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신사적이었던 루이스는 온데간데 없었다.
권력 때문에 주변을 의식했듯이, 황태자의 권력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보며 분노했다.
“젠장! 네놈이 뭔데! 네놈들이 대체 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제국의 황태자다.
황제 다음으로 권력을 쥐었으며 다음으로 황제가 될 사람!
그런데 사람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나이트워커와 황녀를 두려워한 나머지 황태자가 내린 명령을 무시한다.
“죽여! 전부 죽여!”
루이스는 옆에 있던 기사의 멱살을 잡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기사들 누구도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명령이 안 먹히자 다른 기사의 멱살을, 다시 다른 기사의 갑주를 잡고 흔들었다.
“죽이라고! 내 말이 들리지 않더냐! 너희들 주군이 누구야. 나라고! 내가 명한다! 황녀를 죽여!”
“저, 저하……!”
“버러지 같은 새끼들! 내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했을 땐 좋다고 달라붙어 놓고 네놈들도 배신하는 거냐!”
퍽!
한 기사의 멱살을 잡다 못해 주먹질이 나아갔다. 무방비하게 얻어맞은 기사는 맥없이 넘어졌다.
이번엔 솔리드녹스의 용병들에게 언성을 질렀다.
“너희들은 나와 계약을 하지 않았더냐!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야. 얼른 공격해!”
“……우리의 계약은.”
루이스에게 붙들린 용병이 느릿하게 대꾸했다.
“베리온 제국의 황녀 엘라트리오를 죽이는 것이지, 나이트워커와 결탁한 황녀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이 상황에서 저들을 공격한다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용병이면서 사자인 남자의 말이 맞았다.
유리를 공격했다간 한 나라의 황실이 용가와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여기에 솔리드녹스까지 끼어들어서 용가와 용가 간의 싸움으로 번지기를 바라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건 솔리드녹스 본인들이 제일 꺼려하는 문제.
“그래, 아무도 안 나서겠다는 거지? 여기까지 와놓고 네놈들까지 순진한 척 굴겠다는 거지?”
루이스는 결국 주머니 속에서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그것은 주먹보다 큰 크리스탈이었다. 표면이 불규칙하며 안쪽은 불투명해서 들어가는 빛이 흐릿하게 흩어졌다.
중심부엔 불꽃이 갇혀서 일렁였다.
그것이 무언지는 솔리드녹스의 사자들이 가장 먼저 알아봤다. 사자들의 우두머리가 나지막이 명령했다.
“전원 자리를 이탈한다. 임무는 이걸로 끝이다.”
타다다닷!
사자들이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이 신호가 되었다.
루이스는 순수한 악력으로만 크리스탈을 깨부쉈다. 일렁이던 불꽃이 손가락을, 이어서 손등을 타고 팔 전체로 퍼졌다.
흡사 불이 붙은 듯했지만 불은 살아있어서 루이스를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았다.
그는 그런 손을 땅바닥에 강하게 내리치듯 댔다.
“다시 명한다. 저들을 죽여라. 안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죽을 것이다!!!”
부관과 기사들도 뒤늦게 루이스가 깨뜨린 크리스탈의 위험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그가 준비했다던 유리를 죽인 수단.
용가의 혈통을 죽일 물건이니 결코 평범하거나 협소한 파괴력을 가진 아닐 터였으니.
“진격! 황녀를 죽여라!”
부관이 마지막 망설임을 물리쳤다.
부하들도 그를 따라 앞으로 돌격했다. 포섭된 자들도 옆에 있는 동료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엘라트리오와 가까이 있던 시녀만이 최후의 최후까지 망설였다.
엘라트리오는 시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만둬. 여기서 더 후회할 짓 하지 마.”
“화, 황녀님. 전……!”
“얘, 제발―!”
“황녀 마마!”
서걱!
시녀는 준비했던 단검을 소맷자락에서 빼내어 곧장 덤볐다. 엘라트리오는 눈을 감았다. 동시에 렉슬러의 검이 섬광을 긋는다.
순식간에 시녀의 목이 잘렸다. 솟구친 피는 여지없이 황녀의 뺨을 갈겼다.
엘라트리오가 눈을 떴을 땐 시녀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있었지만, 렉슬러가 무례한 손길로 턱을 잡았다.
“보지 마십시오.”
“렉슬러…….”
“피하셔야 합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렉슬러는 그녀를 한쪽 팔만으로 끌어안은 채 마차가 있던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나 곧 적들이 그를 가로 막았다.
그런 적들 위로 한 인영이 추락하면서 그들의 어깨와 머리통을 짓밟았다.
유리였다.
“유리 님.”
“내 얼굴 보고 이름 부를 시간에 얼른 도망가도록. 전장이 개판이라 피아식별도 안 돼서 위험해.”
유리는 태연하게 피아를 구분해놓곤 한 기사를 가감 없이 베었다.
단칼에 죽은 기사는 시녀 다음으로 황녀를 노리고 있다가 꼼짝없이 죽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사람의 공격이라 무방비했던 렉슬러는 유리의 빠른 대응이 놀라우면서도 황당했다.
허나 그런 감정을 드러낼 여유 따윈 없었다.
“뒤를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그 대사는 자기 대신 죽을 사람한테 하는 대사인 거 알지?”
“그 뜻이 아니라…….”
“됐고. 왔던 길로 돌아가면 흑룡기를 든 기사들이 도와줄 거다.”
“……감사합니다.”
렉슬러가 자리를 이탈하면서 후방에선 약속대로 블레이크와 정예 기사 몇몇이 합류했다.
그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유리는 손가락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구워어어어!!!
신호가 떨어지자 괴성과 함께 측면에서 싸우던 사람 몇몇이 허공을 날았다.
때 아닌 적의 등장에 루이스 측 병력은 기함을 내질렀다.
“고, 곰이다!”
“곰이 떼거지로, 어떻게, 으악!”
“살려, 끄아아아아아아!!!”
채럿이 길들인 곰들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동원된 곰만 10마리. 특별히 갑옷으로 무장해서 마나를 쓰는 기사조차도 버거운 놈들이었다. 목에는 흑룡기를 둘러서 아군임을 표시했다.
우워워워엉!
곰들이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사람 서너 명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추락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기사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기껏해야 짐승에 불과하다! 대형을 잡아라!”
“그렇게 안 놔둬.”
겨우 병력들이 한 점으로 모여서 곰들을 공격하려 하자 어디선가 하얀 인영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단 한 번 그들을 지나갔을 뿐인데 죽음과 시체만이 남았다.
지나간 자리의 끝에는 릴림이 낫을 든 채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하얀 머리? 서, 설마 악마가 씌인 성녀? 저 여자가 여기에 어찌!”
“정신 차려! 대형을 잡아라! 얼른!”
예상하지 못한 전력의 등장에도 기사는 기사였다. 그들은 훈련된 대로 오와 열을 짜서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또한 패착이었으니.
곰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자벨이 맨손으로 투창 자세를 잡고 영창을 외웠다.
“겁화에 타서 재로 남지도 못할지니, 플레임 스팅!”
아무것도 없던 손아귀에 청록색의 불꽃이 모였다. 이윽고 날카로운 창이 되자 기사단 사이로 있는 힘껏 날렸다.
“바, 방패!”
당황한 목소리와 달리 일사불란하게 방패가 올라왔다.
그러나 불의 창은 기사단이 아닌, 그들 앞에 있는 바닥에 박혔다. 그리고 그대로 파고들면서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완전히 불꽃이 스며들자 지면 아래서 폭발이 일어났다.
퍼어엉!!!
푸른 불과 검은 흙이 어우러져 치솟았다. 동시에 기사들도 같이 날아야만 했다.
‘좋아. 잔당은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고.’
유리는 루이스를 직접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황녀를 배신한 호위 병력들이 가로막았다.
그들은 아까보다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나 보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이건가?”
루이스에게 포섭된 자들도 그렇고, 루이스와 같이 온 기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여기서 발을 뺄 수 없다.
확실하게 황녀를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자신들이라고.
“그러면 나도 그대들을 죽일 수밖에 없어.”
“으랴아아!!!”
한 사람을 기점으로 다른 이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황실에서 내준 호위 병력이라 검술 면에선 뛰어난 자들이었다.
물론, 유리에겐 마나도 없이 검을 든 자들일 뿐.
유리는 정면에서 치고 오는 적을 상대로 살짝 허리를 숙였다가 어깨로 밀쳤다.
순간 유리가 적의 품에 안긴 꼴이 되었고, 같이 공격하던 이들은 동료가 같이 살상 범위에 있는 탓에 잠깐이나마 멈칫거렸다.
그렇게 적을 밀치면서 나아가다가, 갑자기 정지하면서 강하게 한 번 더 밀어냈다.
“으읏!”
동료들이 밀려난 남자를 받아주는 순간, 유리의 검이 아래서 위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있던 다른 자의 어깨와 목 사이로 검을 찍어서 당겼다.
두 명이 당하자 나머지 병력이 무게 중심을 잡고 재차 공격했다.
가장 가까운 공격은 오른편.
유리는 베었던 적의 멱살을 잡아서 오른쪽으로 돌린 뒤 아래로 들어가 방패막이로 삼았다.
푸부북!
이미 죽은 동료를 향한 자비는 없었다. 유리를 향했던 공격은 애꿎은 자를 찌르고 갈랐다.
뒤에 숨었던 유리는 방패로 삼은 적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과 검을 쑤욱 밀어 넣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든 찌르기에 가슴팍이 꿰뚫렸다. 그렇게 한 명 더 쓰러졌다.
그 옆에 있던 동료가 당황한 나머지 잠시 한 눈을 팔았다. 유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인간방패를 반대편 쪽으로 던져버리고 당황한 적의 옆을 스치며 옆구리를 베었다.
이후 바로 옆에 있던 다른 자의 등판을 가로로 베었다.
단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찰나에 유리의 검은 4명의 적을 죽였다.
간단하지만 빠르고 유려한 공격 흐름에 남은 적들은 재차 공격할 의지를 잃고 떨리는 눈동자로 유리를 응시했다.
유리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숨을 골랐다.
“후우, 짧은 검이라 상대하기 벅차네.”
게슐츠의 검에 비해 적들의 검은 훨씬 길었다.
싸우려면 적의 사정권에 들어가야 했고, 육박전에 가깝게 붙어서 적을 유린해야만 했다.
결국 적들은 사정권보다 더 가깝게 유리가 접근하는 바람에 손도 못 쓰고 당했다.
티르빙을 쓰면 되겠지만.
‘아직 세상 밖으로 마검을 드러낼 땐 아냐. 지금처럼 신분이 노출됐을 땐 더더욱 아니고.’
이후 유리는 같은 방식으로 방해꾼들을 죽이며 전진했고.
마침내 루이스가 잘 보이는 공간까지 나올 수 있었다.
더 이상 루이스는 바닥에 손을 대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팔에 붙은 불은 여전했다.
덤으로 분에 찬 황태자도 그대로였으니.
‘무슨 마법이지.’
[모르겠는 걸. 느껴지기엔 솔리드녹스에서 준 아티팩트 같아.]‘폭탄이겠네, 그럼.’
다 같이 자살할 폭탄.
그러니 사자들이 도망갔고 기사들은 망설임을 이겨내고 황녀를 공격했겠지.
유리는 검을 살짝 내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이제라도 포기해라. 네놈은 이길 수 없어. 이기더라도 나와 용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용가의 혈통이란 새끼가 동맹이니 뭐니 종잇장 따위로 날 우롱하더니 포기하라고? 웃기지도 않지!”
“여기서 애꿎은 피를 더 봐야 하나?”
“어차피 누군가는 피를 봐야 했다. 네놈들은 그걸 모를 뿐.”
맞아, 이건 누구하나 죽어야 끝나는 싸움. 권력 다툼이란 그런 것.
루이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혼란으로 가득했던 전황은 서서히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그 중심엔 유리와, 그가 이끌고 온 병력이 있었다.
‘이것이 용가의 힘…….’
부러웠다.
부럽고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황제가 되었더라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적어도 더 강한 이에게 당하지 않는 삶을 누렸을 거다.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당하다니.
어쩌면 이 패배는 유리와 대련을 했을 때부터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훨씬 더 오래 전에 결판났을지도.
‘싫다.’
루이스는 불이 붙은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는 것도, 죽는 것도 싫다.’
“죽더라도 내 손으로 죽겠어……!”
“이런!”
무슨 마법인지 몰라도 막아야 한다는 본능이 유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게슐츠의 검이 손을 떠났다. 회전하며 날아간 검은 루이스의 심장에 정확히 박혔다.
높게 들었던 팔이 내려오고, 루이스도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멈춘 건가?”
[아니. 안 멈췄어. 이건…….]그때 어디선가 경악스러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저기 위!!!”
가리키는 곳을 향해 모두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느 틈엔가 푸른 하늘엔 성채만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법진은 천천히 회전하면서 문자와 도식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잠시 후 식이 완성되자 마법진을 중심으로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것을 목격한 이들은 한 순간에 전의를 잃었다.
“세상에. 신이시여. 어찌…….”
“이건, 뭐, 야?”
“저게 가능……해?”
누구도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저 무기를 놓치거나 주저앉고, 혹은 신께 살려달라고 기도드리는 게 전부였다.
왜냐하면.
저 너머에서 성채만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