.
오늘도 대포를 쏘기 위해서 탄환을 나르는 중이었다.
마법사들은 각자의 위치에 서서 벌써 마법을 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명령만 기다리면 되었다.
때 마침, 성벽 위로 빅스터가 나왔다.
“그런데 요즘 유리 가주님이 아니고 빅스터가 명령을 하잖아.”
“그러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벽에서 모든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유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빅스터로 바뀌어서 그가 명령을 내렸다.
불만이 있는 자는 없었지만, 도리어 유리가 없어지니까 더 불안해졌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하자고. 유리 가주님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렇지?”
“그리고 봐봐. 이 성벽. 전에는 이상한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가주님께서 이런 상황을 예견하신 게 분명해.”
항구를 감싸는 것이 아닌, 외곽의 숲을 감싸는 형태였던 성벽은 어느새 유리의 선견지명이라며 칭송 받았다.
도리어 숲을 포위한 것처럼 생겨서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었다.
“가주님을 좀 더 믿어보자고. 악마를 미리 예지했다는 소문도 있으니, 분명 더 많은 대책을 세우셨을 거야.”
“난 원래부터 믿고 있었다고.”
“말은 참.”
이런 저런 말이 오가도 결국 병사들은 유리를 믿었다. 세간에선 그를 폭군이라 불렀지만, 가까이 있는 기사들이나 군대에게 유리는 어진 군주였다.
모습을 안 보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시로 병사들을 다독여주거나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악마가 있다는 불안감을 좋은 사기로 얼마든지 억눌렀다.
잠시 뒤, 포탄이 장전되고 마법이 준비되었다.
빅스터의 손이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지자 포신과 지팡이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엄청난 파공음이 숲을 진동시켰다.
* * *
포탄과 마법세례가 공동을 두들기고 있는 사이.
유리와 동료들은 공동 뒤편으로 돌아가서 포격 지대로 벗어나는 중이었다.
참고로 같이 온 동료는 채럿, 이자벨, 렉슬러, 블레이크, 해링, 그리고 카이였다.
공동 지근까지 다다란 그들, 유리는 잠시 멈춰 서서 공동을 손으로 쓸었다.
‘이게 악마의 둥지, 범람의 알.’
원작에서 나온 서쪽 대륙엔 이런 공동이 곳곳에 있었다.
악마들이 사는 둥지로, 범람이 일어나는 전조이기도 했다.
지금쯤 저 안에는 수많은 악마 개체들이 범람을 반복하면서 개체를 늘리고 있을 것이다.
‘리리스.’
이름을 부르자 유리의 목덜미 사이에서 하얀 머리가 튀어나왔다.
“왜.”
“이 둥지, 누구 건지 알 수 있나요?”
“바알.”
“바알…… 역시 그랬군요.”
72인의 악마 군주들은 각자만의 둥지을 가지고 있다. 특징도 각각 다르며 공동이라 해도 형태가 꼭 돔(Dome)처럼 생기진 않았다.
가령 메두사의 둥지는 거대한 뱀들이 실 지렁이처럼 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원작과 설정에 모든 둥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바알의 둥지만은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바알의 둥지는 크기만 거대하고 그 중 가장 무난했다. 검보라색 빛이 감돌고 손을 만졌을 때 유리처럼 매끈한 감촉이 들었다.
“바알부터 강림한 건가?”
카이가 물었다.
“운이 나쁘군. 강림해도 바알이라니.”
“바알이 왜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럿이 묻자 다른 이들도 귀를 기울였다.
대답하기 전 카이는 유리를 째려봤다.
“설마 설명하지 않았나.”
“바알에 대해선 말해줬지. 그 놈이 모든 악마 군주 사이에서 가장 강한 1위라는 것만 빼고.”
“이, 일순위요?!”
“가, 가주님! 왜 중요한 걸 이제야!”
“1순위라고 해봤자 뭐가 달라져? 어차피 이 놈이 강림하면 다른 악마들도 상대해야 하는데.”
공동으로부터 한 발 떨어진 유리는 동료들을 돌아봤다.
“차라리 바알이라서 잘 되기도 했어. 적장의 목만 딴다면 전황이 유리해질 테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난 일부러 다이올드를 풀어줬어.”
“에? 어째서요, 오라버니?”
“악마추종자들이 다이올드로 강림을 일으키길 바랐거든.”
“이해가 안 돼요. 강림을 막으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서쪽에서 악마가 넘어오는 걸 걱정했잖아요.”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강림을 막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전장이 서쪽이냐, 동쪽이냐만 달라지지.”
전쟁에서 병력의 질이 동등하다면 단연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다.
병기 전술학에선 통상적으로 성 하나를 공력하려면 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3배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고 한다.
그간 동료를 모으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악마와 동등해졌다면, 그리고 악마들의 숫자가 동쪽 대륙의 병력보다 3배 이상 많지 않은 이상.
당연히 쳐들어오는 쪽이 불리했다.
“무엇보다 악마들의 목표는 강림이 아니라 강림을 통한 동쪽의 지배야. 어떤 전장에서 승패가 갈리든 결과는 같아.”
“그래서 강림까지 허용하신 거군요. 우리의 땅에서 싸울 수 있게.”
“맞아, 블레이크 경. 더군다나 데카라비아가 죽고 리리스가 우리 편이 되면서 놈들은 계획이 우리한테 알려졌을 거야. 그래서 아마 강림을 서둘렀을 거고.”
“다이올드는 악마를 가장 믿는 자일 테니 강림 재물로 적합했을 테고요.”
“애초에 서쪽으로 전장을 잡는 건 위험도가 커.”
당초 계획은 인어국과 톤트를 이용해서 서쪽으로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계획이 바뀐 계기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리리스의 등장과 데카라비아의 등장 때문이었다.
해상 지배력을 잃은 악마들은 바다로 동쪽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을 두려워했으리라. 그로 인해 악마들은 어떻게든 범람을 서둘렀으나 이는 실패했고, 결국 다이올드를 통해 강림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강림을 하게 되면 어떤 악마가 오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하필 제일 높은 순위에 있는 바알이 강림한 것이다.
“바알이 강림했으니 범람도 시작될 거야. 다른 악마 군주들도 곧 오겠지.”
“자, 잠깐 유리. 범람이라니? 범람은 막은 거 아니었나?”
이자벨의 당황한 낯빛이 말까지 더듬어가며 물었다.
“바알에겐 범람과 강림을 강제적으로 일으키는 능력이 있어. 그야 말로 사기지.”
“그럼 큰일이지 않나!”
“큰일이지. 하지만 기회이기도 해.”
“바알만 죽여서 동쪽 대륙 침공을 막을 생각이군.”
읊조림처럼 카이가 확언하자 유리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제적인 범람과 강림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바알 밖에 없어. 해상 지배권은 우리가 가져왔으니 이것 말곤 놈들한테 답은 없지.”
“바알만 죽으면 서쪽에서 이곳으로 침공할 수단이 없어지는 거군요.”
“그래, 렉슬러 경.”
바알이 죽더라도 여전히 악마가 남아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적어도 동쪽 대륙은 안전해질 수 있다.
서쪽 대륙이야 이미 악마에게 점령당해서 구실을 잃은 상황.
그곳을 공격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
그보다는 바알을 죽이는 게 우선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 안에서 다른 악마들까지 죽일 수도 있고. 괜찮겠지, 카이?”
“……왜 나한테 묻는 거냐.”
“넌 서쪽 대륙 출신이잖아.”
“…….”
카이의 첫 인생은 서쪽 대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가족을 모두 악마에게 잃은 그는 무한한 삶을 살며 악마에게 복수할 날을 꿈꿨다.
해서 고향을 되찾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도록. 난 악마만 죽이면 된다.”
……그건 아니었나 보다.
하긴. 더 이상 카이가 알던 고향은 남아있지 않다. 다 부서지다 못해 악마의 땅이 되어버려서 지금은 악마만 살고 있다.
그 사실을 카이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알아차리긴 했으리라.
“좋아, 그럼 이제부터 공동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해링 님이 남아주세요.”
“내가?”
“해링 님이 전력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곳을 수비하면서 지휘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빅스터가 있지 않습니까.”
“빅스터도 나중에 저희와 합류할 겁니다. 그리고 리펠리온 가는 여전히 이 전쟁에 회의적이지 않습니까.”
솔리드녹스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고, 리펠리온의 궁수들은 유리를 여전히 불신했다.
아니, 악마를 믿긴 해도 유리를 따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용가들끼리 오랜 세월 대치를 하다 보니 병사들도 그 풍토에 물든 탓이었다.
“어차피 수비 병력과 이에 맞는 지휘관이 있어야 합니다. 곧 있으면 제 할아버지도 합류할 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유리 가주가 그리 말한다면야 기꺼이.”
참고로 큰 전력이 될 벤헬링턴은 유리와 대련 이후 생각보다 후유증이 커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리가 그 옆을 같이 살피고 있고.
곧 그들이 수비병력에 합류하면 유리와 동료들이 공동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럼.”
티르빙이 유리의 손등 아래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줄기처럼 자란 검신은 얇고 길게 커지더니 동공 한 쪽을 쉽사리 갈랐다.
스걱.
표피가 잘리듯 틈이 벌어진 공동 안은 새카만 어둠이 소용돌이 쳤다.
유리는 가장 먼저 그곳으로 발을 디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