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6
제246화
순간 저도 모르게 베아트리체는 비명을 지르려다가 겨우 참았다.
아스칼론으로 꿰뚫은 천장이 조금씩 갈라지면서 파편들이 떨어졌지만, 결국 큰 상처를 남기지는 못하고 아스칼론은 그대로 박힌 채 남아있었다.
“그, 그럼 그렇지! 일개 인간이 둥지를 부수려 해? 말도 안 되지!”
“…….”
잠시 베아트리체가 공세를 멈추자 카이도 하늘을 엿보았다.
정말로 하늘도 아닌 어중간한 높이에 아스칼론이 박혀서 그를 중심으로 실금이 퍼졌다.
바알의 둥지를 깨부수려는 노력은 카이도 여럿 해보았다. 둥지 안에 들어온 횟수는 몇 안 되어도, 밖에서도 둥지를 봤던 횟수는 꽤 되었으니까.
실제로 성공했던 적이 많았다. 아니, 거의 대부분 성공했다.
성검의 특성상 마기가 가득한 악마의 둥지는 깨부수기 쉬웠다. 그러다 찾은 결론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부수기 더 쉽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늘로 날아간 아스칼론이 아쉬웠다.
‘별빛나무인지 뭔지 그걸론 이게 전부인가.’
별빛나무의 성력이 어떤 성질인지 정확히 모르는 카이로선 이만한 위력이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덕분에 내부에서 둥지를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나와 싸우고 있는데 다른 곳을 보는 거냐, 베아트리체.”
팽팽했던 전투의 끈을 놓지 않고 카이의 미뭉이 재차 목을 노리고 호선을 그렸다.
찰나에 집중력을 다른 곳으로 흐트렸던 베아트리체는 제 목을 노리고 드는 금빛에 잇새를 세게 물었다.
“누가 집중을 안 했다고!”
꾸드득!
보이지 않는 바람들이 목 근처로 응축하며 모여들었다.
삽시간에 높아진 공기 밀도는 미뭉마저 힘으로 물고 늘어졌다.
카이 본인의 마나와 미뭉의 성력을 융합해서 발산해보지만 이마저도 응축된 작은 공간 안에서 폭발하다가 사라졌다.
역시, 허무한 일격이었지만.
카이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쪽 집중 말이다.”
“어?”
뒤늦게 베아트리체가 빙벽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높아지고 무너지는 빙벽으로 인해 유리가 고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마지막에 화살을 쏘아 올리는 순간에는 식겁하긴 했으나, 쏟아지는 파편에 휩쓸리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카이가 유리의 존재를 상기시켜준 순간.
‘어디 갔지?!’
반대쪽에선 여전히 빙벽 파편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사태와 버금가는 추락 속도와 얼음 파편의 양에 휩쓸려서 파묻혔다고 해도, 갑자기 유리의 기운이 사라진 건 말도 안 되었다.
베아트리체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렀다.
어디 있지. 어디 간 거야.
“어딜 보는 거지.”
그러나 유리를 찾으려 하면 카이가 재차 공격을 해왔다.
베아트리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꺼져!”
후웅! 쾅!
별 다른 주문 없이 화염계 마법이 폭발하면서 카이를 밀어냈다.
그러면 카이도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쾅! 쾅!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
쾅! 쾅!
연달아 폭발을 일으켜도, 폭발의 화염이 카이를 덮쳐도, 화상으로 인해 피부가 타들어가도.
그는 성검을 이용해 회복을 거듭하면서 공격을 감행했다.
‘내가 아는 카이가 아니야.’
베아트리체가 아는 그는 성검의 회복력을 마구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짜증났다.
어째서?
자기 몸이 다치든 죽든 신경 쓰지 않았으면서. 무엇이 그를 집요하게 만들었는지 의아했다.
동시에 유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유 없는 불안감이 마음 한 켠을 쿡쿡 찔렀다.
내심 베아트리체는 카이보다 유리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놈은 카이보다 약해도 더 간악해. 어떻게든 찾아야……! 읏!’
이번에도 카이의 일격이 날아드는 순간.
성검이 방어 마법을 뚫고 팔뚝에 미미한 상처를 남겼다.
카이의 미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부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안정한가 보군. 이 둥지처럼.”
“닥쳐!”
애써 진실을 숨기려는 듯 베아트리체가 발악성을 내지르면서 마법을 난사했다.
불덩어리, 얼음송곳, 바람 칼날, 빛줄기 등등.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온갖 마법이 사방에서 카이를 덮쳤다.
공세를 멈추고 수세로 몰린 카이.
마법을 다 막진 못했다. 옷은 넝마조각이 되어갔고, 안에 입은 갑주도 위태위태하게 진동했다.
성검을 통한 회복력이 미처 공격력을 따라가지 못해서 상처가 계속 누적되었다.
“그래! 어차피 유리가 어디서 뭘 하든 당신부터 죽이면 돼! 죽어! 죽엇! 죽어어어!”
애초에 그녀는 카이만 죽으면 되었다.
멸망? 유리? 알 게 뭐야.
어찌되었건 바알은 카이를 막으려 그녀를 부활시켰다. 그녀도 카이를 죽이는 것에 동의해서 이 자리에 있고.
그러니 유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전에 당신을 죽인다!’
스스스!
베아트리체는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준비했다.
푸르른 물길이 마른 대지에서 천천히 차올랐다. 발목까지 오른 물길은 위아래로 진동하면서 물방울을 튕겼다.
마수대전 당시 이 마법을 모두가 이리 불렀다.
“대양(大洋).”
바다를 소환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카이는 그 이름을 되뇌이며 한발 물러났다. 대양이 시작되면서 여타 마법들은 멈췄으나, 발목이 잠기면서 이곳은 온전히 베아트리체의 영역이었다.
빠져나가려면 그녀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당신은 이제 죽은…….”
바닷물이 차오르길 기다리던 베아트리체는 제 눈을 의심케 할 광경을 목격했다.
분명 푸름으로 넘치던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물감을 풀어낸 듯이 서서히 붉은 기운이 퍼졌다.
“대체 이게 뭐야…….”
마법은 아니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튀어오르던 물방울이 잠잠해지고 요동치던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통제가 되지 않아. 어떻게! 왜?!!!’
대양을 펼치고 술식을 완성한 건 베아트리체였지만, 색이 변하면서 그녀 마음대로 바다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붉은 기운이 덮치면서 사라졌던 유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어디 숨어서 뭘 하나 했더니 이딴 짓을 한 건가!
베아트리체는 대양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남은 마나를 털었다.
‘절대 대양을 잃어선 안 돼. 이걸 내줬다간…… 내가 진다!’
그러나 대양에 간섭이 일어난 순간부터 패색이 짙어졌다.
‘몸이 못 버틴다고? 벌써?’
바알의 부활을 받아 살아났기에 마기를 비롯한 마나는 충만했으나, 그에 맞는 육신은 아니었다.
마신을 꿈꾸며 신의 권능과 기적을 행할 수 있어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니, 육신이 온전치 못한 건 당연했다.
베아트리체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대양 한 번에 무너질 순 없어! 적어도, 적어도 카이만은!’
그가 사는 건 싫었다. 죽는 것보다 싫었다.
난 죽었는데, 그리고 또 죽는데 당신은……!
* * *
대양은 일종의 정령술에 가까운 마법이었다. 물과 시전자의 마나로 가득한 바다를 구축하여 무대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
유리는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이것도 하나의 계(界). 베아트리체가 원하는 전장을 만드는 거지.’
분명 바다라는 거대한 전장을 구축해서 온전히 통제할 수만 있다면 강력한 계가 된다.
그러나 대양은 유리와 상성이 아주 좋았다.
‘물은 곧 물들이면 그만이니까.’
피를 다루는 유리에겐 피를 조금만 풀어도 오염시키기 쉬웠다.
순식간에 퍼져나간 핏물은 대양의 절반을 잡아먹고 베아트리체의 마나와 힘을 겨뤘다.
유리는 그 모습을 빙벽 끄트머리에 서서 지켜봤다.
그때, 멀리 있던 베아트리체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으로 욕을 하네.’
그러나 그녀라고 별 수 없었다.
대양이라는 거대한 마법의 주도권을 빼앗겼다간 그녀의 패배가 자명했다.
고로 그녀는 유리와 카이를 대응하지 못하고 대양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만큼 대양은 베아트리체조차 감당하기만 해도 벅찰 정도로 대단한 마법이었으니.
유리는 빙벽에서 뛰어내려 카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검에 의지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냐?”
“…….”
“안 괜찮나 보네.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이런 건 처음 해보는 거라 시간이 필요했던지라.”
“누가, 뭐라고, 했나.”
“힘들어 보여서.”
미뭉으로 회복하려 해도 당장 전투하기엔 역부족인 듯했다.
유리는 챙겨온 초콜릿을 그에게 건네줬다. 처음엔 뭐냐는 표정으로 보다가 치료제라고 하니 덥석 받아먹었다.
“이익! 이게!”
두 사람이 여유로이 치료하는 동안에도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대양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이는 제 발 아래 일렁거리는 물결을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티르빙을 뿌렸군.”
피를 뿌렸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티르빙의 영혼을 완전히 풀어냈다.
실질적으로 베아트리체는 유리의 특별한 마법이나 술수가 아닌, 티르빙 본인과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어이가 없군. 마검을 떨어뜨려서 스스로를 무방비하게 만들다니.”
“베아트리체를 쓰러뜨리려면 이것 말고는 없었어.”
“네놈, 아스칼론도 화살로 쏘지 않았나.”
“그건 큰 그림. 당장 베아트리체를 쓰러뜨리기 위한 건 아니야.”
“그걸 묻는 게 아니라…….”
“걱정하지 마. 당장 전투할 일은 없어.”
“설마 네놈…….”
카이는 말을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곤 베아트리체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안다.
미로를 나간 뒤에 세운 계획, 그 계획의 목적이 설마 ‘그것’이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그러나 그걸 답할 여유까진 없었다.
“끼야아아아악!!!”
끝끝내 베아트리체의 육신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불에 타고 흩날리는 재마냥 그녀의 피부가 조금씩 뜯어지면서 날렸다. 뜯어진 안쪽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가 나거나 살점, 뼈가 보이지도 않았다.
이윽고 대양도 완전히 붉게 물들어서 잔잔한 호수가 되었다.
카이가 일어나려고 하자 유리는 그를 부축해줘서 베아트리체 쪽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유리와 카이를 보고도 베아트리체는 공격하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허공에 무어라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안…… 돼…….”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사랑하는 카이가 왔는데도 그녀의 입에선 하염없이 “안 돼”라고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겨우 카이를 발견하고 헤벌쭉 웃었다.
“당신은…… 당신 마음대로 세상이 움직여지는 줄, 큭! 알지?”
“죽어가는 순간까지 헛소리를 하는군.”
“짜증, 나. 난 당신이 싫은데.”
베아트리체의 증오는 상상 이상으로 큰 듯했다.
사랑했던 연인이 어떻게 이리 달라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람이 죽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달라지는 환생이나 회귀처럼, 베아트리체도 죽음 이후 다시 살면서 무언가를 깨달았으리라.
그저 깨달은 부분이 카이와 달랐을 뿐.
“그래도, 조금은 당신이 이해 돼.”
베아트리체는 그리 말했다. 여전히 입가는 웃은 채로.
“죽음을 반복하면, 이 뭐 같은 기분, 도 결국 무뎌지고 하나만, 바라보겠지. 멸망에 의존해서 사는, 당신처럼.”
“그래서 내가 마지막에 죽을 때 말했을 텐데. 나 같은 놈한테 의존하지 말라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고.”
“크크크, 그랬었지.”
깎여버린 카이의 성격은 순전히 그가 의도한 결과였다.
죽음과 삶, 영원한 인생을 반복하면서 맺은 인간관계는 결국 미련과 후회를 남긴다.
카이는 그걸 피해 다녔다.
베아트리체는 이제야 그걸 알았고.
“패배했으니, 승자에게 전리품을, 줘야지.”
“……?”
그녀가 손가락으로 미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미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