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50
제250화
콰드드드드드드!!!
세계가 무너진다.
악마가 만든 둥지가 틈을 벌리고 내려앉았다. 피구름으로 뒤덮은 것 같았던 하늘이 사라지고 밝은 밤하늘이 얼굴을 드리웠다.
그 중심에서 마도사가 내려왔다.
“저한테 이런 역할이나 맡기고. 참 실망이군요, 나이트워커의 가주. 나도 대단한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죠.”
저 놈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이리 반가운 줄이야.
유리는 그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너야 말로 뭐하다 늦었지? 분명 금이 가는 순간 둥지를 부수기로 하지 않았던가.”
“악마의 둥지를 쉽게 부수라니. 처음부터 요구가 과했습니다.”
“용언 마법사씩이나 되어서 그 정돈 해야지. 이름값이 아깝잖아.”
본래 둥지는 안에서 부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니, 정확히 유리와 같이 들어온 동료들로는 둥지를 부술 수 없다.
그러나 둥지란 게 무언인가.
둥지는 머물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떠나기 위해 머무는 곳일 뿐.
둥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은 외부가 아닌 내부였다.
그렇다고 힘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으니.
유리와 밀리샤는 성력으로 둥지에 균열을 냈고, 그 틈에 둥지를 쳐들어오는 뱀 역할을 빅스터가 맡았다.
안대를 쓴 마도사가 천천히 지상에 내려왔다.
“다행히도 다들 미로를 탈출했나보군요. 누구 하나 죽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투만 들어보면 죽길 바라는 모양이군.”
“그럴 리가요. 그런데 분위기가 우중충하군요. 어디선가 죽음의 냄새도 나고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빅스터는 쓰러져 있는 밀리샤를 좇았다.
피를 흘리지 않지만 죽음은 자명했다. 흐려져 가는 생명력의 냄새가 그리 말해줬다.
“이러려고 저한테 혹시 모르니 마나를 남기라고 했군요. 여기까지 미래를 보신 겁니까?”
“얼추.”
유리는 일부러 얼버무렸다.
굳이 부정하거나 강하게 긍정해봤자, 어차피 빅스터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하나는 둥지를 부수는 것.
또 하나는.
“석화 저주야. 성력으론 부족해서 네 마나가 필요했어.”
“용언으로 누굴 치료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누굴 죽이긴 많이 죽였어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해보는 거지. 마법사 가문의 가주씩이나 되어서 저주 하나 못 풀지는 않을 거 아냐.”
“악마의 저주를 우습게 보시는군요.”
“너의 마법 실력을 대단하게 봐준다고 하면 좋겠어.”
“……칭찬해줘도 더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투정 같지 않은 투정을 하면서도 빅스터는 밀리샤 곁에 섰다.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멀어졌다.
그 사이 더 진행된 석화는 바깥 피부에도 영향을 끼쳤다.
상처가 났던 자리는 이미 돌이 되어서 먼지가 떨어졌다. 턱 밑에도 하얀 가루가 묻어나는 상태.
“율(律), 해제(解除).”
가벼운 말투로, 그러나 무거운 마력의 소용돌이가 시전자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석화가 진행된 부분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빛을 내며 빙그르르 돌다가 상처 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상처는 글자 하나로 치료 되었고, 큰 상처들은 더 많은 문자가 흡수되고 나서야 아물었다.
유리도 무형검을 다루고 무형검이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검이지만, 용언 마법은 언제 봐도 경이로웠다.
차츰 밀리샤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 순간 빅스터가 휘청거렸다.
놀란 블레이크가 그를 부축했다.
“빅스터 님!”
“짜증나는군요. 마법사 가문의 가주씩이나 되어서 악마의 저주 하나에 힘이 빠지기나 하고.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괘, 괜찮으신…….”
“안 괜찮습니다.”
안대 뒤가 축축하게 젖으면서 붉은 핏물이 눈물자국처럼 흘렀다. 뿐만 아니라 붉은 머리카락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딱히 빅스터는 일어서려 하지 않고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악마의 둥지에 이어서 악마의 저주까지 풀어냈으니 정상일 리가 없죠. 어쨌든 이걸로 제 소용은 다 했습니다. 약속도 지켰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입니다. 전 여기까지입니다.”
소리 없는 탄식이 퍼졌다.
빅스터가 여기까지라니.
물론, 그가 죽는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전투인원으로 빅스터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이자벨이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챘다.
“오, 오빠 마력이……?”
“누굴 오빠라 부르는 거냐, 이자벨. 넌 검은 용의 개가 됐으면서, 그에 반해 난 붉은 용의 머리가 됐어. 말을 가려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마력이 전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어지간해서 빅스터의 마력이 사라진다고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다.
애초에 마나가 없는 마법사는 마법사라 불릴 수 없다. 개인의 코어에 저장된 마나가 유한할 지언정, 위대한 마법사들은 외부에서 끊임없이 마나를 끌어오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빅스터의 마나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사로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셈.
“유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넌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
“그러나 이 방법 밖에 없었어.”
빅스터가 위대한 마법사인 건 원작에도 나온다. 카이에게 호의적이었고 악마 토벌에 앞장섰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는 바알의 둥지를 부수고 목숨을 잃는다.
이 시대 최후의 용언 마법사가 전력을 다해야 했으니, 말 다했지.
그만큼 둥지를 부수기 위해선 많은 힘을 요구했고, 빅스터가 아니고선 이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후후, 유리 덴 나이트워커 가주. 이제 대답해주시죠. 이후 전 어떻게 됩니까?”
“……아직도 미래가 궁금한가.”
“당신이 궁금하게 만들었죠.”
빅스터에게 둥지를 부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유리는 자신이 본 미래를 안 얘기할 수가 없었다.
전부 말해주진 않았다.
미래를 알려주면서 발생할 수 있는 나비효과를 막기 위해서였다.
빅스터도 납득했고, 그는 이제 알 권리가 있었다.
“원래는 죽었지.”
“……이용당해서요?”
“네가 어디 이용당할 사람이던가.”
“하하하, 그렇죠.”
본인답지 않게 크게 웃는 빅스터. 유리도 소리 없이 미소를 보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죽는 미래는 없어졌어. 보다시피 살아 있잖아.”
“마법사로의 생을 묻는 겁니다, 유리 가주.”
“…….”
성력과 아스칼론은 둥지를 부수기 위한 열쇠일 뿐이다.
악마의 마기와 성력이 상성이긴 하지만 괜히 바알이 악마 군주 중에 군주가 아니었다.
성력 하나만으로 공략될 상대였다면 성검의 주인인 카이가 그리 헤매지도 않았으리라.
열쇠가 잠금을 돌렸다면 남은 건 문을 여는 일.
허나 그 문이 너무나 무거웠다.
문을 열고 나면 힘이 다할 정도로.
이로서 두 명의 이탈자가 발생했다.
전(前) 성기사단장 밀리샤.
솔리드녹스의 가주 겸 유일무이한 용언 마법사 빅스터.
이름만 봐도 거물급들이 빠졌다.
그러나 이들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정해진 미래와 그 미래를 바꾸려고 온 사람은 유리였으니까.
“이자벨.”
“안다.”
알지만.
유리의 부름에 이자벨은 천천히 빅스터에게서 멀어졌다. 눈가는 벌써 축축하게 젖었다.
아무리 가문에서 버려졌어도 막상 오빠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심장이 떨렸다.
유리가 말한 용신이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빅스터가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더디기만 걸음, 힘을 주어 유리를 향해 나아가도 시선은 결국 빅스터에게 돌아가곤 했다.
빅스터도 그 시선을 느끼고 한숨을 지었다.
“버렸으면 끝까지 버려라. 용인답게 굴어. 솔리드녹스든, 나이트워커든.”
“오빠…….”
“선택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맞을 수도 있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누구든 촛불이 되어 스스로를 태워봐야 한다.”
“…….”
이자벨이 미로에서 보았던 곳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이었다.
그녀는 그 집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불의 영혼 계승자라는 이유만으로 집과 마당에 갇혀 지내야 했고, 밖에 있는 빅스터나 가족들의 얼굴을 1년에 한 번 꼴로 보면서 자랐다.
집 안에선 매일 다른 마법사들이 찾아와 그녀를 훈련시켰다.
불의 영혼을 잘 다루기 위해선 꼭 해야 한다면서.
몸이 망가지고 코어가 부서졌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훈련은 그치지 않았다.
불의 영혼이 주는 놀라운 생명력 덕분에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고통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헌데 그때마다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시선에 빅스터가 보였다.
왜 거기 있었을까.
마당 밖에서 집안을 훔쳐보던 그 시선이 왜 항상 보였던 걸까.
떨어져 지낸 만큼 남매의 사이도 썩 좋지는 않았었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미로를 파훼하면서 옆에 있던 블레이크가 그 의문을 해소해줬다.
“질투했을 겁니다. 귀족가에선 흔하죠. 재능 있는 아이에게만 관심을 두니까 다른 형제들이 질투해서 옆에 계속 서성거리는 겁니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마법사로선 나보다 더 각광받았습니다. 저 따위를 질투해봤자 무슨 이득이 있다고…….”
“질투가 아니면 동정했을지도 모르고요.”
“그건 더 말이 안 됩니다.”
“……왜 진실에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겁니까, 이자벨 양.”
왜냐니. 왜……냐니.
왜…… 그랬지?
“빅스터 님은 이자벨 양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망명을 왔더라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죠.”
“계산했을 때 절 넘겨줘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죽일 수 없었던 건 아니고요?”
“예?”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질투든 부러움이든 시기든 뭐든. 빅스터 님은 당신을 관심 있게 지켜봤어요.”
블레이크의 말에는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이자벨은 한 번도 어렸을 적을 빅스터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었다.
불의 영혼 계승자인 그녀에게 빅스터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마음대로 마법을 배우고, 마음대로 구경 오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그였으니까.
그랬는데 반대로 오빠도 날 어떤 감정을 갖고 바라봤다니.
“시답지 못한 생각하지 마라.”
현재의 빅스터가 웃으면서, 그러나 다그치듯 말했다.
“기사처럼 각을 잡아도 넌 얼굴에 티가 나. 예나 지금이나 그건 달라지지 않았어.”
“오빠…….”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쯧.”
그 길로 빅스터는 숨을 고르다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스스로 가수면 상태에 빠진 것이다. 저 상태로 한동안 깨어나지 않으리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게 되자 이자벨이 고개를 떨궜다.
“유리, 이대로 죽는 건…… 아니겠지?”
“…….”
“대답해줘, 제발.”
“……나도 확신은 없어.”
미래를 본 유리지만, 미래를 보았기에 보지 않은 길로 가고 있었다.
멸망을 피하는 길, 그것이 우회가 될지, 수많은 희생을 낳을지는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이지?”
“좋은 방법인지는 몰라.”
원래라면 마법사로 끝이지만.
유리가 바꾼 미래가 하나 있다. 죽었어야 했을 사람이 살아있는 현재.
그 존재만 있다면 마나만이 아니라 죽음을 뒤엎을 수도 있었으니.
“용신(龍神)이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