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천장이 뻥 뚫린 감옥 위로 불기둥이 매섭게 회전하며 주변의 것들을 위협했다.
갑작스런 대형 마법에 놀란 요새의 수비병들은 제각기 바삐 움직였다.
요새에 대기하던 마법사들은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 물 계열 마법을 썼고, 마법을 쓸 줄 모르는 병사들은 양동이에 물을 길어서 불붙은 건물에 뿌렸다.
혼란을 틈타 유리는 지상으로 올라와서 하늘 높이 솟구친 불기둥을 구경했다.
구석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낸지라 그를 발견한 이는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카이를 구했을 때처럼 헬파이어를 썼다만, 그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마나코어와 드래곤하트, 티르빙까지 전부 개방했다는 점 정도?
일전에 락타샤와 싸운 뒤로 꾸준히 세 가지 힘을 동시에 쓰는 걸 훈련한 결과 고위 마법 하나쯤은 써도 무난했다.
하지만 엄연히 8서클 마법이라 여전히 위력이나 유지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마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불을 키우는 방법을 택했다.
바로 산소였다.
유리는 티르빙을 이용해 바람 마법을 부려서 불기둥 가운데에 회오리를 만들어서 공기를 넣었다.
그 덕에 불꽃이 회전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하면서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과학이란 거 은근히 좋네. 6서클이 만든 헬파이어를 진짜 8서클까지 키우다니.]“현생에서 이런 건 상식이었어.”
[흐응, 그래?]몇 번 이런 걸 봐왔던 티르빙은 신기해하면서도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반면 두 번째로 보는 데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뒤따라 올라오던 이자벨은 하늘까지 치솟을 검은 불기둥에 기겁했다.
“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리가 아무리 천재에 마검의 주인이라지만 이 정도 마법은 절대 불가능했다. 아니, 가능하다 쳐도 멀쩡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유리는 여유로웠고 자신이 만든 마법을 감흥 없이 올려다봤다.
“이자벨 님.”
“아, 으응!”
“지금부터 전 얼굴을 가리고 싸울 겁니다.”
그리 말하며 그가 이자벨을 향해 고개를 내렸다.
유리는 미리 챙겼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로브를 뒤집어썼다.
영문을 모르는 이자벨이 기겁하며 외쳤다.
“싸, 싸우다니! 안 된다! 나 때문에 이런 짓을 해서 어쩌려고!”
“어쩌긴요. 빚을 잔뜩 지셔서 평생 갚도록 해야죠. 그렇게라도 살 이유를 만들어드리면 괜찮을까 싶어서요.”
“그, 아……. 뭔지 몰라도 아, 아무튼 안 되는 건 안 된다! 곧 야누 님이……!”
쏴아아아아!
그때 마른하늘에서 스콜 버금가는 빗방울이 삽시간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빗줄기가 내리면서 불기둥이 식어 들어갔고 거세던 바람마저 빗줄기에 흔들렸다.
비가 내리는 제일 꼭대기에는 와이번 무리가 날개를 펄럭거렸다.
멀리 있었지만, 유리는 단번에 그 기운을 알아챘다.
“이미 늦었습니다.”
기아아아아악!
와이번이 힘차게 울더니 그대로 유리를 향해 수직 낙하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떠 있던 놈들 전부가 똑같이 움직인다.
유리는 골목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일단 숨어 계세요. 제가 부르기 전까지 절대 나오시면 안 됩니다.”
“잠깐―!”
이자벨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유리는 넓은 장소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이자벨은 당장 뒷덜미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 그가 야누랑 싸워서 얻는 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이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잡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잡기 싫었다.
‘나 자신은 이렇게까지 살고 싶은 건가…….’
한심했다.
한 번 목숨을 포기했다가 한 번 구원받았다는 이유로, 남한테 폐를 끼치는 이 와중에도 살고 싶은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결국 이자벨은 유리가 시킨 대로 몸을 숨기러 이동했다.
그녀가 사라지는 걸 본 유리는 티르빙을 레이피어처럼 얇게 변형시켰다.
그리고 다리에 마나를 집중시키고 발도 자세를 취했다가 하늘로 도약했다.
“흡!”
첫 공격은 가장 가까이 있던 와이번의 머리를 짓밟고 목을 꿰뚫었다.
이어서 다른 놈이 착지하기 전에 옆에 있던 와이번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목을 잘랐다.
서걱!
사람보다 굵은 모가지가 단칼에 절단 나서 추락했다.
다음으로 옆에 있던 놈은 날개 막에 칼을 박아 매달렸다가 날개가 위로 향할 때 관성으로 허공에 떴다가 양 날개를 잘랐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한 세 번째 와이번은 떨어지는 와중에도 유리를 물려고 아가리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입을 벌리자마자 세로로 머리통이 갈렸다.
끼아아악!
파바바박! 쾅쾅쾅쾅!
괴성을 지르던 나머지 와이번이 일제히 유리를 향해 주둥이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바닥에 처박히면서 먼지가 피어오르고, 이미 그 자리에서 유리는 다시 한 번 도약해서 빠져나갔다.
졸지에 와이번들끼리 머리를 박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유리는 피식 웃었다.
‘나름 머리 좋은 마수라고 했던 거 같은데. 조직력도 좋고.’
[네가 빠른 건 생각 안 하니?]‘아, 그런가?’
티르빙과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유리에게 상황 자체는 여유로웠다.
그러나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쏴라!”
어느 틈엔가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을 날던 마법사들이 유리를 포위하고 지팡이로 그를 겨눴다.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정없이 마법이 난사되었다.
불덩어리, 얼음덩어리, 바람덩어리, 가릴 것 없이 덩어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모조리 목표의 머리 위로 쏟아졌고 자리에 있던 모든 걸 파괴했다.
콰콰쾅!
몸을 숨기러 도망치던 이자벨은 그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유리!”
뒤늦게 외쳐봤으나, 온갖 마법이 한 데 뒤섞이면서 생긴 폭발은 작은 목소리 하나쯤은 우습게 묻어버렸다.
마법은 한참 동안 그가 있던 자리를 두들겼다.
“그만! 포격 중지!”
야누의 명령에 그제야 마법이 그쳤다.
아래에선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고 가운데서 불꽃의 연기와 얼음이 녹아서 생긴 수증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잠시 후 마법을 쏜 마법사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야누는 미간을 구긴 채 제 앞까지 온 연기를 손짓으로 거뒀다.
“웬 놈이 번거롭게 하는군.”
헬파이어까지 써서 위험한 줄 알았거늘. 막상 가까이서 보니 조잡한 술수로 크기만 부풀려져 있었다.
문제는 헬파이어를 피운 놈의 정체다.
‘이자벨은 아니다. 헬파이어를 쓸 수준도 못 되고, 쓴다 해도 몸에 무리가 가서 소용없어. 어디서 마법을 헛으로 배운 놈인가 본데. 나이트워커 쪽인가? 검을 잘 쓰는 꼬라지가 놈들이랑 비슷……. 아니야. 나이트워커가 이런 소동을 피워서 어쩌겠다고.’
나이트워커 입장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켜서 얻을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분쟁만 만들 뿐.
하물며 그들에겐 적진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어쨌든 헬파이어를 일으킨 의문의 침입자는 야누를 비롯한 고위 마법사들이 쏜 마법을 하나도 아닌 여러 개를 맞았으니 필시 죽었으리라.
그리고 어차피 제일 중요한 건 이자벨, 그녀다.
마침 요새의 수비대장이 야누를 알아보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3장로 님!”
“뭐하다가 이제 오는 거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수비 병력은 뭘 했고!” “소, 송구합니다.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쯧, 이자벨은?”
“그게 지금 감옥으로 가는 길이 무너져서…… 이, 일단 수색대를 보내 빠져나갈 길을 전부 포위했습니다!”
“이런, 이런,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예?”
“이 소동이 왜 벌어졌을 거 같으냐! 분명 그년이 누군가를 사주하거나 직접 벌인 거겠지! 그럼 이미 빠져나가고도 남았을 거 아니냐!”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한심하기는.
야누는 병사들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째려보다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선 이자벨을 소동의 주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녀가 돌아온 타이밍에 일어난 사고이니 분명 우연은 아닐 터.
어지간하면 가문의 법도로 처리하는 편이 옳겠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극단적인 수가 요원했다.
“수비대장, 즉시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수목한계선까지 포위망을 확장 시켜. 나머지는 수색조를 꾸려서 그년을 추적해라. 이곳은 나와 마법사들이 지키지.”
“하지만 숲에는 나이트워커 놈들이 있습니다.”
“놈들이 솔리드녹스 영지에서 뭘 어떡하겠다고. 협조 요청하고, 안 되면 무력으로라도 쫓아내!”
“아, 알겠습니다!”
불호령이 더 떨어질까 수비대장은 바로 명령을 이행하러 병사들을 끌고 사라졌다.
잠시 후 마법사들이 붙은 불을 전부 끄고 병력들은 전부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야누는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있는 구덩이로 내려갔다. 몸에는 열기를 막을 쉴드를 쳤다.
그런데 안쪽으로 향할수록 점점 이상했다.
마치 선을 그은 듯 바닥에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혹시……?’
아차 싶은 찰나.
휘릭!
열기와 수증기를 뚫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캉!
쉴드와 부딪혀 막힌 단검은 아찔한 충돌음을 일으키다가 핏물로 변해서 야누의 얼굴에 튀었다.
그 틈에 야누는 뒷걸음질 치며 반사적으로 파이어볼을 날렸다.
급한 나머지 위력이 약했던 파이어볼은 습격자의 손짓만으로도 흩어져 사라졌다.
잠시 후 연기를 뚫고 복면을 쓴 유리가 나타났다.
“놀랍군. 마법사치곤 꽤나 기민한 몸놀림이었어.”
“네놈…… 정체가 뭐냐!”
“알아서 뭐하게. 곧 죽을 텐데.”
“누군지 몰라도 날 죽이러 왔나 보군. 그렇다면 아쉽게 됐어. 네놈은 방금 날 암살할 기회를 놓쳤다. 성공했어도 목격자가 이리 많아서 도망쳐봤자지!”
“뭐, 암살하러 온 건 맞아. 근데 혹시 그 말 아는지 모르겠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유리는 귀를 후벼 파다가 희미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는 일부러 공격을 맞아주고 이자벨을 추적하도록 유도했다.
야누의 목적이 이자벨인 이상 그녀의 행방이 묘연해진다면 어떤 식으로든 찾으려 할 테니, 이자벨을 숨겨두고 소동을 일으켜서 빠져나갔다는 형국을 취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요새의 병력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아쉽게 야누가 직접 데려온 병력까진 빠져나가지 않아서 암살보다 난투가 되겠지만.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다, 라는 말이 있지.”
“뭐?”
“네놈들 다 죽는다는 뜻이다.”
그리 말한 유리는 티르빙을 곧게 세웠다.
유리를 살피던 야누는 단번에 그의 손에 들린 티르빙을 알아보았고, 그제야 아까 원을 그리던 붉은 흔적도 알아챘다.
“하핫! 네놈, 티르빙의 주인이었군! 어쩐지. 솔리드녹스의 마법 포격을 받고도 어떻게 살아있나 했는데 어리석은 마검이 널 보호했던 거였어!”
“티르빙, 어리석다는데?”
“마검이 전하길, 지옥을 보여주겠대.”
“크크크! 한낱 악마의 무기 따위가 감히 누구를! 하물며 너 같은 놈에게 당할 거라 생각하다니!”
“나 같은 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마법을 허투루 배운 엉성한 사기꾼 새끼지!”
야누가 손을 높게 들자 순간 구덩이 밖에 있던 마법사들이 날아오르고 기사들이 포위했다.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특히 마법사들.
밖으로 흘러나오는 마나만 하더라도 어마무시했다.
예전 같았으면 상대하기도 어려웠으나, 지금의 유리는 달랐다.
“빨리 끝내게 배려해주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어때?”
“…….”
“…….”
대답이 없네, 쩝.
나름 폼 좀 잡아봤는데, 안 되는 모양이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유리는 티르빙을 들지 않은 다른 손에 짧은 검을 뽑았다. 예전에 게슐츠가 줬던 검과 똑같이 생긴 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게슐츠의 검이 아닌, 게슐츠의 검을 흉내 낸 티르빙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