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지식의 관을 졸업한 유리는 ‘자유의 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식의 관이 이론을 배우는 ‘교육 기관’이라면, 자유의 관은 배움의 장소가 아닌 기사단 산하에서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이다.
이곳에서 유리의 신분은 기사 생도가 되지만, 가문의 혈통으로서 임무에 파견 나갔을 때는 지휘권을 가진다.
그리고 자유의 관 입단식이 있기도 전에 유리는 첫 임무를 맡았다.
“미안하군, 유리. 이런 호위는 필요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는데…….”
말을 타고 숲을 통과하던 중 대뜸 이자벨이 그리 말했다.
나란히 말을 거닐던 유리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가보고 싶었던 솔리드녹스입니다. 괜찮아요.”
이자벨이 솔리드녹스로 돌아가게 되면서 유리에게 호위 임무가 떨어졌다.
솔리드녹스까지 마나 열차가 가지 않아서 근방까지만 열차를 이용하고 이후 말을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한 지 2시간째.
유리는 뒤에 늘어선 기사단을 훑어봤다.
이번 호위 작전에 블레이크를 포함해서 플레온 기사단 전원이 투입되었다.
유리의 첫 공식 대외 임무여서 나름 성대하게 보이기 위함이었으며, 이를 지시한 건 다름아닌 벤헬링턴이었다.
‘할아버지도 참……. 은근히 호들갑이 심하셔.’
신경 쓰면서 쓰지 않는 척.
이런 걸 전생에선 츤데레라고 하던가.
반면 이자벨은 그런 유리의 상황을 알고 있어서 계속 미안한 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기대했을 공식 임무이지 않은가. 얼른 공을 세우고 싶을 테고.”
“공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세우면 되죠.”
라이벌 의식이 강한 나이트워커와 솔리드녹스의 관계로 인해 가문의 혈통이 상대방 가문에 넘나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자벨이야 교환 학생 신분이니까 가능했을 뿐.
그렇기에 유리는 이번 호위 임무를 쉽긴 해도 귀중하게 여겼다.
‘한 번쯤 봐두는 것도 괜찮겠지.’
뭐가 되었든 미래에 카이와 함께 악마를 물리치는 가문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마법도 구경하고, 실력자들을 미리 만나볼 기회에 이자벨의 걱정과 달리 유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면.
이자벨이 진짜로 미안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검의 주인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 시작이 나라니, 참…….’
아직 세상은 마검 티르빙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
그런 티르빙의 주인이 이제 막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임무를 받았다.
그리고 유리는 가주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가지고 있는 능력과 품고 있는 포부에 비해서 호위 임무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자벨은 도대체 가문에서 뭐하러 유리에게 이런 임무를 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유리는 알았다.
‘벌써 견제하겠다는 거지.’
가주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4년이 지났다.
지식의 관에서 배움만 얻던 한 학생이 실전이나 다름없는 졸업시험을 우수하게 클리어했으며, 뒤에는 플레온 기사단이라는 뒷배를 얻었다.
그런 자가 자유의 관 생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견제하러 들어오겠지.
하물며 누가 견제했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자유의 관 담당은 다이올드 백부님이었지.’
유리에겐 큰아버지이자 벤헬링턴의 둘째 자식. 타나토와 제몬, 채럿에겐 친부.
그리고.
미래에 가주가 되어서 가문을 말아먹는 역할이 바로 다이올드였다.
[갑자기 궁금한 건데, 널 죽이려고 했던 암살자를 보낸 게 다이올드 아닐까? 가주 후보자들의 싹을 없애는 거지!]‘가능성만 있지, 확률이 높지 않아. 원래 나는 가문과 상관없었잖아.’
[아, 그것도 그렇네.]원작대로 세계가 흘러갔다면 유리는 암살당해 사라지고 없었다.
설령 지금처럼 살아있다고 해서 가문의 직계로 인정받지 않은 이상, 가주 자리 때문에 암살하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물론, 티르빙 말대로 싹을 자르겠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정황조차 없어서 전부 추측에 불과했다.
‘추이를 지켜보기로 하고, 임무에 집중하자.’
다이올드가 준 임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솔리드녹스에 들어가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이상, 한시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됐다.
유리는 고삐를 강하게 쥐었다.
* * *
숲을 빠져나오자 신기하게도 황무지가 나타났다.
마치 선을 그어놓고 세상을 구분 지은 듯, 수목한계선을 끝으로 바로 단단하게 마른 대지가 호위대를 기다렸다.
저 멀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토벽으로 쌓은 작은 성이 보였다.
이자벨이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솔리드녹스의 지계(地界)다. 메마른 요새라고 부르지.”
“메마른 요새…….”
불의 지배자인 레드 드래곤은 자신의 용인 후손들에게 땅을 내주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영역을 만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황무지가 그 영역으로, 이곳을 건너기 위해선 메마른 요새나 정해진 마을들을 거쳐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솔리드녹스의 중심부로 가기도 전에 말라 죽는다.
마나 열차가 들어서지 못한 것도 이런 지리적 요소 때문이었다.
황무지 위로 호위대가 들어서고.
유리는 뒤에 있던 블레이크에게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턴 적진이다. 우리는 나이트워커를 대표해서 온 거나 다름없어. 그러니 모두에게 긴장 늦추지 말라고 전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호위대가 다시 움직였다.
호위대는 오늘 메마른 요새를 지나 이대로 중앙까지 나아갈 계획이었다.
먼 거리였으나 마차를 끌고 오지 않아서 기동력은 충분했다.
입구 요새에 다가가자 검문소 병력들이 창을 치켜세워 유리 일행을 겨눴다.
“정지! 누군데 감히 붉은 용의 땅에 무장하고 들어서느냐!”
순간 유리는 기수가 깃발을 내리기라도 했나 해서 뒤를 돌아봤다.
기수들은 꼿꼿이 검은 용이 그려진 까만 기를 들고 있었다.
문양을 모를 리는 없고.
‘알고서 세웠군.’
사사로운 시비쯤이야 이미 각오했다.
유치하더라도 별수 있나. 이렇게라도 날을 세우고 싶은 거겠지.
이자벨은 사달이 나기 전에 앞으로 말을 몰고 나왔다.
“이자벨 린테어 솔리드녹스다. 교환 학생을 끝마치고 오는 길이다.”
“이자벨, 님이요?”
“진짜 이자벨 님이야?”
“야, 근데…….”
그들은 분명 이자벨을 바로 알아봤다. 그런데 선뜻 창을 걷지 못하곤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잠시 후 선임으로 보이는 경비병이 창을 거두고 나왔다.
“송구합니다, 이자벨 님. 잠시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
“협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게……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 우선 여기서 대기해주십시오.”
경비의 눈알이 난감해하면서도 어찌할 줄 몰라서 마구 굴러다녔다.
영문을 모르는 유리는 이 상황이 마냥 불편했다.
나이트워커를 이런 취급하는 것도 그렇고, 같은 솔리드녹스인 이자벨을 이리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반기지 않는 눈치야. 오히려…… 못 볼 걸 본 얼굴들이군.’
나이트워커를 저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이해했다.
그러나 이자벨을 바라보는 아니꼬운 시선은 사뭇 적대적이기까지 했으니.
선임 경비는 한 발 더 나서서 유리와 일행에게 소리쳤다.
“나머지는 숲으로 돌아가라! 무장한 자들은 근처에 머물러선 안 된다!”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잠깐만, 블레이크.”
블레이크가 언성을 높이려는 찰나, 유리가 말을 자르고 나왔다.
고개를 저어서 그에게 더 이상 나서선 곤란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괜한 분쟁은 좋지 못하다. 저들에게 저들만의 사정이 있다고 짐작하고 일단 물러서는 편이 맞았다.
유리는 그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경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무슨 연유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나를 막은 것을 후회할 거다.”
“뭣……?”
“돌아가지.”
유리를 알 리가 없는 솔리드녹스의 경비들은 웬 꼬맹이의 엄포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고작 나지막이 던진 한마디엔 살기가 진득하니 묻어서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이 상황이 제일 당황스러웠을 이자벨은 쭈뼛대면서 유리에게 바싹 붙어 속삭였다.
“결례를 범해 미안하군. 내가 대신 사과하마.”
“저희는 괜찮습니다. 수모쯤이야 각오하고 왔어요. 그보다 이자벨 님은 어떻게 하실 거죠?”
“일단 여기서 기다렸다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숲으로 돌아가겠다.”
“알겠습니다.”
그 길로 이자벨만 남긴 채 기사단이 등을 보였다.
잠깐의 실랑이가 지나자 티르빙이 말을 걸어왔다.
[꼬맹이, 내가 솔직히 말해도 될까. 나름 수많은 죽음을 본 마검으로서 보이는 게 있어서 말이야.]‘저들한테도 죽음이 보여?’
[비슷하지만, 땡!]‘장난하지 말고. 뭔데, 그래?’
[나도 장난 아니야. 저 인간들의 표정을 오랜만에 봐서 그래.]티르빙은 애매한 대답을 하며 흥얼거렸다. 어쩐지 많이 즐거워 보였다.
[예전에 우리 꼬맹이 주인님을 죽이려던 암살자, 기억하니?]“……어?”
유리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암살자가 침입했을 때 유리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평범하면서 흔한 얼굴이라 특징이랄 게 없었던 남자로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암살이 실패하면서 암살자가 지었던 표정은 선명했다.
도화지 위에 번졌던 당혹감과 이어지는 공포.
티르빙은 유리가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걸 보면서 답을 토했다.
[맞아.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는 걸 봤을 때 짓는 표정이야.]* * *
호위대는 수목한계선으로 돌아와서 야영을 준비했다.
필요한 물건을 전혀 구비하지 않았던지라 급한 대로 사냥을 해서 먹을 걸 구하고 나무를 패서 임시 막사를 지었다.
경험이 풍부한 블레이크 덕에 얼마 안 돼서 그럴싸한 야영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안 오는군.”
밤이 늦어서도 이자벨은 돌아오지 않았다.
별일 있겠느냐만.
불안한 마음에 유리는 혼자서 기사단 무리를 빠져 나와 요새가 보이는 곳까지 나왔다.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같이 있어야 했나.
아니, 같이 있었다고 해서 이 상황이 더 나아졌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도리어 분란이 일어나고 점점 커지다가 피를 보았으리라.
‘찾으러 가야겠어.’
탁 트인 황무지에 들어서기 전 그는 어떻게 요새로 갈지 고민했다.
“대놓고 가봤자 나이트워커 사람이 들어가겠다고 하면 절대 안 들여 보내줄 거고. ……잠입밖에 없나.”
“이자벨인가 하는 여자를 찾으러 가는 건가.”
갑자기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카이가 있었다.
이번 호위 임무에 동행한 블레이크는 카이가 평기사여도 경험 부족으로 안 된다 했었다.
그러나 유리가 굳이 콕 집어서 데리고 왔다.
“아무래도 수상해서.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직감에 의존해서 판단하다니. 애들만도 못한 수준이군.”
“본 게 있어서 그래. 그러고 보니 너도 보지 않았었나?”
“…….”
카이도 대낮에 봤던 경비들의 표정을 잊지 못했다.
타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을 안 반겨주다 못해 집 밖에서 기다리라니.
카이는 턱을 쓸며 낮은 목소리를 뱉었다.
“이자벨 린테어 솔리드녹스가 불의 영혼을 가졌다고 들었다.”
“어, 맞아. 내가 그걸 치료해줬어.”
“네놈이 치료해줬다고?”
“응.”
“그래서 다들 썩은 낯짝을 지었던 거군. 죽을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어서.”
“그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반가워해야 되는 거 아냐?”
“처음부터 죽길 바랐다면 반가울 리 없지.”
유리가 혹시나 했던 상상을, 카이는 아무렇지 않게 언급했다.
맞는 말이다.
분명 솔리드녹스 가의 사람들은 이자벨이 죽어서 돌아올 줄 알았을 것이다.
살아서 오더라도 병폐해져서 올 줄 알았겠지.
그러니 다들 표정이 그랬고, 지금까지도 이자벨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여기서 다른 의문이 솟았다.
“문제는 왜 죽길 바라는 건지 모르겠어. 추측되는 게 있긴 하지만…….”
“그래서 확인하러 가겠다는 거냐?”
“가치는 있다고 봐.”
무언가를 고민하던 카이는 물끄러미 요새를 노려봤다.
밝은 빛이 나오는 요새가 새까만 눈동자에서 반짝거린다.
생각을 마친 그는 잔인하면서 주인공다운 질문을 했다.
“우리의 미래에 가치가 있는 자인가?”
그의 질문에 유리의 동공이 커졌다.
원작의 카이였다면 그냥 버리라고 했을 것이다.
이자벨에게 무슨 일이 있든 간에 극복하지 못했다면 나약한 존재로 멸망을 막는 데 도움이 안 된다면서.
하지만 굳이 질문을 해줬고, 이건 곧 좋은 징조였다.
유리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답했다.
“그녀는 살 가치가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