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갈락타시스는 범죄자의 도시답게 항상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툭하면 서로 싸우고 빼앗고. 덤으로 어우러지는 술과 담배 냄새 또한 절벽 사이를 비운 적이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거리는 시끄러웠다.
“죽어라!”
“이 개자식이!”
“배를 갈라서 술로 채워주마!”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사이.
그 틈으로 테오가 최대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며 접선 장소로 향했다.
걸어가는 몸짓은 자연스러워보였으나, 은근히 조심스러웠다. 유리가 해준 조언 때문이었다.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고 몸도 부딪히지 마라. 여기 놈들은 무엇으로든 시비를 걸 수 있어.”
그 정도 조언이야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현실을 보니 또 달랐다.
심지어 기사단이 매복했다는 정보를 흘리자마자 갱단원 중에서도 힘 좀 쓴다는 자들이 빠져나간 직후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보냈다.
‘유리 님께선 어디서 이런 정보를…….’
유리가 조원들에게 알려준 정보는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전부 들어맞았다.
그 자체만 해도 놀랍거늘.
정보와 다른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유리는 놀라운 임기응변을 선보였다.
특히 솔리드녹스라고 당당히 속인 것도 모자라 제국의 황실 기사단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다니.
‘실망시켜드릴 수 없어.’
유리가 여기까지 이끌어 와서 포크질만 제대로 하면 되었다.
이것도 못해서 폐를 끼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테오뿐만이 아니었다.
링링과 빅베어도 작전이 들어맞을 때마다 감탄하면서 성공하고 싶다는 의욕이 치솟았다.
‘여기다.’
마침내 테오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길 한 가운데 있던 국수집에선 덩치 큰 한 남자가 태연하게 국수를 먹고 있었다.
워낙 덩치가 커서 풍겨지는 위압감에 그 곁에는 아무도 앉지도, 시비를 걸지도 못했다.
테오는 그 남자 옆에 앉았다.
“여기 국수 하나 줘요.”
“예이~.”
테오는 비실비실 웃으며 돈을 올려놓고 국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히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 형씨 근육이 쩌는걸. 이 동네에서도 이런 몸은 보기 드문데. 밖에서 힘깨나 썼나 봐.”
“음.”
짤막한 대답. 빅베어였다.
그는 덤덤히 국수만 먹었으나, 누구도 그들이 구면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오히려 빅베어의 덩치에 겁을 먹어서 제대로 그들을 살피려는 이가 없었다.
“나도 밖에선 한 가닥 했지. 아, 물론 몸이 아니라 입으로 말이야. 크크크.”
테오의 별 거 아닌 말에도 빅베어는 국수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테오는 알게 모르게 암호를 전달했다.
몸이 아니라는 건 별 다른 충돌이 없었다는 뜻, 입이라는 건 기사단 정보를 잘 흘렸다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건 브램을…….’
“저리 비켜! 비키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저 멀리서 웬 무리가 사람들을 험악하게 비집고 전진했다.
갈락타시스에서 저럴 수 있는 무리는 갱단밖에 없었다.
저들은 아마 대기하고 있던 비상대기조로 유리에게 향하고 있었을 터.
두 번째로 갱단 무리의 등장에 테오가 비죽 웃었다.
‘브램을 낚으셨군요. 이제 두목을 확인해야 하는데……. 대체 이놈은 어디 있는 거야?’
테오가 정보를 흘리는 사이, 빅베어는 도주로를 살폈고, 링링이 지명수배지에 있는 간부급 갱단원과 얼굴을 대조했다.
링링이 전해주기론 부두목이 기사단을 상대하러 간 것까진 확인됐으나, 정작 중요한 두목의 행방이 묘연했다.
‘시간이 없어. 일단 작전이 먼저다.’
두목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도 작전을 그만두라는 가정은 없었다.
테오는 괜한 불안을 떨치며 빅베어와 눈을 마주쳤다.
“이봐요, 형씨. 거 사람 무안하게 말 안 할 거야?”
“음음.”
“이게 아까부터 진짜. 형씨, 사람이 말을 걸면 대꾸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사람을 무시하나!”
쿠당탕!
빅베어가 한 젓가락 드는 순간 테오가 국수 그릇을 팔로 밀어서 팽개쳤다.
국수 주인은 오늘도 난리구나, 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이 있던 손님들은 식사 자리가 망가질 것 같자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빅베어도 한 바탕 해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오~ 말은 없어도 몸은 솔직한 거냐? 좋아! 붙어보자고!”
힘차게 주먹을 휘둘러보지만 빅베어는 몸을 비틀기만 해서 피해버렸다.
그 덕에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테오가 다른 손님을 덮쳤고, 그 손님도 넘어지면서 다른 손님을 덮쳤다.
“이 새끼가 피해?!”
테오가 연신 빅베어에게 달려들고, 그 사이 다른 손님들 사이에서도 시비가 붙었다.
“재수 없게 옆에 이상한 놈이 앉아가지고. 너 때문에 내 식사를 망쳤잖아!”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어디서 비실대는 꼴이 잡범이구먼. 안 닥치고 얼른 꺼져!”
“꺼져? 닥쳐?! 주둥이를 그냥!”
테오로부터 비롯된 사고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손님들은 엉뚱한 사람을 붙잡고 늘어졌다.
결국 싸움이 번졌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거나 집히는 대로 던졌다.
갈락시타스는 원래 이런 곳이다.
인과와 상관없이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일단 패고 보는 동네.
‘기가 차네.’
몇 번의 거짓 합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었다. 어느새 테오는 순식간에 번진 싸움을 구경했다.
빅베어도 그 광경을 보다가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얼마 뒤 테오 또한 맡은 바 작전을 위해서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급 범죄자 체포 과제는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 * *
겉으로 봐선 허술한 장물아비 같았던 브램이지만, 역시나 그는 7서클 마법사에 많은 범죄자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다.
특히나 살기에 관해서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으니.
“어딜 뒤통수를!”
“……!”
유리가 검을 뽑아 내려치려고 하자, 브램이 기다렸다는 듯 창고에 설치했던 함정 마법을 발동시켰다.
티르빙의 소유자라서 마법을 자제했으나, 공격 의사를 내보인 이상 방도가 없었다.
키이잉!
날카로운 공명음이 울리면서 천장과 바닥, 벽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들이 빛을 냈다.
‘8서클 환술 마법, 거울 장막!’
유리는 더 빨리 그의 뒤통수에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이 닿으려는 찰나.
빛이 삽시간에 공간을 덮쳤다가 사라지면서 어둠이 모든 물체를 잡아먹었다.
유리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자리에 있어야 할 브램은 어둠에 삼켜져서 사라졌다.
환술 밖에선 브램이 이 모습을 보며 비실비실 비웃었다.
“크크크, 날 너무 우습게 봤구먼.”
예상외로 브램은 그렇게까지 부주의한 멍청이가 아니었다.
이곳은 범죄의 도시.
도둑질과 약탈이 당연시되는 곳으로 이 창고도 그런 대비가 되어 있었다.
유리처럼 창고의 존재를 알고 들어오려는 놈들도 여럿 있었던지라 함정은 기본으로 깔렸다.
“이러면 괜히 갱단 놈들 손을 빌렸으니. 칫, 돈 아깝게스리. 어디서 뭘 하다 온 놈인지 몰라도, 사지를 도려내서 팔아주마.”
브램이 발동시킨 환술은 ‘거울 장막’.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켜서 정신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마법이었다.
이렇게 되면 밖에서 칼로 찔러도 자기가 죽는 줄 전혀 모르며, 파훼하려 해도 보다 강한 역진(逆進) 마법이 아니고선 절대 불가능했다.
“보자보자. 티르빙을 분리하려면 티르빙이 주인을 죽이면 되던가, 내가 주인을 죽이면 되던가? 크크크!”
답은 이미 정해졌다.
브램은 단검을 꺼내 어딜 쑤실지 몸 곳곳에 칼끝을 대보았다.
그러다 목젖 앞에서 멈췄고, 슬금슬금 비집고 들어가듯 칼을 돌렸다.
“잘 가시게―!”
그리 말하며 손에 힘을 주려는 찰나.
피 한 방울이 맺히기 무섭게 날의 형태로 변하더니 브램의 손목을 베었다.
서걱!
비명조차 지를 시간이 없었다. 브램은 일그러진 얼굴로 제 손이 갈라지고 떨어지는 걸 구경만 해야 했다.
툭!
“으, 으아……. 으아아아아아악!!!”
브램이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아 피가 솟구치는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쾅!
두 사람이 들어왔던 벽이 폭발하듯이 부서졌고, 파편 조각이 브램의 머리통을 강타하더니 그는 그대로 기절해서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후, 뚫린 벽으로 빅베어가 들어왔다.
“음.”
빅베어는 쓰러진 브램과 돌을 맞고도 멀쩡한 유리를 번갈아 보았다.
원래 비명이 들리면 소리가 나는 곳을 부수고 들어와서 브램을 제압하라고 유리가 일러뒀었지만.
일단 그럴 필요는 없고.
“끄으으.”
덩달아 파편에 맞은 유리도 환술에서 깨어났다.
벽이 부서지자 마법진도 망가지면서 마법이 풀린 덕이었다.
유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아우, 아파라. 돌무더기를 맞아본 건 처음이네.”
“음.”
빅베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유리는 그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다행히 어디 부러지거나 터지진 않았다.
“진짜 힘 하나는 엄청나군.”
다른 두 명의 조원과 다르게 빅베어의 자랑은 힘 그 자체.
마나를 실어서 주먹질을 했을 뿐인데도 유리가 들어왔던 입구는 더 이상 입구라 불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냥, 통로랄까.
부서진 잔해만 없었으면 터널이라 봐도 무방했다.
“잘했다, 빅베어. 브램을 포박해놓도록. 할 수 있으면 단전에 코어를…… 아니다. 그랬다간 죽겠어.”
“음.”
시키는 대로 빅베어는 준비한 포승줄로 브램을 꽁꽁 묶었다.
그 과정에서 힘이 너무 들어가는 바람에 갈비뼈가 부러진 건 아무도 몰랐다.
그 사이 유리는 난장판이 된 창고를 넌지시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게 아까 죽이자니까. 뭔 고생이니.]“말했잖아. 창고 위치를 알아야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네가 커버할 수 있다고 해서 믿었지.”
[이 언니를 너무 맹신하네.]원작을 통해 이미 거울 장막이 창고에 깔려 있던 걸 알고 있었던 유리는 파훼법을 미리 조원들에게 알려줬었다.
사실 환술 파훼라 할 것 없이 함정 마법이라서 마법진만 부수면 됐다. 그걸 빅베어가 힘으로 해결했고.
또한 환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티르빙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환술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정신을 지배해서 조종한다고 알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환술은 정신이나 영혼이 아닌 육체를 먼저 지배한다.
뇌에 저장된 기억을 보여주는 환각이라든가 환청, 무통 등등.
가짜 정보로 육체에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 환술의 기본이었다.
반면 육체가 없는 티르빙한테는 유리가 보는 것을 공유할 뿐이지 환술에 걸리진 않았다.
그렇기에 유리가 환술에 헤매는 동안 티르빙이 그를 보호해줄 수 있었다.
“어차피 널 빼앗으려면 네가 날 죽여야 하잖아. 근데 네가 나 없이 살 수 있겠어?”
[그렇긴 하지. 이 언니는 너 없인 못 사는 몸이란다.]“또 징그러운 소릴…….”
[꺄하핫~.]티르빙을 빼앗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유리를 죽이면 됐으나, 지금의 티르빙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가 인정한 주인이다.
그 주인을 지키는 것이 신물의 맹세이자 충성.
[오늘 빚졌으니까 끝나면 피 줘야 돼. 요즘 못 먹어서 피부가 푸석해진 거 같단 말이야.]“핑계는 아주…… 알았어. 약속은 지키지.”
유리는 창고를 둘러보며 필요한 물건을 찾아봤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작에서 나왔던 묘사대로 13번째 선반의 2층 21번 카테고리를 찾자마자 원하던 물건이 모습을 보였다.
마치 백은을 엮어 만든 천이 막대기에 감겨 있었다. 창고가 어두운 편인데도 천에선 은은한 빛이 났다.
‘아다만티움 실크.’
그리고.
이번엔 설정집에서 봤던 정보에서 봤던 넘버링을 따라갔다.
이번 진열대엔 유리관 안에 갇힌 산 곤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고 주황색이 감도는 거미를 찾았다.
“하이드로.”
원하는 물건을 전부 확인했다. 유리는 창고 밖에서 뒹굴고 있던 꾸러미를 들고 와서 물건들을 챙겼다.
값나가는 물건들이 더 있었으나, 지금은 최소한만 챙겨서 기동성을 잃지 않는 게 중요했다.
“유리 님!”
그때 밖에서 테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합류 지점에 미리 가 있어야 할 그가 왜?
유리는 뚫린 입구로 얼른 뛰어갔다. 그곳엔 테오만이 아니라 링링도 함께였다.
그들이 여기 있다는 건 작전에 지장이 생겼다는 의미였으니.
아니나 다를까.
테오가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기사단을 상대하러 갔던 갱단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