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눈을 감았던 유리는 순간적으로 눈꺼풀을 들었다. 동시에 바람이 잦아들었다.
다시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사방으로 별빛나무가 가득한 가운데 유리가 방금까지 마주하던 가장 큰 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샤를린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유리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난 다른 사람을 불렀는데 이상한 사람이 왔네.”
“어머니가…… 아니군.”
유리는 단번에 눈앞의 샤를린느가 그 샤를린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통통 튀는 말투에서부터 이미 어머니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가짜 샤를린느는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후후, 맞아. 네가 아는 그 샤를린느라는 사람은 아냐. 당장 본 뜰 모습이 그 사람밖에 없어서 흉내 낸 것뿐이지.”
“넌 누구지?”
“그 질문은 별로인 걸. 필연적으로 내가 누군지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면서.”
유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알 수밖에 없다니. 그녀가 하는 말을 곧장 이해했지만, 그래서 더 말이 안 됐다.
“네가 별빛나무라고?”
혹시나 해서 되묻자 그녀가 씨익 웃었다.
“맞아. 그 별빛나무야. 정확힌 날 만든 연금술사의 자아가 복제된 거지.”
“하지만 어떻게……?”
“별빛의 힘이라고 하면 이해될까. 자아복제부터 이렇게 너를 아공간으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지. 물론 샤를린느를 따라하는 것도 말이야.”
“별빛나무가 연금술사의 자아를 이용하는 거고, 그 자아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이용한다는 건가.”
“이렇게 해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불편해도 참아줘.”
알다가도 모를 현상이었다.
적어도 환각 같은 건 아니었다.
환각은 피격자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흑마법이다. 유리에겐 이런 기억이 없어서 환각으로 구성할 수 없었다.
별빛나무가 창조한 공간이 분명했다.
“근데 내가 따라하고 있는 이 여자가 네 어머니야?”
“그래.”
“그래서 네가 불려올 수 있었나 보네. 뭐, 가능성은 있어.”
“무슨 말이지, 그게?”
“원래는 나랑 교감이 되는 사람 손에서 자랐을 때만 성체로 자라. 그리고 그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와서 그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하지.”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왔어야 했다는 거군.”
“근데 네가 온 거야. 두 번째 교감에 성공한 건 네 어머니가 아니라 너였으니까.”
거기까지 말해놓고 별빛나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너와 네 어머니 기운이 비슷했고, 놀랍게도 둘 다 나와 교감에 성공했어. 모자지간이라서 가능한 건지 몰라도, 음……. 나야 누구든 상관없지.”
“교감이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가?”
“극히 드물게 있어. 식물이랑 대화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날 불러온 이유는?”
그제야 제대로 된 본론에 들어서자 별빛나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망설임 하나 없이 지나가듯 말했다.
“날 죽여 줘.”
“……뭐?”
“아아, 오해하진 말아. 자살이라든가 그런 건 아냐. 오히려 내 영혼은 진작에 세상을 떠났어야 해. 모든 생명에는 수명이라는 게 있잖아?”
만금수에 깃들었다고 해도 죽음을 피해 가진 못한다.
비를 맞아서 죽었을 때도 있었을 테고, 수명이 다해서 죽을 날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별빛의 힘을 탐내는 자들이 여러 방법으로 되살리곤 했었다.
별빛나무의 영혼은 이미 바닥까지 갉아 먹힌 상태. 영혼 속 마나는 세상 무엇과도 견줄 것 없이 좋았지만, 그건 오히려 큰 고통만 남겼다.
“불사의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이미 불문율을 깨뜨렸어. 죽어서 환생도 못할 운명이지.”
환생과 불문율,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믿지 못한다며 코웃음 쳤을 이야기가 유리에겐 색다르게 들렸다.
무한 환생자를 알고 있고, 본인도 환생을 해본 입장이라서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실제로 한계를 벗어난 수명은 환생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카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서 꽤나 주의하면서 죽을 때를 골랐던 적이 있다.
“어떡할래? 날 죽여 주겠어?”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
“어차피 바로 죽지도 않아. 본래의 나무로서 더 살다가 죽을 거야.”
“그런 거라면…….”
나무의 수명을 더 산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자살이 아니라고 해도 죽여달라는 느낌이 꺼림칙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지?”
“아까 내 과일을 먹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하면 돼.”
“설마 자랄 수 없는 땅인데도 성체가 된 건 열매를 따게 하게 유도한 건가?”
“별빛나무의 열매라니. 탐스럽잖아. 열매만 따면 적어도 별빛나무로서의 삶은 끝나.”
별빛나무는 완전한 삶을 끝내고 싶은 게 아니었다. 불사의 굴레를 끊고 싶을 뿐.
현재는 열매에 별빛의 힘이 완전히 집약되었다.
그 열매만 멀쩡히 따서 먹을 수만 있다면야 별빛나무의 생은 거기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열매를 따보려고 했으니까 알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그냥 주는 게 아닌가.”
“나무의 육신은 내 통제를 벗어났어. 영혼보다 터무니없이 강해. 특히 생존 본능이 강해서 잘 죽지 않아.”
낡은 영혼에 반해 멀쩡히 살아있는 육신은 동기화에 실패해서 더 빨리 영혼을 망가뜨린다.
그것이 깨진 불문율의 인과성.
어쨌든 서로 목적이 맞았으니 유리도 마음 놓고 열매를 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했다.
“어차피 나도 열매를 먹으려고 했으니 상관없지만…… 그걸 알고도 굳이 날 여기까지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있겠지?”
“응, 맞아.”
그의 예상대로, 별빛나무는 이곳으로 유리를 굳이 데려와야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죽여달라는 부탁을 할 거였다면 그냥 유리가 열매를 먹게 놔뒀어도 됐다.
샤를린느 형상의 별빛나무는 손을 뻗어 무언가를 날렸다.
나비의 형상으로 날아오른 하얀 빛은 유리가 손을 내밀자 그 위로 안착했다.
“사실 이거 주려고 널 여기까지 불렀어.”
“이게 뭐지?”
“날 죽여주는 보상. 내가 죽으면 줄 수 없어서 미리 주는 거야.”
“시작하기도 전에 보수부터 주는 건가.”
“뭔지는…… 열매를 먹으면 알게 될 테니까.”
그리 말하자마자 주변에 있던 별빛나무들이 일제히 빛무리를 터뜨렸다.
섬광은 점점 세상을 가득 채우다가 유리를 집어삼켰다. 작별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그가 모습을 감췄다.
그가 떠나자 샤를린느 형상의 별빛나무는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나무로 고개를 들었다.
“아쉬워라. 대단한 마법사를 만날 기회였는데. 그 사람이라면 내 불문율을 깰 수도 있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아직 삶에 미련이 남았다. 죽어야 되는 걸 알면서도 정작 죽으려고 하면 살고 싶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유리를 만나서 속이 후련하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삶에 미련을 이런 식으로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야.
‘그 대단한 마법사의 아들이니. 기대해도 좋겠어.’
그녀는 나무에 기대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곧 그녀의 세상이 외부에서 오는 충격으로 흔들렸다.
* * *
유리는 멍하니 나무에 댄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어머니께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응? 왜 그러니? 괜찮아?”
겉에선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 샤를린느는 걱정스레 물었다.
유리도 제게 일어난 변화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손을 대고 눈을 감았을 때의 찰나 그대로 멈춰있다.
진짜 환각인가.
유리는 나무에 댔던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굳은살이 배긴 손바닥엔 전에 없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클로버처럼 생긴 나무 문양이었다.
‘아까 줬던 대가가 이건가.’
유리는 손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샤를린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무가 말을 건 거 같았어요.”
“말을?”
“말이라고 해야 될지, 그냥 알 수 있다고 해야 될지…….”
얼버무리는 답에도 샤를린느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들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좋은 변화였다.
샤를린느도 미소를 지으며 살짝 물러섰다.
“이 이상은 내가 관여할 순 없을 거 같구나. 별빛나무가 너한테 뭐라고 했다면 너한테 바라는 게 있다는 뜻이겠지.”
“나무가 말을 걸었다는 걸 믿어주시는 건가요?”
“이 엄만 널 안 믿었던 적이 없어.”
한 발, 두 발 물러선 샤를린느는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난 그만 돌아가야겠구나. 할 일이 많아.”
“고마워요, 어머니.”
“별말을.”
그렇게 샤를린느가 떠나고.
구경꾼들 사이에 남은 유리는 다시금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과일은 약 올리듯 가지 끝에 매달려서 흔들거렸다.
“좋아, 어디 해보자고.”
* * *
그 날 이후, 유리는 여러 방법으로 열매를 따기 위한 시도를 했다.
처음엔 혹시 몰라서 식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 꺾꽂이도 됐으니까 혹시나 해서였다.
물론, 결과는 실패.
약물까지 동원해 봐도 열매는커녕 나무조차 쉽사리 죽지 않았다.
결국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검을 뽑았으나, 이마저도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3달이 꼬박 지났다.
“헉, 헉…… 이거, 되는 거, 맞겠지?”
유리는 턱 끝에 매달린 땀을 소매로 닦으며 벅차오르는 숨을 골랐다.
더 이상 구경꾼들은 몰리지 않았다. 그 정도로 시간이 흘렀으나 열매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대신 릴림과 채럿이 뒤편의 다른 정원에 나란히 앉아 유리를 구경했다.
“도련님, 파이팅.”
“오라버니, 할 수 있어요!”
두 사람에 응원에 유리는 멋쩍은 미소로 응해주고는 다시 나무를 올려다봤다.
티르빙도 이 상황이 답답했다.
[저거 따도 못 먹지 않을까. 저렇게 단단한데. 괜히 먹었다가 이만 부러지는 거 아닌지 몰라.]“나도 그 생각했는데, 일단 따봐야지 알지.”
검도 검이지만 체력적으로 금방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체공 시간이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더라도 끄트머리에 자란 열매를 자르려면 허공에 몸을 띄워야 했다.
나중에는 한 번에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으나, 워낙 짧은 순간이라 많은 타격이 힘들었다.
마법을 써서 허공을 난다고 쳐도 마찬가지로 유지시간이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지속력과 과일을 잘라낼 정도의 위력까지 겸해야 했으니.
“그래도 자르는 게 맞아.”
며칠 내내 과실을 자르려고 해보다가 성과를 냈던 적이 있다.
바로 어젯밤.
혹시 몰라서 티르빙이 아닌 맨손으로 마나를 씌워서 검처럼 휘둘러봤다.
그러자 과실과 가지의 연결점에 작은 흠집이 났다.
이후 수도(手刀)로 몇 번 더 시도하자 흠집 몇 개가 더 생겼다.
‘검으로는 안 되는 거였어. 손으로, 그것도 정확한 부분을 정교한 마나랑 일정한 근력으로 타격해야 해.’
무작정 힘을 쏟아부으면 별빛나무는 도리어 단단해져서 손만 아팠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때리면 그대로 튕겨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수도로 만든 검막은 최대한 얇고 예리해야 했다. 날이 두꺼웠다간 자칫 과실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 정확도, 체력, 그리고 이 모든 걸 조합한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결론을 내린 유리는 몇 날 며칠 동안 수도로만 계속 같은 시도를 했다.
한 번 정원에 나왔다 하면 10시간은 기본이었다.
스쿼트 점프 하듯이 뛰어올랐다가 손날에 마나를 모으고 과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가지를 자른다.
3시간만 지나도 다리 근육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나로 버티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그나마 며칠 동안 계속하다 보니 10시간이라는 인내를 얻었다.
이걸 성과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집중하자, 집중.’
유리는 크게 호흡 한 번 하고 손에 마나를 모았다.
최대한 얇게 마나를 씌우되 밀도를 높인다. 예기 또한 종잇장보다 날카롭게.
“후웁!”
유리는 남아 있는 약간의 마나만 다리에 넣어 점프를 했다. 그리고 목표가 앞에 보이는 순간.
슈욱! 타악!
손날의 끝을 과실의 꼭지로 휘둘렀다.
그때.
연결점을 잃은 과실이 중력을 따라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3달만의 성과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