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유리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놈들이 왜? 기사단을 상대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조우하기도 전에 기사단은 도망갔고, 갱단은 기사단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산 아래까지만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있어요.”
“황실 기사단이 눈치 챈 모양이군.”
매복이 들켰으니 정면으로 싸우는 것보다 도주가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그래도.
‘기사단을 몰래 습격했다면 타격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기사단이 피해 없이 도망갔다면 갱단이 습격하지 않았다는 건데.’
기사단에게 겁만 줘서 도망가게 하려는 속셈이었을까.
일부러 도망갈 여지를 준 걸까.
“어떡하죠, 유리 님. 이대로라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몰래 빠져나갈 루트도 없고요.”
원래 계획은 3서클 이하의 갱단원들만 상대하면서 도주로를 뚫어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도망갈 길이 여럿 있긴 하지만, 지형적으로 위험해서 차라리 갱단을 뚫어서 나가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
그 때문에 갱단에서도 실력자들을 빼돌렸거늘.
유리는 빠져 나갈 방도를 고민하다가 조원들의 얼굴을 봤다.
‘다들 동요가 심해.’
겉으로 다들 괜찮은 척해도, 전부 유리만 쳐다보고 있다.
마치 어미 새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서 조금씩 공포가 물들어갔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생도이니 작은 일에도 흔들리기 쉬웠다. 다들 내색하지 않아서 그렇지. 출발 전에 엄청 긴장했으리라.
‘나도 한때 저랬었지.’
유리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정말로 긴장했었으니까.
용병단에서 허드렛일만 하다가 처음 나갔던 실전에서 그렇게 떨어본 적이 없었다.
암살당할 때도 멀쩡했거늘. 오히려 배움이 많아지면서 두려워지는 것도 많아졌다.
“동요하지 마. 이 정도는 다들 예상했잖아.”
“하지만…….”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든 살려서 보낼 거다. 작전도 성공시킬 거고.”
유리는 최대한 냉정한 말투로 링링에게 물었다.
“브램이 부른 갱단원은 어디쯤이지?”
“여기서 한 블록 정도 거리에 모였습니다.”
“테오, 기사단을 상대하러 갔던 놈들이 도착하기까지는?”
“산 아래까지 추격했다가 올라오느라 1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3번 도주로, 거긴 확인했나?”
“말씀하신 대로 완만한 절벽이 있었습니다. 몇 번 구를 각오를 한다면 그쪽이 빠릅니다.”
“시간상으론 전혀 문제가 없군.”
물론, 촉박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긴 했지만. 유리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창고를 돌아봤다.
아직 안에는 가져가고 싶은 물건들이 산더미였다.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도 있고.
“잠깐 기다려.”
유리는 다시 창고로 들어가 한 번도 둘러보지 않았던 섹션으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창고에서 눈에 띄었던 물건이 있었다.
예술품들이 진열된 곳으로 천으로 그림과 조각상 따위가 가려졌다. 그 중 거대한 조각상에 다가갔다.
화악!
천을 거두자 마치 고대 로마 황제를 빚어놓은 듯한 상아 조각상이 드러났다.
머리에는 월계수 왕관을 쓰고 손과 등에는 창, 검, 방패, 흉갑으로 무장했다.
특이한 점은 머리에 난 산양의 뿔이었다.
[뭐야? 이거 마신 님이잖니!]‘혹시나 했더니 역시. 마신 켈리악스가 맞았구나.’
[알고 있었어?]‘사람 형상에 뿔이 난 조각상 하면 그것밖에 없지.’
마신 켈리악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전, 신과 악마, 정령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마족과 악마를 통치하고 파괴의 근본을 지녔던 존재.
[조각상으로 봐도 여전히 멋지시네.]‘실제로도 이렇게 생겼어?’
[얼추. 하지만 내 기억엔 훨씬 더 잘생기셨어. 너도 보면 끔뻑 넘어갈걸?]외모는 모르겠고.
마신 켈릭악스에 관한 기록은 책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물건들은 전 세계에서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그를 숭상해선 당연히 안되고, 개인이 기록이나 책, 관련 아티팩트 따위를 가지고 있어선 안됐다.
악마 숭배는 그 이름만으로 알 수 있듯이 위험했으니까.
이 조각상을 만든 자들도 죽었고, 가지고 있었던 자들도 죽었다.
눈앞에 있는 조각상은 그 중 유일하게 남은, 가장 특별한 것이었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슈나이더가 만들었다니. 진짜 살아있는 거 같네.’
[슈나이더?]‘설정집에서 너도 봤잖아. 200여 년 전에 사람을 빚어서 진짜로 산 사람을 만들었다는 조각가. 그래서 이 조각상이 제일 위험했지만 암시장에선 제일 값이 나갔지.’
슈나이더가 만든 조각이 진짜로 살아났다는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그가 만든 물건은 불길한 이야기가 많이 따랐다.
워낙 값어치가 나가다 보니 뺏으려고 살인이 벌어지기도 했고.
켈리악스에게 홀려서 진짜로 악마를 숭배하게 됐다고도 한다.
카이는 이 불길한 조각상을 미래에 파괴해버렸다.
미신뿐일지라도 악마와 얽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파괴할 명분은 충분했다.
그때.
본의 아니게 조각상 안에 숨겨진 물건도 부숴버렸으니.
“티르빙, 나 원망하지 마라. 지금부터 끔뻑 넘어갈 짓 할 거야.”
[어?]텁, 후웅!
유리는 조각상에 손바닥을 밀착시키고 그대로 마나를 모았다가 단번에 분출시켰다.
귀에서 티르빙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이 미친놈아!!!]파사사삭!
마나가 주입되자 조각상에 금이 가더니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역대급 조각가가 만들어도 조각상은 조각상.
우르르, 상아조각이 떨어지고. 티르빙의 억장도 같이 무너졌다.
[아이고오, 마신 님!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제가 못난 주인을 둔 덕에!]“주인은 난데 왜 네가 더 난리야.”
[주인은 너라도 날 만든 건 마신 님이었거든!]“피 준다고 했던 약속 안 지킨다.”
[흐이잉…….]유리는 부서진 조각들을 발로 밀어내었고, 조각상의 껍데기 밑에 있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에서 보던 무구들이 실제로 조각상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걸 부수고 나서 카이도 조금은 후회했었지.’
슈나이더가 조각가로 이름을 알리면서 이런 무구를 실제로 입히곤 했다.
그리고 갑옷을 입힌 조각상 위에 석고를 덧입혀서 무구를 감췄다.
이 무구들은 마신의 무구를 진짜에 가깝게 흉내 내기 위해서 드워프를 통해 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이 바닥났고, 그나마 임시적으로 쓸 수 있는 건 딱 하나.
장갑이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유리는 장갑만 딱 챙겨서 끼고 밖으로 나왔다.
조원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3번 도주로로 브램을 데리고 빠져나간다. 가는 길에 3서클 놈들은 빠르게 상대하고 할 수 있다면 전투는 최대한 피하도록.”
“유리 님은요?”
“산에서 올라오는 갱단을 내가 막는다.”
“자, 잠깐만요! 유리 님! 혼자서 그놈들을 어떻게!”
겨우 진정시켰던 분위기도 잠시. 링링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다른 조원들도 반응이 똑같았다.
정작 유리만 태연했다.
“여긴 범죄자의 도시다. 변수가 많아서 제 시간에 나갈 수 있을지 불확실해. 내가 뒤를 막는 게 맞아.”
“그럼 적어도 같이…….”
“이런 말 듣긴 싫겠지만, 나 말고 시간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완강한 유리의 태도에 더 이상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사전에 이미 조원들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변수들을 고려했다.
그 변수에는 기사단을 상대하러 간 갱단원이 빠르게 복귀한다는 가정도 있었다.
그 가정을 이겨내기 위해선 유리 혼자서 시간을 끌어야 했고.
유리 말고는 적임자가 없었다.
“그대들의 마음은 잘 안다. 그러니 살아라. 누구도 다치거나 죽어선 안 된다. 이건 명령이야. 알겠나?”
“……넵.”
“좋아, 그럼 움직여. 빠르게 빠져나갈수록 좋으니까. 용가의 생도가 3서클 패거리를 못 뚫진 않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테오의 웃음과 함께 조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브램은 빅베어가 맡았다.
“살아 돌아오십시오.”
마지막으로 링링이 당부를 남긴 채 떠났다.
유리도 꾸러미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 * *
유리는 산 아래서 올라오는 갱단을 맞아주러 거리를 나와 내리막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쿵!
얼마 뒤 거리 쪽에서 폭음과 함께 소란이 일어났다.
‘시작됐군.’
조원들이 거리에 남아있던 갱단의 잔당을 뚫고 있는 소리였다.
그들이 거리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는 사이, 유리는 올라오는 갱단을 막을 참이었다.
“티르빙.”
[…….]“아직도 삐진 거야?”
[몰라.]“가끔 보면 어린애 같다니까.”
[몰! 라!]“크크.”
어차피 티르빙을 쓸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아직 세상에 티르빙을 드러낼 상황이 아니다.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무기를 드러내봤자 여러 곳에서 타겟만 될 뿐.
그래서 마신의 조각상을 깨부수면서 무구를 얻었다.
거리를 나와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온 유리는 나무 양쪽으로 우거진 길목에서 멈췄다.
그곳에 한 남자가 그루터기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은화를 굴리며 유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혼자 왔군. 다른 놈들은 빼돌렸나보지?”
양다리를 쫙 벌리고 앉은 그에게서 묵직한 음성이 흘렀다.
낯이 익지만, 기사단을 상대하러 갔다던 부두목은 아니었다.
수배서에서 봤던 또 다른 특급 범죄자, 갈락시타스의 두목인 킹슬리였다.
‘젠장, 생각보다 거물이 나타났네.’
킹슬리의 경지는 8서클, 혹은 그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경지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는 보기 드문 무투가였다.
순수하게 손과 발을 이용하는 무투는 무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에 있어서 단점이 많았다.
상대가 칼을 쓰면 맨손으로 싸워야 하는 격이라. 몸에 항상 마나를 두르고 싸워야만 했으며, 이는 극심한 체력 소모로 이어졌다.
이를 극복한 자만이 진정한 무투가로 불렸으며, 킹슬리는 그만한 수준이 되었다.
“갈락시타스의 제왕께서 반겨주다니. 영광인 걸.”
“질문에나 답해라. 네놈의 동료와 브램은 반대편으로 도망친 건가?”
“아니라면?”
“맞나 보군.”
킹슬리가 유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흉터가 새겨진 얼굴이 무덤덤하니 유리를 바라봤다.
조금의 동요도 없는 낯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브램을 보내줘야 하다니. 아쉽군.”
“브램을 돌려받을 마음은 없는 건가?”
“브램보다 네놈을 인질로 잡으면 더 나을 거 같아서. 그래서 내가 직접 이곳으로 왔다.”
브램이 갈락시타스 갱단원은 아니지만 서로 협력관계로 지내왔다.
환술로 사람들을 뜯어내면 그만한 대가를 갱단으로부터 받는 그런 관계.
맺고 끊음이 확실한 비즈니스 관계라.
이러면 브램을 이용한 거래는 물 건너갔고.
“날 인질로 삼는다고 브램을 돌려받는다는 확신은 없어.”
“안 되도 상관없다. 어차피 갈락타시스에서 누구 하나 죽고 사라지는 일은 부지기수다. 브램도 그런 식으로 치부하면 그만.”
“…….”
“무엇보다 내가 보기에 네가 두목 같더군.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책임감 있는 두목. 쥐새끼의 두목도 책임을 지는데, 왕국의 왕인 나도 책임을 져야 되지 않겠나.”
기세가 등등한 대사는 확실히 갱단 두목보단 말 그대로 왕에 더 어울렸다.
망나니 개차반 같은 놈이면 싱거울 줄 알았거늘. 유리는 다른 의미로 킹슬리가 만족스러웠다.
“마음에 드는군, 킹슬리. 처음엔 네놈이 나타나서 당황스러웠는데 만나보길 잘한 거 같아.”
“헛소릴 하는군.”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보자고.”
유리는 미리 꼈던 가죽장갑을 손목 쪽으로 바짝 당겼고.
장갑에 마나를 넣는 순간 청백색 마법진이 손등에 그려지더니 점점 손과 일체가 되어갔다.
따로 놀던 가죽이 유리의 손에 달라붙고, 우둘투둘 피부와 뼈가 올라왔다. 손톱도 자라나 짧은 칼날만큼 날카로워졌다.
그 모습은 마치 악마의 손과 닮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