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55
제55화
‘어떻게 하지.’
유리에게 뒷목을 잡힌 채 노엘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 정체는 들켰다. 살려둘 수는 없겠어.’
노엘은 기회를 엿봤다. 지금이라도 언제든 마법이나 함정을 발동해서 유리를 족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시야에 놈이 보여야만 했다.
어차피 노엘이 보기에 유리는 기껏해야 기사 나부랭이 정도 수준이었다.
비록 7서클 키메라를 쉽게 쓰러뜨렸다고 해서, 노엘을 이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이래 보여도 노엘은 언더하울에서 생체 실험을 주도했던 흑마법사들 중 한 명.
7서클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짐승과는 차원이 달랐다.
용가의 기사쯤이야 그에겐 우스웠다.
“아, 알았어! 대답해주지. 누가 키메라를 만들도록 도와줬냐고 물었나?”
“그래.”
“도움을 준 사람은 없어. 나 혼자 한 거야.”
“거짓말.”
“아악! 진짜라네!”
목을 뽑을 듯 힘을 줬으나 노엘은 한사코 단독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설마. 유리는 그런 눈빛으로 노엘을 내려다 봤다.
노엘은 언더하울 출신 마법사로 생체 실험을 주도했던 지명 수배자들 중 한 명이었다.
대륙 전체에 수배령이 내려진 특급범죄자가 무슨 심보로 용인의 땅에서 키메라를 풀어놓는단 말인가.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두워도 말이 안 됐다.
“아무래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나 보군.”
“진짜라고! 진짜라니까!”
“하다못해 자금줄이라도 있겠지.”
“자, 자금줄은 있지! 당연히!”
기본적으로 키메라엔 생포한 마수가 필요하고 마수를 생포하기 위한 인건비가 비싸서 큰돈이 오고 간다.
노엘은 이 부분에서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실을 토했다.
“나도 그냥 여기서 살다가 어느 날인가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더군! 신고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키메라를 만들어 달라면서 거래를 했지!”
“그래서 만들어줬나?”
“큰돈을 준다기에 냉큼 받아들였지! 진짜라네! 정 의심스러우면 가방에 장부가 있어!”
그제야 유리는 노엘의 머리통을 밖으로 꺼냈다. 밖에는 유리만이 아니라 이자벨도 함께였다.
그녀에게 노엘을 넘기자, 이자벨은 그를 바닥에 엎어놓고 팔을 뒤로 잡아 제압했다.
그 사이 유리가 가방을 엎어서 모조리 밖으로 꺼냈다.
딱 봐도 장부 같은 수첩이 바로 튀어나왔다.
펼치자마자 온갖 거래 내역이 보였다. 키메라뿐만 아니라 해괴망측한 약물까지.
전부 내용이 달랐으나 거래자는 단 한 명.
“데이비드? 이 자랑 거래를 했나?”
“그, 그래.”
“이 자에 대해 아는 거 있나? 생김새라든가, 어디 출신이라든가.”
“무슨 마법학회의 사람이라는데. 거기까지 밖에 몰라. 얼굴을 항상 가리고 와서…….”
그렇겠지.
암거래를 하면서 신분을 노출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유리는 거래 내역을 다시 살피다가 마지막 항목에서 눈가를 찌푸렸다.
“2달 전에 거래가 끊겼군. 마지막 거래는 취소됐고.”
“물건이 튀었거든! 젠장, 그래놓곤 내 탓이라면서 나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지 뭔가!”
“처리를 할 거였다면 네놈이 해도 됐을 텐데, 왜 가문에 의뢰를 넣었지?”
“그야! 그……건…….”
노엘이 말끝을 흐렸다. 유리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가문의 기사를 상대로 실험을 한 거 아닌가?”
처음부터 키메라가 7서클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7서클 마수를 결합하면 몰라도, 거래 내역을 보면 그런 마수가 거래된 흔적은 없었다.
아마 유리가 죽였던 키메라는 다른 마수를 사냥하면서 성장했을 터.
광적으로 생체 실험에 매달리는 언더하울 출신의 마법사들의 특성상, 노엘은 도망간 키메라가 성장하는 걸 보고 차마 죽일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점점 강해지는 실험체를 보면서 쾌감을 느꼈겠지. 통제력을 잃어도 자신의 작품이 성장하는 걸 즐겼을 거야. 맞지?”
“……네놈, 꽤 아는군.”
순간 노엘의 음성이 스산히 낮아졌다.
거래를 하려고 했던 키메라가 도망치고 나서 일부러 노엘은 놈을 죽이려 했다.
키메라의 존재를 누군가가 알아챘다간 자신의 행적마저 들킬 테니까.
하지만 작은 마수였던 키메라가 다른 마수를 먹으면서 점점 성장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다른 곳도 아닌 까만 나무 숲이다.
그곳에서 사는 마수들을 양분 삼아 성장한다면 얼마나 성장할까?
“크흐, 크흐흐!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 죽은 게 아까울 지경이야.”
“단단히 미쳤군. 잘못하면 네놈도 죽었을 거다.”
“자주 듣는 소리지. 하지만 괜찮아. 덕분에 더 좋은 놈을 만들 수 있게 됐거든!”
얼굴을 확인하고 시야가 트인 노엘은 미리 준비해뒀던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마법진은 몸에 새겨져 있었기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옷이 갈가리 찢어지면서 빛이 분산했다. 폭발이라도 일어날 듯 오두막 안이 환해졌다.
“이런……!”
이자벨이 물러서면서 검을 뽑았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점점 노엘의 몸뚱어리가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골격마저 커지면서 위치를 바꿨고, 덩달아 커지던 근육에 피부가 따라가지 못해 찢어졌다.
처음 보는 마법이었지만 유리는 바로 알아봤다.
‘스스로를 키메라의 재료로 삼은 건가!’
언더하울 출신 흑마법사가 미친놈들이라고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노엘은 동요하는 두 사람을 향해 비웃음과 함께 외쳤다.
“네놈들 전부 죽여서 내 양분으로 삼아주마!!!”
“아쉽지만, 먹이는 너다.”
서거거걱!
빛 속에서 빛보다 빠르게 티르빙이 선을 그었다.
미리 그려뒀던 마법진 위로 선혈이 흘렀다. 발동되던 마법진은 새로이 그려진 그림 때문에 망가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은 곧 식이자 그림. 식을 망가뜨리면 원하던 결과값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유리는 노엘의 등 뒤에 그려졌던 마법진에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리면서 식을 부쉈다.
동시에 마나가 역류하면서 격통을 불렀다.
“커억! 어, 어떻게!”
노엘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처에 마법진이 망가진다고?
마법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마법진에 낙서만 해도 망가지는 줄 알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마나가 주입된 마법진은 원래 형태가 망가져도 식을 잃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첫 번째 원을 구성하는 것이 마법의 기초.
그런데 이걸 망가뜨리다니!
노엘의 몸은 변하다가 그대로 멈춰서 흉측한 몰골이 되었다. 그는 몸을 뒤틀며 몸부림쳤다.
그때 그의 눈에 티르빙이 눈에 들어왔다.
“마검…… 티르빙!”
유리는 마법진에 상처를 내지 않았다. 티르빙으로 마법진을 갈라서 마나를 삼켰을 뿐.
그리고.
등에 남았던 피는 수포처럼 번지다가 매끈한 피부로 변해 노엘을 삼켰다.
목 아래서부터 차오르는 핏물에 노엘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 안 돼! 이걸 빼앗기긴 싫어! 안 돼! 안 돼에에에!!!”
처절한 절규가 지나가고.
이내 노엘은 빨간 고치가 되어서 꼼짝을 안 했다.
예상보다 큰 피해 없이 노엘을 제압했지만, 어째선지 유리의 표정엔 아쉬움이 남았다.
원래였다면 마나를 먹은 티르빙은 유리에게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완전히 먹지 못했다.
‘아무 마나나 소화할 순 없나 보네.’
[말했잖니. 내가 누굴 삼킨다고 다 먹을 수 있진 않아. 네가 더 강해야지만 먹을 수 있어.]노엘의 마력은 대략 8서클 정도.
아직 6서클에 머물고 있는 유리로선 감당하기 힘들었다.
무리해서 티르빙에게 마나를 먹일 순 있지만, 그녀에겐 과식을 하는 꼴이라 탈이 날 위험이 컸다.
‘언제까지 이 능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
유리라고 해서 티르빙이 다른 마나를 먹는 행위를 좋아하진 않았다.
먹을 수 있는 마나는 한정적이고, 노엘처럼 티르빙의 존재를 몰라야지만 쉽게 상대를 제압했다.
그래도 일단, 오늘은 만족했다.
지금은 마법진에 들어갔던 마나만 먹고 제압한 상태.
노엘을 감싼 단단한 피 껍질은 완력이나 마법으로 쉽게 깰 수 없었다.
“괜찮아, 이자벨?”
“난 괜찮다. 그대야말로 피를 이렇게 써도 괜찮은 건가?”
“뭐, 이 정도는 이제 익숙해서.”
사태가 마무리 되자, 유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럿과 릴림에게도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졌을 즈음이 되어서 미리 불렀던 플레온 기사단이 도착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노엘을 체포해서 데려갔고, 유리도 임무를 완수했다는 증거들을 챙겨서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사라지자.
오두막에 수상한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오두막으로 들어가 노엘의 흔적을 뒤졌다.
이미 플레온 기사단이 완전히 수색한 뒤라 남은 것이 없었다.
“골치 아파졌군. 노엘을 벌써 잃는 건 손해다.”
“하지만 안심해도 된다. 꼬리를 잘랐어. 놈들은 전혀 모른다.”
“티르빙의 주인이 강해지고 있다. 이건 어떡하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맞다, 일단 보고하고 기다린다.”
이때까지 유리를 감시하던 그들은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 * *
“이게…… 이렇게 됐단 말이지.”
유리에게서 보고를 받던 다이올드는 입가를 씰룩이면서 분노를 삼켰다.
그는 의도적으로 노엘의 존재를 감추고 유리에게 배너드 사냥 임무를 맡겼다.
노엘이 의뢰했던 내용에는 배너드라고 했지만, 가문의 정보망에선 키메라라는 게 확실했으니 임무 중 유리에게 문제가 생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배너드가 아닌 키메라를 처치하고 노엘까지 사로잡아왔으니.
‘졸지에 공적을 줘버렸군!’
그가 그렇게 분노해 하며 보고서를 읽는 동안.
유리는 최근 채럿을 통해 모은 정보를 토대로 다이올드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봤다.
‘우연의 일치를 이용해서 나를 묻으려 했던 건가.’
채럿의 정보에 따르면 다이올드와 노엘에겐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만났던 흔적이나, 시간상의 겹침, 모든 것들이 어긋나 있었다.
노엘 쪽을 캐봤으나 그는 평범하게 거래만 했다는 정황만 있을 뿐.
플레온 기사단이 노엘을 심문했을 때도 그는 다른 혐의는 전부 인정하면서 정작 다이올드에 관해선 누군지도 모른다고 답변했다.
‘돌이켜보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는 임무를 굳이 줄 이유도 없었지.’
한 마디로 다이올드는 유리를 골탕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지,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속셈은 아니었다.
다이올드는 유리가 올린 보고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내려놨다.
“나가, 봐라.”
“보고는 이걸로 되겠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나가……!”
“……밤의 영광을.”
고스란히 느껴지는 분노에 유리는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방을 나왔다.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오니 블레이크가 그를 기다렸다.
“어떠셨습니까?”
“화를 내시더군.”
“그럴 줄 알았습니다. 기껏 1급 범죄자를 잡으면 뭐합니까.”
“오히려 더 잘됐어. 다이올드는 후보군에서 없어졌잖아.”
“꼬리를 잘랐을 수도 있습니다.”
“채럿의 정보망에는 없었으니까 확실해.”
“여기서 채럿 님이 왜 나옵니까?”
“아, 말 안 했나.”
아무래도 나중에 다들 모여서 서로서로 소개할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이자벨에게 채럿을 소개할 때도 그랬지만, 매번 따로따로 알려주려니 설명하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 내가 부탁한 쪽으로 조사해줘.”
“정말로 언더하울에 흑마법사들이 더 있다고 보십니까?”
“아마.”
채럿의 트리 때부터 이번까지.
유리는 두 번의 언더하울 흑마법사를 만났다.
특히나 노엘은 생체 실험의 핵심 인물이어서 잡고 싶어도 잡기 힘들었던 놈이었다.
세간에선 흑마법사들이 다 죽었다고도 알려졌었다.
그 정도로 숨어 지내던 흑마법사가 두 번이나, 그것도 나이트워커와 관련되어서 만났다.
“명령하신 대로 언더하울 쪽에 카이를 보내긴 했습니다. 시일이 좀 걸릴 거라 하더군요.”
“그렇겠지. 청부업자의 도시니까.”
혹시 몰라서 유리는 언더하울 쪽을 더 조사해보기로 했다.
채럿의 정보망으로도 어지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나, 언더하울은 조금 다르다.
괜히 채럿도 그곳에서 지내면서 청부업자들을 통해 따로 정보를 얻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엔 청부업자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
이 때문에 트리를 다시 세우려고 했던 참이었으며, 이번 일은 카이를 직접 파견했다.
이렇게까지 언더하울의 정보가 중요하느냐고?
아니,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곳에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