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76
제76화
갑작스러운 내기 제안과 솔깃한 조건에 루이스는 당황할 틈조차 없었다.
머릿속에선 어떤 것이 훨씬 가치 있고 이득인지 계산하느라 바쁘다.
‘인간의 피가 섞인 주제에 확실히 입담 하나는 대단하군.’
다이올드로부터 유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대부분은 험담이었지만, 그것만 빼면 대담하면서 비범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만만치 않기도 했고.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이다.
용인이었다면 당연한 기백이었고, 인간치곤 괜찮은 기백일 뿐.
‘그러고 보니 마검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루이스는 마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마검의 주인이라니.
역사상 그랬던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거니와 그마저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용가에서 활약했다고 하니, 마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내기라면 어떤 내기입니까?”
루이스가 묻자 유리는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답했다.
“간단하다. 검으로 대련을 하지.”
“마검은 빼주시는 건가요?”
“마검까지 알고 있는 건가.”
“아, 실언을. 너무 염려치 마시길. 다이올드 님께서 알려주시긴 했지만 어디다가 발설하진 않았습니다. 가문에서 비밀에 부친 이야기를 설마 어디다가 발설하고 다녔을까요.”
“…….”
“어쨌든. 마검을 쓰지 않으신다면 내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마검만 없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루이스였다. 기껏해야 대련 상대는 10대 소년에 불과했으니까.
“좋아. 그럼 바로 하지.”
“바로 하는 겁니까?”
“관객이 있으면 재미있지 않나 싶어서. 만찬회이기도 하고, 딱 좋지.”
내기가 성사되고.
유리는 스리슬쩍 웃으면서 먼저 테라스를 나섰다.
루이스도 곧 뒤따라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당한 유리의 태도에 왠지 모르게 찝찝함이 밀려왔으나 전혀 패배를 상정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루이스는 유리가 마검에게 의존했다고‘만’ 생각했을 뿐.
정말 마검의 주인이라고 듣기는커녕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 * *
“자자!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연회장에 들어서자 루이스가 소리쳤다.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들의 이목이 그와 그 곁에 있는 한 소년에게 이끌린다.
저 멀리서 연회의 주인공인 엘라트리오도 보였다.
그녀는 루이스와 함께 있는 유리를 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입모양이 “저 사람 왜 저기 있어!”라고 따지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유리는 천진하게 손을 흔들어줬다.
아무것도 모르는 루이스는 유리를 가장 잘 보이는 계단 위로 이끌었다.
“여기 이분이 제 동생 엘라트리오를 도와준 나이트워커가의 유리 덴 나이트워커십니다.”
간단한 소개에도 관심도는 그야말로 대폭발이었다.
“오오, 저 분이.”
“그런데 평범한 인간이지 않나요?”
“그러게. 눈동자만 봐도 용인이 아니네.”
“근데 어떻게 용가 사람이 되었지?”
“예전에 블레이머 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공식 석상이라 그런지 유리를 향한 온갖 잡음이 여과 없이 전해졌다.
당연하게도 좋지 못한 소리가 많았다.
인간이 용가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데, 저 어린 소년이 황녀를 구출했을 리가.
유리는 그런 남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루이스를 어떻게 이길지 궁리했다.
‘렉슬러와 더불어서 10서클에 도달하는 제국의 3인방 중 한 명이 루이스란 말이지.’
[그걸 알고도 대련을 청한 거였니?]‘재미있을 거 같잖아.’
[렉슬러 때는 마신의 손이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이겼다지만, 이번엔 나도 안 쓰고 어떻게 이기려고.]‘안 이겨. 정확힌 누구도 못 이기지.’
렉슬러에게서 듣기론 루이스는 제국을 통틀어서 가장 강하다고 했다.
대련을 몇 번 해 본 적 있었는데, 그때마다 루이스의 여유로운 승리가 따라왔다고.
때문에 사교계와 황실 내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은 단연코 루이스였다.
귀족 사이에선 친귀족적 성향이라 서 인기도 많고 평판도 좋다.
그런 루이스를 상대로 이기라고?
얼토당토않지.
“오늘 이렇게 동생의 귀환을 환영하는 것에 더불어서 잠깐의 유흥거리를 준비했습니다.”
루이스가 고갯짓을 하자 어디선가 병사 하나가 검을 들고 왔다.
매끈한 검집이 샹들리에가 내는 빛에 반짝거렸다.
그것을 들고 그가 외쳤다.
“귀하게도 유리 님께서 저와 한 수 검을 나누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오오!”
“재미있겠군. 황태자와 용가의 대결이라!”
곧 기사들이 나와서 연회장 가운데를 비우기 시작했다. 흥미를 느낀 사람들은 기꺼이 자리를 비켰다.
대련장 못지않은 공간이 마련되고, 루이스가 먼저 내려갔다.
유리도 내려가자 기다리고 있던 릴림이 검집을 들고 나타났다.
대련용 검이 아닌, 얼마 전에 가문의 대장장이가 고친 게슐츠의 검이었다.
“도련님, 여기요.”
“고마워.”
전보다 훨씬 새것 같으면서도 이전의 형태에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검을 살짝 뽑아보니 짤막한 길이도 여전했다.
“준비되셨습니까?”
검을 좀 더 살피고 싶었는데.
루이스가 물어보는 바람에 납검해야만 했다. 릴림이 물러서고 유리가 앞으로 나왔다.
“꽤나 급하군, 황태자.”
“하하. 워낙 기대가 되어서요.”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하지.”
각자 기사의 예에 맞게 경례를 올리기 무섭게 루이스가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시작은 가볍게 가슴팍으로 검격이 그어졌다.
상대적으로 검의 길이가 짧은지라 유리는 첫 공격을 깊게 내주고 나서 방어해냈다.
‘무겁다!’
가벼운 몸놀림에 이어서 나온 일격은 받아치는 순간 무게감이 확 밀려들었다.
렉슬러보다 강하다고는 했지만,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더 강했을지도.
칵!
반걸음도 물러서기도 전에 루이스는 재차 몸을 빙글 돌리며 반원을 그렸다.
상어 이빨에 물리듯, 상대의 검이 유리를 집어삼켰다.
이번에도 방어해냈지만 힘에서 밀려 몸까지 밀려났다.
‘전형적인 제국 검법. 정직하고 정형화됐지만, 위력이 거세.’
얕은 잔수나 속임 동작 하나 없는 공격이 연달아 쏟아졌다.
일부러 이런 식의 검술을 구사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는 자신의 적수가 못 된다고 확신했다.
[정직해도 너무 정직한 걸. 렉슬러란 인간이 걱정해서 이 언니도 걱정했는데, 의외로 해볼 만하겠어.]‘걱정할 정도의 실력은 맞지.’
분명 루이스가 내지르는 일격 하나하나에는 견디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유리가 방어에만 치중하니까 쉽게 막히는 거지, 똑같이 정직하게 싸운다고 하면 단연 루이스가 위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혹시나 싶어서 유리가 간간히 반격을 해보니 방어 자체도 정형화되어 있었다.
가로세로, 좌우, 상하, 대각.
방어 동작에서 다음 방어 동작으로 가는 과정에선 수비력이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부류의 대련 상대는 가문 생도들 중에서도 여럿 보았다.
실전 경험 없이 훈련으로만 성장한 타입.
그렇기에 관객들이 보기엔 루이스가 유리하게만 보였다.
안 그래도 공격적인데다가 관객들이 알고 있는 제국 검술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있으니까.
“이거 유리 님이 지겠는걸요.”
“그러게. 용가에 들어갔다더니 허풍 아냐?”
“황태자 저하가 대단한 것도 사실이야. 저 정도로 제국 검술을 잘 쓰는 기사가 얼마나 된다고.”
유리의 실력이 어떻든 루이스가 워낙 잘 싸우고 있어서 관객들은 이미 유리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했다.
그런 주변의 반응을 들으면서도 유리는 의연하게 방어에만 집중했다.
이길 수 있다.
렉슬러보다 강해도, 이를 이기는 방법은 더 간단했다.
‘공식을 부순다!’
카가각!
위에서 검이 내려오는 걸 막자 검과 검이 마찰을 일으켰다.
그 순간, 유리는 검을 쥐던 양손 중 하나를 풀어 손바닥으로 루이스의 손목을 위로 올려쳤다.
툭, 작은 힘으로 살짝 방향만 틀었을 뿐인데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황한 루이스가 뒤로 물러선 것이다.
“…….”
루이스의 입에서 거친 호흡이 들어왔다가 나오길 반복했다.
지치지 않은 기색이었으나 그 뒤에는 당혹감을 감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엿보였다.
반격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손목을 치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당연하지.’
실전을 겪어보지 않고 교과서만 보고 검을 배운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훈련한 것에서 조금만 틀어져도 금방 당황한다는 점이다.
돌발변수에 대응하기 힘들어하고, 감정적으로도 쉽게 흔들린다.
평생 황실 안에서만 검을 휘둘러봤을 루이스라면 그러고도 남을 터.
“왜 그러지, 황태자?”
“방금 전 공격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워서요.”
“기껏해야 요행이었어. 좀만 더 힘 싸움을 했더라면 내가 당했을 거다.”
“그렇, 습니까.”
반면 루이스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못해 못 마땅했다.
정황상 루이스가 이기고 있는 형국이었다. 방어를 해도 힘에 우위인지라 유리를 몇 번이고 밀어붙였다.
주변 관객들도 이대로라면 루이스가 이길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마지막 손목을 친 자세.
‘뭘 알고서 공격한 걸까. 아니면 급해서 뭐라도 해보겠다는 공격이었을까. 젠장, 전혀 모르겠어.’
루이스는 생각했다.
유리를 계속 수세에 몰아붙이면 이 승부는 루이스가 승리한다.
아무리 유리가 요행에 가까운 행동을 반복하고 공식을 깨뜨린다 해도, 당황은 당황일 뿐.
같은 수에 또 당할 루이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우연이 아니라 전부 의도한 대로라면?
혹시 모를 가정이 세워지는 순간, 사고회로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그러다 어쩌면 내기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런데 그 순간.
“이거 이대로 싸우면 내가 지겠어.”
그리 말한 유리는 갑자기 바닥에 검을 버렸다.
댕그렁!
돌발행동에 수군거리던 관객들이 더더욱 소리를 높였다.
뭐지? 계속 몰리니까 포기하는 건가? 용가의 사람씩이나 되어서 수치스럽게 검을 먼저 버려서 패배를 인정한다고?
다들 믿지 못하면서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흉을 보았다.
그러나 루이스는 마냥 웃지만은 못했다.
“뭐 하시는 거죠?”
“무기를 써서 이기지 못할 바에 맨손으로 싸워서 이겨보려고.”
“진심이십니까?”
“렉슬러 근위대장도 라운 파이터로 월반했다던데, 나라고 못할까.”
“하지만 대련에서 검을 버리시면 동등하지 못합니다.”
“황태자는 설마 용인 가문의 일원인 내가 검을 버리고도 그대를 못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건…… 아니죠.”
루이스는 이를 꽉 물었다.
이건 한 마디로 모욕이었다.
신성한 대련에서 무기를 버린 것도 모자라 이대로 승부를 보겠다니!
여기서 맨손인 유리와 끝까지 싸워도 문제고, 당연히 이겨도 문제가 됐다.
물론 내기를 생각하면 황녀와 장부를 같이 없앨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제안이 있었기에 지금의 유리가 보여주는 기행은 수상쩍었다.
이대로 패배해서 황녀와 장부를 손쉽게 없애주겠다고?
말도 안 돼. 그럴 거였다면 처음부터 왜 내기를 했겠는가.
‘잠깐, 설마 일부러 나보다 자신이 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유리는 대련을 통해 루이스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그리고 검을 버림으로써 황태자에게 굴욕과 명예 중 하나를 택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내기까지 걸면서 유리가 말했다.
넌 원하는 걸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고.
내기든 승부든, 선택은 내가 한다고.
‘처음부터 가지고 놀았군!’
유리가 예상했던 대로 루이스는 다이올드를 알게 모르게 자기 아랫사람처럼 구워삶았다.
욕심이 가득한 자라서 달콤한 말만 해줘도 잘 따라줬다.
그래서 똑같이 유리도 아랫사람처럼 다루려고 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용인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힘으로 훨씬 더 쉽게 찍어 누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허나 완전히 틀렸다.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었다.
얕봐도 너무 얕봤다.
‘어떡해야지! 어떡해야……!’
“그만두세요.”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중, 한 여자가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다름 아닌 엘라트리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