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51
제251화
“용신?”
“그래, 그분에게 가면 마나 회복은 가능할 거야.”
샤를린느가 비록 사명을 잃으면서 권능마저 잃고 인간으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법 실력과 존재성은 신에 버금갔다.
정작 신의 존재마저도 잘 믿지 않는 빅스터는 용신이 있다는 사실마저 믿지 않는 누치였다.
“용신이란 게 진짜로 있습니까?”
“어, 우리 어머니거든.”
“예?”
이 순간만큼은 빅스터도 멍청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용언도 아니고 무영창으로 죽은 나무를 되살렸다고 하면, 좀 믿음직하겠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용언으로도 안 되는 걸 일반 마법사가 가능할 리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신이지.”
여전히 빅스터는 용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유리의 어머니가 그 신이라는 것도.
하지만 저렇게까지 확신하는 걸 보니 뭐가 있긴 하다고 여겼다.
솔직히 뭐가 됐든 빅스터는 쏟아지는 졸음에 점점 말투가 느렸다.
“어쨌든 제 역할은 여기까지니, 뒤를 부탁합니다.”
빅스터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곧 침묵했다.
* * *
미로를 탈출한 일행은 잠시 휴식 타이밍을 가졌다. 블레이크와 렉슬러가 캠프를 치고, 이자벨과 채럿은 혼절한 밀리샤와 빅스터를 챙겼다.
완전히 둥지가 부서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파편들은 떨어지면서 마찰에 의해 먼지가 되어서 사라졌다.
밤하늘을 수놓는 파편은 꽃잎과 같아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달빛과 어우러진 광경에 유리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더럽게 아름답네.] [그러게요.]티르빙의 감상에 아스칼론도 덧붙였다.
둥지의 중심이 파괴되면서 아스칼론은 그때 떨어져서 유리가 회수한 상태였다.
[이래서 악마들이 싫어. 아주 사악한 주제에 미(美)는 엄청 잘 챙긴다니까.] [그래요? 처음 듣는 얘기네요.] [켈리악스 님이 원래 아름다운 걸 좋아하긴 했으니까. 가끔은 광적일 정도였지. 그런데 왜 나는 안 좋아 해주셨나 몰라?] [나르시즘이 오늘 따라 과해요, 티르빙 양.] [오랜만에 악마 둥지를 봐서 그래. 이해해줘.]태초에 악마는 사악하고 삿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마검 티르빙 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신과 악마의 존재 의의는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였다.
끝없는 전쟁과 반복되는 강국의 반복으로 균형이 잡히는 물질계와 달리.
영혼계는 전쟁 한 번 일어나지 않고 끝없이 영혼만이 탄생했다.
당연히 세계는 포화되어갔고 이에 마신과 창조주는 세상에 없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땐 이런 둥지가 흔했지. 이렇게 사악한 기운을 풀풀 풍기지도 않았고.]“애 늙은이 같은 회상 하지 마.”
[왜에~? 우리 꼬맹이는 모르는 이야기해서 섭섭하니?]“원래 꼰대들이 ‘나 때는 말이야’를 하면 보기 안 좋은 법이야.”
[어머~ 난 딱히 자랑하거나 으스대진 않았다?]“그래도 옛날엔 평화로웠다면서.”
[뭐, 그렇긴 했지. 악마들이 어딜 감히 중간계 끼어들어? 그딴 소리 지껄였다간 켈리악스 님께서 바로 주둥이를 100바늘로 꿰맸을 거야.]무시무시한 상상을 해버렸다.
입술에 얽매인 100바늘.
“그것도 그거지만 네가 해준 얘기, 여전히 안 믿겨.”
[창조주와 마신이 사라진 이유? 그건 몇 번을 말했잖아. 사라질 때가 되어서 사라진 거라고.]“사라진 그들이 지금은 버젓이 눈앞에 있으니까 못 믿겠다는 거야.”
창조주의 권능이 깃든 소녀가 지금 가문에 있다. 또한 마신 켈리악스는 여전히 세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지만, 그 권능을 되살리려 한 악마가 저곳에 있다.
바알이야 악마들을 물질계, 중간계로 끌고 나와서 보다 넓은 세상을 구축하길 원하니까 그렇다 쳐도.
멸망을 예언한 창조주는 왜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과연 멸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멸망을 막기 위해서인가.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될 거예요. 아니, 돼요. 확실해요.]아스칼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 말했다. 티르빙도 “응! 응!”이라며 같이 동조한다.
무슨 변수가 생기더라도 대응하기 위해서 변수보다 많은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그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 불안해할 필욘 없겠지.
내가 불안하면 동료들도 불안해 할 테니까.
“이봐.”
카이가 등 뒤에서 유리를 불렀다.
베아트리체를 만난 뒤였지만 그는 의외로 멀쩡했다.
뭐, 그게 카이답다면 카이답다.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지? 벌써 몇 시간째 둥지가 부서지길 기다리고 있지 않나.”
“마음 조급해 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중요한 게 아냐.”
카이가 곁눈질로 막사에서 쉬고 있는 동료들을 가리켰다.
다들 겉으로는 활기찬 척 하고 있으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육체적으로 멀쩡해도 미로를 통과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졌으리라.
“차라리 이럴 때 빠르게 치고 들어가지.” “지친 걸 보고도 그러자고? 다들 쉬어야 해.”
이럴 때도 영락없는 카이는 카이다.
잔인한 놈. 동료를 돌같이 보긴 했다만, 돌이 굴린다고 막 굴러가는 게 아니라고.
그러나 카이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식으로 뇌까렸다.
“우리 둘이 가자는 거다.”
“엉? 우리 둘이?”
“이 전장에 제대로 된 악마는 바알 밖에 없지. 그게 네가 의도한 거 아닌가.”
“그렇긴 하지.”
“그럼 우리 둘이 가능하다.”
말마따나 불가능하진 않다.
그러나 말 그대로 불가능하지 않을 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도 않았다.
“바알을 죽이면 이게 끝이라고 보냐.”
“……아니라는 건가?”
“바알이 바라는 건 중간계의 멸망이야. 동시에 악마들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창조지. 여기에 꼭 바알이 살아있으라는 조건은 없어.”
“바알이 희생을 할 수도 있다, 라.”
“희생이 꼭 숭고한 건 아니니까.”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목적이 사악하더라도 이뤄질 수만 있다면 목숨을 내놓아도 되겠지.
“그럼 바알만 죽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내 미래를 알잖아.”
신이 되고자 성검과 마검을 같이 쥐었던 미래의 유리.
“…….”
“뭐냐, 그 표정.”
“아니다.”
아닌 게 아닌데.
표정 자체는 변화가 없어도 그 속에 비치는 감정은 오묘했다.
이번만은 전혀 카이답지 않은 감정.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동료들 걱정부터 하지 않았나?
“……적당히 하고 너도 쉬어라. 외부에서 병력 투입되면 바로 출발할 거야.”
유리는 그 말만 남긴 채 막사로 몸을 돌렸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카이는 가면 속에 숨겨놨던 감정을 혼잣말로 끄집어냈다.
“짜증나는군.”
[그럼 죽여라.]“아직도 그 소리인가.”
[성검을 빼앗은 놈이다. 널 죽인 놈이 또 못 죽이리라는 법은 없다.]“내가 널 일부러 버렸을 수도 있지.”
[그럴 가능성은…….]“됐다. 우리도 좀 쉬지.”
* * *
이틀째가 되도록 둥지는 계속해서 붕괴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의 진입도 더뎌졌다.
이자벨은 밝은 태양이 스며 드는 둥지의 틈을 올려다봤다.
“너무 지체되는 거 아닌가.”
“괜찮아요, 언니. 오라버니 말로는 둥지 붕괴가 더뎌지는 건 바알이 재생시키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거든요.”
옆에선 채럿이 익숙한 손길로 모닥불의 불씨를 살리고 스프를 끓였다.
언더하울에서 오래 살다보니 혼자서 음식 정돈 척척 만드는 그녀였다.
“그만큼 바알에겐 이 둥지가 중요하대요.”
“그렇군.”
“그러니까 언니, 마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여유를 가져요.”
“채럿, 넌…… 나보다 어른스러워.”
“에이~ 어른스럽다니요. 저도 그냥 의연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른스럽다는 거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이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이자벨은 얼굴을 붉히면서 채럿을 거들었다.
듣기론 채럿이 들어갔던 미로에선 다이올드가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죽은 어머니인 알리아스까지.
분명 충격을 받았을 텐데, 의외로 렉슬러의 도움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채럿의 쥐들이 다이올드와 알리아스 님을 죽였다고…….’
평소 같이 다니던 설치류들이 두 사람을 공격했고, 그 틈에 채럿의 단검이 두 사람을 차례로 찔렀다.
그런데도 환영이 역공을 하려고 해서 렉슬러가 막아줬다.
어째서 이리 의연할 수 있을까.
이자벨은 궁금했다.
자신은 환영을 깨부수고도 찝찝해서 한동안 헤맸는데.
“채럿, 진짜로…… 괜찮지?”
“네? 아, 네!”
“혹시라도 일부러 괜찮은 척 하는 거라면, 말해도 돼.”
채럿이 빙긋이 미소 짓더니 토끼 인형을 들어보였다.
“이 인형, 언니는 뭔지 모르고 계시죠?”
“네 인형이 왜?”
“이게 엄마거든요.”
“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던 이자벨은 작은 토끼 인형이 거대한 인간형 토끼로 변하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물론, 변신하는 순간 놀라서 뒤로 넘어졌지만 말이다.
미로의 환영은 인형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헤아리지 못했다. 정확히는 인형에 어떤 영혼이 있다고만 감지했을 뿐, 채럿을 공격하느라 그 영혼이 뭔지 알지 못했다.
알리아스의 계승된 영혼과 그 힘이 담겨있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
“이 토끼는 저한테 엄마에요. 쥐들과 새, 마수까지도 엄마가 있어서 다룰 수 있는 거죠.”
“그, 그랬군.”
“언니는 뭘 봤는지 물어봐도 돼요? 아, 불편하면 말씀 안 해주셔도 돼요.”
“아니다. 나도 물어봤으니까 대답해줘야지.”
두 사람이 미로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뗄감을 구할 겸 정찰을 나갔던 블레이크와 렉슬러도 마침 막사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렉슬러 경.”
“말씀하십시오.”
“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 원정이 끝나고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별 건 아니고. 황실 기사단과 정기적인 교류전을 가졌으면 합니다.”
“교류전…….”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 해서요.”
플레온 기사단은 본디 마수 토벌보단 치안과 대인전에 능한 자들로 구성되었다.
실력에 비해 작은 도시 국가를 수호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에 반해 베리온 황실 기사단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대 마수전부터 대규모 전투 등등. 소규모에 치안 위주로 업무를 진행했던 플레온과는 많이 달랐다.
반대로 렉슬러의 황실 기사단도 플레온 기사단에서 많은 점들을 배우고 싶어했다.
“잘 됐군요. 마침 저희 측에서도 플레온의 전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엇, 그렇습니까?”
“제국에선 기사만이 아니라 병사들과 어울리는 전술 훈련을 하다 보니 기사들만의 전술전략이 부족합니다.”
“그럼 허락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각자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유리도 요리를 도와주면서 그 대화들을 듣고만 있었다.
살짝 유해진 분위기는 썩 괜찮았다.
긴장이 풀어졌다 할 수도 있지만,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이 정돈 허락 가능한 범위였다.
‘이대로 바알이 얼마나 둥지를 유지하면서 버틸지 모르겠지만, 슬슬 한계에 부딪혔을 거야.’
둥지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는 건 다른 악마 강림 때문이었다.
지금쯤 유일하게 완전히 강림한 악마는 바알 하나일 터. 나머지 악마들은 강력한 재물이 부족한 탓에 현재 진행 중일 것이다.
“오라버니!”
그때, 채럿의 외침이 들렸고, 자리에 있던 모두의 웃음이 멎었다.
채럿이 손끝으로 둥지의 끝자락을 가리켰다.
숲과 검은 하늘이 그득하던 지평선 아래로 둥지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마지막에 마지막을 유지했던 껍질들은 일렁이는 파도가 되어 위로 넘쳐났다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너머로 드디어.
바알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