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58
제58화
이마에서 피가 튀어 오르는 바람에 교관의 시야가 한순간에 가려졌다.
전혀 공격이 보이지 않았었다.
아니, 공격의 시작이었던 종 베기는 질리도록 봤기 때문에 얼마든지 예상 가능했고 대처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다고 하는 순간에 유리의 검은 상처를 찢었다.
그만큼 공격 속도가 교관을 웃돌았기에 가능했던 공격.
‘어디서 이런 속도가?!’
교관은 하려던 공격을 멈추고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재차 반격하려 물러서던 뒷걸음질에 힘을 줬다.
그 순간 다시금 종 베기가 시야 위에서 떨어졌다.
“읏!”
말도 안 된다!
방금 내려갔던 검이 어느 틈에 올라가고 다시 내려온단 말인가!
더군다나 유리는 지쳤고, 마나도 쓰지 않으며 순전히 지친 육체로만 싸우고 있었다.
그런 유리를 감안해서 봐주고 있긴 했으나, 훈련 첫날보다 검격이 더욱 날카롭고 빨랐다.
“그만!”
결국 교관이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면서 유리를 막았다.
유리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코앞에서 멈췄다. 호흡으로 가슴이 들썩거렸다.
유리의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교관은 그런 그를 향해 기사식 경례를 했다.
“대련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유리 생도.”
“아닙니다, 교관님.”
그렇게 대련이 끝나자, 교관은 마리 쪽으로 손을 들어 훈련을 통과했다고 알렸다.
유리는 그제야 주변 풍경이 시선에 들어왔다.
하늘은 벌써 어둠으로 물들었다. 만월만이 빛을 내어서 별빛마저 삼킨 밤.
가장 먼저 대련이 끝난 건 유리였다.
다른 생도들은 흠씬 두들겨 맞아서 뻗거나, 몇몇은 악에 받쳐서 겨우 버텼다.
유리는 검을 늘어뜨리고 호흡을 골랐다.
‘아찔했다. 잘못했다간 그대로 베었을 거야.’
몇 번이나 정신을 잃을 뻔했는지 모르겠다. 겨우 집중해도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에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자세를 무너뜨리려 했다.
거기다 어떻게든 포기하고픈 심정까지.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나 순전히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욕구를 견디고 한 번이라도 더 검을 휘두르고자 하는 의지.
지금도 당장 몸이 욱씬거려서 당장 주저앉아서 쉬고 싶었다.
“멍청한 얼굴 하고 있지 마라.”
단상에 있던 마리가 어느 틈엔가 성큼 다가왔다.
걸어오면서 대나무가 딱딱 부딪히는데, 그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다들 아직도 대련에 헤매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만 고요한 기류가 흘렀다.
마리는 커다란 키로 유리를 내려다보았다. 험상궂은 인상에는 표정 하나 없었다.
“교관 하나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진 건 아니겠지.”
“기고만장해질 게 있나요. 교관님께서 봐주셨잖습니까.”
유리는 진작 교관들이 봐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목검을 쓴 것부터 그랬고.
목검에 두른 마나 농도도 유리가 아는 나이트워커 기사들에 비해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봐준 걸 알고도 헤맨 걸 보니 아둔하기 그지없는 거였군. 약해 빠진 티를 이리 내어서야 되겠느냐?”
“뭐가 되었든 두 번째 훈련도 통과했습니다. 그것도 제일 먼저요.”
“그래, 통과했지. 그래서 짜증난다.”
솔직히 마리는 유리가 이렇게 빨리 교관을 쓰러뜨릴 줄 몰랐다.
이래서는 훈련의 의미가 없었고, 마리가 짜증이 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거기다 유리의 눈빛을 보니 더더욱 속이 끓었다.
지쳐서 손가락 하나 꿈쩍 못하는 주제에 더 할 수 있다는 눈빛.
마리는 애써 감정을 감춘 채 말했다.
“통과를 했으니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지.”
“네?”
“뭐가 ‘네’냐. 훈련을 했으면 평가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아니, 지금까지 한 건 평가 요소에도 없었다는 건가?
더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마리는 진짜 시험을 위해 대나무 지팡이의 손잡이를 뽑았다.
갈라진 틈 사이에서 일(一)자 형태의 도가 빛을 냈다.
“이 시험은 지극히 네놈에게만 내리는 시험이다.”
“훈련을 너무 잘해서 화풀이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꼬장 부리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가 보구나.”
“아닙니까?”
“안 해도 좋다. 대신 시험을 통과하면 보상을 주마.”
“보상이 뭡니까.”
“말하면 재미없지. 그래도 하겠느냐?”
“……할 겁니다.”
유리는 이미 검을 들어서 그녀를 향해 겨눴다.
마리와의 대련.
벤헬링턴이 고른 반려자와의 싸움이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지금이 아니고선 언제 검을 맞댈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험 내용과 보상을 듣지도 않고 검을 들었다.
“포기할 기회를 난 분명히 주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후회하지 마라.”
“포기해서 단장님을 실망시키면 저도 참 좋겠습니다만, 저도 오기가 있어서요.”
“듣던 대로 간이 제대로 부었구나.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보자!”
마리는 굳이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 감정은 곧 검으로 이어졌다.
푸확!
아래서 위로 검격이 치켜 올라왔다.
고개를 치켜들어 피하자 풍압이 앞머리칼을 잘랐다.
‘물리적인 공격만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그것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마리의 검은 유리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방어와 회피를 반복하면서 겨우 치명상을 피했으나, 얕은 생채기가 삽시간에 다량으로 생겼다.
한 발 물러서자 바짝 그녀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말하길.
“패배해라, 유리! 그게 내가 주는 시험이다!”
“큭!”
어이없는 시험 내용에 유리는 차마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패배하라니!
세상에 그런 시험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설령 진짜로 패배하라고 해도.
‘전부 급소만 노리고 있으면서 패배는 무슨!’
적어도 항복을 외쳐선 안 된다는 직감이 왔다. 그런 걸 바라는 시험이었다면 문제가 성립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패배를 해선 안 됐다.
시작은 심장을 찔러서 옆으로 검을 쳐내면, 옆으로 틀어지다가 팔뚝을 베었다.
겨드랑이에 있는 대동맥을 베려고 해서 아래로 쳐내 막으면 허벅지를 베었다.
마리가 정말로 최선을 다한 공격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적어도 유리는 목숨에 위협을 느꼈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해……!’
이런 유형의 전투 타입은 까다로웠다.
안 받아칠 수 없고, 받아치면 자잘한 상처가 쌓여서 점점 전세가 불리해진다. 누적된 피로감 때문에 오랜 시간 버티기도 어려웠다.
‘잠깐만. 내가 어째서 마리 님의 전투방식을 알고 있는 거지?’
사람과 제대로 검을 맞대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유리였다.
훈련이나 대련은 열심히 해봤지만, 그간의 싸움을 비추어 보건대 마리 같은 전투 방식은 처음 겪었다.
그러나 분명 어디서 이렇게 싸운 자를 본 적 있다.
‘게슐츠 단장님!’
용병단 시절, 게슐츠는 힘을 뺀 검술을 구사하기로 유명했다.
그의 지론에 따르길.
“마수는 학습된 본능으로 싸우는 족속이야. 어떤 식으로 공격하고 방어할지를 몸소 깨달은 놈들이지.”
“그게 단장님의 검술과 관련 있나요?”
“마수 놈들은 그 본능이 너무 강해서 죽어라 싸우려고 한다. 자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급소를 노리는 것도 좋지만 판을 끝까지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게 사냥 성공의 비결이다.”
마리는 그런 게슐츠와 검술 자체는 다를지언정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는 같았다.
마수 사냥.
용병단에서 같이 자잘한 의뢰를 다녔던 유리도 체득했던 전투 방식이었고, 그래서 마리와의 싸움이 익숙했다.
‘여기까진 이해가 됐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답은 방금 전 했던 종 베기 훈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마리가 꼬장을 부린다고 해도 사리분별 못할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시험이라는 건 학습을 토대로 확인해보는 절차니까.
유리는 사냥 당하는 마수였다. 본능적으로 공격하고, 본능적으로 치명타를 막는 마수.
‘확실한 건 패배는 피할 수 없다.’
푸확!
지금도 괜히 발목으로 날아드는 검을 쳐냈다가 자세가 낮아지는 바람에 어깨에 선혈이 그어졌다.
차라리 마리가 한방만 노리고 들어온다면 반격할 기회라도 있겠지만, 자잘한 공격만 반복하는 마리를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이런 판단이 가능한 것이 마수와의 차이점이었으니.
‘어떻게 패배하느냐가 중요하다.’
유리는 그렇게 예상했고, 예상대로 마리가 바란 답은 패배의 방법이었다.
방법과 전투 방식, 모든 걸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면 다음은 선택하고 실행하면 되었다.
마리는 고민에 빠진 유리의 낯짝을 보고 흥미가 솟았다.
‘일방적으로 맞고 있으면서 당황하지 않고 있군.’
확실히 지금까지 봤던 어떤 생도들보다 냉철한 마인드를 가졌다. 그것만큼은 인정할 법했다.
이젠 뛰어난 정신력을 받쳐줄 진짜 실력만이 남았다.
그러나.
마리도 모르게 유리는 예상외로 길게 버티고 있었다.
‘애초에 이걸 져야 되나?’
이길 수 없다. 무조건 져야 한다. 그것이 시험 내용이다. 이미 현명하게 패배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런데도 선뜻 마음이 가질 않았다.
‘질 수 없어.’
마음 속 깊이 극한으로 달아오른 투쟁심은 유리에게 싸움을 종용했다.
유리는 그 본능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
보상이고 뭐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붙어보고 싶은 강자와 싸울 기회에서 시험 때문에 패배하는 방식을 고민하긴 싫었다.
딱 한 번, 그 한 번이면 충분했다.
터엉! 유리의 왼쪽 쇄골에 검이 맞닿자 살을 파고들지 못하고 겉에 두른 마나에 검이 멈췄다.
쇠와 쇠가 충돌한 굉음에 마리는 인상을 구겼다.
“무슨 짓을……!”
마나가 흐르는 혈을 뚫기에도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부족했었다.
그러나 어깨 근처에 두른 마나는 생각보다 훨씬 농도가 짙었다.
‘강제로 마나를 주입시켰어?’
혈이 터질 걸 감수하면서 마나를 넣었고, 그 결과 방어엔 성공했지만 살갗 위로 검은 피가 번졌다.
이 이후 결과가 어찌 나오든 저 어깨는 한동안 쓰지 못한다. 치료가 될지조차 불분명했다.
그렇게라도 희생을 감수해서 이기고 싶었다.
“멍청하긴!”
마리는 욕지거리를 뱉었다. 희생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검은 마나를 부수고 쇄골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틈 하나만으로 유리에겐 그녀의 머리를 겨눌 기회가 생겼다.
“합!”
어깨에 있던 마나까지 전부 검으로 집중시켰다. 단 일격. 마리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파캉!
마리 얼굴에 씌워진 마나에 칼끝이 닿기 무섭게 검신이 산산이 부서졌다.
“아…….”
쇳조각이 눈앞에서 흩날렸다.
유리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도망가거나 파고드는 검을 막을 생각조차 안 들었다.
몸에 힘이 전부 빠져버려서.
꼼짝 못할 정도로 진이 빠져서 통증마저 무뎠다.
결국 유리는 선 채로 정신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이런 몹쓸 놈.”
마리는 짜증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쇄골에 이어 반으로 가르려고 했던 검이 사실은 어깨 근육만 잘랐기 때문이다.
마리니까 반응했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유리는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다.
마리는 검을 뽑아 유리를 받쳐 들고는 대기 중이던 의무관들을 불렀다.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마리는 기절한 유리를 보며 쓰게 웃었다.
“지라고 했더니 이기려 들어선 어쩌자고, 쯧.”
유리의 마지막 일격은 발악이나 어쩔 수 없는 수가 아니었다. 하물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패배는 더더욱 아니었다.
명백히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공격이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검을 내질렀을 때만 하더라도 느껴지던 살의가, 마리와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니까.
그것이 고의였는지.
아니면 지쳐서 끝까지 다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답은 유리만 알고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