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5
제245화
말도 안 된다. 정신 공격은 굉장히 치명적인 약점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환각이 기본이다.
대개는 그 환각이 너무 강해서 공격할 생각조차 못했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강력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공격은커녕 환각이 넘어가서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이런 환각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다.
피라니, 상처를 입자마자 부서지는 게 바알의 미로였다.
카이도 그걸 알고서 검을 뽑았던 건데.
베아트리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생채기가 난 뺨을 손끝으로 훔쳐냈다.
“너무하네. 우리 오랜만이잖아. 이렇게 모질게 대할 거야?”
“네놈…… 진짜인가!”
“바알의 미로라고 해서 가짜인 줄 알았나보네. 헤헤~ 하긴 당신의 무한환생 능력을 통해 익혔겠지. 경험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니까.”
뺨을 훔치자 상처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냉정하기론 둘째가기로 서러운 카이조차 이번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부활의 기적을 쓴 건가.’
바알이 전쟁을 일으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마신이 되는 것이다.
이미 마신, 그러니까 신에 가까워진 바알은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만금수를 되살렸듯이 바알도 생명체를 살릴 수 있어. 그렇지만 베아트리체처럼 강력한 영혼을 살린다면 나름 대가를 치렀어야 했겠지.’
결과적으로 만금수를 되살릴 수는 없었기에 샤를린느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완전히 되살아났으며, 그만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하필 부활해도 베아트리체라니.’
마수대전의 영웅이자 마법사들의 정점이라 불렸던 그녀를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카이라 해도 독단적으로 그녀를 이길 수 없으며, 유리가 합류했어도 결과는 똑같으리라.
실력만 따지면 베아트리체는 용언을 쓰지 않는 솔리드녹스의 가주와 같았다.
유리가 물었다.
“우리를 막으러 오신 겁니까.”
“바알의 은총을 받아 살아났으니 그 은혜를 갚아야 해서.”
“마수대전의 영웅께서 악마에게 은혜를 입었다 해서 악마를 도우시겠다는 겁니까.”
“이미 난 한 번 죽은 몸이야. 세상은 멸망의 수순을 밟을 거고 내 목숨이 바알에게 쥐여져 있으니 막지 않을 이유가 없지.”
“네놈이 인류를 배신하겠다는 거냐.”
카이가 으르렁 거리며 묻자 베아트리체가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먼저 배신을 한 건 인간이었어. 날 마수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죽음을 강요했잖아.”
“너에겐 그럴 의무가 있었다.”
“아니, 누구에게도 싸울 의무 따윈 없었어.”
마수대전은 악마들이 침공하던 것과 비슷했다.
마수들이 쏟아져 나와 인류를 공격했고 인류 모두에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다.
카이는 의무라고 했지만,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에게 그 의무감이 가혹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
“난 모든 전장을 누볐어. 당대 최고의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안 갔던 곳이 없지. 카이, 당신도 나랑 같이 다녀봤으니 잘 알고 있겠지.”
“그때의 피로감을 이제 와서 복수라도 하겠다는 거냐.”
“복수라니.”
그녀가 작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또한 발악이자 몸부림이야, 카이.”
“무얼 위한?”
“너.”
“…….”
“유리 덴 나이트워커, 어차피 멸망은 저 자의 손에 의해 막혀. 카이 당신 없이도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베아트리체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었다.
그녀의 손끝에 화염이 모여 들면서 점점 크기를 키웠다.
“난 카이만 죽이면 돼.”
말과 동시에 화염이 퍼지면서 유리와 카이 사이를 갈라놓았다.
손 쓸 틈조차 없이 둘은 갈라서야만 했다. 그렇게 거리가 생기자마자 빙벽이 치솟아서 완전히 공간을 나누었다.
‘이중 영창에 무영창!’
마나가 흐르는 낌새조차 안 느껴졌다. 그에 반해 펼쳐진 마법의 크기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위력적이었다.
올라온 빙벽은 꼭대기부터 차츰 부서지면서 날카로운 파편이 쏟아졌다.
급한대로 티르빙으로 갑주를 만들어봤지만, 거죽을 뚫는 것처럼 쉽게 뚫렸다.
“칫!”
살에 얼음 파편이 닿기 직전, 갑주를 벗어내고 아스칼론으로 파편들을 쳐냈다. 발로는 빙벽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달렸다.
그러나 그런 유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건지 빙벽은 점점 커졌고 꼭대기는 계속 부서졌다.
[무식한 마법이네! 이게 말이 되니?]“원래 베아트리체 마법은 이랬어.”
구전되어 오는 베아트리체에 관한 전설은 으레 다른 전설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마법과 이야기가 베아트리체는 현실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법사.
쾅!
“가라고 했을 텐데, 유리 덴 나이트워커. 도망가지 않으면 멸망을 막지도 못하고 죽을 거야~!”
더더욱 놀라운 건, 베아트리체는 유리를 쫓아내면서도 반대편에서 카이까지 상대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4중 영창까지 하고 있는 셈.
‘마법만 놓고 보면 빅스터 이상이다. 젠장, 맞서는 수밖에 없나.’
어지간해서 바알에 도달하기 전에 체력을 아낄 계획이었다. 애초에 미로 진입에 앞서서 팀을 짰던 것도 무리한 전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카이를 두고 간다? 말도 안 되지.
결국 베아트리체라는 변수를 만난 이상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아스칼론.’
[준비됐어요.]‘부탁한다.’
유리가 딱 하나 재능이 없는 분야가 있다. 일전에 나름 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해봤지만, 끝끝내 포기했던 거였다.
바로 궁술이었다.
유리는 티르빙을 활처럼 만들어서 전방의 하늘을 겨눴다. 그리고 화살은 아스칼론이 맡았다.
아스칼론의 짧은 길이는 마나를 넣어서 길게 만들었다.
끼리리릭.
최대한 시위를 강하고 길게 당겼다.
‘활을 잘 쏘진 못하지만, 쏠 줄 모르는 건 아니지!’
상대가 무식하게 힘으로 나온 것처럼 유리도 힘을 화살에 쏟아 부었다.
아스칼론의 기본적인 성력과 마검의 기운이 뒤엉키면서 검신을 휘감은 마나가 점점 부풀었다.
길어지다 못해 두꺼워진 화살은 랜스처럼 커졌고, 유리는 활을 당겼다가 놓았다.
피익!
곧장 하늘을 향해 날아간 화살은 힘을 잃지 않고 날다가 보이지 않는 막과 부딪혔다.
엄연히 이곳은 둥지다. 환각과 정신으로 구성된 공간 같아도 끝이 존재한다.
유리는 그 끝을, 껍데기를 건드렸다.
부술 수는 없지만.
‘금은 가게 할 수 있지.’
콰지지직!
작은 틈을 시작으로 사방팔방 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둥지 표면을 이루던 껍데기가 조금씩 떨어졌다.
* * *
베아트리체가 부활한 건 사실 꽤나 오래 되었다.
데카라비아가 죽었을 때, 당시 악마들은 카이를 없애기 위해 그녀의 부활을 결정했다.
당연히 반발이 많았다. 마수와 악마를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베아트리체는 카이의 편에 서서 싸웠던 연인이다.
카이만큼이나 귀찮고 짜증났던 적수를 제 손으로 살린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알은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에게 카이가 겪어온 일들을 보여주면 달라질 거라면서.
‘악마들의 장난에 놀아나도 상관없어.’
막상 카이가 잘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무한 환생을 겪으면서 그의 삶은 지독한 고독과 무한한 투쟁과 살아왔다. 그런 카이의 삶을 돌아본 베아트리체는 오히려 그가 불쌍했다.
하지만 유리와 만나면서부터의 삶은 달라졌다.
‘왜 저런 녀석을 위해서 움직이는 거지? 너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나쁘게 말하자면 카이는 이기적인 남자였다. 멸망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는 악마를 죽일 수 있다면 동료의 희생도 개의치 않았다.
동료들도 그게 옳다 여겼다. 악마는 카이보다 더 잔인했으며, 그들보다 더 잔인해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유리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를 봤다.
‘나한테는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죽자고 했으면서.’
마수대전에서 그녀가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마지막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 전투에선 카이도 같이 죽었다. 당시엔 카이라는 이름이 아니긴 했지만.
덕분에 베아트리체는 숭고한 희생을 통해 길이길이 그 이름을 남겼다.
그 희생은 옳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한텐 죽으라고 했었으면서. 당신은 왜 이번 생에선 죽으라고 하지 않는 거야? 왜 나한테만 죽으라고 했던 거야?’
항상 사안을 주도했던 카이가 이젠 유리에 의해 움직이며 죽음보다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신물이 났다.
그래서 카이를 죽이기로 했다.
이번 생에 죽어도 카이는 멸망을 막을 수 있다. 한 번 죽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다고.
결국 작은 화풀이에 불과했으니.
“당신도 죽어. 나랑 약속했던 것처럼 같이 죽자고.”
“미친.”
아직까지 카이는 여유롭게 베아트리체의 마법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리 쪽에 마법을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덕분에 쉽게 상대할 수 있었지만, 아직 전성기의 그녀가 보여줬던 힘에 비해 5할도 안 되었다.
부활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완전히 힘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카이도 이를 알고 최대한 앞으로 나아가려 해봤지만, 교묘하게 약한 마법을 난사하다가 일정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강력한 마법을 발동했다.
“내가 회복하는 걸 걱정하고 있지? 하지만 그런 걸 걱정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당신이야 말로 전성기에 비해 약해져 있지 않아?”
그 말대로다.
카이의 힘은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유리보다 훨씬 강하고 당장 벤헬링턴이나 빅스터와 싸워도 견줄만 하겠지만.
카이가 바랐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
그러나 카이는 계속해서 맞부딪혔다.
나아가고 밀려나면 재차 발을 움직였다. 몸 어디 하나가 부서지거나 망가지는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래, 당신의 집요함은 여전하다는 거네. 좋아, 그래야 내가 사랑했던 사람답지. 벌써 쓰러지면 되겠어?”
“…….”
“뭐야, 이젠 대꾸를 안 하네. 묵묵하긴 했어도 할 말은 하고 살았던 당신 아니었나. 하지만 뭐, 괜찮아. 죽을 사람의 유언쯤은 들을 수 있겠지.”
“난…….”
조용히 검만 휘두르던 카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잠시나마 베아트리체도 공격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죽지 않는다.”
“뭐?”
“죽는 건 의미가 없다.”
“무한 환생자인 당신이 어떻게 그런 소릴……?”
“죽음은 살고자 하는 마음에 가치가 있다. 살고자 하지 않으면 죽어도 소용없어.”
“……!”
성검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더니 검을 쥐지 않은 손에도 마나가 모였다.
베아트리체가 가르쳐 줬던 마법학을 응용한 헬 파이어였다.
전투 의지를 엿본 그녀는 더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내 걸 마음대로 쓰지 마!”
그녀도 한 손에 헬 파이어를 끌어 모았다. 유리를 향하던 공격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는 카이만 죽이면 되었다.
하지만 그 한 순간의 틈에 유리가 쏜 화살이 천장을 향했고.
쨍그랑!
유리가 추락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