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다음날이 되자 플레온 기사단과 세벨의 군 병력으로부터 호외가 뿌려졌다.
지난 밤 암시장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서였다.
내용은 이랬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병사가 암시장을 발견, 기사단이 일망타진했다.
간단한 뉴스는 곧 커다란 충격을 불러왔다. 동시에 역시 플레온 기사단과 세벨 왕정이라며 추켜세웠다.
카이 안데르센도 길에 떨어진 신문을 주우며 실소를 흘렸다.
‘거짓 기사군.’
그는 간밤에 기사들에게 간단한 취조를 받고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손에는 고향 땅으로 떠나가라며 기사단 측에서 준 여비가 주머니로 들려 있었다.
기사단은 노예로 팔려온 자들과 죄수들을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나마 팔려온 자들 중에서 건강이 괜찮은 자만 간추려서 카이처럼 돌려보냈다.
그러나 카이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입단을 잠시 미룬다.”
[어째서냐?]귓속에서 묵직하면서 시니컬한 음성이 물었다. 미뭉이었다.
“확인이 먼저다. 내 복수에 대해 알고 있는 그 자부터 찾아야 돼.”
[죽일 거냐?]“확인부터.”
[죽여라.]“…….”
카이는 미뭉의 발언을 무시했다.
원래 그의 계획은 플레온 기사단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현재 자신의 육체와 나이는 너무 어리고 약했다. 심지어 지난번 환생 직전 치명타를 입는 바람에 100년이라는 시간과 마나 코어 일부를 잃었다.
이런 몸을 기르기엔 당장 플레온 기사단이 적합했다.
환생 전에는 지금보다 더한 이름을 떨쳤던 기사단. 현재도 유명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카이는 기사단에 관한 생각보다 어제 자신을 도왔던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새였어. 복수에 관해서도.’
일단 그를 만나야 했다.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다.
카이는 일러줬던 숙소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
길만 따라가다 보니 목적지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러나 한 블록 앞에서 멈춰서야만 했다.
갑자기 인파가 안 보이더니 곧 저 멀리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뒤편에서 철갑이 덜그럭 대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는 건물 기둥 뒤에 숨었고, 소리의 정체인 기사들이 그가 가려던 방향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뭐지.’
카이는 들키지 않게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 끝에는 그가 가려던 숙소가 있었고, 숙소 주변으로 기사들이 포위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에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카이가 보기엔 그들 모두 6서클 이상의 실력자들인데도 긴장하고 모양새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잠잠하던 적막을 깨고 2층 창문을 깨고 누군가 튀어나왔다.
* * *
유리는 숙소 방에서 음식을 받아 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가문에서 먹던 것에 비해선 별로였지만, 담백한 생선 구이와 샐러드, 푸석한 빵은 용병단 시절에 자주 먹던 메뉴였다.
그 동안 릴림은 창가에 서서 밖에서 지켜보다 반쯤 감긴 눈동자를 유리쪽으로 돌렸다.
“어제 암시장에서요. 화재, 도련님이 일으키셨다고 했죠?”
“그랬지.”
“진짜죠? 뭘 사거나 그런 건 아니죠?”
“애초에 거기서 뭘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진귀한 아티팩트나 마법 서적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가문을 두고 뭐 하러 암시장에서 거래를 해?”
“그러면 방화범이네요.”
“뭐?”
“밖에, 기사들이요. 방화범 잡으러 왔나 봐요.”
유리는 식사를 중단하고 창가에 붙었다.
밖에는 중무장한 기사들이 잔뜩 몰려와서 대놓고 숙소를 포위하고 있었다. 1층에 있던 손님들은 기사들의 안내를 받아 빠져나가던 중이었다.
그들 사이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숙소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유리가 있는 방에서 시선을 고정했다.
‘플레온 기사단의 단장, 블레이크 헌드레드.’
어린 나이에 실력과 신망을 얻어 기사단장이 된 그는 25살만에 8서클에 도달한 괴물이었다.
물론 그건 기사단이 와해된 뒤의 이야기이긴 하다. 지금 그의 나이는 23살, 마나는 7서클에 다다랐다고 알려졌다.
유리는 태연하게 입을 닦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건가.’
전날 밤 유리는 자신을 습격한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여태까지 봤던 다른 자들과 달리 잠행과 암살에 능했다. 기척을 숨길 줄 알았으며 순간적인 대응 능력이 뛰어났다.
한두 번 사람의 뒤를 밟아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블레이크 헌드레드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황상 블레이크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릴림. 내가 체포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전, 도련님 믿어요. 그러니까 도련님은 체포당할 이유가 없어요.”
“그럼 저들은 도전 행위를 하고 있네.”
“그러……네요.”
릴림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벽에 기대놓은 검을 집었다.
평소 대련 때와 쓰던 것과 다른 그녀의 검은 면이 넓고 길었다. 두께도 있는 편이어서 클레이모어를 연상케 했다.
거기다 유독 손잡이가 상반신만큼 길다는 점도 특이했다.
용인 가문에는 모든 국가에서 면책권이 주어진다.
물론 막무가내식 면책권은 아니고. 범죄 소명이 확실하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해당 가문의 허락 하에 체포 및 조사가 가능했다.
그러나 유리는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가문으로부터 내려온 소식도 없다.
즉, 밖의 병력들은 공격 행위나 다름없었다.
릴림은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저 유리가 나쁜 길로 빠져들었을까 봐 걱정만 잔뜩 했다.
허나, 그녀는 사자다.
사자는 나이트워커에 충성을 다하고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졌다.
그것이 릴림에겐 우선시되어야 했다.
“식사 중에 죄송해요, 도련님. 바로 처리할게요.”
“가기 전에.”
릴림은 검을 뽑고 창문 위에 올라서자 그가 말했다.
“잊지 마. 난 저 기사단을 인수하러 왔어. 절대 죽거나 다치게 해선 안 돼. 그리고 저기 단장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전해. 체포하고 싶으면 혼자 올라오라고.”
“안 들을 거 같긴 하지만……. 일단 해볼게요.”
릴림이 창문을 밖으로 몸을 던져 아래층으로 뛰어내렸다.
유리는 흥미로운 얼굴로 빵조각을 들고 와서 창틀에 턱을 괴었다.
쿠웅!
무시무시한 중력을 뽐내며 릴림이 착지하자 포위하던 기사들이 주춤대면서 물러섰다.
블레이크만이 조용히 바라보다 그녀를 보고 정중히 자신을 소개했다.
“플레온 기사단장, 블레이크 헌드레드입니다. 지난 밤 거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이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그게 왜요?”
“그게…… 음.”
예상했지만 블레이크는 완강한 릴림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이어 말했다.
“이 안에 용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안에 계신 분이 누군 줄은 아시죠.”
“나이트워커에서 나오신 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면책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가셔야 돼요? 저 여러분들 다치게 하지 말라고 명령받았어요.”
“협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건, 그쪽 사정.”
릴림이 검을 뽑았다. 검집 모양과 달리 뽑힌 검신은 끝으로 갈수록 구부러지면서 뾰족해지는 형태였다.
검이 완전히 다 뽑히니 검신이 손잡이와의 경계에서 90도로 꺾였고, 곧 커다란 낫이 되었다.
이어 그녀로부터 형언하기 힘든 마나가 흘러나왔다.
짓뭉개는 듯한 흉흉한 기운은 6서클의 정예급 기사들조차 숨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불길함.
블레이크는 그녀에게서 나오는 마나를 그리 추측했다.
“단장이라 했죠.”
“그렇습니다.”
“체포하러 오신 거라면 혼자 올라오라고 도련님께서 전하셨어요.”
“…….”
블레이크는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든 화재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기사단의 작전까지 알고 있었는지 따져야 했다.
그러려면 방화 용의자로 그를 체포해야 했다.
아니, 굳이 다른 명분 없이도 암시장에서 도망친 자다. 그것만으로도 체포 사유는 충분했다.
단지 면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제 집행을 위해서 정예 병력을 소집했건만.
‘고작 나이트워커 사람을 모시는 사람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싸우면 이길 순 있으리라. 그러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블레이크는 답답한 한숨을 길게 뱉었다.
“알겠습니다. 저 혼자 들어가죠.”
“단장님!”
“그대들은 여기 있게. 포위망을 흩어놓지 말고 이대로. 알겠나?”
부관에게 단단히 일러둔 뒤 블레이크는 릴림을 지나쳐 여관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이미 사람들을 대피시켜놔서 한적했다.
오로지 한 자리만 빼고.
“왔군요.”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티를 즐기고 있던 유리가 블레이크를 발견하고 작게 미소 지었다.
예상보다 훨씬 어린 아이의 모습에 블레이크는 짐짓 멈칫거리며 놀랐다.
그래도, 상대는 나이트워커다. 어리다고 얕보거나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연스레 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플레온 기사단장 블레이크 헌드레드라고 합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나이트워커의 성을 가졌다면 직계 사람이군.
블레이크는 그리 추측하며 대화를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유리 님. 어젯밤 유리 님이―”
“맞아요. 제가 했습니다. 암시장에 갔었고, 불을 질러서 혼란을 일으켰고, 블레이크 님이 공격했던 괴한 또한 저였습니다.”
“……저를 알아보셨군요.”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에 블레이크 또한 저도 모르게 자신이 유리를 공격했음을 인정했다.
유리는 여유롭게 차 한 모금 마시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상한 일들이 좀 있어서 눈치 챘죠.”
“이상한 일이라 하면?”
“처음 왕성을 방문 했을 때 기사들이 보내던 시선, 달갑지 않아하더군요. 기사단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너무나도 순조롭게 인수를 허가하는 섭정. 아마 다른 곳에서도 인수를 하려고 했으나 계속 해서 무언가 때문에 팔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그리고 어젯밤 암시장에선 기사단이 습격을 준비한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기사들이 워낙 기척을 못 숨기더라고요.”
“…….”
“그런데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습격이 늦어지더군요. 심지어 저를 누군가가 공격했죠. 습격은 제가 그로부터 도망친 뒤에 시작됐고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을 구구절절 나열 해보면서 유리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불안과 의심을 짊어지고서도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 기대감을 안고 블레이크는 대화에 응했다.
유리는 먼저 불안과 의심 쪽부터 찔렀다.
“블레이크 님. 당신이 기사단을 인수하려던 자들을 암살했나요?”
“…….”
블레이크는 침묵했다. 굳게 다문 입술에 어떤 긍정도, 어떤 부정도 없었다.
세벨 왕정이 플레온 기사단을 어떻게든 팔려고 했다는 정황은 명명백백했다.
그런데도 팔지 못했다는 건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외적으로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뜻.
무엇이 거래에 훼방을 놨을까.
기사단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해하면 쉽게 결론이 나왔다.
기사단은 명예를 중요시 여기며 어떤 대상을 수호하겠노라 맹세하고 충성한다.
플레온 기사단 같이 명성이 높은 기사단이라면 더더욱 그 성격이 강했다.
그런 기사단이 돈에 의해서 사고 팔린다면, 당연히 내부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세벨 왕정은 섭정의 욕심으로 지배당했다. 무슨 불만을 토로해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왕정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도 싫었을 터.
고로 블레이크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유리가 암살당할 위기에 처한 적 있듯이.
“아무도 기사단을 인수하지 못하게 하자. 그들을 암살해서라도. 당신은 그랬을 겁니다. 맞나요?”
유리가 거듭 물었다.
이것이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난 의혹의 전말.
여전히 블레이크는 아무런 말없이 있다가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릴림과 대치하고 있는 기사단은 명령만 내리면 당장 쳐들어올 기세였다.
설령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