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59
제59화
“패배하라고 했는데 진짜로 덤빈 건가?”
일주일 후.
1인용 의무실에 누워있던 유리에게 이자벨이 병문안을 찾아왔다. 마리와의 대련 이야기를 들은 이자벨은 푸념 섞인 잔소리를 늘어놨다.
병상에 누워서 왼쪽 어깨와 팔을 완전히 붕대로 고정한 유리는 그녀가 가져온 과일을 껍질 채 씹었다.
“죽일 듯이 공격하는데 지라고 하면 누가 지겠어.”
“시험 내용도 알았다면서 굳이…….”
“이자벨도 교관 대련 때 팔다리 빠졌는데도 싸웠다고 하지 않았나?”
“그그, 그야! 그, 그거랑 그대랑 비교가 되나! 그대는 단장님이랑 싸워놓고!”
사실 이자벨이 그 날 유리 다음으로 부상이 심했다.
역대 생도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부상이었다나.
그나마 그녀는 빠르게 회복한 반면, 유리는 상처가 깊거니와 뼈가 산산조각 나서 성력으로도 회복이 더뎠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오기를 부렸다. 교관님들이 봐주는 걸 알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열 받아서?”
“화가 나기도 했고, 좀 억울한 면도 있었다. 내 자신이 이것밖에 되지 않나 싶어서.”
“진짜 오기로 했네.”
“그래 봤자 졌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교관을 상대로 제대로 버틴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자벨은 못내 교관과 제대로 싸워보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하지만 많은 티를 내지 못했다.
제일 분했던 건 유리였으니까.
엊그제만 하더라도 병문안을 와도 아무 말 없이 멍하게 있던 그였다. 헌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표정이 밝았다.
‘대체 어떤 대련을 했던 거지.’
혹시나 해서 몇 번 넌지시 물어봤으나, 유리도 딱히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이자벨처럼 오기로 싸웠다고만 할 뿐.
그때, 의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제복 차림의 마리였다.
그녀의 등장에 이자벨이 급히 일어나서 경례를 올렸다.
“밤의 영광을. 단장님을 뵙습니다.”
“불의 영혼 계승자가 있었군. 병문안이냐?”
“네.”
딱, 딱.
대나무 지팡이가 다가오자 없던 긴장감이 닭살처럼 돋았다.
확실히 벤헬링턴과는 다른 박력이 느껴진다. 벤헬링턴이 거대한 산이라면 마리는 거칠게 굽이치는 계곡이랄까.
한 번 휩쓸렸다간 헤어나지 못할 기세가 풍겼다.
마리는 자연스럽게 유리 발아래에 섰다.
“몸은 어떠냐.”
“보다시피 망가졌습니다.”
“내 탓이라는 거냐?”
“설마요. 저한테는 영광의 상처입니다. 할머님의 진심을 받아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다고요.”
그나마 대련이었으니 망정이지.
대개는 마리한테 공격당하고 살아남는 경우는 없었다. 벤헬링턴과 싸워도 마찬가지.
괜히 세계관 최강의 용가가 아니다. 괜히 그 남편에 그 아내도 아니고.
이자벨은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비키겠습니다.” 라며 방을 나갔다.
단둘이 남자 마리가 먼저 운을 뗐다.
“이번 훈련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겠지.”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하는 나도 부조리해서 짜증났는데 네놈들이 뭐가 아니야.”
짜증을 부렸던 이유가 그거였군.
유리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받으면서 몸소 느꼈겠지만, 극한으로 치달으면 누구든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싸우게 된다. 특히나 용인인 네놈들은 투쟁심까지 있어서 통제가 더 어려워. 그걸 통제하고 인내하는 게 이번 훈련의 목적이었어.”
“그래서 교관과의 대련을 시험이 아니라 훈련이라 한 것도…….”
“괜히 교관들이 네놈들을 봐줬겠느냐.”
훈련이기에 교관들은 누구도 진심으로 생도들과 싸우지 않았다.
단순히 생도들이 지쳐서가 아니라, 생도들을 더더욱 극한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였다.
“보통은 교관과 싸워서 져야 정상이야. 교관 놈들한테 봐주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다치지 않게 봐주라는 거였지. 지라고 한 건 아니었어.”
그랬는데.
패배가 목적이었던 대련에서 유리는 교관을 이겨 버렸다.
당시만 떠올리면 마리는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내가 유리 네놈에게 시험을 걸었던 거다.”
“어떻게든 패배시키려는 억지처럼 들립니다만.”
“억지 맞다. 패배의 순간까지 몰릴 정도로 곤란해져야지 본성이 나오는 법이라서.”
지친 생도들 상대로 이기는 것쯤이야 우스웠다.
그러나 교관들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생도들이 더 지칠 때까지 몰아붙였다.
더 이상 생도들이 지쳐서 싸우지 못할 즈음이 되어서야 교관이 승리하도록 훈련이 설계되었다.
결국 승패와 상관없는 결말 없는 대련이었던 셈.
“당장은 뭔지도 모르고 짜증만 날 게다. 하지만 이런 훈련을 해 보고 안 해 보고의 차이는 크다. 특히나 전장에서 커.”
“이해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해보는 건 중요하죠.”
“겪어봤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어렸을 적에 많이 해봤죠.”
용병단에서 맡았던 의뢰에서 유리는 죽음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어봤다. 최근에는 락타샤와의 싸움에서도 위기를 느꼈었다.
무엇보다.
티르빙에 의해 암살당할 뻔했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런 경험, 그리고 앞으로도 닥칠 위기를 더 알기 때문에 유리는 더더욱 패배를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네놈한테 이번 훈련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나 보구나.”
“그럼…… 전 시험에 합격한 겁니까?”
예상했던 질문이 나오자 마리는 이마를 짚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이걸 합격이라 해야 좋을지.
결과적으로 유리가 했던 최후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도리어 제대로 당해서 훈련의 목적대로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유리의 마지막 일격은 분명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패배를 가정하지 않고 확신이 찼으며.
생각 없이 한 공격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틈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공격을 가했다.
‘질 걸 알면서도 지지 않겠다는 일격을 무어라 해석해야 좋을지, 참…….’
역설적인 일격을 두고 마리는 지난 시간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차라리 유리가 막무가내식으로 내지른 공격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기엔 공격 자체가 치밀했다.
단순히 살을 주고 뼈를 취해서가 아니다.
유리가 건강했다면 적어도 유효타는 성공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리는 굳은 얼굴로 유리를 내려다보았다.
“말하지 않았느냐. 억지를 부려서라도 네놈이 패배해야 했다고.”
“통과군요.”
“그래.”
그녀는 유리에게 작은 수정 하나를 던졌다. 속이 비치는 타원형 수정이었다.
매끈한 표면에는 푸른 빛이 감돌았다.
유리는 엉겁결에 수정을 받아들고 살폈다.
“이게 뭐죠?”
“마수의 알이다. 귀한 거라는데, 주운 놈 말로는 뭔지도 모르면서 귀하다고 하더구나.”
“저한테 버리시는 건 아니죠?”
“버리면 안 되는 거냐?”
저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유리는 알을 햇빛에 비추어보았다. 투명한 속은 반대편마저 보였다.
“근데 적어도 뭔지는 알려주셔야…….”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정 궁금하면 채럿한테 물어보거라. 그 애라면 알 테지.”
“그렇…… 잠깐만요. 할머님께선 채럿에 대해서 알고 계신 건가요?”
“…….”
구태여 대답할 필요는 없이 최근 유리의 행보를 전부 알고 있는 마리였다.
벤헬링턴이 그 과정에서 유리에게 굉장히 많은 편의를 봐줬다는 사실도 안다.
마음 같아선 벤헬링턴에게 왜 그랬냐며, 유리에겐 무슨 심보냐며 따지고 싶었다.
오늘 그럴 작정으로 오긴 왔다만.
유리를 보고 있자니 벤헬링턴이 무슨 심경으로 그랬을지 이해되었다.
“이만 가 보마.”
마리는 자리를 떠나면서 대답을 피했다.
의무실을 등지고 나오던 그녀가 건물을 나와 입구에서 잠시 멈춰섰다.
따스한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오후.
마리는 유리가 있을 병실 창문을 올려다 봤다. 마침 창가를 내다보던 유리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천진한 얼굴이 딱 봐도 용인답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인사성과 말투, 행동들.
다른 놈들 같았으면 착해 빠졌다면서 역정을 냈겠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엔, 자꾸 먼저 떠난 자식이 떠올랐다.
* * *
늦은 오후가 되면 항상 채럿이 병문안을 오곤 했다. 마리가 병실을 나가고 나서도 채럿이 찾아왔다.
그녀에게 마리가 줬던 수정을 주고 뭔지 물었다.
병석 옆에 앉은 채럿은 한참을 돌려보았다.
“으으음……. 이걸 진짜로 주셨다고요?”
“응. 왜?”
“이거 드래곤 알이에요.”
“……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채럿은 태연하게 알을 돌려주며 재차 강조했다.
“드래곤의 알이요.”
“어, 음, 그러니까 드래곤은 멸망했잖아?”
“부르기만 그렇게 불러요. 진짜 드래곤 알은 아니에요.”
“난 또……. 근데 굳이 왜?”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속이 비치는 알은 없으니까요. 종종 제 정보망에도 나타나요.”
세계 곳곳엔 아직 드래곤의 알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알들이 남아 있었다.
보석을 닮은 이 알들은 시간이 갈수록 색이라든가 크기가 커졌다.
이 때문에 생명력을 가졌다고 여겼으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종류라 드래곤의 알이라 불렸다.
하지만 색과 크기가 변하다가 끝끝내 부서져서 싸구려 보석만도 못하게 취급당했다.
“이거 진짜 드래곤 알은 아닐까?”
“오라버니도 참. 드래곤이 살아 있었으면 용가의 가주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셨을 거예요. 조상님을 되찾은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알을 낳은 어미가 있을 거 아냐.”
“저도 그 점이 항상 궁금했어요. 알을 낳았다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거든요. 알에서 뭐가 태어났다는 정보도 없고요.”
어미 없이 혼자 나타난 알이라. 가당치도 못한 이야기였다.
자웅동체나 자가 분열이 가능한 마수들조차 모체는 존재하거늘.
‘할머님께선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주셨겠지.’
말만 들었을 땐 전혀 모른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가문 내로 갖고 들어오지는 않았으리라.
‘티르빙은 아는 거 없어?’
[이런 알들이 과거에도 오고 가긴 했는데, 글쎄. 진짜 드래곤 알을 본 적은 없어서.]‘고대 시절에 드래곤들이랑 알고 지냈다면서.’
[자식 사랑이 끔찍해서 드래곤들은 자기 알을 남한테 자랑하지 않아.]자식 사랑이 과하면 반대로 자랑을 해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리는 알을 손바닥 위에서 굴려보다가 품속에 넣었다.
부화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마리가 준 선물이니까.
“아, 맞다. 오라버니! 숙제가 있어요! 자유의 관 교관님이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나 없다고 숙제를 막 주셨네.”
“오라버니가 무리하게 대련을 해서 입원한 게 잘못이죠.”
원래 자유의 관은 하루에서 이틀 정도 교관이나 정기 훈련을 받고, 나머지 기간은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용인 가문의 생도들은 기본에서는 이미 수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큰 배움은 필요 없었다.
남은 건 스스로 고민하고 대련하면서 답을 찾는 것.
다만, 갓 입단한 생도들에겐 조금이나마 길을 잡아주고자 가끔 숙제가 내려왔다.
채럿은 미리 챙겨왔던 쪽지를 유리의 무릎에 올렸다.
“볼까.”
어떤 숙제를 줬을지 기대를 갖고 반으로 접은 종이를 펼쳤다.
그러나 내용물을 보자마자 유리는 인상을 구겼다.
쪽지엔 숙제 내용과 아래에는 몇몇 생도의 이름이 보였다.
내용이야 둘째 치고.
다른 생도의 이름이 적혔다는 사실에 더 이상 쪽지를 보기가 싫어졌다.
왜냐하면 이 생도의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같이 숙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이건 즉, 조별과제를 의미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