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빅스터가 다녀간 이후 유리는 기사단을 정비하고 바로 복귀를 준비했다. 혹여 추격대가 따라붙을까 걱정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숲을 빠져나가고 마나 열차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유리는 조금씩 긴장감을 풀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열차에 올라가는 병사들을 한 명씩 점검하면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했다.
그렇게 열차에 거의 올랐을 즈음, 카이가 곁에 다가왔다.
“전에 봤을 때보다 대단해졌더군.”
“뜬금없이 뭔 소리야?”
“빅스터 말이다.”
“본 적 있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카이는 용인 가문을 예의 주시해왔다. 그들을 아군으로 삼기 위해, 안 된다면 적이 되지 않기 위해.
유리도 그런 과거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카이는 옛 기억을 회상하며 입으로 끄집어냈다.
“빅스터가 자기 눈을 뽑았을 때 직접 보러 간 적 있었다. 신분이 신분이어서 가까이서 못 봤지만, 엄청난 마나를 뿜어대더군. 그게 벌써 40년도 더 됐다.”
“40년? 빅스터 나이가 그렇게 많아?”
“모르는 건가. 그 놈은 현존하는 용인 중에서 가장 드래곤에 가깝다. 수명도 용인의 범주를 뛰어넘었지.”
용인이 드래곤의 혈통이라고 해서 특별히 수명이 길진 않았다. 인간보다 조금 길게 살긴 해도 필멸의 운명 안에서만 살았다.
이를 벗어나서 드래곤에 가까운 존재라…….
‘하긴. 할아버지도 100세를 훌쩍 넘으셨으니까.’
벤헬링턴도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용인 중 드래곤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손꼽혔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빅스터의 나이는 더욱 감이 안 잡혔다.
처음 봤을 땐 언뜻 10대 후반 같았다. 유리 본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정도?
‘40년이니까 그 정도 실력이겠지만, 앞으로 살 날이 더 많다고 가정하면…… 끔찍하군.’
그런 생각을 하고 동안 카이가 재차 물었다.
“네가 본 미래에 솔리드녹스도 있던가?”
“그건 왜?”
“악마들을 상대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아서.”
역시 카이라면 솔리드녹스에 끌릴 줄 알았다.
솔리드녹스는 잔인하기 그지없으며 목적을 위해선 맹목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가문이다. 가족을 인질로 삼기도 하는 악마들을 상대로 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원작에선 카이가 나이트워커가 아니라 솔리드녹스를 악마 대항에 동반자로 선택했었으나.
유리는 솔직히 답했다.
“필요하면 이용하겠지. 하지만 내 가 계획한 미래에는 없어.”
“어째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난 나이트워커 사람이야. 솔리드녹스에 도움을 청할 순 있어도 그들이 들어주겠어?”
“악마를 두고도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군.”
“별로 궁금하지 않아. 애초에 그럴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제일 좋고.”
유리가 가주가 된다면 어떻게든 솔리드녹스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게 해보겠지만.
글쎄.
원작에선 솔리드녹스가 악마를 두고도 나이트워커와 적대 의식을 드러내다가 충돌이 일어나곤 했다.
실제로 나이트워커를 없애려고 앞장섰던 것도 솔리드녹스이지 않았던가.
그런 미래를 알 리가 없는 카이에겐 답답한 소리에 불과했다.
그가 물었다.
“만약 내가 네놈을 버리고 솔리드녹스와 손을 잡는다면?”
“적으로 삼아야지.”
유리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이 또한 너무나 당연하게 말해서 무게를 잡고 물었던 카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군. 미래에 대비하려면 나만큼 좋은 패도 없을 텐데.”
“내가 미래를 대비하는 이유는 지키고 싶은 걸 지키기 위해서야. 그게 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유리는 블레이크와 기사단, 이자벨을 번갈아 봤다. 그 시선을 따라 카이의 눈동자도 움직인다.
유리는 거창한 목표 의식이 없었다.
그저 가까이 있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서 세상을 구하기로 마음먹었을 뿐.
그 시작은 어머니 샤를린느였고, 최근에는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새로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런 것들을 지키려고 네가 필요한 거지. 네가 방해된다면 기꺼이 적으로 삼겠어.”
“하…….”
카이는 기가 찬 숨을 토했다. 짜증난다거나 유리를 이해하지 못한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유리가 이해되다 못해 공감되었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 난 해내지 못했던 걸 하겠다는 건가.’
카이 또한 시작은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환생을 거듭하며 잃기만을 반복했고, 어느새 지킬 것들을 주변에 두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이 있었다.
맹목적으로 변했으며, 그 속엔 책임이나 의무감 따윈 없었다.
그렇게 변했건만, 유리는…….
“그 마음, 잃지 말도록.”
카이는 그리 말해놓고 달아나듯 열차에 올랐다.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뭐니, 쟤?]“…….”
의아해하는 티르빙과 달리 유리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열차에 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카이가 저렇게 독려해주는 모습은 그만한 의미가 있기에.
“후우.”
특등칸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었다. 긴장감이 풀린 유리는 의자에 기대어 늘어졌다.
이제 좀 쉬려고 하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라고 하자 이자벨이 머뭇거리며 문을 열었다.
“쉬고 싶을 텐데 미안하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저도 도착하기 전에 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었거든요.”
손짓으로 맞은편 자리를 권유하자 이자벨이 그 자리에 앉았다.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운 그녀였다. 긴장한 건 아니고, 망설임이 눈에 선히 보였다.
유리는 그녀가 입을 열기까지 기다렸고, 기차가 덜컹! 출발하고 나서야 깜짝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시간이 흘렀음을 깨달은 이자벨은 헛기침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다.
“일전에는 정말로 고마웠다. 말로는 다하기 힘들 정도로 큰 은혜를 또 입었어.”
“고마울 게 있나요. 이번엔 할아버지가 힘 써주신 거잖아요.”
“그래도…….”
벤헬링턴이 망명을 추진했을 줄은 유리도, 이자벨도 몰랐다.
때문에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벤헬링턴의 지대한 영향력이 끼쳤다.
허나 그녀는 유리도 똑같이 고마웠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난 오늘 죽었을 거다. 야누 님이 아니라, 내 스스로.”
“자결하려던 거, 진심이셨습니까?”
“진심이었지. 하지만 내가 자결이라는 수를 택한 건 네가 날 살려줬기 때문이다.”
“네?”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던 몸이다. 어찌 살았다고 해도 가문으로 살아 돌아가선 안 됐다.
그러나 유리가 절대영도라는 마법을 통해 저주를 풀어줬고, 이자벨은 그 덕에 자결이라는 결심을 각오할 수 있었다.
한 번 구원받은 목숨, 너를 구원하겠다는 마음으로.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유리. 네가 날 살려줬으니까.’
살려줬으니까 자결을 택했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유리는 모르는 눈치였으나, 이자벨은 개의치 않았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살겠다.”
“…….”
유리는 창가에 팔을 걸고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솔직히 가문을 떠나게 해버린 꼴이라 조금이라도 낙심할 거 같았다.
하지만 후련한 말투에서 유리는 안도했다.
물론, 가문을 떠났으면서 후련해하는 현실이 씁쓸했지만. 이자벨이 담담해서 굳이 유리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주한 얼굴이 웃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유리, 네가 하고 싶다던 말은…….”
“지금은 안 해도 되겠어요. 앞으로도요.”
“그런……가?”
“네.”
뭐라 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이자벨은 작게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이트워커 식 경례였다.
“그럼 편히 쉬어라.”
그렇게 이자벨은 특등칸을 나와서 잠시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이걸로 내 뜻이 전달되었을까.’
안 됐어도 앞으로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이제부턴 나이트워커 사람이니까.
이자벨은 조금도 솔리드녹스에 미련이 안 남았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멀쩡히 살아 있지만, 그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없었다.
불의 영혼을 계승했다고 해서 형제끼리 시기 질투만 당했고, 부모나 어른들은 그녀를 더욱 혹독하게 사지로 몰아넣었다.
당연히 반항하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대대로 불의 영혼 계승자들 중 누구도 가문에 거스르지 못했다.
그러지 못하게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버티고 견뎌라. 싸워라. 그렇게 이기면 된다. 그게 용인이다!
주변에서 다른 형제들이 다 그렇게 사는데 혼자서 투쟁으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러다 교환학생을 통해 유리를 만났다.
그가 그녀에게 해준 것은 아주 작은 등 떠밀림이었다.
사실 떨어지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평생을 망설이며 못했다.
그리고 떨어진 오늘.
절벽 아래만 바라보던 이자벨은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은 어두운 절벽 아래보다 훨씬 밝고 넓었다.
* * *
유리의 첫 공식 임무가 완료되고.
이자벨은 망명 절차에 따라 영지민 등록을 마쳤다.
귀족 신분이 아닌 평민이 되었지만, 그녀는 도리어 행복해 보였다.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겠다면서 자유의 관 입단을 신청했고, 이는 곧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솔리드녹스 가의 직계 혈통이, 그것도 불의 영혼 계승자가 나이트워커에 충성하는 기사가 되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이 과정에서 벤헬링턴의 외교적 수완이 상당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덤으로 여기에 일등공신이 유리라는 사실이 퍼졌다.
졸지에 적대 가문의 평판을 올려주고 인재까지 빼앗긴 솔리드녹스.
하지만 이들의 평판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거 들었나? 빅스터가 야누를 죽였다더군!”
“야누? 솔리드녹스의 장로 말인가? 아니, 마탑에 처박혀서 책만 읽는 장님이 무슨 수로?”
“듣기로는 용언 마법을 썼다더군!”
“허어! 인재를 빼앗긴 게 아니라 더 대단한 인물이 있었던 거구먼!”
빅스터가 제 3장로 야누를 죽였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사람들은 솔리드녹스 가(家)에 새로운 권력 구도가 생겼다고 떠들었다.
어쩌면 더 이상 용언 마법의 명맥이 이어지지 않는 나이트워커보다 솔리드녹스가 더 강하지 않냐는 소문까지 오갔다.
그리고 이런 소문은 자유의 관 관장인 다이올드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다.
“어이가 없군! 이딴 식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가문의 평판을 깎아 먹어?!”
쾅!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치자 그대로 반토막이 나면서 물건들이 전부 쏟아졌다.
올백으로 넘겼던 머리카락마저 흐트러지고, 다이올드는 습관적으로 머리를 넘기며 침착을 되찾았다.
“더는 못 봐주겠군.”
유리, 형편없는 인간의 피가 섞인 혼혈이자 가문에서 달아난 블레이크의 혼외 자식.
안 그래도 그놈이 제몬과 타나토를 차례로 두들겨 패고는 멀쩡하게 지내는 꼴이 짜증이 났건만!
그러나 오늘부로 끝이다.
지금까지는 벤헬링턴이 보살펴줘서 발 뻗고 잤겠지만, 자유의 관에 들어온 이상 오롯이 다이올드의 소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놈을 처리해야 좋을까. 어떻게?”
다이올드는 집무실을 좌우로 빠르게 오가다가 갑자기 툭 멈춰 섰다.
마침 괜찮은 임무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성공 확률이 극악인 데다가 성공하더라도 희생이 커서 미루고 미루던 임무였다.
“그래, 그걸 주면 딱이겠군!”
다이올드는 사악하게 웃고는 부서진 잔해에서 재빨리 임무 명령서를 집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