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모든 그림은 단 하나의 방을 여러 각도에서 비춰줬다. 그 중 테이블을 감시하는 그림에만 엘라트리오 황녀가 나타났다.
그림 속 방이 어딘지는 몰라도, 그곳에 황녀가 있었다.
“납치도 모자라서 가둬놓고 감시를 했다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군.”
[호색한이라며. 더한 짓을 했을지도 몰라.]솔직히 인질에 손을 댈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상대는 황녀다. 손끝이라도 건드렸다간 인질이고 뭐고 후환이 좋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 전에 5년 동안 잡힌 인질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어떤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시간.
“개새끼들.”
지금까지 국외 작전이니, 정치니,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사렸지만.
이 그림들을 본 이상 곱게 처리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워워~ 진정해, 꼬맹이. 그림부터 살펴야지. 황녀 확보가 1순위라면서.]“알아.”
끓었던 마음을 가라앉힌 뒤 그림들을 살폈다.
하나의 방을 비추고 있는 그림은 이때까지 봤던 별장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한 마디로 황실 같았다.
별장 자체도 화려했건만 황녀가 있는 방은 황실에 더 어울렸다.
반짝이는 샹들리에라든가, 금칠이 된 침대, 이 세계에선 보기 힘든 유리 테이블 등등.
엘라트리오의 차림새도 황녀 시절보다 더 화사했다.
“여기가 어디지?”
[나한테 물어도 난 모른단다.]“아니, 그림을 잘 봐. 여긴 창문이 달라.”
출발하기 전에 건물을 조사해보면서 잠입하거나 탈출할 루트를 알아봤었다.
가장 좋은 건 더스트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였으며, 창문이나 기존의 입구는 고려하지 않았었다.
방비가 당연히 잘 되어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림 속 창문은 넓고 심지어 몇몇 곳은 열려 있어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건드렸다. 쉽사리 탈출이 가능해 보였다.
“애초에 어떤 납치범이 납치한 사람을 창문 달린 방에 가둬 놔?”
[흐응? 그러네?]어쩌다가 황녀라서 귀한 몸을 좋은 방에 가둬놨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이렇게 허술한 방은 처음 봤다.
저렇게 방이 개방되어 있어도 어떤 함정 마법을 걸어놨다면 말이 다르지만.
어쨌든 밖에서 봤을 땐 이런 창 딸린 방은 없었다.
“여긴 별장이 아니야.”
유리는 확신했다.
생각해보면 길잡이 벌레가 이곳으로 안내한 것부터 이상했다.
엘라트리오를 찾으라고 했으니 황녀를 찾아야 했는데, 이 그림방으로 왔다는 건 황녀의 흔적이 별장 안에서 이곳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달리 말해 엘라트리오 황녀는 여기에 없다. 하지만 더스트와 간부들이 지키고 있어.’
[황녀가 여기 없는데 뭘 지키고 있는 거지?]“티르빙, 진짜로 액자 같은 걸로 공간 이동을 하는 마법이 없어?”
[공간 이동 마법이 있었으면 마나 열차 같은 게 필요 없지 않았겠니.]“난 마법의 유무를 물은 게 아니야.”
“현재 공간 이동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냐는 거지.”
[그야…….]티르빙에게서 말이 나오다가 멈췄다.
이론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마법은 존재하지만, 쓸 수 있는 사람은 역사상 소수로 손꼽혔다.
원작 세계관에선 카이조차 쓰지 못할 정도로 고위 마법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
유리가 만났던 어떤 한 사람은 공간 이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었다.
‘빅스터 린테어 솔리드녹스.’
솔리드녹스 가의 차남이었던 그는 첫 등장에서 공간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빅스터가 용언 마법을 쓰긴 했지만, 글쎄. 그렇다는 건 솔리드녹스가 베리온 제국 황녀를 납치했다?]“추측일 뿐이지만, 가능성이 있어.”
공간 이동 마법이 진짜로 있다면 말이지.
유리는 다른 액자들을 하나씩 전부 뒤집어봤다.
“황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 하지만 지켜야 할 자들이 여기 있다는 건, 황녀가 출입 가능한 통로는 하나뿐이고, 그 통로가 여기 있을 거야.”
액자의 크기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건 사람 몸보다 컸고, 어떤 건 머리통만큼 작았다.
전부 다 뒷면에 그림이 똑같이 그려져서 통과가 되진 않았다.
그러다 뒷면이 없는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위에 그려진 그림부터 각도가 묘했다.
마치 창밖에서 방안을 들여다보고 그린 것 같았다.
“이거다. 이게 통로일 거야.”
[감시 마법이 아니라 다른 마법으로 뭔 짓을 한 것 같긴 하지만……. 진짜 용언 마법이라면 이 언니도 알 수 없어. 들어가는 방법도 모르고.]“모르면 물어봐야지.”
유리는 챙겨온 배낭에 액자를 넣고 대장 벌레를 다시 불러들였다.
“매복하고 있는 인원을 전부 찾아내줘. 가까이 있는 녀석부터.”
찌르르르!
기다렸다는 듯 벌레들이 흩어졌고, 한 마리가 방을 나가자마자 나무 바닥 틈으로 들어갔다.
유리는 티르빙을 뽑아서 달려가 바닥에 내리꽂았다.
푸욱!
“꺼억!”
나무를 꿰뚫는 감각에 이어 살이 뚫리고 비명과 피가 튀어 올랐다.
기습을 하려던 간부는 역으로 기습을 당할 줄 몰랐다가 손도 못 쓰고 고꾸라졌다.
그것이 학살의 시작이었다.
* * *
별장은 침입자를 대비해서 미로처럼 만들어놓고 기습을 할 수 있도록 숨겨진 공간을 만들어 놨다.
명령을 받은 간부들은 각자의 위치로 자리해서 침입자가 활개치길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침입자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뭐야? 어디로 간 거야?’
별장의 미로는 자연스럽게 매복지로 유도하도록 설계되었다.
조금만 방향 감각을 상실해도 같은 곳을 돌다가 죽게 되어 있으며, 간부들에게 다다르기 전에 다른 함정에 먼저 죽기도 했다.
헌데 별장 전체를 암전시키고 1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야 할 곳에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다른 복도 상황을 알 리 없는 간부들은 점점 불안해졌다.
나이트워커라고 했더니 이거 잘못 건드린 거 아닌가? 알고 보니 우리가 감당 못할 사람을 건드리지 않았나?
하지만 그들이 왜?
불안하다가도 ‘왜’라는 질문에 계속 부딪혔다.
용가가 이곳을 습격할 명분은 턱없이 부족했다.
혹여나 황녀 때문일까, 라고 의심해 봐도 그건 제일 말이 안 되었다.
그래도.
그래도…….
“으억!”
불안과 의심이 반복되는 찰나.
복도 저 멀리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 천장 속에 숨어있던 간부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죽인……건가?”
확인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천장 아래 문을 열었다.
머리만 내밀어서 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렸다.
어둑한 복도는 마지막 비명을 끝으로 고요함이 감돌았다. 쥐새끼의 걷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끝난 모양인데……. 엉?”
뛰어내리려던 간부는 어느 틈에 코앞에서 알짱거리는 반딧불이를 발견했다.
“실내에 웬 반딧불이가―”
푸확!
짧은 방심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렀다.
어둠보다 더 까만 신형이 어둠을 뚫고 검격을 그었다. 이어 피가 솟구치고 몸뚱어리가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한다.
“큭! 어떤 새끼가!”
목과 어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덕에 치명상을 피했다.
간부는 곧장 검을 뽑아 몸을 일으켰지만, 모가지 끝에 붉은 기운이 넘실대는 칼끝이 닿았다.
꼼짝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검붉은 기운이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뭐냐, 너.”
“질문은 내가 한다.”
검의 주인인 유리는 검 끝으로 턱을 더 치켜 올렸다.
겁에 질린 표정이 덜덜 떨렸다.
“황녀 엘라트리오는 어디 있지?”
“황녀가 목적이었냐!”
“질문은 내가 한다고 했을 텐데.”
즈즛, 기어코 티르빙이 살갗을 갈랐다. 작은 상처일 뿐인데도 티르빙이 빨아들이면서 왈칵 피가 나왔다.
이질적인 감각에 간부의 얼굴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다시 묻겠다. 황녀는 어디 있나. 어디로 가야지?”
“모, 모, 몰라.”
“그럼 더스트는 어디 있지? 이것도 모른다고 하진 않을 테지.”
“모, 몰라! 모른다고!”
“그래?”
꾸드드드득!
“카학!!!”
기어코 티르빙의 스멀거리던 칼끝이 거머리처럼 상처를 파고 들어갔다.
유리가 힘들이지 않고도 목이 잘렸다.
[우윽, 맛없어. 이 인간들 마나는 하나 같이 별로야.]“좋은 피만 먹다 보니 입맛이 변한 거 아냐?”
[미안하지만 이 언니는 편식을 하지 않는단다. 어렸을 적에 동물 피 먹었던 거 기억 안 나니?]“짐승만도 못한 맛이라는 거네.”
하는 짓도 짐승만 못하니 당연할 지도.
어쨌든 이걸로 5명째 간부를 처리했다.
길잡이 벌레로 바로 더스트를 찾고 싶었지만, 놈은 어디로 숨었는지 길잡이 벌레조차 못 찾았다.
그래서 저택에 있는 모든 간부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녀석의 소재를 수색했다.
‘아직 간부들 사이에선 별 다른 반응이 없어. 서로 연락이 닿지 않은 모양이네.’
연락이 닿지 않게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있었지만.
이리도 서로 연락이 전무할 줄이야.
결국 이후 10명 정도 더 처리할 때까지도 간부들 사이에서 큰 움직임이 없었다.
11명째가 되었을 때.
그제야 이상하다고 느낀 남은 간부가 등장했다.
그들을 마주한 건 별장 3층에서였다.
계단을 올라가자 복도가 아닌 벽이 없는 공간이 나타났고, 그 가운데에 더스트를 비롯한 4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유리를 보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헐, 대박. 두목, 저 새끼 2층 전부 뚫고 왔나봐.”
“으유, 빙신들. 저거 하나 처리 못해서 우리한테까지 오게 하냐.”
밑에 있는 간부들을 전부 죽이고 왔는데도 3층 간부들은 여유가 넘쳤다.
더스트만이 구겨진 얼굴로 유리를 노려봤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 나오다니. 겁대가리를 제대로 상실했구나.”
“겁을 상실한 건 네놈들이겠지. 황녀를 납치하고 멀쩡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나.”
“황녀를 찾으러 온 거냐?”
“그래서 말인데. 솔직하게 말해라. 계속 모른다고 거짓만 들어서 짜증이 나서 말이야.”
유리는 티르빙에 마나를 더 크게 불어넣으며 물었다.
“네놈들, 황녀를 건드렸나?”
건드렸다는 의미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었다.
바로 알아들은 더스트가 피식 웃었다.
“어떨 거 같아?”
질문과 동시에 손짓하자 나머지 간부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놈들의 실력은 유리의 예상보다 웃돌았지만, 그렇다고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형편없는 새끼들.”
간부들의 마나는 분명 출중했다.
몇몇은 심지어 유리보다도 서클이 높아서 제대로 부딪혔다간 되려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은 마나는 감히 유리와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파이어볼!”
“아이스 볼트!”
6서클 이상의 마나를 가졌는데도 간부들이 쓰는 마법은 지극히 초보적인 것들뿐이었다.
검을 쥐는 놈들도 폼부터 엉망.
물론 초보적이어도 위력은 6서클이었지만, 그래봤자 초보는 초보였다.
유리는 티르빙을 땅에 내리 꽂았다가 허공을 올려쳤다.
아칸 검법, 3식.
‘류(流)!”
류(流)는 응집했던 마나를 파동의 형태로 발산시켜서 일정 공간을 난도질 하는 검술.
하나하나의 위력을 떨어지나 여럿을 상대할 때는 이만한 검술이 없었으니.
형체가 없는 파동이 유리를 중심으로 퍼지다가 날아드는 마법과 검과 부딪혔다.
카가가가가각!
불과 얼음, 검과 갑옷은 순도 높은 마나를 담은 일격을 막아내기 역부족이었다.
충돌하는 순간. 검은 마나로 변하면서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적들을 사정없이 난도질 했다.
마법과 무구들이 사정없이 파괴되어 역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꺼억!”
“끄악!”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간부들은 마법과 철의 파편을 맞고 바닥을 굴렀다.
죽은 이는 없었지만 반격할 사람도 없었다.
정예로 꼽혔던 간부들은 온몸에 작은 구멍이 나는 바람에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이, 이게 뭔……!”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더스트는 처음 보는 검법에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아무리 그래도 6서클 넘는 간부들을 어떻게 단숨에……!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고민을 하는 순간, 유리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검을 뽑으려고 손을 움직여보지만, 그는 교묘하고도 날렵하게 손목에 검을 박았다.
“끄억!!!”
쿵!
그대로 벽까지 밀려나서 부딪히고 엉덩방아를 찧은 더스트.
티르빙의 끝은 손목을 뚫고 벽에 박혀서 그를 고정시켰다.
그래도 반항해보겠다고 몸을 움찔거리자 유리의 발이 가랑이 사이를 지긋이 밟았다.
“끄악! 으아아아! 거, 거거거거거, 거긴!”
“선택권을 주겠어, 더스트.”
“서서서, 선택?”
유리의 입가가 잔인한 미소로 피어났다.
“황녀의 위치를 불면 고통 없이 잘라주고, 싫다면 불로 지져서 자르마.”
“자른, 다고? 어, 딜?”
“어디긴.”
꾸욱!
유리는 더욱 힘차게 발에 힘을 주었다.
죽음으로 인한 비명보다 더 끔찍한 비명이 밤을 향해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