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나이트워커에는 별채보다도 큰 도서관이 따로 자리했다.
가문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며, 다만 안쪽에 있는 비밀 서고는 가주가 준 직책에 따라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었다.
가문의 일원이 되자마자 유리는 틈만 나면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기본적으로 가문의 혈통은 좋은 가정교사를 두고 교육을 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유리로선 혼자서라도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의무감이나 강박감에 하는 공부는 아녔다.
필요하니까 할 뿐.
‘두 개의 마나 그릇, 역시 그에 관한 설명은 없나.’
[있을 리가 있겠니. 나도 살면서 처음 보는 건데.]한 달 전부터 느낀 또 다른 마나 감각, 그리고 며칠 전 릴림과 첫 대련을 해보면서 그 감각이 선명해졌다.
같은 마나지만 보관하는 곳이 다른 감각이랄까.
드래곤 하트는 분명 심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보관한다.
새로이 얻은 마나는 기존에 알려진 대로 단전 아래에 코어가 존재했다.
[이론상으론 가능하지. 드래곤 하트와 코어, 신체 부위부터 완전히 다르니.]‘이론이야 그렇다 쳐도. 정말로 나 같은 사람이 또 없었어?’
[이 언니는 몰라요~. 드래곤들 중에 있긴 했던 거 같다만. 애초에 걔네들은 인간이 아니라 도마뱀이라서.]드래곤한테 도마뱀이라.
가끔 언어 선택 수준을 들을 때마다 등골이 쭈뼛쭈뼛 선다.
‘어쨌든 모른다는 거지…….’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 본인 혹은 용인만 가질 수 있다. 다른 드래곤이나 용인이라면 두 개의 마나 코어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약 역사상 그런 존재가 없었다면?
내가 최초라면?
“…….”
강해질 수단이 많은 건 좋지만, 결국 이것도 쓰기 나름.
그리고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가령 벤헬링턴은 어려서부터 세기의 천재라 불렸으나, 그마저도 빛나게 한 건 그가 걸어온 길이었다.
수많은 전투와 승리, 업적, 그를 통해 다시 강해지기를 반복해서 지금의 벤헬링턴이 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은 주인공이 따로 존재했다.
그는 최초를 떠나서 유일무이한 힘을 잔뜩 가졌다. 개인의 능력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아이템까지.
‘당장은 주인공을 능가할 마음은 없지만……. 할 수 있으면 좋겠네.’
유리는 치솟는 감흥을 죽인 채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집었다.
이번 서적은 바로 그 주인공과 관련된 책이었다.
[에덴부르크? 그 망나니 고대신이 만든 종교서?]‘드래곤한테는 도마뱀, 에덴부르크는 망나니 신이야?’
[그럼! 그 주정뱅이가 고대에는 얼마나 골치였는데!]유리가 든 책은 에덴부르크라 불리는 잊혀진 종교에 관한 저서였다.
고대 에덴부르크는 창조주와 더불어 세상의 대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근데 그 신이 주정뱅이라.
[이 책은 왜?]‘에덴부르크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바람을 만들었다고 하지.’
[틀린 말은 아냐. 주정꾼이긴 해도 그놈이 없었으면 생명체들이 못 살았을걸.]‘그 바람으로 만든 결정체가 있어.’
티르빙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원작에서 주인공이 활용하는 아이템 중 하나로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도구다.
유리는 그 크리스털을 찾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암상인한테서 구했지만, 그 전에는 어디 있었을지…….’
[근데 이걸 찾아다가 뭐 하려고?]‘어머니께 호신용으로 드리려고.’
벤헬링턴과 거래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았다지만 여전히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엄연히 이곳은 악역이 있는 소굴이다.
적어도 어머니 샤를린느가 직접 상황을 판단하고 쓸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러다 원작에서 본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을 떠올렸다.
[호신용으로 최적이긴 하지만, 그건 호신이 아니라 파괴 도구야.]‘알아.’
[알면서 그걸……. 아니지. 여기서 호신하려면 누군가 죽일 각오쯤은 해야겠네.]태초에 에덴부르크는 예상보다 많은 바람을 만들어서 세상을 폭풍 속에 잠기도록 했다.
이에 만들어진 바람을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 안에 봉인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원작에서는 그걸 터뜨리는 순간 공기압만으로도 작은 영지 하나쯤은 쉽게 날려버린다.
원작 주인공은 그걸 얻고도 딱히 중요한 곳에 쓰지 않았다.
뭐, 쓰긴 썼는데 원작을 좋아했던 유리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하찮은 곳에 사용했다.
허나 파괴력 하나는 확실했기에 그걸 찾아볼 셈이었다.
그러나 역사서만으로 알아내기엔 정보량과 정확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저 안쪽이 궁금하네.’
유리는 도서관 제일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운데 널찍 복도를 따라 테이블이 나열하고 있고, 그 끝에는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이 자리했다.
가문에는 직책에 따라 5개의 티어가 존재한다. 그 중 3티어급 이상의 직책을 받은 자만 도서관 안쪽으로 갈 수 있다.
그에 반해 유리는 티어 자체가 없다.
가문의 일원, 오로지 그것뿐.
“아니면 도둑 길드나 정보상이 필요해. 그러려면 돈을 받아야 하고. 얼른 할아버지께―”
“돈, 필요하세요?”
“…….”
어느 틈엔가 뒤편에서 릴림이 불쑥 튀어나왔다.
언제나처럼 나른한 시선이 귀찮아 보인다.
대신 요즘 들어 앞머리로 시선을 가리거나 도망 다니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뜬금없이 먼저 나타났다.
처음 유리는 몇 번 놀랐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저, 돈 많아요.”
“돈이야 할아버지가 주기로 약속하셨어. 넌 네 월급이나 챙겨.”
“그렇군요.”
“오늘은 또 뭘 들고 온 거야?”
릴림의 손에 들린 쟁반에 과자나 초콜릿이 산더미였다.
그걸 본 유리가 질색했다.
“내가 다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못, 먹으면 저 먹어요.”
“고지혈증으로 빨리 죽으려고?”
“도련님, 많이 먹어서 쑥쑥 커야 해요.”
“고지혈증으로 날 죽이려던 거였네.”
“아니, 에요.”
릴림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쟁반을 내려놨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릴림은 툭하면 단거를 잔뜩 가져다줬다.
항상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방에 가져갔지만, 그걸 알면서도 릴림은 일주일치 당분을 하루에 한 번씩 꼬박 챙겼다.
이쯤 되면 하녀인지 유모인지 분간이 안 갔다.
“됐다, 됐어. 그보다 어머니는 어쩌고? 오늘은 같이 있으라고 했잖아.”
“그으…….”
릴림이 가까이 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다가 유리에게 향하길 반복한다.
이야기를 들은 유리도 그녀의 시선을 자연스레 따라갔다.
‘제몬이?’
잊고 있던 형제 제몬 덴 나이트워커.
최근 들어서 그가 종종 샤를린느의 뒤를 밟았다.
그 보고를 릴림으로부터 들은 유리는 저번에 당한 복수를 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감히 어머니를 미행한다는 사실에 분개했으나, 미행만 할 뿐 딱히 어떤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도 릴림에게 어머니와 꼭 붙어 있으라고 명령했었다. 사소한 거라도 꼭 알려달라고 했고.
헌데 제몬이 움직였다.
오늘은 유리의 뒤를 밟았단다.
도서관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도 분명 지켜보는 눈길이 있다.
릴림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떡할까요?”
“뭘 어떡해. 놔둬.”
“하지만요. 제몬 도련님은, 위험해요.”
“저쪽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언젠가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예감이 왔다.
유리는 부디 그 날이 빨리 오길 원했다.
제몬 같이 귀찮은 건 질색이었다. 이런 놈은 빨리 치워야 했다.
* * *
도서관에서 유리를 주시하던 제몬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는 한숨을 쉬고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개자식. 속 편하게 책이나 읽고 있어?”
유리에게 당한 이후로 제몬은 어떻게 복수할까 고민했다.
아무리 돌이켜도 그날은 사고였다.
놈이 이상한 술수를 부렸다고들 하는데, 그래 봤자 볼품없는 평민에 서자다.
헌데 더 열 받는 건 가주 벤헬링턴의 태도였다.
유리를 감싸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사자를 스승과 호위로 붙였다고 한다.
인간의 피가 흐르는 무근본 출신이 누리기 벅찬 호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주다니!
허나 가주께는 누구도 뭐라 못 한다.
아니, 그냥 유리의 존재부터가 잘못이다. 놈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10배, 아니! 100배, 1,000배, 10,000배로 갚아줘야 돼!’
어찌해야 좋을까.
놈이 이대로 활개 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뭐라도 해야 했다.
때마침 곁으로 친형인 타나토가 다가왔다.
제몬보다 한 살 더 위인 그는 서열상으론 제몬보다 위였으나 연년생인지라 어려서부터 동갑내기처럼 지냈다.
한 뼘 더 키가 큰 타나토가 뚫어져라 제몬을 쳐다봤다.
“그새 턱이 다 나았나 보네, 제몬.”
“나은 지가 언젠데, 젠장.”
“왜 성질이야?”
“타나토, 너 유리란 놈 알지?”
“네 턱주가리 두들겨 팬 새끼?”
“이 자식이, 너까지!”
“워워, 진정해. 기사들이 그날 호위임무를 제대로 못 해서 한 거짓말인 거 알아. 알고 있다고.”
제몬의 형제들은 유리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제몬이 방심했을 뿐이고, 유리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벤헬링턴의 역정에 마지못해 거짓말을 했다고 여겼다.
누군가 항의하지 못한 건, 벤헬링턴이 사건을 매듭지어 버렸기 때문에 토를 못 달았다고 믿었다.
타나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그 열등분자는 왜?”
“당한 게 있으니 갚아주려고.”
“호오, 재미있겠는데?”
“도와줄 거야?”
“암, 그딴 인간들이 용인 가문에 같이 등대고 자는 걸 상상하면 역겹거든.”
“문제는 좋은 수를 모르겠어. 옆에 사자가 따라다녀서…….”
사자는 실력이 좋은 만큼 감각이 예민하다.
듣기로는 유리의 스승이자 호위라고 했다. 기존에 하고 있던 하녀 업무까지 그의 전담을 맡으면서 빈틈이 없었다.
몰래 무언가를 꾸미기는 어렵다.
타나토는 비소를 머금었다.
“멍청하긴. 꼭 몰래 할 필요는 없지.”
“그럼?”
“넌 발 디딜 틈 없는 시장에서 소매치기가 괜히 있는 줄 아냐.”
“……똑바로 설명해줘 봐.”
타나토가 제몬의 어깨를 끌어안듯 감싸고 소곤거렸다.
입에서 귀로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제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는 반신반의했다.
“그런 걸로 되겠어?”
“굶주린 놈들은 빵 한 조각 도둑맞아도 까무러쳐. 그놈이라고 다르겠냐.”
“음, 그렇게 말하니까 이해되네.”
제몬이 히죽 웃자 타나토도 같이 웃었다.
그들은 곧장 계획한 걸 실천으로 옮겼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을 견디지 못했다.
* * *
평소 유리는 릴림이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서 혼자 검을 휘둘러보고 씻고 하루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아침 식사만큼은 항상 어머니 샤를린느와 함께 했다.
별채에 마련된 식당은 본관에 비하면 작았지만, 두 명이 쓰기엔 충분히 넓고 화려했다.
식당을 내려간 유리는 문을 열자 그 자리에 멈췄다.
“어머니가 안계시네?”
“그러게요.”
릴림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원래 샤를린느가 먼저 식당에 내려와서 유리를 기다렸다. 유리가 아침 훈련을 하는 탓이었다.
이 일상은 가문에 오기 전부터 쭉 이어진 습관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샤를린느가 안 보였다.
“릴림, 네가 같이 있었잖아.”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해서, 왔어요.”
“이상한 건 없었고?”
“뭘, 찾으셨어요.”
“뭘?”
“모르, 겠어요. 물어도 말씀을 안 하셨어요.”
이런.
유리는 얼른 걸음을 돌려서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샤를린느에게 무언가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때는 딱 하나밖에 없다.
나쁜 일을 당하고도 숨기려는 것이다.
가문에 오기 전부터 있던 샤를린느의 나쁜 버릇 중 하나였다.
아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안다만, 가끔은 너무 심한 일을 당하고도 감추려 해서 문제였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제발 너무 나쁜 일만 아니길.’
유리는 괜한 불안을 안고 계단을 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