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7
제37화
유리는 채럿의 아지트에 머물며 부상이 회복되길 기다렸고, 그 사이 채럿은 트리를 정리했다.
알고 보니 조직원 대부분이 더크와 접촉했던 정황이 있었고, 그 사실을 채럿에게 숨겼다.
혹여 채럿도 모르는 제 2의 더크와 내통하는 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유리는 트리를 정리하라고 했다.
그렇게 조직이 정리되고.
이후 채럿이 시드의 이름으로 의뢰가 성공했음을 가문에 알렸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은 언더하울을 떠났다.
* * *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유리는 미앵비슈에게 불려갔다. 공식적으로 가주에게 의뢰 성공을 보고해야 했으나 벤헬링턴은 오늘도 출타로 자리를 비웠다.
햇빛을 등지고 집무실에 앉은 미앵비슈는 유리가 써온 보고서를 읽었다.
“흑마법사 더크, 그리고 그가 실험체로 쓰고 있던 락타샤를 없앴다고?”
“네, 그렇습니다.”
1급 마수종을 단신으로 쓰러뜨렸다, 라.
심지어 그 마수종을 사로잡았을 흑마법사까지 죽였다?
“…….”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보고서를 읽은 미앵비슈는 눈동자만 굴려서 유리를 올려봤다.
온몸이 붕대투성이다. 팔 하나는 부러지다 못해 뼛조각이 부서져서 성력으로도 한참 치료해야 했다.
멍이 든 얼굴은 곱디고왔던 피부에 흠을 내고 말았다.
그녀는 보고서 확인란에 촛농을 붓고 1티어 용패를 꺼내 찍었다.
“졸업을 축하한다. 지금부터 넌 자유의 관 생도야.”
“감사합니다, 고모님.”
“감사하는 것치곤 별로 기뻐하지 않는구나.”
미앵비슈는 유리의 말투에서 그런 감정을 읽었다.
아니, 읽을 필요도 없이 굳은 인상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유리는 담아뒀던 의문을 망설이다 꺼냈다.
“고모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보렴.”
“의뢰서를 고를 때, 모두 무작위로 고르는 게 맞나요?”
“그렇지.”
“그럼 그 의뢰서를 고모님이 보고 선별하시는 건가요?”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거 같구나.”
시드와 채럿에 관해서겠지.
미앵비슈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돌아섰다. 밖에는 지식의 관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그곳에 생도들이 검술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궁금하더라도 묻지 말거라. 호기심이 솟아도 참아. 이 고모도 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으마.”
“…….”
“그나마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건, 의뢰서는 가주님이 직접 고른단다.”
“할아버지께서요?”
뜻밖의 이야기에 유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벤헬링턴이 시험을 골랐다는 점은 전혀 몰랐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드의 의뢰를 굳이 골랐다고 생각하면 다분히 의도적인 느낌이 풍겼다.
“유리야, 가주님과 내가 의뢰 내용을 알고도 왜 시험에 냈는지, 무얼 ‘무시’했는지. 짐작되지 않니?”
그녀가 내뱉는 두루뭉술한 한 마디 속에서 유리는 진실을 엿보았다.
그렇구나, 전부 알고서도 모른 척했던 거였어.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긴 용인 가문이다.
타인이 아닌 혼자서 모든 걸 해내고 증명해야 하는 투쟁의 가문.
언제 어떻게 내쳐져도 아무렇지 않은 곳이며, 자칫 목숨이 오가기도 한다.
이런 가문 안에서 채럿은 한낱 초식동물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버틴 것이 참만 다행이라 할 정도로.
생각에 잠긴 유리를 흘깃 뒤돌아본 미앵비슈는 작게 웃어주었다.
“진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섭섭해하지 마라. 난 네가 이 의뢰를 맡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런가요.”
“당연하지. 넌 누구보다 훌륭하게 의뢰를 마쳤잖니.”
“…….”
유리는 침묵한 채 가만히 서 있다가 가슴에 손을 얹어 나이트워커 식 경례를 하고 방문을 나갔다.
들어왔을 때보다 당당해진 걸음걸이였다.
미앵비슈는 바깥을 다시 내다봤다.
곧 가문에 합격자들이 알려지고, 시험 난이도나 내용이 알음알음 퍼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유리는 알 것이다.
자신이 이룬 성과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시무룩하거나 아쉬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 * *
오늘‘도’ 채럿은 유리와 샤를린느가 머무는 처소로 놀러 왔다.
부상으로 인해 가문으로 돌아온 뒤로 유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채럿은 매일매일 찾아왔다.
오늘은 테라스에 앉아서 티타임을 즐겼다. 그녀의 곁에는 늘 그렇듯 토끼 인형이 함께했다.
유리는 릴림의 성력이 담긴 초콜릿을 먹으며 물었다.
“진짜 이대로 괜찮겠어?”
“오라버니도 참. 괜찮고 말고요.”
“지식의 관은 졸업하고 싶었을 거 아냐.”
결과적으로 채럿은 졸업 시험에서 떨어졌다. 아예 의뢰를 수행하지도 않은 채 가문으로 돌아왔다.
질책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동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무시하는 반응으로 일색했다.
정작 의연한 쪽은 채럿이었다.
“엄마한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제가 제대로 졸업하길 원하셨을 거예요.”
“네가 그렇다면야, 뭐…….”
“헤헤.”
채럿은 티 없이 웃고는 비스켓을 물었다.
몰랐는데 의외로 채럿은 밝은 면이 많았다. 잘 웃고, 잘 울기도 한다.
가끔은 필터링 없이 솔직해서 난감할 때도 많았다.
딱 아이답다고 해야 되나.
이렇게 평화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던 중.
“한가하군, 유리 덴 나이트워커.”
어느 틈엔가 방 안에서 익숙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골적인 살기에 이은 한기가 전신을 덮친다.
순간, 유리는 본능적으로 검을 뽑으려다가 커튼 너머 비추는 실루엣에 긴장감을 거뒀다.
얼핏 보이는 외형은 익숙했기에. 그 모습을 확인하고 유리는 입맛을 다셨다.
“기습할 거면 조용히 와야지. 대놓고 정문으로 오면 어떡하자고, 카이.”
“야밤에 담이라도 넘어야 했나?”
커튼을 걷으며 금발의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전에 봤을 때와 달리 건장해지면서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피폐함으로 가득한 눈빛만은 여전했다.
그런데 카이가 등장하자, 갑자기 채럿이 유리의 등 뒤로 숨었다.
“채럿? 왜 그래?”
“저 사람, 오라버니를 죽이려고 했어요…….”
“…….”
그렇다는데, 카이?
유리가 그리 묻듯이 카이를 바라보자 그는 도리어 눈살을 구겼다.
그러고 보니 카이는 아이를 싫어했다.
혐오라는 느낌은 절대 아니고.
그저 환생을 거듭하면서 악마들이 아이들을 죽이는 광경을 역겨워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발목을 잡았고 이를 싫어해서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불편하게 여겼다.
유리는 채럿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카이에게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카이, 살기 거둬.”
“옆에 있는 아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응? 너야말로 얘를 알아?”
카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마지못해 기운을 죽였다. 그리곤 천연덕스럽게 다리를 꼬고 자리에 앉았다.
“이름이 뭐지.”
채럿을 가리키고 하는 질문이었다. 유리가 대답해줬다.
“채럿 알리아스 나이트워커.”
“알리아스? 혹시 하이엘프 알리아스의 자식인가?”
“어, 맞아.”
“그랬군. 그래서 그 인형을 가지고 있는 거였어.”
“알리아스에 대해 알고 있나 보네.”
“아주 오래전에 만난 적 있다.”
아아, 그랬지.
애초에 원작에서 카이가 시드를 알게 되는 건 몇 번의 환생 전에 만난 알리아스 덕이 컸다.
당시의 알리아스는 미혼이었던 데다가 나이트워커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때의 만남을 기억한 카이가 환생을 하고 나서 트리가 필요해졌고, 그러면서 더크가 맡았을 트리와 만나게 된다.
‘생각해보면 카이는 알리아스가 시드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어. 트리가 하이엘프 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도 몰랐지.’
설정집에서는 카이가 알리아스와 그 일족을 도왔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은혜를 입은 알리아스는 그 보답으로 트리의 존재를 가르쳐 줬다고 나와 있다.
아무것도 모를 카이는 당시의 기억을 언어로 바꾸었다.
“그때 만났던 알리아스도 저 인형을 가지고 있었다. 특이한 기운을 가진 인형이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저희 엄마를 알아요?”
채럿이 조심스레 물었다.
카이는 팔짱을 끼고 그때의 알리아스를 떠올렸다.
“쓸데없이 감정적이고 착해 빠져서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강했어. 내가 동료로 삼고 싶을 정도로 강했고 또 위대했지.”
박하지 않다 못해 후한 칭찬은 다소 의외였다.
그만큼 알리아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유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알리아스는 요즘 어떻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다운 질문이 기어코 튀어나왔다.
난감했다.
유리는 괜히 채럿 쪽으로 눈짓을 하면서 카이에게 눈치를 줬다.
이걸 다행이랄지.
카이는 금방 신호를 알아보았고, 심지어 그답지 않게 어찌할 줄 몰랐다.
“미안하군. 전혀 몰랐다. 설마 그녀가…….”
“아……뇨오…….”
분명 채럿이 시무룩할 줄 알았다. 진짜로 목소리가 그랬고.
그러나 곧 그녀는 경계하던 아까와 달리 눈망울을 빛냈다.
“저, 저저저! 진짜로 죄송하면요! 부탁이 있어요!”
“갑자기 뭐냐.”
“어머니 얘기해주세요!”
“뭐라고?”
“엄마를 아신다면서요! 전 엄마 얼굴 본 적도 없고, 아빠한테 물어도 말씀해주지 않고…… 그러니까! 용서해드릴 수 있어요! 엄마 얘기만 해주면요!”
예상치 못한 채럿의 반응에 유리와 카이를 서로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일단 슬퍼하지 않아서 놀란 건 두 사람 똑같았다.
다만.
카이는 채럿이라는 아이가 매달려서 놀랐고, 반면 유리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상상보다 강해서 놀랐다.
채럿은 아예 카이의 팔뚝을 붙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카이 님이라고 했나요? 제발요, 카이 님!”
“이것 좀 놓고, 아니. 후우…… 알겠다, 알겠어. 나중에 알려주지.”
“진짜요?!”
“그러니까 이것 좀…… 놔라!”
“헤헤.”
좀 이상하게 됐지만, 유리 딴에는 잘된 일이었다.
언젠가는 두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하려고 했으니까.
유리가 아니더라도 카이는 언젠가 정보를 얻으러 트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서로 좋게좋게 지내면 좋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채럿은 비스킷을 물고 헤벌레 웃었다.
카이는 채럿이 매달렸던 옷깃을 털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예언서를 봤다면서 이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건가.”
“이럴 때 쉬는 거지.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죽을 뻔했어. 이거 안 보여?”
유리는 부러진 팔을 장난스레 흔들어 보였다.
카이가 물었다.
“지식의 관을 졸업했다더니, 마지막 시험에서 당했나 보군.”
“마지막이라고 만만치 않더라고.”
“네놈이 방심해서 그랬겠지.”
“상대가 락타샤였는데?”
잠시나마 카이의 낯빛이 굳는다.
환생을 거듭한 카이도 놈과 여러 번 싸워봤으나, 매번 곤혹스러운 마수로 손꼽혔다.
한 번은 독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던 때도 있었다.
허나 카이는 곧 유리의 실력을 납득했다.
“티르빙의 주인이 락타샤 하나 잡고 너스레라니. 티르빙이 다 비웃겠군.”
[나 안 비웃었는데. 못 웃었는데. 뭘 안다고 떠드니?]티르빙의 정색에 오히려 유리가 얕은 웃음이 터졌다.
카이는 그런 유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한심하긴. 티르빙을 들고도 고전했으니 방심했다고 하는 거다.”
“뭐어…… 한심한 건 인정하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어하고 고전할 줄은.
나름 준비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티르빙에 드래곤 하트까지 가지고 있어서 1급 마수라고 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결코 자만하지도 않았다.
헌데도 약간의 운과 도움 덕에 승리했다는 결과는 여전히 약하다는 걸 방증한 셈이 되었다.
“오라버니…….”
채럿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유리를 올려다보았다.
유리는 그런 채럿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침울해할 정도로 한심하진 않거든. 오히려 더 의욕이 생겼어.’
카이도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공할 때까지 하고 또 해서, 그렇게 성공했다.
그게 원작의 스토리이자 주인공이 강해지는 요인.
유리는 그런 주인공을 좋아했고, 이 세계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갔다.
“짜증나는군.”
갑자기 카이가 신랄하게 욕을 뱉었다. 정작 입가엔 비웃는 미소가 번졌다.
“알리아스가 궁금하다고 했던가. 바로 옆에 똑같은 사람이 있군. 쓸데없이 감정적이고 착해 빠진 자.”
“오라버니가요?”
“내가?”
“그래, 알리아스였다면 네놈이랑 똑같이 말했을 거다.”
그리 말한 카이가 벌떡 일어났다.
“나와라. 짜증나는 정신머리를 고쳐주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