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54
제54화
평범한 짐승과 마수를 구분하는 방법은 마나를 쓸 줄 아느냐의 여부다. 마수라도 마법까지 다룰 줄 아는 건 아니지만.
마수들은 본능적으로 마나를 이용해서 육체를 강화할 줄 알았다.
유리가 일시적으로 근력 강화를 위해서 마나를 쓰는 것과 똑같았다.
‘마수 사냥을 하면서 별빛나무 과실을 소화시킬 요량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채럿이 마수를 다루게 하려고 계획했던 시기는 따로 있었다.
아무래도 심한 일을 겪기도 했고, 어린 탓에 벌써부터 능력을 키우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드루이드 능력을 키울 타이밍이 현저히 부족했다.
다이올드 눈치도 보이고, 그녀의 능력은 가문에서도 아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유리는 처음부터 까만 나무 숲을 채럿의 훈련 장소로 잡았다.
무엇보다.
채럿 스스로가 가장 원했다.
“오라버니가 가주가 되면 멋질 거 같아요! 그러니까 도와줄래요!”
가주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나 알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도 용인이다. 비록 엘프의 피가 섞였어도 용인으로서의 투쟁과 경쟁 본능이 살아있었다.
바스스스!
채럿의 부름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즈음. 숲속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하나가 아닌 여럿. 규칙이 없으면서도 조직적으로 동선을 맞췄다.
이자벨과 릴림은 미리 칼을 꺼내 대비했다. 정작 유리는 여유롭게 앞으로 나왔다.
“왔어요.”
드디어 노래가 끝나고, 곧 어둠 속에서 거대한 갈색 쥐 한 마리가 드러났다.
채럿의 부름이 마수들을 이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잘했어, 채럿. 첫 시도 만에 성공하다니. 대단한걸.”
“아직 명령을 할 순 없는걸요.”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야. 앞으로 천천히 더 나아가면 돼.”
“헤헤.”
채럿은 몰랐지만, 역사상 드루이드 능력을 가지고 그녀의 나이에 마수를 다뤘던 건 채럿이 최초였다.
마수까지 이만큼이나 조종이 된다면, 적어도 마수 소굴 같은 곳에서 고생할 걱정은 조금이나마 덜었다.
유리는 선두로 나온 배너드를 노려봤다.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온 앞니는 서로 맞닿은 끝부분에서 송곳처럼 뾰족했다.
평범한 배너드가 성인 한 명 크기라면, 놈은 그보다 서너 배는 더 컸다.
“우두머리인가 본데.”
“맞아요. 근데…… 경계심이 엄청 강해요. 두려워하고 있기도 하고요.”
“대화가 될까?”
“뭐라고 물어볼까요?”
“영지 사람들을 공격한 적 있는지 물어봐 줘.”
채럿이 그대로 드루이드 언어로 번역해서 배너드에게 알렸다.
질문을 듣자 배너드가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까딱거리길 반복했다. 주둥이에선 쥐 특유의 울음소리가 나왔다.
“없대요.”
“없다고? 진짜?”
“오히려 화를 내는데요? 자신들이 공격당했으면 몰라도 어떻게 공격을 하냐면서요.”
역시 사냥꾼의 말은 거짓이었군.
유리는 배너드 우두머리의 주장을 바탕으로 가정을 확신으로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숲으로 자신들을 유도하는 방법이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었다.
사냥꾼이라는 의뢰인도 굳이 필요 없이 마수 사냥만 명령해도 괜찮았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번잡하게 했다는 건…….’
쿠웅!
그 순간, 울림이 끝날 줄 알았던 숲이 다시 한 번 크게 진동했다. 기껏 모여들었던 배너드들이 제각기 흩어졌다.
“최악 중의 최악이네.”
유리도 결국 티르빙을 뽑았다.
숲의 그늘 저 너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육중한 몸으로 천지를 울리며 기어코 유리 일행 앞에 당도했다.
그것을 본 이자벨이 경악했다.
“키메라……!”
상체와 머리는 배너드와 똑같았지만, 발톱은 와이번의 것을, 몸뚱어리는 알 수 없는 짐승이 합쳐진 마수.
본 적 있는 마수들을 섞은 혼종의 정체는 누가 보더라도 키메라였다.
‘생체 실험의 결과물이 영지 내에 있었을 줄이야!’
중구난방인 증거들로 인해 유리는 여러 가지 가정을 세웠다.
그 중 가장 확률이 희박한 최악의 가설로 키메라를 꼽았다.
키메라는 자연 발생하는 생명체가 아니라, 생체 실험의 결과물로 발생하는 개체다.
만약 배너드를 합쳐서 새로운 생명체가 되었다면,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들의 퍼즐이 맞춰졌다.
키아아아악!
“으윽!!!”
우두머리 배너드보다 더 큰 키메라가 포효하자 채럿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쓰러질 뻔한 것을 유리가 얼른 부축해서 잡았다.
“채럿! 왜 그래?”
“슬퍼, 하고 있어요. 아프다면서……!”
채럿의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키메라가 뱉는 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결합된 여러 생명체들이 동시에 살려달라고 외쳤다.
[상성이 나빠도 엄청 나빠. 꼬맹이, 얘부터 얼른 피신시켜. 계속 듣다간 미쳐버릴 거야.]“릴림!”
“네!”
단 한 번의 부름에도 릴림은 용케도 알아듣고 채럿을 안은 채 전장에서 멀어졌다.
그때, 릴림이 빠져나가려는 걸 키메라가 아가리를 벌린 채 덤볐다.
“어딜!”
유리가 먼저 옆구리에 칼을 찌르자 뒤따라서 이자벨이 등허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검 어느 것도 살가죽을 전혀 뚫지 못했다.
단칼에 끝낼 생각으로 검기를 둘렀던 유리는 실소를 머금었다.
‘못해도 7서클, 아니! 그 이상이다!’
파악하기 무섭게 키메라의 뱀 꼬리가 채찍처럼 유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7서클 마나가 자연스레 나오는 놈의 공격을 막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막더라도 전해지는 충격마저 견디지는 못할 터.
하지만 이상하게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확신이 들었다.
키엑?
그러나 공격이 가해진 후 나온 소리는 키메라의 얼빠진 괴성뿐이었다.
타격음도, 누군가가 다쳐서 흘리는 신음도 없었다.
“뭐하냐?”
유리는 제 앞에 손을 내민 것만으로 꼬리를 막아서고 있었다. 충격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마나를 쓰지도 않았으니.
‘별빛나무 과실의 진가가 이거군.’
과실을 먹고도 별다른 변화를 못 느꼈던 유리.
그런 유리를 보고 티르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느끼지 못한다고 했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과실을 먹고 몸에 마나가 녹아들면서, 코어 자체에 변화는 없어도 육체가 상시적으로 강화된 상태였다.
그 변화를 유리는 방금 전 받아낸 공격으로 느꼈다.
‘이러면 굳이 육체에 마나를 넣어가면서 강화할 필요가 없겠군.’
유리는 피식 웃으며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어 내질렀다. 이번엔 코어의 마나까지 결합시켰다.
떠엉! 푸확!
공기가 갈라지는 굉음이 퍼지면서 꼬리를 감싸던 가죽과 살갗이 터졌다.
키아아악!
꼬리를 잃은 키메라는 포효를 지르다가 발톱을 휘둘렀다.
몸을 돌리면서 날아드는 예기에 유리도 티르빙으로 응수했다.
방어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공격에 공격을 가했다.
콰직!
서클 자체는 키메라보다 부족해서 베지는 못했으나 충격으로 발톱이 반으로 부러졌다.
[이 언니는 검이지 둔기가 아니라고.]“뭐, 어때. 이기면…… 됐지!”
아예 티르빙을 검이 아닌 손에 너클로 덧씌웠다.
이어서 키메라의 정면에서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키메라는 채 반응하지 못했다.
쿵!
주먹이 닿자 앞니가 바스라지다가 안면 근육과 뼈까지 함몰되었다.
쿠엑!
피와 타액이 튀는 와중에도 키메라는 유리를 삼키려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당연히 그곳에서 이미 탈출한 유리.
이번엔 눈알을 터뜨리고, 다음엔 척추를 수도로 내려쳐서 부러뜨렸다.
그렇게 온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잠깐 전투 속에서 잊혔던 이자벨은 동 떨어져서 이 광경을 입을 벌린 채 구경했다.
“내가 나설 자리는…….”
없겠군.
키메라가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이자벨은 잠시나마 패닉이 왔었다.
수업에 들었던 키메라는 실험 과정에서 당한 고통을 매번 달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통증을 몰랐다.
그리고 통증을 느낀 마수는 흉포하다 못해 어디 하나 잘려도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졌다.
그런 마수가 키메라라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반해 유리는 침착하다 못해 압도적으로 키메라를 상대해내고 있었다.
‘이게 별빛의 힘이라고?’
별다른 마나 소모 없이 육체로만 상대하는 모습에 기가 차면서도 놀라웠다.
키엑!
결국 전투가 시작되고 30분도 안 되어서 키메라가 먼저 쓰러졌다.
키메라는 죽어가면서도 유리를 공격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때마다 유리의 주먹 한 방에 피와 살이 튀었다.
여유롭게 키메라를 해치운 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이자벨에게 다가갔다.
“끝.”
“대단한 일을 해놓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군.”
“이래 보여도 힘들었어. 나 혼자 다 잡았잖아.”
“내가 낄 틈을 주지도 않고선…….”
“하하, 그랬나?”
“이제 어떡하지. 그대로 보고할 건가?”
그녀 딴에는 허위 보고를 했으면 했다.
어쨌든 배너드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고, 의뢰자는 거짓 의뢰를 했고, 정작 숲에서 나온 건 키메라였으니까.
이 모든 일들이 다이올드가 꾸민 짓이 확실시되는 이상.
똑바로 보고할 바엔 임무 실패를 알리는 편이 낫다고 봤다.
유리도 그녀와 생각이 같았다.
그 전에.
확인부터 할 게 있었다.
* * *
“젠장! 젠장젠장!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드워프 사냥꾼이었던 남자는 본래의 홀쭉한 체형으로 돌아와서 얼른 짐을 싸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유리네와 키메라가 싸우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당연히 키메라가 이길 줄로만 알았다.
나름 괜찮은 마수들을 조합했고 마나도 유리보다 웃돌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터무니없이 유리가 키메라를 죽여 버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빌어먹을. 겨우 만들어낸 역작이 이렇게……!”
아쉬움에 울분 섞인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허나 어쨌든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방금 전 유리가 이쪽으로 오는 모습까지 확인했으니 분명 추궁하러 오는 것이리라.
달리 말해 거짓말을 간파했다는 뜻.
“여길 벗어나고 나서 생각하자.”
“누구 마음대로?”
막 가방을 닫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사냥꾼의 뒷통수를 붙잡고 그대로 가방 안에 처박았다. 갖가지 실험도구와 옷가지가 엉킨 내용물 속에서 그가 컥컥거렸다.
기습자인 유리는 조금도 힘을 뺄 마음이 없었다.
“거짓말을 해놓고 도망가려고 했었나 보지?”
“쿱! 커억!”
“가만히 있어. 난리치면 진짜로 숨 못 쉬어. 안 되면 목뼈를 부러뜨릴 수도 있어.”
“큽! 크흡, 흐으…….”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자는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늘어졌다.
확실히 좁은 틈으로나마 공기가 들어오면서 숨이 트였다.
유리는 조용히 말했다.
“노엘 라비어.”
“읍? 어떠, 케……!”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 시대에 키메라를 만들 수 있는 마법사는 노엘 라비어 한 명뿐이었다.
특히 아까 만난 수준 높은 키메라는 갑자기 생체 실험에 눈을 뜬 미친놈이 만들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실력자에 오랜 시간 실험을 해본 놈이 확실했다.
“자, 여기서 제대로 부는 게 좋을 거야. 헛소리를 하면 네놈이 만든 키메라한테 밥이 될 거니까.”
“우으, 네 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고!”
“정신을 못 차리네.”
뿌드득!
유리는 노엘의 팔을 뒤로 꺾어서 180도로 돌렸다. 뼈 마디마디가 빠지고 부러지길 반복했다.
비명을 질러도 가방 밖으로 소리가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겨우 진정이 되고 나서야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다시 묻겠어, 노엘. 키메라를 만들도록 도와준 사람이 누구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