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43
제43화
티르빙을 쌍검으로 다루게 된 건 락타샤 때처럼 부서질 경우를 대비해서 고안한 방법이었다.
언뜻 보기엔 메리트가 없는 검술 같아서 지식의 관에서 가르침을 주던 상급 기사도 되도록 쓰지 말라 했었다.
애초에 티르빙을 두 개로 나누는 거라 들어가는 혈액이 두 배로 많아지면서 무리가 갔다.
물론 빈혈 증상쯤이야 이젠 아무렇지 않았다만.
야누도 티르빙을 두 자루로 만드는 능숙함에 놀라다가 곧 비웃음으로 응했다.
“크크크크, 대단한 묘기이다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아무리 무기가 많아도 다루는 사람은 네놈 하나이거늘!”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당하고 나면 생각이 바뀔 거야.”
“하하하하하! 마검 하나 더 들었다고 나를 이길 거라 보는 거냐? 웃기는군. 감히 용인 가문에 칼을 들이밀고도 멀쩡히 살 수 있는 줄 아느냐?”
잔뜩 으름장을 놓던 야누는 갑자기 인자한 목소리로 바꾸어 말했다.
“그래도 자비를 베풀어 편히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허니 대답해라! 네놈이 이자벨을 빼돌렸나?”
“글쎄. 빼돌렸다는 건 물건이라는 건데 난 물건을 숨긴 기억은 없어서.”
“네놈이 맞나 보군! 어째서냐? 이자벨이 사주라도 했느냐? 아니면 그 년한테 홀리기라도 한 건가? 하기야…… 반반한 얼굴이 쓸 만하긴 했지. 그냥 죽이긴 아까웠어.”
“…….”
어지간해선 침착함을 잃지 않고 화도 안 내겠다 다짐했다. 지식의 관에서 그렇게 수도 없이 그리 훈련하면서 감정 통제쯤은 우습다 여겼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차마 듣고만 있기 역겨웠다.
유리는 온몸에 힘을 빼기 위해 마음에 힘을 줬다.
“티르빙, 지옥 보여준다는 거. 약속 지켜야 한다. 더한 게 있으면 좋고.”
[그런 건 언니한테 맡기고, 넌 저놈을 내 앞으로 데려오기나 해.]“좋아.”
후웅!
유리는 가장 가까이 있던 붉은 복장을 한 솔리드녹스 기사에게 접근했다.
“헛?!”
생각지도 못한 몸놀림에 기사는 본능적으로 대응할 시간조차 없이 뒤로 주춤거렸다.
뒤늦게 몸을 움직여 반응해봤지만, 어깨에 칼자국을 허락한 뒤였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야누가 버럭 소리쳤다.
“쳐라! 죽여선 안 된다! 이자벨의 행방을 찾아야 하니 반드시 생포해라!”
“옙!”
“옙!”
단결된 대답이 터지며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하고 기사들이 검을 들며 달려들었다.
콰콰쾅!
폭발이 일어나면 그곳엔 이미 유리가 사라진 뒤였다.
검이 내려치면 방어하기는커녕 흘려서 얕은 상처를 내곤 자리를 이탈했다.
‘무조건 체력과 속도전이다!’
유리는 처음부터 힘으로 밀어붙일 마음이 없었다.
마법사를 상대로, 그것도 야누를 상대로 마나나 완력으로 공격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야누의 마법 실력은 알려지기로 8서클, 혹은 그 이상이라 한다.
익히고 있는 마법도 대부분은 전투에 특화되어 있으며, 솔리드녹스의 불꽃 중에서 두 번째로 뜨거운 청염의 마법사였다.
그러나 마법사의 고질적인 단점마저 극복하진 못했다.
“이익! 쥐새끼 같으니!”
야누는 청염의 불꽃을 마구잡이로 유리에게 뿌렸다.
전투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정교하게 마법을 시전해서 어떻게든 맞추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통에 빗나가기 일쑤.
결국 야누는 아무거나 맞으라는 식으로 마법을 뿌려야만 했으나, 이마저도 아군이 맞을까 신중해야 했다.
물론 유리도 모든 공격을 피하고 방어하기 바쁘긴 마찬가지.
그러나 어째선지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점점 유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끄악!”
“으억!”
티르빙이 지나가는 곳마다 곡소리가 울린다.
유리는 커다란 티르빙으로 방어하고 짧은 티르빙으로 얕은 상처만 내고는 빠지길 반복했다.
치명상보단 얕고, 생채기보단 깊게.
‘역시 기사들 수준은 평범하네.’
솔리드녹스의 기사들도 한 수준 한다지만 나이트워커에 비할 정도까진 못 되었다.
단순히 검술 실력만이 아니라 체력을 요구하는 지속력에선 한참 더 뒤처졌다.
그렇기에 더욱 압도적으로 기사들을 죽이는 편이 낫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마법이 계속 날아오는 바람에 큰 동작으로 힘을 가할 타이밍조차 부족했다.
아니, 그 타이밍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리는 지금의 상황을 계속 유지했고 흘러가는 시간에 지쳐가는 쪽은 솔리드녹스였다.
마법사들은 점점 마나가 고갈되었으며, 기사들은 유리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자잘한 상처만 얻었다.
반면 유리는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호흡마저 골랐다.
[이래서 드래곤 하트가 좋아~. 괜히 이 까다로운 언니를 홀린 게 아니라니까?]‘변태 같이 말하지 말라니까!’
드래곤 하트는 단순히 질 좋은 마나를 생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래 심장 자체로서의 기능 또한 말도 안 되게 좋았다.
소위 두 개의 심장이 이런 느낌이랄까.
무리하게 힘만 쓰지 않는다면 지속력에서 유리를 이길 자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금까지와 다른 비명과 함께 마법이 폭발했다.
쾅!
“으아아아아악!!!”
날아들던 불덩어리가 기어코 아군 기사를 공격한 것이다.
“사, 살려줘! 이것 좀 꺼줘!!!”
불이 붙은 기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검을 내팽개치곤 갑옷부터 벗기 시작했다.
당황한 손길이 허겁지겁 갑옷까진 벗었으나 가슴판부터 헤맸다.
“제발, 제발! 도와줘!”
“잠깐만 진정해! 가만히 있어야 돕지!”
근처에 있던 동료 기사와 마법사가 얼른 달라붙어서 물 계열 마법으로 불을 끄면서 동시에 갑옷과 옷을 잘라내어 벗겼다.
치명상을 면했으나 화상이 주는 고통은 불이 꺼지고 난 뒤로도 패닉을 남겼다.
“으아아! 제발,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안 죽어, 새꺄! 정신 차려!”
고작 한 명의 부상에 어지럽던 전장이 잠깐이나마 멈췄다.
이상했다.
상대는 고작 한 명.
아무리 마검의 주인이라지만 몇 시간 동안 그에게 칼끝과 마법은 스치지도 못했다.
오히려 마검의 주인은 수많은 적을 상대로 상처를 입히고 도망 다니며 유린했다.
그런 현실을 직시한 솔리드녹스 병력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잠식한다.
‘처음부터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
장기전이 지속 되면서 상처는 계속 늘어갔고 결국 사상자가 나왔다.
하필 그 동료는 아군의 오사격으로 인해서 죽어갔으니.
이제는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마검의 주인이기 때문에 전황이 불리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직감했다.
‘우리는 저 자를 이길 수 없어.’
작은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현실 직시와 판단은 곧 공포로 변했다.
그래, 상대는 마검의 주인이다.
마검을 그냥 소지한 사람도 아니고, 그것을 소유자의 의지대로 움직여서 힘을 발휘하는 자.
야누 또한 판단 자체는 똑같았다.
그저 판단에 따라 그는 행동했을 뿐.
“마검에 의지하는 쥐새끼가 감히 나를 우롱해?! 뭐해! 얼른 놈을 죽여!”
“…….”
“…….”
열이 잔뜩 오른 야누는 생포 명령을 잊고 사살을 명했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선뜻 먼저 나서는 자가 없었다.
마법사들은 또 다시 아군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예감에.
반대로 기사들은 농락당하다가 아군 마법에 당하거나 마검에 죽을 거란 예감에 망설였다.
“이 새끼들이 항명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좋아, 명령에 불복종했으니 네놈들도 죽여주마!”
야누는 남은 마나를 모조리 털어 넣는다는 심정으로 주문을 외웠다.
예상대로였다.
설정에서 봤던 야누는 전형적인 마법사로 마나와 그 기질을 타고 났지만 성정이 고약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도 가리지 않을 테니까.
괜히 친인척을 버리는 인간이 아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마법보다 강렬한 마나에 티르빙이 경고했다.
[꼬맹이, 저건 막아야 돼! 뭔지 몰라도 안 그럼 요새가 통째로 날아갈 거야!]“안 말해도 알아.”
유리는 재빨리 야누에게 몸을 날렸다.
이번엔 쌍검이 아닌 대검 하나로 바꾸어 야누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대형 마법을 시전할 땐 그만큼 시전 시간이 필요해서 야누는 무방비했다.
하지만 머리에 닿기 전 검이 허공에서 쉴드와 부딪혔다.
“이중 영창?!”
말 그대로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쓰는 기술로, 고위 마법사들 중 일부가 다룬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이중 영창의 단점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쓰는 만큼 부려야 하는 마법진이 늘어나며, 그 마법진의 총합은 시전자의 서클 이상으로 쓸 순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9서클 마법사라 하면, 3서클 쉴드를 쓰면서 7서클 이상의 다른 마법을 쓸 수 없다.
그런데 야누는 4서클 쉴드를 쓰면서 손에는 8서클 마나를 모았다.
12서클 마법사나 가능한 짓을 하고 있는 셈!
[이런 건 설정에 없었잖아? 11서클이면 솔리드녹스 가주보다 세다고!]“나라고 어찌 알겠어.”
유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11서클이라니!
벤헬링턴이나 진짜 드래곤쯤 되는 수치에 놀랍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허나 위력과 별개로 이중 영창을 다룬다는 건 설정집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애초에 야누는 이중 영창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야누는 회심의 미소를 짓다가 인상을 구겼다.
‘웃고 있어?’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리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불길한 마음에도 야누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용히 유리가 말하는 대사를 듣는 것뿐.
“티르빙, 먹어.”
일순간 세상이 느려지면서 야누의 눈앞에 붉은 핏방울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걸까.
완벽하게 온몸을 두른 쉴드라서 밖에선 아무것도 침입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처음부터 쉴드 안에 피가 있었다는 뜻.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야누는 금방 피의 출처를 알아챘다.
‘아까 연기 속에서! 그 단검!’
구덩이 아래로 내려가 시신을 확인하러 갔을 때, 유리가 기습적으로 티르빙을 던졌었다.
야누도 간신히 방어를 해냈으나 급하게 쉴드를 만드는 바람에 티르빙이 부서지면서 얼굴에 튄 핏방울까진 막지 못했다.
분명 그때 묻었던 피였다.
“이……런!”
피의 출처를 알아냈지만 이미 늦었다.
작은 핏방울은 면적을 넓히다가 안에서부터 쉴드를 부쉈고, 곧 거대한 늑대의 머리 형상으로 변했다.
몸뚱어리 없이 머리만 있는 거대한 늑대 머리 형상.
와이번보다도 큰 늑대 형상은 야누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벌어진 아가리 안에서 핏물이 투두둑 떨어진다.
“마검 따위가……!”
야누는 제대로 마나가 모이지 않은 손바닥을 전방으로 뻗었다.
원래 위력보단 못해도 술식이 완성되어서 시동은 가능했으며, 가까이 있는 유리를 죽이기엔 충분했다.
“하늘의 군주여, 세상을 멸하고 존재를 부정하라! 프로미넌스!”
야누의 입에서 솔리드녹스의 직계 혈통만 익히고 쓸 수 있다는 최고 상위 마법이 발동되고.
손바닥 안에서 그야말로 새빨간 불길이 터짐과 동시에 늑대가 위에서 아래로 야누를 덮쳐 집어삼켰다.
폭발이 일어나면서 늑대가 터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늑대가 입을 다물자마자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이상한 감에 유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티르빙?”
[잠깐만. 윽, 이거…….]뭔가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말투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그랬다면 주인인 유리가 가장 먼저 느꼈으리라.
마치 티르빙의 말투는 괴로우면서…….
못 먹을 걸 먹었을 때 나오는 발음?
푸확!
임계점을 버티지 못한 늑대는 형상을 잃고 핏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핏물은 바닥으로 찬찬히 퍼져나가다 유리의 발끝에 닿자 증발하여 사라졌다.
늑대가 있던 자리엔 눈깔이 뒤집힌 채 야누가 엎어져 있었다.
유리는 허리를 숙이며 그를 살폈다.
“기절한 거 말고는 멀쩡한 거 같은데……. 지옥을 보여주겠다더니 이게 끝이야?”
유리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티르빙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대꾸했다.
[맛이 지읏 같아서 못 먹겠어.]지옥인지 ‘ㅈ’인지 알 수 없는 발음은 그녀의 심정을 넘치도록 대변해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