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9
제249화
바알은 모든 화면을 동시에 보면서 침입자들을 살폈다.
결과적으로 미로는 실패했다. 2인 1조로 구성된 유리의 동료들이 차례로 미로를 부쉈다.
어떻게?
이유를 몰랐다.
아니, 실패 이유는 알지만, 반대로 그들의 성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 함정을 알고 있었다.’
흠. 그럴 수 있나.
동쪽 대륙에서 미로를 깨부술 수 있는 자는 카이가 유일하다.
그마저도 한 번 밖에 파훼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법을 안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그 방법을 카이가 알려줬다고 하면 말이 되긴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
바알이 아는 카이는 남에게 기대지 않는다. 남을 이용하면 또 몰라도.
그런데 이번 미로 공략은 카이 없이 조를 나눠서 각자가 파괴해서 나아갔다.
본래의 카이였다면 미로 한 곳에 몰려 들어가서 무식하게 부수는 식을 택했을 텐데,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이 모든 원흉은 그 자였다.
갑자기 카이에게 끼어 들어서 동료가 되어 악마들을 공략하는 동쪽 대륙의 선봉자.
저 놈을 먼저 죽였어야 했나.
아쉬움이 들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었다.
동쪽 대륙에 관해선 바알도 많은 정보가 없었다.
다이올드가 건네주던 단편적인 정보에서도 유리에 관한 이야기는 극한적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엄청나게 강하고 유망하다는 점 정도.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라 판단한 바알.
메두사를 다른 악마보다 먼저 소환해서 선봉으로 보낸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미로를 나오더라도 유리가 살아날 확률은 제로였다.
“예정대로.”
미로에서 유리와 동료들이 헤매는 사이, 둥지가 탈피할 시간이 다가왔다.
영역이 더욱 커지면서 품을 수 있는 혼의 크기도 커진다.
다른 악마들을 강림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음?”
콰직!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어딘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공동 한 가운데에 하얀 화살이 날아가서 쿡 하고 박혔다.
설마.
이대로 부서지는 줄 알았으나, 금이 가다가 말고 만다.
바알은 누가 쏜 화살인지 몰랐다. 그러나 화살에 담긴 성력의 기운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위험하다. 저대로 놔두면 언젠가는 공동이 부서진다.
왕과 신에게 영토는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자 증거다. 백성이 머물 수 있는 장소, 백성이 나고 죽는 땅.
이곳이 부서지면 강림이고 범람이고 물거품이 된다.
‘회수해야 해.’
다행이랄지, 둥지가 탈피하기 직전이라 아직 기회가 있었다.
둥지의 회복 속도야 엄청나니까 화살만 회수하면 된다.
그러나 얄궂게도 바알에게 그런 시간 따위 주어지지 않았다.
유리가 있는 미로에서 들린 대화.
“시간 역행?”
다른 말들은 못 들었어도 그것만은 또렷이 귓가에 박혔다.
성검 미뭉은 환생과 빙의에 특화된 검. 고로 마검에도 비슷한 능력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알이 아는 시간 역행은 마검의 능력이 아니다.
‘마신의 권능, 켈리악스 님의 힘을 일개 검 따위가 가지고 있다고?’
신에겐 각자 주어진 사명과 사명을 다할 권능이 있다.
마신의 힘은 시간을 되돌리는 권능이었으니.
뭔가 이상하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분명 마검에 어떤 권능에 가까운 힘이 있다고 추측이 가능했어도, 마신의 권능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지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시간 역행의 힘은 무섭다. 미래를 알고 과거를 조작해 계획을 세우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유리가 그런 무대로 자신을 이끌어냈다는 상상에 바알은 난생 처음 두려움을 느꼈다.
얼른 막아야 한다. 카이가 아닌 유리부터 어떻게든.
그러나 그때.
「성령의 부름에 따라 세상의 역행을 바로 잡을지니. 고고한 자의 이로움을 널리 가르칠지니.」
성스러운 기운을 한가득 머금은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진원지 없이 모든 곳에서부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력에 나름 내성을 가진 바알이라지만 듣기 거북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발광하라. 찬사하라. 악한 것의 숙명을 짊어지고 구부러진 허리를 그대로 부러뜨려라.」
소리의 진원지는 없을지언정,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딘가 분명 있다.
바알이 화면들을 불러와 재빨리 살폈다.
그러고 보니 모든 미로를 보다가 한 명을 놓쳤었다.
밀리샤, 성기사단장이자 악마들에겐 귀찮은 존재로 분류했던 여자.
유리가 쏘아올린 아스칼론이 쐐기였다면, 밀리샤의 검은 망치가 되어 쐐기를 박아 넣고 있었다.
* * *
블레이머는 다이올드가 죽였다.
카이는 멀쩡히 살아있고.
달라진 시간대에서 그들은 다른 삶을 지냈다. 유리랑은 전혀 상관없었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향해 말했따.
“만에 하나 내가 달라진 시간대에서 관심마저 달라져서 그들을 못 지켰다고 비난하고 싶다면, 하든 말든.”
[뻔뻔하네, 유리 덴 나이트워커. 지금 시간대에서 아버지가 죽도로 내버려뒀으면서. 그건 죄도 아닌 가봐?]“내 아버지를 죽인 건 다이올드야. 그 놈 뒤엔 악마가 있고. 그걸 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 있나?”
[넌 모든 걸 알고도 잊은 채 살았어. 기억을 지운 건 너 스스로라고.]아마도 그렇겠지.
어떤 식으로 기억을 지웠는지 몰라도, 그 편이 옳다고 믿었으리라.
그러나 그 믿음이 블레이머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또한 유리에겐 짐이자 죄악.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게 말이나 될까.”
[뭐?]“그렇잖아. 내 아버지는 드래곤인데.”
클라우드 하트에서 세드리치를 이기는 건 그렇다 쳐도. 방금 본 기억의 블레이머는 진짜 드래곤이다.
인간으로 환생했어도 드래곤 하트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지상 최강의 생물.
그런 사람을 마검의 주인이 죽였다고?
말도 안 되지.
“가족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게 너희의 패인이다.”
유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블레이머는 일부러 유리에게 죽어줬다. 나이든 유리는 블레이머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몰랐던 모양이지만, 블레이머는 알아봤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눈빛에서 알 수 있다.
초연함 하나 없이 행복해하는 시선.
장성한 아들을 보고 아들의 선택을 묵묵히 받아주는 아버지의 마음.
베아트리체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녀와 그녀 뒤에 있는 악마들도 이번 정신 공격이 순탄치 않다는 걸 내심 인정하던 차였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들었건만.
이건 도리어 유리에게…….
“도와줘서 고맙다, 악마. 그리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줘서 더 고맙고.”
[뭣…… 꺗!]쿵, 하늘에 박혔던 화살이 움직였다.
그 아래 날아오른 밀리샤가 있는 힘껏 화살을 밀어 넣었다. 검을 망치고, 화살을 쐐기로, 검의 이가 날아가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성력을 털었다.
‘역시 미로에 휘말리지 않았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밀리샤는 미로에 휘말리지 않았다.
트라우마라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가 끔찍하다 할지언정, 그녀에겐 기껏해야 지나간 시간에 불과했다.
지금의 성격이 그런 그녀를 대변해주듯이 말이다.
“정신 공격 당해봤어.”
“언제?”
“성기사의 기본 소양이지. 시험 볼 때 필수 과목인 걸. 사사로운 것에 유혹당하지 말라. 신과 함께 너의 이름이 걸을지니.”
“믿어도 되는 거야?”
“시험해보던지.”
실제로 빅스터가 찾아왔을 때 밀리샤를 상대로 강력한 정신 공격을 감행해봤다.
빅스터의 감평은 간단했다.
아무것도 없다.
지독한 과거가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모마저 베어버릴 정도로 덤덤하더라.
그 잔악함이 어쩌면 악마를 상대하기 좋을 것이다, 라며.
물론, 전부터 그녀의 성격을 엿보았던 유리는 그녀가 미로 파훼의 ‘키’라고 짚었다.
그리하여 밀리샤에게 가장 먼저 미로를 빠져나와 쐐기와 망치 중에서 망치 역할을 부탁했다.
유리와 카이를 제외한 사람 중 가장 강력한 성력을 가진 그녀라면 둥지를 부술 수 있었으니까.
콰지지직!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아스칼론이 밀리샤의 성력을 빨아들였다.
동시에 갈라진 틈들이 점점 더 크기를 벌린다.
“안 돼!”
한 여성이 비명을 내질렀다. 베아트리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유리는 곧 그 여성이 메두사임을 알아챘다.
분명 바알이 선봉장으로 내보냈겠지.
악마 군단에 편입되어 있지만 진짜 악마는 아니라서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가장 쉬웠을 테니까.
그러면서도 메두사는 강력하다. 신화 속 존재처럼 눈을 보면 돌로 변하는 능력을 물론이고, 기본적인 전투 능력도 다른 악마 군주에 버금갔다.
괜히 바알의 총애를 받아 악마 서열에 합류한 게 아니었다.
쉽게 말해서 소비 코스트 대비 성능이 사기급인 악마.
‘하지만 이번엔 메두사를 선봉으로 보낸 게 패착이 된다.’
*
메두사의 뱀 머리는 모두 대가리만 잃은 채 꿈틀 거렸다. 머리의 주인은 그 고통에 바닥에서 몸부림쳤다.
“끄아, 아악! 어째서! 어째서!!!”
“시끄럽네.”
푸욱!
밀리샤는 한 번 더 메두사의 가슴팍에 단도를 꽂았다.
확실히 악마라서 그런지 쉽게 죽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칼을 수십 번 꽂아도 꿈틀대면서 싸우려 발악한다.
“그래도 진짜 악마는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채럿이 꿈틀대는 메두사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이자벨은 그런 메두사를 또렷이 노려보았다.
“유리가 다 잘 대처해준 덕이지. 밀리샤 경 혼자서 맞섰다면 정말로 위험했어.”
“맞습니다.”
블레이크가 동조했고 옆에 있던 렉슬러도 머리를 주억거렸다.
정작 밀리샤는 무심한 눈길로 메두사의 죽음을 지켜봤다.
가장 먼저 미로를 빠져나온 밀리샤는 필연적으로 메두사와 싸워야만 했다.
유리가 걱정했던 부분이 여기였다.
미로야 쉽게 뚫고 나와도 메두사나 혹은 다른 악마가 기다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상대는 성기사단장이다.
수많은 악을 처단하고 신의 대리인, 신을 대신해 살육을 벌이는 검 자체인 그녀.
버겁긴 해도 악마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기껏해야 바알 발이나 핥아서 군단에 들어간 찌꺼기 주제에. 엄청 성가시게 구네.”
“이게 감히 누굴!”
“단검 하나 더.”
푹! 이번엔 단검이 양 볼을 꿰뚫었다.
웁웁,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메두사의 몸부림은 더더욱 심해졌다.
이윽고 메두사의 숨이 멎어서 늘어졌다.
“밀리샤 경.”
시선을 피했던 채럿이 다가와서 어깨를 가리켰다.
밀리샤의 어깨는 일부 석화 저주로 인해 돌처럼 변해 있었다.
그녀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성수를 꺼내 부었다.
“괜찮아요. 아까 계속 당했어요.”
“이기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이겼잖아요.”
“그게 아니라…….”
“나 하나 다쳤다고 마음 쓰지 말아주셨으면 하네요, 채럿 알리아스 나이트워커 님. 내가 하겠다고 한 선봉이고 메두사 대응이에요.”
“…….”
“그보다.”
드디어 하늘이 갈라진다.
쩌저적!
쐐기에 성력을 불어넣었으니 바로 둥지가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밀리샤는 무릎을 꿇었다.
“밀리샤 경!”
“됐다니, 까요, 채럿…….”
끝까지 맺지 못한 대사와 함께 밀리샤가 쓰러졌다. 놀란 주변 이들이 달려와서 그녀를 부축했다.
그나마 저주와 마법에 익숙한 이자벨이 밀리샤를 무릎에 뉘였다.
“잠시만요, 채럿 님. 음…….”
“어때요? 왜, 왜 이러는 거예요?”
“저주가 심각해요. 외견상으론 멀쩡하지만…… 장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거예요. 뭣보다 심장이…….”
“성수를! 성수를 더 부어보는 건!”
“그것도 안 됩니다, 단장님. 이건 성력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저주는 역행 마법이 있어야 해요.”
“이자벨 양으론 안 되는 건가요.”
“송구하게도 제 마법 실력으론…….”
같은 석화 저주여도 난이도가 갈리고 해결법도 갈라진다.
메두사가 쓴 저주는 적어도 10서클 이상.
석화에 특화된 마수였던 데다가 악마가 되면서 더 강력해진 결과였다.
‘희생을 각오했다지만…….’
죽음은 항상 허무하다.
특히나 강해보이기만 했던 이의 죽음은 더더욱 쓰라렸다.
이렇게 한 순간에 쓰러지다니.
허나 이게 곧 전쟁이고, 비일비재하게 죽음이 벌어지는 곳이 전장이었다.
“뭐해?”
그 순간, 미로를 뚫고 유리와 카이도 합류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면서 유리는 가운데 쓰러진 밀리샤에게 눈이 갔다.
석화 저주.
딱 봐도 그거에 당했겠지.
알 만한 상황이다.
[꼬맹이, 네가 치료 할 수는 없어.]안다. 메두사의 석화 저주는 교제가 와도 해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교제 이상의 마법 실력자가 저 밖에 있다.
“뭐하고 있습니까, 용언 마법사.”
와장창!
저 밖에서 껍질을 부수고 거대한 기운의 마법사가 천천히 내려왔다.
이 시대 유일한 용언 마법사인 빅스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