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86
제86화
마법을 쓰려면 지팡이는 기본이다. 그래야 마나를 분출시켜 술식에 맞게 구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유리에겐 지팡이 따윈 필요 없었다.
대신 이자벨의 칼날을 붙잡은 손에서 검은 불길이 일렁인다.
‘……어떻게!’
놀라움도 잠시.
공간마저 녹이는 열기가 쇠붙이를 타고 전해졌다.
“칫!”
이자벨은 서둘러 몸을 뒤로 뺐다.
털어내듯 검을 휘두르니 그제야 검은 불꽃이 하얀 불꽃 사이에서 떨어져나갔다.
호기롭던 이자벨이 애써 당혹감을 감추었다.
“6서클이라면서 헬파이어라니. 날 속인 건가.”
“뭘 속여. 6서클도 술식만 알면 10서클 마법이 가능하잖아. 너도 그건 알 텐데.”
“그야 그렇지만…….”
아직도 유리의 손에는 헬파이어의 잔불이 남아있었다.
술식을 안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술식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나마 유리는 남들과 달리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니 헬파이어를 쓸 수 있으리라.
그럼 고서클 마법을 유지하기 위한 마나량은?
그건 별빛나무의 과실을 먹었으니까 따질 필요도 없다.
‘진짜로 이상한 건 지팡이도 없이 마법을 쓰고 있단 거야. 대체 어떻게……?’
술식, 마나량.
그래, 평범한 마법사를 상회하는 수준을 가진 유리니까 백 번 양보해서 가능하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매개체다.
유리에게 주어진 매개체라고 해봤자 검 말곤 없었다. 그나마도 평범한 검에 속했으며, 그 검으로 마법을 쓰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 자체를 매개체로 삼은 것 같았다.
‘설마 나한테 물어봤던 걸 진짜로 하고 있는 건가!?’
이자벨은 더 이상의 추측을 접었다.
어쨌든 단 이틀 만에 엄청난 성과를 얻은 건 분명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검으로 마법을 부린 건 아니겠지?”
“그러는 너도 마법을 쓴 건 아니지?”
“당연하다.”
대련을 시작하기 전, 둘은 한 가지를 약속했다.
유리는 오로지 마법으로만, 이자벨은 검으로만. 서로에게 취약한 부분만으로 승부하기로.
동등해 보이는 조건이었으나, 실은 이자벨에게 더 유리했다.
렐름 검법은 검술 자체만이 아닌 마법이 합쳐져서 완성되는 검법.
마법에 관해선 이미 통달한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았다.
이자벨은 호흡을 가다듬고 재차 공격을 준비했다.
“1식, 갈래살!”
백염(白炎)이 다시금 검신을 휘감았다.
그것을 사정없이 허공에 뿌리자 점 형태의 불들이 비수처럼 날았다.
유리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가 머리 위로 들었다. 그 끝을 따라 검은 화염의 장막이 펼쳐졌다.
화르륵!
백염이라 할지라도 검은 불길을 통과할 순 없었다.
그러나 불꽃을 뚫고 레이피어 끝이 뚫고 들었다. 작은 점으로 통과한 검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렐름 2식, 파동살이었다.
퍼엉!
레이피어를 중심으로 무형의 폭발이 일어나자 검은 장막이 흩어져 사라졌다.
방어가 뚫리자 레이피어를 화살처럼 당겼다가 내밀었다.
“파동살!”
이번엔 백염을 담아 2식을 발휘했다. 하얀 불들이 물결처럼 삽시간에 모여들었다가 터진다.
퍼어어엉!!!
첫 파동살보다 큰 굉음이 유리의 코앞에서 터졌다. 미처 헬파이어를 쓸 틈도 없었다.
그러나 검에 베이는 감각이 없다. 일렁이는 불꽃 뒤로 있어야 할 그림자조차 사라졌다.
이자벨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그었다.
꾸득.
‘꾸득?’
이번엔 검에 무언가가 닿았다. 허나 여전히 벤다는 느낌은 부족했다.
그보다는 끈끈한 늪에 억지로 검을 밀어 넣는 기분이었다.
유리가 진흙벽을 세워서 막은 것이었다.
서둘러 빼보려고 해봤으나 가만히 있을 그가 아니었다.
“살아있음을 멈추어 증명하라, 프리징!”
벽에 대고 있던 손을 시작으로 진흙이 얼어붙었다.
그대로 레이피어마저 고정되기 직전.
이자벨은 순간적으로 팔에 마나를 집중시켜서 완력만으로 검을 빼냈다.
이후로도 둘은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수족을 묶어놓고 하는 식이라 어느 한곳으로 승부가 기울지 않는 형국이 계속 이어졌다.
* * *
그 사이 대련장에는 생도들을 포함해서 어느새 선배 기사들과 교관들까지 모여서 지켜보고 있었다.
생도들은 저마다 반응이 달랐다.
“엘리트들이라서 그런가. 엄청 빠르다.”
“이자벨 양이 쓰는 검술은 처음 보네. 뭔지 아냐?”
“몰라. 검술이 맞긴 한 건가. 마법 아냐?”
“불을 터뜨리고 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유리 저 놈은 왜 아까부터 마법만 쓰는 거야. 티르빙은 어쨌어? 그거 보려고 왔는데.”
“둘이 뭐 약속이라도 했나 보지.”
“설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냐? 그래서 봐주는 거지!”
“헐, 진짜? 대박!”
생도들의 시선에서 둘의 대련은 치열하기만 하지, 볼 만한 게 없었다.
단조로운 검술과 마법의 반복이 이뤄졌으니 그리 보일 수밖에.
심심한 대련에서 허황된 가십거리로 생도들의 흥미가 옮겨지는 동안.
선배 기사들과 교관들은 흥미로운 대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거 저러다 누구 하나 쓰러지겠어.”
“자네도 그렇게 보이나?”
“유리 님은 헬파이어를, 이자벨은 렐름 검법을 쓰고 있잖아. 생도 수준인 두 사람한테는 쓰기도, 막기도 벅찰 거야.”
“유리 님이 8서클을 벌써 넘기셨던가?”
“아니, 저번에 신체검사 했을 땐 6서클이셨어.”
“근데 어떻게 헬파이어를 쓰시는 거지?”
“마검의 주인이시니까 뭔가 수를 쓰셨겠지.”
“허어, 그래도 대단하네. 고위 마법에 마검의 주인. 이자벨도 1, 2식 뿐이지만 거의 완벽해. 타나토 님이나 제몬 님도 저 정돈 아닐 텐데.”
“그건 그렇지. 생도들 중에서 헬파이어랑 렐름 검법을 쓰는 녀석들이 어디 있었다고.”
생도가 아닌 관객들은 그들이 어떤 검법과 마법으로 싸우고 있는지 바로 알아봤다.
그 중에서도 유리에게 관심이 쏠렸다.
렐름 검법이야 배워서 어떤 식으로든 쓸 수 있다고 해도, 지팡이 없이 8서클 마법을 쓰는 유리가 마냥 신기했다.
유리가 어떻게 마법을 쓰고 있는지 대해서 토론까지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관객들 모두 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바로 유리가 검을 지팡이 삼아 마법을 쓰고 있다는 오해였다.
허나 진실은 검을 뽑기만 했을 뿐. 그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으며 또한 검을 매개체로 삼아서 마법을 쓰지도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건 아무도 없었다.
“끄윽!!!”
쿵!
유리가 충격으로 인해 뒤로 나자빠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그가 쓰러지자 놀란 이자벨이 검까지 놓쳐가면서 달려왔다.
“괘, 괜찮나?!”
“괜찮아, 괜찮아.”
유리가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이자벨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급하게나마 치료 마법을 썼다.
방금 전, 갑자기 대련의 승세가 유리쪽으로 기울었었다.
얼었던 진흙벽을 방패로 삼자 이자벨의 불꽃이 벽을 강타했다. 삽시간에 벽이 녹아 바닥이 흥건해졌다.
유리는 그녀가 발을 내딛는 타이밍에 젖은 바닥을 얼려서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녀가 넘어지자 승리를 직감한 유리는 바로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그때 이자벨도 무의식적으로 방어를 하기 위해 같이 마법을 썼고, 이 바람에 예상하지 못한 마법에 유리가 도리어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이자벨이 위력을 줄인 덕에 다친 곳은 없었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괜찮다니까. 방심한 나도 문제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틈을 많이 줘 버렸어.”
이자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리를 일으켜줬다. 그 사이 관객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녀가 물었다.
“갑자기 왜 방심했지?”
“이길 수 있어서 그랬다니까.”
“그게 아니지 않나.”
그녀가 아는 유리는 승리에 도취해서 방심할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 훨씬 치밀하고 능률적으로 싸운다.
방금 전 대련에서 줄곧 그런 모습만 보이다가 마지막에 가서 방심했다니.
“마법을 못 쓴 거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유리는 멋쩍게 웃었다.
“쩝, 이자벨은 못 속이겠어.”
“내게 말했던 걸 진짜로 해본 건가.”
“맞아.”
“허!”
이자벨은 기함을 토할 뻔하다가 도로 삼켰다.
정령술에 관해서 물었던 날.
유리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마법 발동 방식에 대해 물었었다.
“만약 내 몸을 매개체로 삼아서 쓴다면 어떨 거 같아?”
“육체를 지팡이처럼?”
“응.”
“말도 안 된다. 지팡이가 따로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육체로는 발동 단계에서 버티질 못해.”
“근데 너한테 이미 한 번 써 봤는데?”
“언제?”
“너랑 처음 대련했을 때.”
유리가 이자벨에게 절대영도 마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려고 티르빙으로 마법을 발동시켰었다.
이후 카이를 구했을 때도 티르빙을 지팡이처럼 사용해서 헬파이어를 썼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유리는 한 가지 가설을 주장했다.
“티르빙은 곧 내 피이고, 피는 내 몸이니까. 지팡이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할 건 같긴 하지만…… 그래도 부하가 생기는 건 막지 못한다. 절대영도는 잠깐 사용했었으니까 몰랐을지라도, 오랜 시간 마법을 썼다간 몸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코어도 부서질 거다.”
“으음, 역시 그게 문제인가.”
이후로 유리는 더 이상 육체를 매개체 삼는다는 의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헌데 지금 돌이켜 보니.
안 한 게 아니라, 그것만 연구하느라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자벨은 얼른 유리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으며 살폈다. 그리곤 뺨을 터질 듯이 움켜쥐며 물었다.
“괜찮은 거지? 어디 아프거나 하지는 않은 건가?”
“요즘 날 환자 취급하는 사람이 많네. 괜찮아. 아주 멀쩡해.”
“하지만 방금 전에 마법이 중단된 건 뭐고!”
“헬파이어를 계속 썼더니 마나가 모자라서.”
“하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육신을 매개체로 삼는다니!
전혀 상상도 못한 방식이었다.
이건 말 그대로 티르빙을 가진 유리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에 그녀가 재차 물었다.
“저어, 유리. 초 치려는 건 아니다만, 굳이 육체를 지팡이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해보는 거지.”
“그, 그냥?”
“응, 솔리드녹스의 마법서를 읽다보니까 가능할 거 같아서 해본 거야.”
“…….”
이자벨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사실상 제 몸으로 하는 실험을 재미삼아 하다니.
결국 유리의 몸에 이상이 생겨서 마지막에 이자벨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만에 하나 실전이었다면 유리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이게 대련이니까 가능했겠지.
허나.
사실 유리에겐 다른 의도가 있었다.
‘빅스터가 썼던 마법이랑은 완전히 느낌이 달라.’
[용언 마법이 그리 쉽게 되는 거면 어느 용가나 명맥이 이어졌겠지.]빅스터 린테어 솔리드녹스.
이자벨이 망명하면서 만났던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용언 마법을 펼쳤었다.
그를 겪어보면서 받았던 느낌을 떠올리면서 유리는 용언 마법 비슷한 것을 시도했다.
물론, 비슷한 것이지 진짜는 아니었다.
[형태가 유사하다고 다 용언 마법은 아니야. 드래곤들이 괜히 드래곤이겠니.]‘과정 자체는 똑같잖아.’
[그건 나도 몰라. 이 언니가 드래곤은 아니잖니.]솔리드녹스의 마법서를 읽다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용언 마법은 술식이나 마도구가 필요 없다.
필요한 건 오로지 짧은 주문과 마나뿐.
그마저도 고대 드래곤들은 마나만으로 마법을 썼으며, 그것이 용언 마법의 원형이었다.
결국 마나만 있다면 용언 마법이 가능하다는 게 솔리드녹스의 주장이다.
허나 그러면서도 한 가지 전제를 붙였다.
‘용언 마법의 주문은 그 자체가 마도구이자 마법이다.’
이를 바꿔서 해석하면 주문을 외우는 언어가 있고, 언어는 말하는 주체가 있으니.
‘주문이 마도구이자 마법이라면 드래곤들에게는 본인 자체가 시전자이자 마도구였던 거지.’
[얼추 설명이 맞아도, 글쎄. 마법의 원형이란 게 드래곤들도 대충 만들어서. 확실치는 않아.]‘마법을 대충 만들었다고?’
[드래곤들이 왜 마법을 만들었을 거 같아?]‘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그건 인간들의 시선에서 입맛에 맞게 한 해석이고. 원래는 드래곤의 자손인 용인과 인간들이 같이 졸라서 만든 게 마법이야.]‘……조른 거야, 생떼부린 거야?’
[그것도 인간의 해석에 맡겨 봐봐. 어땠을지 넌 상상도 못할걸?]티르빙 어르신의 옛날 옛적 전래동화는 항상 들을 때마다 새로웠다.
물론.
들어서 유익한 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애들 싸움보다 못할 수준으로 유치하기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