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8
제38화
졸지에 대련이 성사되고, 유리는 앞장서서 대련장으로 카이를 데려가는 중이었다.
짜증나는 정신머리에 자극을 주겠다나?
아까는 알리아스랑 비슷한 성격이라면서 강하고 대단하다더니. 갑자기 짜증난다고 하니 유리는 황당하기만 했다.
그러나 원래 그런 놈이다.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칭찬은 절대 못하는 녀석.
‘기대되네.’
정원을 가로지르며 유리는 대련장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카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했던 차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훨씬 더 강하겠지만, 모든 환생 중 육체 면에서 최악이라 꼽는 이번 생이다. 그래서 더더욱 필사적이었던 삶이기도 했고.
“어? 유리 님!”
체육관과 비슷한 외형의 실내 대련장에 다다랐을 즈음.
몇몇 기사들과 블레이크와 만났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가슴에 손을 얹어 경례를 했다.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다들 얼굴이 좋군.”
“이게 다 유리 님 덕이죠.”
4년 전, 블레이크와 플레온을 데려오고 나서 그들은 의외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텃새에 시달리긴 했지만, 영지 경계에서 근무하며 실적을 빠르게 쌓아서 소위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만큼의 대우를 받기 시작한 플레온 기사단.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근무환경에 더더욱 열의를 불태워 가문 내에 위상을 드높였다.
블레이크의 밝아진 모습만 보더라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참. 지식의 관을 졸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니야. 축하는 무슨. 엉망이 되어가면서 성공했는데.”
“엉망이 되어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성공이지 않겠습니까. ……근데.”
블레이크는 그제야 카이를 발견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가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카이가 또 사고 쳤습니까?”
“또 사고라니?”
“그으…… 얼마 전에 신입들이 들어왔는데 카이가 그놈들을 반갈죽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장님.”
카이가 얇게 실눈을 뜨며 읊조렸다.
블레이크는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원래대로 높였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나. 자네가 반갈죽으로 만들어서 내쫓아놓고는…….”
“그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시비를 걸어도…… 하아, 아닐세. 내 입만 아프지.”
쿡, 유리는 나오려던 웃음을 겨우 참았다.
과연 카이다웠다.
시비만 걸어도 죽였던 과거가 있기에 반갈죽은 차라리 양호했다.
그나마 블레이크가 중간에서 말리고 뒷수습하느라 고생했으리라.
근데.
‘이거 개족보가 됐는데.’
시간이 흐르며 블레이크는 유리에게 존대를 했다. 하지만 카이는 존대는커녕 유리를 동등하거나 아랫사람처럼 대했다.
또 반대로 카이는 블레이크를 단장‘님’이라 불렀다.
‘좋은 건가?’
좋은 거겠지.
유리는 그냥 그렇게 치부해버렸다. 카이에게 제대로 된 예의까지 바라면 그건 욕심이 과했다.
반면 아직 개족보를 모르는 블레이크는 사고를 치지 않았다는 말에 안심하고 물었다.
“사고 친 게 아니라면 카이를 데리고 어디 가고 계셨습니까?”
“카이가 대련을 해보자고 하더군.”
“예?”
“예?”
“예?”
순간 블레이크와 그를 따르던 부하들까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감히 가문의 기사가 가문의 직계에게 대련 요청이라니! 애초에 평기사가, 평민이 귀족에게 무언갈 요청할 수 없다.
부탁? 읍소?
그런 것쯤은 가능하겠지!
그저 요청, 부탁, 읍소가 대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은 모두 카이를 매섭게 노려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사고 안 쳤다면서!’
* * *
실내 연무장은 기사들이 훈련으로 매진하느라 땀 냄새와 쇠 부딪히는 소리가 진동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유리 일행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경례를 올렸다.
“밤의 영광을! 유리 도련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군.”
일제히 자리에 있던 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유리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들의 대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허나 타나토에 이은 이자벨과의 대련, 지식의 관에서의 성적, 최근 졸업 시험까지.
특히 최근 락타샤를 단독으로 싸워 죽였다는 소식은 유리가 쌓아왔던 업적을 한 층 더 빛나게 했다.
가문에서 유리는 17살에 6서클을 도달하고 마검에게 인정받은 천재 이상이었다.
유리는 가까이 있던 상급 기사를 불렀다.
“연무장 하나를 비워주게.”
“훈련이십니까?”
“아니, 대련.”
순간 기사들이 술렁거렸고, 상급 기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참관해도 되겠습니까? 오늘 생도들도 있어서 그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될 겁니다.”
“나도 아직 생도가 아닌데.”
“상관없습니다!”
“그래, 뭐. 그렇다면. 괜찮지, 카이?”
“난 광대놀음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모가지에 칼끝이 닿아도 광대놀음이라 할 수 있겠어?”
“……흥.”
카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상급 기사에게 신호를 주자 그는 얼른 정가운데에 있던 연무장을 치우라 명했다.
아직 유리를 모르는 수습생들은 참관에 앞서 상급 기사나 선배들에게 몇 가지 주의를 받았다.
“너희들 잘 들어라. 오늘 보게 될 것들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해라. 밖에 절대 발설해선 안 된다! 알겠나?”
“옙!!!”
“옙!!!”
“옙!!!”
영문을 모르는 그들은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경고를 한 이유는 다름 아닌 마검 때문이었다.
아직 세간에 유리와 마검의 존재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블레이머의 장례식 당시 나이트워커 가의 서자에 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가주의 명령도 따로 있던 차였다.
마검에 대해 밖에서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물론 유리는 오늘 티르빙을 꺼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꼬맹이, 당분간 이 언니는 휴업이라고 했던 거. 알지?]‘알아, 안다고.’
몇 번째 듣는지 모를 잔소리에 대충 대꾸했다.
락타샤와의 일전으로 인해 유리는 하루에 몇 번씩 빈혈로 인한 어지럼증을 겪었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티르빙은 거기서 몇 번 더 자신을 부렸다간 락타샤가 아니라 과다출혈로 죽었을 거란다.
‘아쉽지만 대련용 검을 쓸 수밖에 없네.’
유리는 연무장에 예비로 마련된 검 하나를 집어서 무대 위로 올랐다.
먼저 올라가 있던 카이는 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 검은?”
“저번에 락타샤랑 싸우다가 부서졌어.”
“그럼 마검을…… 아니다. 못 쓰겠군.”
마지못해 카이는 자신도 예비용 검을 집으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유리가 부목과 붕대를 풀고 어깨를 빙빙 돌리면서 조건이 동등해졌다.
두 사람이 마주 서고.
“밤의 영광을.”
“…….”
유리만 기사식 경례를 했고 카이는 무덤덤하게 검을 세워 들었다.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몰려왔다.
검을 잡아본 게 처음이 아닌데, 원작 주인공과 싸우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글로만 보던 불멸의 힘.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선공은 유리였다.
전진하는 신체, 그의 검이 어깨 뒤로 넘어갔다가 반달 궤적을 그리며 내리쳤다.
후웅! 카드득!
허무한 방어가 이어졌다.
카이는 고작 한 손으로 검을 드는 것만으로 공격을 막았다. 반면 양손으로 온 힘을 다 줬던 유리는 당혹스러웠다.
‘이 정도라고?’
첫 공격 만에 압도적인 차이가 전해진다.
그러나 유리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으나 벽처럼 느껴지는 주인공을 상대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쯤은 돼야지!”
유리는 힘겨루기를 하지 않고 검 끝에 힘을 뺐다.
카이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으며, 그대로 뒤로 몸을 빼서 거리를 뒀다가 재차 달려들었다.
이번엔 가로로 반달을 그린다.
쩌엉!
검이 부딪히자 아까와 달리 바위가 갈라지는 굉음이 울렸다.
소리만큼 강한 위력에 카이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거꾸로 세워 막았다.
그의 안면이 무감각하게 말했다.
“이게 전부냐.”
“그럴 리가!”
유리는 락타샤와 싸울 때 썼던 결전기를 쓰기 위해 마나를 끌어모았다.
아칸 검법.
그들의 검술은 총 10개의 식으로 나뉘었다.
그 중 유리가 익힌 건 5식까지이며 ‘안개 가르기’가 그 첫 번째였다.
그러나 안개 가르기로는 안 된다.
‘5식, 어둠검!’
빛이 속도를 상징한다면, 어둠은 속도를 배제한 보이지 않는 것.
알고 보니 그곳에 있었다, 라는 게 아칸 검법이니.
카이는 처음과 같은 궤적으로 날아드는 공격에 비웃었으나.
이내 검신이 사라지는 걸 목격했다.
아니, 이미 그곳에 검은 없었다. 목격하고 자시고도 없던 셈.
“……!”
툭, 캉!
다시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카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카이는 오로지 반사신경 하나만으로 검을 막았다.
그것도 검이 아닌 목 근처에 마나를 씌우는 것만으로.
“하, 미친…….”
단 세 번이었다.
고작 세 번의 부딪힘만으로 유리는 카이의 진짜 실력이 얼마나 높은지 깨달았다.
이것이 원작의 주인공.
무한 환생자의 힘.
원작에 나오는 카이의 전투 방식은 압도적이면서 무식하고, 강렬하면서 투박했다.
정교할 때는 한없이 정교해지지만, 지금의 카이는 그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카이는 내색하지 않았을 뿐. 순간적으로 위협을 감지해서 본능적으로 마나를 펼쳤다.
‘괴물 같은 기세군.’
카이가 평가하는 유리는 아직 연단되지 못한 칼날과 같았다.
날카롭진 못해도 무지막지하다.
방금 전 공격들 또한 노리는 곳은 명확했어도 정확하게 하진 않았다. 오로지 힘과 속도만으로 밀어붙였다.
마치 카이 자신처럼 말이다.
즉, 유리는 카이와 똑같은 검술을 구사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공격에서 두 사람 모두 격차를 체감했다.
그리고.
유리도 카이의 위험한 방어술을 보고 역시 그답다고 생각했다.
‘과한 힘은 안 돼. 간단하고, 치밀하고, 세밀하게!’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유리는 카이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퍽!
“으윽!”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카이는 비틀대면서 옆으로 밀려났다.
사람 대 사람으로 싸울 때는 이런 체술이 유용했다. 특히 1:1 대련에서 체술은 필수적이었다.
허나 카이는 이런 식의 전투가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보단 마수나 악마들과 싸웠으니 당연했다. 그나마 사람과 싸울 때는 방금처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곤 했다.
카이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딜 이딴 수를……!”
바로 중심을 잡은 카이가 마찬가지로 옆구리로 돌려차기를 날렸다.
같은 공격.
그러나 유리는 검을 아예 버렸고, 다리를 붙잡아 날아오는 공격의 방향으로 원심을 줬다.
이어 카이를 제압한 채 바닥에 엎어뜨렸다.
“큭!”
예상하지 못한 기민한 몸놀림은 단번에 카이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유리는 손끝을 세워 마나를 모았다.
똑같은 어둠검이었지만, 위력은 덜하면서 날은 더욱 예리했다.
승부는 보나마나였다.
이대로 내리치면 죽는다.
그러나.
피가 튀는 쪽은 카이가 아닌 유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