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자, 그럼 성적순대로 의뢰서를 고르렴. 채럿. 네가 먼저란다.”
미앵비슈가 지목하자 채럿은 망설임 없이 가장 오른쪽에 있던 의뢰서를 골랐다.
알려지지 않은 문서의 형태였다.
그 말인즉, 이름 없는 가문에서 보낸 의뢰서로, 난이도가 낮거나 큰 평가를 받기 어려운 의뢰라는 증거였다.
채럿의 선택에 타나토와 제몬이 비웃었다. 미앵비슈는 역시나 하는 눈치다.
이어서 제몬, 타나토가 차례로 골랐다.
그들은 화려한 의뢰서를 골랐다. 적어도 어떤 왕가의 의뢰서가 분명했다.
남은 두 개의 의뢰서에서 이자벨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잠시 유리의 눈치를 살폈다.
남은 의뢰서는 그냥 종이였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종이.
종이로도 정보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존재의 의뢰이거나, 혹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될 정도로 위험한 의뢰였다.
피할 길은 없다.
이자벨이 마지못해 하나 고르고, 마지막으로 유리가 의뢰서를 잡았다.
선택이 끝나자.
“이제부터 너희에게 나이트워커는 없는 것이다.”
미앵비슈의 감정 없는 선언과 함께 의뢰가 시작되었다.
* * *
각자가 어떤 의뢰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공적 욕심에 서로 방해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의뢰서를 뜯는 것도 가문을 떠나는 순간부터 가능했다.
유리는 짐을 싸들고 가문을 나섰다. 릴림이 입구까지 마중 나왔다.
“잘 다녀오세요. 위험한 거, 하지 마시고요.”
“위험한 의뢰를 하러 가는 사람한테 하는 당부치곤 이상하지 않아?”
“왠지 도련님, 더 위험한 거 할 거 같아요.”
“우리 어머니랑 똑같은 소리네.”
“그리고, 초콜릿이요.”
“…….”
릴림이 따로 챙겨뒀던 보자기 하나를 건넸다. 초콜릿이라고 건넨 크기 치곤 가방 하나 가득이었다.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양이 많아지나 싶더니.
“릴림.”
“네.”
“나, 그만 크면 안 돼?”
“안 돼요.”
쩝, 유리는 입맛을 다시며 보따리를 챙겼다.
어쨌든 고열량 음식은 장기 여행에 좋으니까.
유리는 마지막으로 돌아서기 전 저 멀리 새로 세워진 건물 쪽을 바라봤다.
벤헬링턴이 새로 세워준 샤를린느와 유리의 거처였다.
“어머니…….”
샤를린느는 마중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 있었다.
괜히 마음을 약하게 할 수 있다면서 졸업 시험에 가족이 배웅하는 건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보이지 않았어도 느껴지기에.
유리는 걱정말라는 식으로 미소를 짓고 돌아섰다.
“갔다 올게. 어머니를 부탁해.”
“네에.”
문을 나서서 얼마쯤 걸어가던 유리는 작은 언덕 꼭대기에 올라섰을 즈음 멈췄다.
그리고 의뢰서를 뜯었다.
내용을 본 유리는 헛웃음부터 터뜨렸다.
의뢰서엔 이렇게 나와 있었다.
[채럿 알리아스 나이트워커를 도와라.]당최 의도를 알 수 없는 의뢰였다.
누굴 죽여라, 어디를 망가뜨려라, 무엇을 훔쳐라 같은 의뢰도 아니고.
채럿을 도우라니.
[그 애, 이렇게 졸업했나 보네.]티르빙이 말했다.
[어쩐지 수상하다 했어. 나이트워커 직계 자손치곤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애가 졸업 시험까지 받는 게 말이 돼?]“글쎄다.”
[뭘 글쎄야. 너도 알면서.]유리가 지켜본 채럿 알리아스 나이트워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일정한 성적을 낼 때마다 이래저래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
분명 누군가가 그녀를 뒤에서 봐주고 있다면서.
유리도 얼추 비슷하게 추측했으나, 의뢰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마지막 의뢰서를 보내면서 봐주는 건 이상해.’
가만히 서서 고민해봤으나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채럿에 대해서 모를뿐더러, 이런 의뢰는 함부로 수행하기에 수상쩍은 부분이 많았다.
확실한 건 섣불리 의뢰를 따라 움직여선 안 됐다. 직감이 그리 말해줬다.
가문 내에 있는 정보력을 활용한다면 금방 알겠지만.
‘이건 시험이야. 가문의 힘은 되도록 빌리지 않는 편이 나아.’
유리는 알아야 하는 정보를 추리고, 정보를 얻을 수단을 떠올렸다.
마침 괜찮은 정보 상인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나중엔 정보 하나만으로 어느 나라의 국장까지 가는 조직.
유리는 당장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유리는 마나 열차를 타고 영지를 벗어나 언더하울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역에서 내리고 꼬박 2~3일 동안 말을 타고 나서야 도착 가능한 언더하울은 청부업자들의 지하 도시였다.
원래 언더하울은 마법사들의 고향이라 부를 만큼 마법사가 자주 배출되던 도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미치광이 흑마법사가 사람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하다가 발각되었고, 이에 군 병력이 투입되어 폐허로 만들었다.
그곳 지하에는 하수도 시설이 잘 발달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청부 업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의 언더하울로 발전했다.
[채럿의 정보 하나 알아내자고 먼 곳까지 왔네.]“그래도 여기만큼 정확한 곳은 없어.”
강을 따라 걷던 유리는 하수도 입구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악취가 풍기지 않았다. 쥐새끼가 다녀야 할 풍경은 도리어 깔끔했다.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횃불이 보이고 거지로 보이는 사람들이 골목마다 보였다.
제일 깊숙한 곳에 들어섰을 땐 시장이 나타났다.
유리는 원작에서의 서술을 떠올리며 걸었다.
“여기다.”
길에 세워진 간이 천막에서 그가 멈췄다.
천막 밖으로는 발이 나와 있었으며, 발등에 다이아몬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놈의 이름은 리프.
그는 언더하울에서 청부업자들로부터 정보를 사들여서 되파는 형태의 사업을 벌였다.
‘이놈이 카이를 상대로 사기를 쳤었지.’
알고 있는 정보가 많은 만큼 거짓을 꾸미기도 좋았다.
그 덕에 카이는 리프에게 당했다가 보복성으로 놈을 두들겨 패서 제 수하로 삼았다.
리프가 얼마나 독하냐면.
바다 건너 악마에 관해서 알게 됐을 때도 감히 용가를 상대로 몇 푼이라도 더 뜯겠다고 몇 달 동안 줄다리기를 했던 놈이다.
[발만 봐도 살찐 아저씨일 거 같은데, 이 인간이 진짜 정보상이라고?]‘이래 보여도 언더하울을 꽉 잡고 있는 정보상이야. 우선은 깨워 보자.’
유리는 알고 있던 방식대로 발끝으로 그의 엄지발가락을 꾹 눌렀다.
그러자 안에 있던 덩치가 꿈틀 대며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턱살이 늘어진 그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유리를 올려다봤다.
“손님이오?”
“정보를 판다고 들었다.”
“……없는 정보는 안 팝니다. 아는 정보는 기본 10 금화. 질문 한 번 당 1 금화 추가요.”
순간 욕부터 나갈 뻔했다.
10 금화? 약을 팔아도 정도가 있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듣지도 않고 가격을 매기는 정보상은 없다.
하물며 카이에게 정보를 팔았을 땐 왕족의 정보를 팔면서 1 금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리프는 눈앞의 남자에게서 충분히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고급스러운 로브, 감춘 얼굴, 하지만 고운 티가 나는 피부. 딱 봐도 귀족 나부랭이군.’
귀족들은 극도로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려했다. 어차피 그래봤자 나중에 다 들키기 마련이거늘.
아무튼 돈 많아 보이는 귀족을 놓고 거하게 뜯을 생각에 리프는 속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어차피 귀족들은 급하면 돈을 내게 되어 있다. 그러니 초반부터 비싸게 부르는 게 맞다.
더구나 이번 고객은 자신을 단번에 알아보고 왔다.
급하거나, 정보가 간절해서 찾아왔으리라 추측되었다.
물론, 그건 일반 귀족들이나 통하는 얘기일 뿐.
“호구 잡으려다가 집안 말아 먹고 싶나 보군.”
유리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번엔 손을 물거나 딱히 상처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목부터 손등까지 붉은 기운이 감싸며 영락없는 티르빙을 꺼냈다.
지난 5년 간, 유리는 더 이상 상처 없이도 티르빙을 꺼내는 방법을 찾았다.
이 덕에 출혈 없이, 그리고 상대 모르게 티르빙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드래곤 하트와 마나 코어는 모두 6서클에 달했으니.
콰득!
유리는 그대로 리프의 어깨를 쥐어서 마나를 넣어 근력을 배로 끌어올렸다.
그 순간, 뼈가 으스러지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꺼헉!”
“소리 지르지 마라. 힘 조절 안 돼서 진짜 아작낼 수도 있어.”
“끄으! 왜, 왜 이러십니까요!”
“알면서 하는 질문은 썩 대답하기 싫은데.”
인내심은 있는지라 리프는 충고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변을 지나던 이들이 발견하긴 했으나, 또 헛짓을 한 모양이라며 혀를 차며 지나갔다.
유리는 어깨를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코를 잡았다. 마찬가지로 손에 티르빙을 감쌌다.
우득!
“컥! 컹! 제, 제발! 그만……!”
“그만 맞고 싶으면 헛소리부터 그만하고. 네놈이 리프라는 거 알아. 맞지?”
“마, 맞습니다! 맞습니다요!”
“그럼 시드는 어디 있지?”
“예?”
리프는 제 귀를 의심하느라 잠깐이나마 고통마저 잊었다.
‘시, 시드를 알고 있어? 어떻게?!’
사실 리프라는 이름은 정보 길드 트리(Tree)에서 말단을 가리키는 일종의 암호명이었다.
리프(Leaf), 그러니까 나뭇잎에 불과한 그는 정보원이 아닌 직접 거래자에 가까웠으며.
리프 아래 브랜치(Branch), 루트(Root)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보원의 수장인 시드(Seed).
하지만 이 정보를 아는 이는 트리 조직원 말고 없었다.
이제 막 조직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고.
만약 외부에 누군가가 안다면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
유리도 그 사실을 전부 알고서 일부러 리프에게 접근했다.
“대답해. 시드는 어디 있어.”
“모, 모릅니다요! 그, 그 분은 트, 트트, 특정한 상황이 아니고선 저 같은 말단은―! 아아악! 노, 놓고! 놓고 말씀을!!!”
유리는 그대로 쇄골 하나를 툭 하고 빼냈다.
어지간한 완력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을, 이제 그는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리프는 숨을 헛 삼키다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시드한테 가서 전해. 검은 용의 후손이 여기에 왔으니 만나자고.”
“거, 검은……?!”
그제야 리프는 자신이 사람을 완전히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았다.
검은 용의 후손은 누가 듣더라도 나이트워커였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당장 전하겠습니다! 대, 대신 하루만 시간을…….”
“반나절 준다. 내일 해 뜨기 전까지 날 찾아와.” “옙!”
“아, 그리고 이거.”
유리는 손에서 힘을 풀고는 릴림이 줬던 초콜릿 더미에서 몇 개 그에게 던져줬다.
영문을 모르고 받은 초콜릿은 특이하게도 하얀 빛깔이 감돌았다. 화이트 초콜릿이라기엔 반투명하면서도 진한 카카오향이 풍겼다.
유리가 턱짓으로 먹으라며 말하길.
“성력이 들어간 초콜릿이야. 회복될 테니까 먹으라고.”
“성……력 말입니까?”
“다친 꼴로는 못 가잖아.”
“아아, 그, 그렇긴…… 하…… 죠.”
다친 몸으로 움직일 수 없긴 하다만.
병 받고 약 받는 입장에선 황당하기만 했다. 게다가 성력이 들어간 초콜릿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러나 안 먹으면 반대편 쇄골마저 뺄 분위기에 일단 목구멍에 삼키고 봤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도, 초콜릿을 먹자마자 으스러졌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