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3
제243화
동공 안에선 이미 다이올드의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목이 잘린 그의 머리가 재물로서 마법진 가운데에 자리했고, 나머지 육체는 피만 받아서 태워 없앴다.
빅 핸드와 추종자들은 마법진을 둘러싸고 섰다.
“자, 준비가 끝났소! 드디어 우리의 오랜 숙원이 시작되려 하오!”
“오오오!”
“오오오!”
빅 핸드의 간단한 선언에 단숨에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추종자들조차 직접 악마를 보거나 소통한 적이 없었다. 막연히 악마가 있을 뿐이며 그들이 내려주는 신과 같은 기적에 경탄만 했었다.
이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추종자들의 마음은 한없이 들떴다.
“다이올드, 그대의 희생은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오. 비록 가주가 되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악마 군주들을 뵙게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으니. 부디 개의치 말길.”
기도문 같은 말들을 뱉곤 빅 핸드가 마법진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손에는 다이올드의 피로 가득 찬 대야가 들려 있었다.
주변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은 마치 음울한 노래 같기도 했다.
곧 빅 핸드도 주문을 따라 외우자 대야의 피가 들끓었다. 그리고 그 피를 다이올드의 머리 위에 붓는 순간.
추르르륵!
중력을 따라 흐르던 핏물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추더니 천천히 머리통을 감쌌다.
이윽고 완전히 구체가 된 피 덩어리는 잠시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갑자기 형태가 변하면서 커졌다.
“……!”
갑자기 커져버린 형체에 놀란 빅 핸드는 대야를 놓쳐가면서까지 빠르게 도망쳤다.
주변에 있던 추종자들도 주문을 외우는 것조차 까먹을 정도로 피 덩어리는 거대하게 급변했다.
[부족……군.]“예? 억!!!”
콰직!
피 덩어리에서 촉수가 뻗어 나와서 빅 핸드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 순간 빅 핸드는 희열을 느꼈다.
“내, 내가! 재, 재물이 된다!”
[그래, 넌 나의 재물이 된다.]“감사합니다!”
[다른 자들도.]푸부부북!
“으아악!”
피 덩어리는 닥치는 대로 추종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생기를 빨아들였다.
촉수가 꽂힌 이들은 점점 말라가다가 결국 거죽만 남아서 바닥에 쓰러졌다.
추종자들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누군가는 빅 핸드처럼 죽음을 기뻐했고, 누군가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망쳤다.
그러나 강림한 악마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부족하다. 너희들의 믿음이 내게 필요하다.]악마에겐 도망치는 자들이 더 필요했다.
신앙심 같은 믿음도 좋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얻은 공포야 말로 가장 강력한 믿음이었다.
결국 1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든 추종자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절반은 기뻐했으며, 절반은 겁에 질린 채 죽었다.
그리하여 믿음을 얻어낸 악마는 완전한 변태를 통해 피 껍질을 깨고 나타났다.
콰직.
알을 깨고 나온 백색 피부를 가진 거신이 나왔다.
머리카락조차 하얀 색이었으며, 특이하게도 얼굴은 다이올드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쓰레기 같은 육체군.”
악마 바알은 강림한 육체를 그리 평가했다.
강림 과정에서 나름대로 피를 삼키고 개조를 했다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그나마 이곳 동쪽 대륙의 믿음이 예상보다 강해서 다행이었다.
“둥지.”
추욱, 물줄기가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대지로부터 검은 막이 솟구쳐서 하늘을 뒤덮었다.
이윽고 거대한 돔이 형성되자 바알은 남은 시체들을 살폈다.
개중에는 바알이 먹다 남은 시체가 있었다. 공포가 아닌 믿음으로 죽어가는 순간까지 웃고 있던 자들이었다.
“일단 하나. 범람.”
시체 몇 구가 깡통마냥 일그러뜨려서 한 군데 뭉쳤다. 잠시 후, 시체에서 온갖 마수들이 거죽을 뚫고 나왔다.
작은 시체치곤 비대한 마수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서 공동을 빠르게 채웠다.
그리고 아직 남은 시체들.
“강림, 오거라 군주들이여.”
손짓을 하자 남은 시체들은 바알이 태어났을 때처럼 알처럼 피가 뭉치더니 그와 함께 하는 악마들이 태어났다.
“바알!”
“드디어 동쪽에 왔다!”
“성공했어, 드디어 만 년의 시간을 보답 받을 때다!”
악마들이 환호하는 사이, 바알 곁으로 한 여성 악마가 다가왔다.
머리가 온통 뱀으로 이뤄진 여자, 메두사였다.
“드디어 왔군요. 경축드립니다, 바알. 마신이 되고자 하는 걸음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셨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도 시작이라도 했으니 다행이지 않나요.”
“메두사.”
“말씀하시지요.”
“네가 선봉이다.”
선봉이라는 한 마디에 메두사의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본디 메두사는 악마가 아니다. 한때는 인간이었고 자아를 가진 마수로 변했다.
때문에 선봉은커녕 다른 악마들이 동쪽 공략의 시발점이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메두사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녀는 기쁜 감정을 구태여 숨기지 않고 활짝 웃으며 드러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어요!”
“무리할 필요는 없다. 밖에 그 놈이 왔어.”
“예? 그 놈이라면?”
“카이와 유리.”
“……!”
두 사람의 이름을 듣자마자 웃던 낯이 단숨에 엉망이 되었다.
카이, 오랜 세월 악마를 막아온 인간. 여러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성검의 주인으로서 악마와 대적하며 바알의 대업을 막아왔다.
그래도 서쪽을 완전히 지배했고, 이제 동쪽만 점령하면 되었거늘.
여전히 카이가 문제였고, 최근엔 갑자기 유리라는 자도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역겨웠다.
“메두사, 그들을 붙잡아라. 둥지를 더 키워야한다.”
“본부대로.”
메두사가 미끄러운 몸짓으로 빠르게 바알과 마수 무리를 벗어났다.
밖에 그들이 있다면 얼른 대처를 해야 했다. 평소 두려울 것이 없는 악마와 그 군단이지만, 카이와 유리만은 그들조차 긴장케 만들었다.
바알도 이를 알고서 메두사를 보냈다.
다른 악마들도 있지만, 그들은 메두사에 비해 강림이 완벽하지 않았다.
바알 본인도 마찬가지.
“군주들이여. 몸을 추슬러라. 곧 점령전을 시작할 것이다.”
* * *
공동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리와 일행은 때 아닌 현상 때문에 막상 공동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유리가 억지로 문을 열었지만.
“내가 연 게 아니야.”
이래 보여도 공동은 악마들에게 성이나 다름없었다.
둥지처럼 집이기도 하며 요새인 공동은 간단히 부서지거나 갈라지지 않는다.
카이조차도 이 공동을 공략하는 법을 몰라서 억지로 힘으로 부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유리가 티르빙으로 공동을 가르자, 천을 자르듯 쉽게 갈렸다.
“일부러 들어오라는 건가?”
“네놈, 처음 보나.”
카이가 공동 안쪽으로 한 발 디뎠다.
그림자와 빛 한 줌조차 없는 안쪽은 발을 넣기 무섭게 발끝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바알의 둥지는 이런 식으로 적을 끌어들인다.”
“아니, 그건 알고 있어.”
“그런데 뭐가 문제지?”
원작에서 카이가 바알에 처음 접근 했을 때,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했을 때.
두 경우 모두 바알은 자신의 둥지를 기꺼이 열어줬다.
자신의 영역이자 요새이니 사실상 들어가면 자살하는 꼴이었지만.
실제로 카이는 첫 번째 공동 전투에서 완패 당했고, 두 번째에서도 멸망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인류를 구원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의 경우는 원작과 많이 달랐다.
“이 둥지는 완벽하지 않아. 오히려 불안해.”
“불안하다고? 강림까지 성공해서 내려온 놈의 둥지다. 불안할 게 뭐가 있지.”
“둥지가 뭐라고 생각해?”
“뭐?”
“악마들에게 둥지는 단순히 집이나 요새와는 달라. 일종의 영역이지. 짐승들의 영역. 그 영역은 사실 누구나 출입이 가능해. 다만, 침입했다가 주인한테 혼날 뿐이지.”
“그 정돈 알고 있다.”
“하지만 바알은 이제 겨우 동쪽에 직접 영향을 끼쳤어. 영역을 지키는 부하들은 서쪽에 있을 때보다 약한 상태고, 범람도 얼마 못했을 거야.”
만에 하나 바알이 서쪽 대륙에서 일으켰던 범람이나 강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마수와 악마를 풀어 공격을 시작했을 테지.
역으로 말하자면 현재 바알의 둥지는 강림과 범람 모두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불안한 영역에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준다고? 자기가 약한 걸 알면서도?”
“…….”
“함정일 수도 있다, 유리.”
이자벨이 뒤에서 첨언하자 다른 동료들도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리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함정이겠지. 확실해.”
“그렇다고 안 들어갈 건가? 원래 계획은 공동으로 들어가는 거였을 텐데.”
“계획에 변함은 없어. 다만.”
함정이라는 건 결국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설치해놓은 덫이다.
상대가 생쥐인지 곰인지 모르고 무작정 쥐덫을 깔아봤자 소용없듯이.
이들이 파놓은 함정은 결국 유리와 일행들의 능력을 파악했다는 증거였다.
“결국 우리가 올 줄 알고 있던 거야.”
“…….”
긴장감이 덜하던 동료들의 낯빛이 조금씩 굳었다.
애초에 공동을 기습한다는 개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이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고 있다는 점은 여유를 잃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꼬맹이. 이대로 들어갔다간…….]‘놈들이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주인님, 티르빙 양의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럴 때를 대비했던 게 걱정되는 거죠.] [그러니까 말이야. 이건 승산의 문제가 아니란다.]“그래도 역시……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리가 세운 계획은 여전히 승산이 높아.”
그리 말하며 유리는 앞장서서 공동으로 들어 가버렸다.
다른 동료들도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면서 결심을 굳혔다.
유리 말대로다.
달라지는 건 없다.
이대로 악마를 몰살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어서 이자벨을 필두로 전부 따라들어갔다.
정작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건 카이였다.
[역시 죽여야 했다.]오늘도 성검 미뭉은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심지어 한 마디를 덧붙이길.
[널 희생시켜서 악마를 몰아내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마음이 달라졌군.”
[내가 말인가?]“예전엔 희생하더라도 악마를 막자고 했던 건 너다.”
[너 스스로 선택하는 희생과 남이 강요하는 희생은 다르다. 나에게 넌 주인이다. 난 주인을 보호해야하는 의무가 있다.]문득 카이는 성검을 뽑아봤다. 황금빛 검신이 찬란한 빛을 뽐내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발산했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자기 자신은 언제 성검을 쥐었던가.
무엇을 계기로 성검이 내 손에 들어왔던가.
무얼 위해 멸망으로 나아갔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별 수 없었다.
오랜 삶을 살면서 깎여나간 성격만큼이나 기억까지 풍화되어 사라졌다.
남아있는 거라곤 성검을 쥐고 악마를 몰살해야겠다는 일념 단 하나.
카이는 성검을 강하게 쥐었다.
기억나지 않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악마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악마를 몰살하면 잃었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몰랐다.
* * *
긴장하긴 했어도 계획을 세운 일행은 나름 기세등등하게 공동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의외로 평범했다.
나무와 풀이 가득한 숲이 그대로였다. 흙바닥이 검보라색으로 얼룩져 있고 흔한 새소리가 들리지 않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특이할 점은 없었다.
그러나 일행은 얼마 가지 않아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한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여잔 바로 카이의 옛 연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