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조용! 여기가 어디라고 시장 바닥마냥 씨부려!”
벤헬링턴이 고함을 지르자 칼에 잘리듯 뚝 조용해졌다.
모두가 입을 다물자 그가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미친놈들. 불만이 있으면 너희들이 직접 해결해! 살 만큼 산 놈들이 애들 마냥 찡찡거리는 꼬락서니라니!”
“크흠.”
“흠! 흠!”
“후우, 대답해 보거라. 유리, 제몬으로부터 열등분자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덤볐다고 했는데, 사실이냐?”
질문을 받은 유리는 남몰래 호흡을 골랐다.
혹시나 했던 상황이 그대로 벌어질 줄이야.
그가 비죽대며 입을 열었다.
“말이 참 교묘하네요. 제몬 님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열등분자 소리를 듣고 제가 덤볐다고.”
“스실이자나(사실이잖아)!”
제몬이 바람 새는 소리를 빼액 질렀다.
역시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애는 애라는 건가. 유리의 눈은 그를 보면서 입은 벤헬링턴을 향했다.
“열등분자 소리를 듣고 공격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제가 도발에 화가 나서 덤볐다 생각하신다면 그건 틀렸습니다.”
“트리다히(틀렸다니)! 니 여르등가메 더비 거 맞음녀서(네 열등감에 덤빈 거 맞으면서)!”
“열등감은 너보다 내가 못났을 때나 갖는 거고.”
“뭐, 뭐? 이게― 악!”
기어코 참다못한 벤헬링턴이 꿀밤으로 정수리를 때렸다.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제몬은 턱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려 앓았다.
유리는 하던 이야기를 이었다.
“열등하다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정말 제가 제몬 님보다 열등한지. 아니면 제몬 님이 더 열등한지.”
“그래서 싸움을 걸었다?”
“그게 나이트워커가의 방식이니까요.”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보다 강한 자와 싸워 증명한다.
나이트워커가 그간 최강의 가문으로 군림했던 방식이다.
그리고 그들은 틀리지 않았음을 지금까지 증명해왔다.
“크하하하!”
벤헬링턴이 무거웠던 분위기를 뚫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난데없는 반응에 주변인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방이 떠나가라 웃고 나서야 멈췄다.
“크흐흐흐. 얼굴 못 보고 자랐어도 블레이머의 아들이라는 건가.”
“…….”
“대충 전후 사정을 들었다. 제몬 놈이 멋대로 길을 막으러 갔었다고.”
벤헬링턴이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서 시가를 꺼냈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손가락에 불꽃을 피워 불을 붙였다.
마나를 다루는 사람이 봤더라면 기겁할 기교였다.
“푸흐으. 누구의 잘잘못도 따지진 않으마. 내 명령을 몰랐던 손주의 기행이니 말이야. 물론 유리 네놈도 그냥 넘어가마.”
“…….”
“허나 호위기사란 놈들이 임무 수행을 제대로 못한 것도 사실! 고로 내가 보상을 해주마. 어떠냐?”
보상이라!
유리는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당하기만은 억울해서 보상을 요구하려 했었다.
억지를 부리는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유리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저는 겸손을 떨 줄 모릅니다.”
“겸손을 떨었다면 네놈 아가리에 내가 직접 구겨 넣었을 거다.”
13살짜리한테 하는 말 하고는…….
그래도 호탕한 성격이 이럴 땐 좋았다. 적어도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이 제안에도 호탕할 수 있을까.
“1,000만 골드를 주십시오.”
“뭐뭣?”
“저런 미친!”
여태껏 가장 격렬한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1골드로 평민 한 명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다. 귀족은 100골드만으로 사치스러운 삶을 누린다.
1,000만 골드론 무엇이 가능하냐.
‘자그마한 영지나 나라를 통째로 살 수 있는 금액이지.’
철없는 꼬맹이의 세상 물정 모르는 요구라 할지라도 입에 담을 액수치곤 터무니없었다.
특히 샤를린느가 가장 놀라서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타이르듯 꾸중했다.
“유리, 돈을 원해도 상식이 있어. 돈이 필요하다면 이 엄마가…….”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지 않나요, 가주님?”
모두가 가주를 향해 시선이 쏠렸다.
이상하게도 벤헬링턴은 아까와 달리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하지도 않는다.
나이트워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녔다.
보물을 좋아하는 드래곤의 성향 때문에 축적한 부는 감히 인간의 범주로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유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터무니없게 요구했다.
벤헬렝턴이 조용히 있자 그 틈에 덧붙였다.
“무리한 액수를 요구했다면 다른 제안도 있습니다.”
“말해봐.”
“제몬 님을 제가 데리고 다니게 해주십시오. 잠깐이라도 부려 먹고 싶거든요.”
지금까지와 달리 이번 제안에는 누구도 찍소리를 내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수준이 아니라, 절대 들어주지 않을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귀족이 평민 밑으로?
모두들 속으로 비웃었다.
아무리 가주라 해도 제몬을 근본 없는 평민에게 넘겨줄 리는 없었다.
그런데.
“아, 아버님? 어찌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제몬의 아버지가 불안에 떨며 물었으나 굳은 입술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담배만 물고 뱉는 데만 안면근육이 움직일 뿐.
유리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과연 나이트워커 가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1,000만 골드쯤이야, 주겠다.”
벤헬링턴은 군더더기 없이 그리 말했다.
일순 다른 가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이상했기에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대신 유리, 샤를린느. 둘 다 가문으로 돌아오도록. 그럼 1,000만 골드 이상을 주마!”
이 한마디는 곧 나이트워커 가문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 파장이 가문을 흥하게 할지.
아니면 멸하게 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대신 한 가지는 명확했다.
원작과 달라지고 있었다.
* * *
장례식은 총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첫 2~3일 간 죽은 자를 애도하고 다시 이틀 동안 성대한 파티를 열고,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검은 불꽃에 머리카락을 하루 종일 태워서 하늘로 보내는 걸로 마무리한다고 했다.
그 기간 중 이제 첫날이다.
샤를린느와 유리는 가문의 별채에 머물게 되었다.
별채 로비로 들어오자마자 샤를린느가 비틀거렸다.
유리가 얼른 부축했다.
“어머니!”
“괜찮아. 간만에 긴 여행을 했더니 피곤하구나.”
“쉬셔야겠어요. 오늘 있었던 일들에 관해선 내일 이야기 나눠요.”
“그래.”
샤를린느를 침실까지 부축하고 유리는 다시 별채 로비로 나와 가운데 있는 소파에 누웠다.
확실히 고되기는 고됐다.
특히 벤헬링턴 앞에서 서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
드러누우니 티르빙이 잔소리를 쏟아냈다.
[원래 계획보다 100배 많은 돈을 요구하다니. 심지어 제몬을 갖고 협박을 해?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그런가.”
[그런 거거든.]티르빙의 주인이 되고 나서 유리의 생각은 자연스레 그녀와 공유되었다.
유리가 전생을 보았고 어떤 내용의 소설이며 앞으로 계획까지도 전부 다.
골드 요구 또한 계획의 일부로 티르빙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액수부터 시작해서 제몬을 요구하기까지는 전혀 몰랐었다.
기존의 계획은 기껏해야 10만 골드만 요구하려 했다.
유리는 테이블에 있던 청포도 하나를 물며 설명했다.
“당한 게 있는데 제대로 갚아야지.”
[그래도 제몬을 부려 먹겠다는 건 선 넘었어.]“그러게. 손자라서 안 주는 거 같더라.”
[뭐야. 뉘앙스가 왜 그러니?]“솔직히 벤헬링턴 같이 매정한 사람이라면 돈보단 가족을 팔 줄 알았거든.”
[벤헬링턴을 떠본 거였니?]“…….”
[꺄하하하하! 진짜로 그랬구나!]티르빙은 신이 나서 폭소를 터뜨렸다.
원작에서도 그렇고, 벤헬링턴은 샤를린느를 가문으로 불러들였다.
유리는 그 부분이 의아했다.
남편이 죽었으니 아내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게 맞지만, 오늘처럼 아예 가문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샤를린느는 주인공에 의해 죽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벤헬링턴을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아.’
[응? 뭐라고, 꼬맹이?]“아냐, 아무것도.”
말과는 달리 머릿속은 빠르게 계산기가 돌아갔다.
벤헬링턴 덴 나이트워커.
잔악무도하며 앞뒤를 가리지 않는 용인.
그런 그가 어째서 제몬과 덤으로 유리까지 감싼 건지, 마지막에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건 무슨 의미일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 *
“이제 와서 샤를린느 님을 가문으로 들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겨우 하루 업무가 끝나나 했더니. 벤헬링턴은 겔런으로부터 따가운 참견을 들어야 했다.
집무실 책상에 팔을 기대고 그는 시가를 꺼내 피웠다.
“본인이 보고해놓고 또 묻는 거냐?”
“기사들이 봤다는 것 때문이군요.”
유리와 제몬이 싸우던 그때, 기사들 중 몇몇이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유리가 제 손에 직접 자해를 하고 그 손으로 제몬을 때렸다.
그리고 그 손에 흐르던 피가 뚜렷하지 않지만 갑옷 형태를 하고 있었다.
“티르빙이라 확신하십니까.”
“피를 매개로 삼는 무구 따윈 세상 하나밖에 없어.”
“13살 아이가, 제대로 검을 배워본 적도 없고, 용인도 아닌 인간이 마검을 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한번 뽑으면 피를 봐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제 주인을 잡아먹는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티르빙의 저주이지만, 여기엔 조건이 하나 붙었다.
일단 티르빙으로부터 주인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자가 티르빙을 잡으면 저주와 상관없이 제 주인을 잡아먹는다.
즉, 유리는 주인으로 인정받은 셈.
“불확실하다면 확실할 때까지 알아봐야지.”
벤헬링턴은 그야말로 태연자약했다.
이건 생각 이상으로 위험했다.
어쩌면 유리는 가문에 원한을 가지고 있을 터. 오랫동안 가문으로부터 버림받았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마검의 주인이라면…….
상상조차 싫은 미래에 겔런은 얕게 도리질 쳤다.
“혹여 티르빙을 감시하기 위해서입니까?”
“…….”
“가주님, 저에게는 명확히 해주셔야 합니다.”
“거 진짜. 무슨 이유든 내 맘이야. 더 토 달지 말게.”
미칠 노릇이다.
유리만 해도 복잡한데 가주까지 이리 독불장군이시니.
순간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주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이유가 하나 있긴 하다.
아직까지 확신 없는 추측이었어도, 오랫동안 가주를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와서 가문으로 들인 게 아니라, 이제까지 가문으로 들이지 못했던 걸 수도…….’
겔런이 멍하니 있자 벤헬링턴이 쯧 혀를 찼다.
“걱정 말게. 가문 아래 두어서 감시하고, 따로 또 감시자를 붙일 거야.”
“감시자라뇨?”
겔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벤헬링턴이 사악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앞으로 무언가 벌어질 때마다 짓는 미소였다. 벌어지는 일이라 하면 사건보단 항상 사고에 가까웠다.
벨헬링턴은 즐거워하며 말했다.
“사자들을 불러들여.”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