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샤를린느는 부드러운 미소로 제몬과 타나토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정작 타나토는 갑자기 끼어든 그녀 탓에 인상을 구겼고, 그 사람이 샤를린느라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꼈다.
“뭐야, 당신. 인간 주제에 방해하지 마!”
“방해했다면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무를 해쳐선 안 돼. 이제 막 살아난 생명이란다.”
“뭐라는 거야? 나한테 지금 훈계질 하는 거야? 감히?!”
타나토가 거칠게 손을 뿌리치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주변에 모였던 이들은 또 뭔 일 나겠다 싶어서 진작에 거리를 벌렸다.
아니나 다를까.
타나토의 검이 샤를린느를 겨눴다.
“넌 오늘 죽었어. 열등분자가 설치는 것도 별로였는데, 오늘 잘 됐네!”
후웅!
미처 누가 말릴 틈도 없었다. 타나토의 검이 빛을 내고 움직인다.
유리가 달려가기에도 거리가 애매했다.
위험한 상황, 그러나 샤를린느는 태연하게 날아드는 검을 그대로 지켜봤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캉!
“어?”
타나토의 검은 허공 어디선가 무언가에 부딪혀 멈췄다.
샤를린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 온화한 미소로 그들을 마주했다.
타나토는 멍청하게 두 눈을 끔뻑였다.
‘이거, 마법이야?’
형태만 봐선 쉴드를 만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샤를린느는 어떤 마법 주문도 외우지 않았으며, 마나가 나오는 낌새도 없었다.
보고, 미소짓고. 그게 전부였다.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경악하긴 마찬가지.
“이제 화가 풀렸니?”
“예?”
순간 타나토는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데 도리어 압도적인 기분이 들어서였다.
갑자기 아득해지는 감각.
그 속에서 타나토는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았다.
“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몰라도 두, 두 번은―!”
“적당히 하시죠.”
그 순간, 유리가 타나토의 뒤편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전혀 유리의 존재를 몰랐던 타나토는 순간 등골에 오한이 들었다.
‘헉! 어느 틈에?’
다가온 기척이나 발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심지어 옆에 있던 제몬도 유리가 입을 열기까지 전혀 몰랐었다.
유리는 단숨에 타나토의 검을 쥔 손목을 잡아채서 힘을 줬다.
으득!
“익!”손목이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역방향으로 틀어지더니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유리는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두 형제를 번갈아 봤다.
“그만하세요, 형님. 아무리 제가 적당히 봐드린다지만 어머니께 검을 들이대는 건 봐드릴 수 없습니다.”
“크윽! 너……!”
호기롭게 유리를 마주 봤으나, 타나토라고 해서 방도가 있진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대들었을 그였으나, 이제는 마주치기만 해도 피를 뒤집어썼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정작 유리는 별 대수롭지 못하게만 여겼다.
그저 이놈들이 하다못해 어머니에게도 별짓을 다 하는구나, 싶었다.
그때 지켜보던 제몬이 멋도 모르고 거들다가 검에 손을 댔다.
“열등분자 놈이 우리 형한테 뭐하는 짓― 억!”
따악!
검이 뽑히기도 전에 청량한 타격음이 울렸다. 제몬은 이마를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유리가 타나토의 손목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티르빙으로 얇은 막대기를 만들어서 이마를 때린 것이다.
“우으으으으!”
제몬도 뒤늦게 어렸을 적 당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딱밤만으로도 살의를 맛봐야 했던 그 시절.
이번 공격에 살의는 없고 딱밤도 아니었지만, 대신 진짜 ‘위력’에 따른 통증이 가미되어 있었다.
벌써 이마에 시퍼렇게 멍이 든 제몬은 머리를 싸매며 주춤거렸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샤를린느는 말릴 틈을 못 잡다가 뒤늦게 유리의 어깨를 잡았다.
“유리, 그만하렴. 엄만 괜찮아.”
“하지만…… 네.”
마지못해 타나토를 놔주면서 강하게 밀자, 그는 비틀거리면서 물러서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충분히 놀았으면 돌아가 주세요. 남의 정원에서 행패 부리지 말고. 그리고 허락 없이 이곳에 들어오지도 마세요.”
“아, 아니 난 그냥 신기한 나무가 자랐다고 해서, 궁금해서…….”
“형님.”
구차한 변명이 이어지려 하자 유리가 더 매섭게 노려봤다.
타나토가 서둘러 등을 돌렸다.
“아, 알았어! 미안해! 간다, 가!”
“저 놈 그냥 놔둘 거야?!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건데!”
“이 자식이, 눈치 없긴! 얼른 안 따라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제몬이 제대로 싸우겠다며 뻗댔다. 그런 제몬에게 타나토는 괜히 화를 내며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거 없는 형제였다.
유리는 안도와 한심함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며 나란히 선 샤를린느를 쳐다봤다.
“어머니, 방금 마법을 쓰신 거죠?”
“그렇단다.”
샤를린느는 딱히 감추는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롭게 수긍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어머니의 마법도 신기하거늘, 쉽게 인정해버려서 유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멍해진 표정에 샤를린느가 소리 내어서 웃었다.
“마법을 쓰는 게 신기했니?”
“……네.”
“예전에 너희 아버지께 배웠었어. 난 귀찮아했지만 의외로 재능이 있다며 계속 가르치려고 해서 결국 몇 개 배웠지.”
“하지만 지금 쓰신 마법은 몇 개 배운다고 될 게 아니었는데요.”
쉴드가 기초적인 마법이어도, 샤를린느는 솔리드녹스의 마법사들처럼 무영창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 서클 자체가 높아야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그런 마법을 쓰다니.
‘전혀 몰랐어.’
그러고 보면 유리는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적었다.
물론 같이 살아온 세월만큼 알기야 했지만, 모든 자식이 그렇듯, 자식은 부모의 과거를 모른다.
‘어머니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했다. 소중한 사람이라서 더 미치도록 궁금했다.
하지만 유리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저를 말리려 어깨를 짚었을 때부터 떨리는 손.
겉으로 여유로운 척해도 속으론 엄청난 부담이 있다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유리, 실은―”
“아뇨,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가 준비되셨을 때, 그때 말씀해주세요.”
“궁금하잖니. 딱히 엄마 입장에선 말 못 할 사연도 아니고.”
“그래도, 나중에 우리가 여유 있을 때 듣고 싶어요. 아주 나중에요.”
“그러……니?”
결국 궁금증을 참기로 했다. 어머니라면 분명 때가 되면 알려줄 거라 믿었다.
샤를린느도 더욱 활짝 웃으며 응답했고, 별빛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놀랍구나. 하루아침에 이렇게 자랄 줄은 전혀 몰랐어.”
“혹시 어머니가 돌보셨어요?”
“어제 네가 정원에서 서성이는 걸 보고 잠깐 봤단다.”
“그러셨군요. 근데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전 아무리 해도 자라지 않던데.”
“유리, 꺾꽂이할 때는 잘린 가지의 단면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했었던 거, 기억하니?”
“아…….”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삽목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위생이다. 잘린 줄기의 단면에 세균이살 수 있어서 이를 소독하거나 줄기를 더 잘라서 심어야 했다.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바닥에 꽂았으니 제대로 자랄 리가.
“그렇다 해도 이렇게 커지는 건…… 특별한 나무인가 보구나.”
“솔리드녹스의 어떤 마법사한테서 가져온 거예요.”
유리는 솔리드녹스에서 있었던 일들 중 일부와 별빛나무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여전히 식물에 관심이 많은 샤를린느는 기이한 나무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기둥을 손으로 쓸었다.
“별을 담은 나무라니. 그 뜻대로 정말 아름다워.”
“저 위에 있는 과일이 응축된 마나 같은 거예요. 저걸 먹으려고 심었어요.”
나무 아래서 위를 바라보면 동그란 과실이 햇빛을 등지고 보였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샤를린느도 유리가 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말했다.
“유리, 저거 따볼래?”
“네, 뭐.”
따보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 물어보려다가, 일단 시키는 대로 다리 끝에 마나를 모아 뛰어올랐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정상에 다다른 유리는 과일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안 잘린다.
“어? 뭐, 뭐야.”
마치 고무줄처럼 가지가 주욱 늘어나다가 일정 길이를 넘어가자 유리의 완력을 이기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한 번 과일을 쥐고 더 큰 마나를 넣어서 당겼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으윽! 이거 고무나무라도 되는 건가?”
[뭐하니. 지금껏 훈련한 거 다 어디 갔어?]“이게, 으! 맘처럼, 안, 돼!”
[안 되면 잘라보던지.]“후우, 잠깐만.”
힘을 주던 유리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팔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티르빙이 해준 조언을 따라 티르빙을 단검 형태로 뽑아 가지에 댔다.
스으윽!
날이 가지를 갉아대는 소리가 났으나, 역시나.
안 잘린다.
혹시 몰라 톱처럼 이를 만들어 봐도 과일과 가지는 요지부동.
“아까 제몬이 마법을 썼을 때 괜히 안 떨어진 게 아니었나 봐.”
[그럼 어떡해?]“…….”
유리는 가지 위에 발끝으로 서서 고민하다가 도로 지상으로 내려왔다.
착지하자마자 샤를린느가 알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안 되지?”
“네. 알고 계셨어요?”
“네 말대로 별을 담았다면 원래 그냥 나무였을 때도 특별했을 거야. 단단하고, 질기고,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는 그런 나무였겠지.”
“아…….”
유리는 탄식을 질렀고 새삼 나무가 다르게 보였다.
샤를린느 말대로라면 원래 그냥 나무였을 때도 평범한 나무는 아니었으리라.
샤를린느는 나무를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유리도 그녀를 뒤따랐다.
반쯤 돌았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만금수(萬金樹).”
“만금, 뭐라고요?”
“만금수. 쇠를 머금고 자란 나무라고도 한단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영양분을 주면 오히려 죽는 나무지. 사막에서 종종 발견되곤 해. 하지만 사막에도 비가 종종 오잖아. 그때마다 죽어서 보기가 힘들어.”
그래서 솔리드녹스의 땅에 별빛나무가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솔리드녹스 대부분의 영지는 덥고 건조하기로 유명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저 과일은요? 자르거나 뗄 수 없나요?”
“만금수는 섣불리 과일을 떨어뜨리지 않아. 반드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 과일을 떨어뜨려. 칼이나 마법으로도 안 돼.”
“강제로 어떻게든 자른다면요?”
“글쎄, 그랬던 문헌이 있긴 한데. 대부분 실패하거나 잘라내는 과정에서 힘 조절을 못 해서 과일이 망가진다고 하더구나.”
“하아.”
유리는 아쉬움에 탄식을 내질렀다.
기껏 나무를 가져와서 키웠더니 허탕이라는 건가.
하필 나이트워커의 영지 기후는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해서 만금수가 죽을 확률이 높았다.
‘응? 잠깐.’
문득 나이트워커 기후까지 떠올린 유리는 눈동자를 번쩍 떴다.
‘만금수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인데, 왜 이놈은 하루아침에 이렇게 성장했지?’
샤를린느의 말이 맞다면 눈앞의 별빛나무는 절대 자라선 안 되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유리의 손에서 자라지 않다가 샤를린느의 보살핌으로 한 번에 폭풍 성장해버렸다.
‘혹시 어머니가 마법으로 뭘 하신 걸까?’
아니, 마법에 관한 지식은 유리도 충분했고, 자라지도 않는 식물을 하루아침에 키우는 마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유리가 골똘히 고민에 잠기자 샤를린느가 지나가듯 말했다.
“유리, 모든 생명은 본능적인 생존 욕구가 있어.”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별빛나무도, 만금수도, 둘 다 생명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란다. 그걸 생각해보면 이 아이가 왜 이렇게 자랐는지 알 거야.”
살고자 하는 마음이라.
요즘 들어 유리에게 계속 던져지는 질문 중 하나였다.
이자벨 때도 그녀는 살고자 하는 의지로 자결을 택했고, 결국 살아서 나이트워커로 돌아왔다.
대체 그게 어떤 심정일까.
사실 머리로는 이해되어도, 아직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물며 그런 감정이 식물에까지 있다니.
‘아냐. 만금수라 해도 별빛이 담긴 신물이야. 티르빙처럼 자아가 있고 감정이 표현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유리는 나무에 손을 뻗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살릴 수 있어.’
작은 속삭임은 큰 외침이 되어서 별빛나무에게 흘러 들어갔다.
잠시 후, 별빛나무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속에서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