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신분증 만들 수고가 덜어졌으니 유리의 행동도 빨라졌다. 바로 짐을 싸고 교국으로 출발했다.
교국 아링턴은 동남부의 따듯한 해안 지대를 따라 형성된 작은 도시 국가다.
그 주변으론 여러 중립국들이 교국의 교리를 수호하고자 군사 협조를 통해 사방을 지켰다.
마나 열차로 남부 지역까지 내려간 유리는 부랑자 행세로 변장한 뒤 짐마차를 얻어 탔다.
중립국들을 지나는 동안에는 준비한 신분증 덕에 큰 제지가 없었다.
마지막 관문으로 교국 국경에서 다다르자 짐마차가 멈췄다.
“어이! 여기서부턴 직접 걸어가야 해! 난 다른 곳으로 가야 해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려, 성지 순례 잘 마치고. 나중에 또 보면 썰이나 풀어주게나. 젊은이의 이야기는 재미있을 거 같구먼.”
인상 좋은 마부와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던 유리는 가야 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강 위로 아치교가 놓여 있다. 위로는 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교국으로 들어가는 국경은 강을 건너야 했다. 이곳 말고는 건널 방법이 없다.
강 아래에는 바다만큼이나 깊고 물살이 빨라서 휘말렸다가 살아나오기가 힘들었다.
‘도망 나올 때가 문제네.’
[소동이라도 벌이려고?]‘만에 하나 그렇다는 거지. 되도록 조용히 처리할 거야.’
사람들 틈에 끼어서 유리는 심사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많은 인파에 비해 입국 심사는 신속히 이뤄졌다. 유리도 1시간쯤 지나서 심사 직원과 맞닥뜨렸다.
작은 창구 너머 여자 직원이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신분증이요.”
“여기.”
“이름이…… 율 하레이?”
“그렇습니다.”
참고로 율이란 가명은 채럿이 지었다. 발음이 안 되어서 가끔 율이라고 부르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
하레이는 릴림이 붙였다. 뜻이 뭔지 묻자 별 의미 없이 지었단다.
당분간 이 이름으로 대외 활동을 할 계획이었다.
“성지 순례를 다니셨다고요?”
“이곳이 최종목적지입니다.”
“음.”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나름 후드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늘 아래 젊은 티는 그대로였다.
성지 순례를 다니는 사람치곤 워낙 어려 보이는지라 직원은 한참 동안 그를 뚫어져라 살폈다.
“당신, 성지 순례자 맞아요?”
“맞습니다만.”
“이상한데.”
앞서 빠른 심사들에 반해 유리를 맡은 직원은 깐깐했다.
그렇게 여러 질문을 꼬치꼬치 묻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옆에 있던 벨을 과감히 눌렀다.
“여기요! 성기사 좀 보내주세요!”
위잉! 위잉!
갑자기 경고음이 울렸다.
다리가 반으로 갈라져서 올라가고 갑작스레 생긴 비탈에 사람들이 우왕좌왕 인파에 밀려난다.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은 유리와 검문소를 둘러쌌다. 교국 안쪽에서 훨씬 중무장을 한 성기사들 한 무리가 몰려왔다.
이 모든 게 고작 30초 만에 일어났다.
[꼬맹이.]“알아.”
이거, X됐다.
편두통이 물밀듯 몰려왔다.
설마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성지순례자 자격을 의심받을 줄이야.
아니, 의심은 괜찮다.
세상 어떤 입국 심사원이 의심만으로 성기사 전체를 호출하는 버튼을 누르겠는가.
‘플랜 B다.’
유리도 고민하지 않았다.
시작을 망쳤어도 마무리만 좋으면 되니까.
“윈드 붐, 아이스볼트!”
전과 똑같은 마법 조합식, 그러나 사용 방법은 달랐다.
응축된 공기가 터지기 직전, 거대한 아이스볼트를 연달아 시전하면서 공기 위에 씌우듯이 생성시켰다.
작은 송곳으로 시작한 아이스볼트가 쌓이고 쌓이자 단숨에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울산바위보다 큰 덩어리로 변했다.
이미 윈드 붐 시전은 끝났지만, 얼음의 두께와 강도 때문에 당장 폭발하진 않았다.
당장은 말이다.
“어억! 피, 피해!”
가까이서 포위하던 병력들이 하늘을 가릴 기세로 커지는 얼음 덩어리를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오던 본대도 전진을 멈추곤 진열을 짜서 방패를 들었다.
“읏! 차!”
도망가는 성기사 무리를 향해 얼음폭탄을 던졌다. 다행히 기사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진 않았다.
대신 바닥과 부딪히자 충격을 이기지 못한 얼음이 갈라졌다.
그 틈으로 응축됐던 바람이 단숨에 터져 나왔다.
퍼어엉!!!
제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얼음들이 세열수류탄 터지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방패에에!!! 들엇!!!”
투두두두둑!
훈련이 된 기사들답게 명령 한 번만으로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방패를 들고, 진열에서 빠진 이들은 다른 동료들이 대신 방패를 들었다.
얼음들이 무지막지하게 그들을 난타했다.
그 사이 유리는 갈라져서 올라간 다리 끄트머리 쪽으로 달렸다.
가팔랐으나 유리에게 경사와 중력이 주는 저항은 더 의상 의미 없었다.
꼭대기에 매달린 유리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도 다치진 않았군.”
얼음 폭탄의 여파로 기사단들은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피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정없는 폭탄 같았어도 유리 나름대로 부서질 때 뭉툭하게 부서지도록 조절했었다.
원래라면 아이스볼트 자체가 얼음을 날카롭게 만드는 마법이라 불가능했지만, 솔리드녹스의 마법서를 통해 마법의 근간에 대해 익힌 덕분이었다.
“가 볼까.”
[난 말했어. 추천하지 않아.]“추천대로 물건 고르면 재미없지.”
[그 놈의 재미, 재미……. 재미 보다가 요절할 뻔한 과거는 벌써 잊었니?]“어.”
성기사들이 헤매고 있는 걸 확인한 유리는 강으로 뛰어 들었다.
첨벙!
누군가가 “강에 빠졌다!”라며 소리쳤다.
뒤늦게 다른 경비 병력과 성기사들이 몰려와서 강을 내려다봤다.
거센 물살이 서로 묶여서 굽이치는 강에는 검은 흙탕물만이 튀어 올랐다.
성기사 한 명이 상관에게 물었다.
“어찌할까요?”
“뭘 어떡해. 놔둔다.”
“하지만…….”
“저 강에 빠져서 살아남은 자는 없어. 설령 용인이 와도 저긴 못 건너.”
그리 말하며 상관은 한 마디 덧붙였다.
“괜히 스틱스 강이라 불리는 게 아냐. 망자들이 산 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다.”
* * *
강에 빠진 유리는 숨을 참은 채 물살에 몸을 맡겼다.
눈앞에는 검은 강물과 흙빛이 들이쳤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우윽, 어지러워.’
계속해서 몸이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현기증이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헤엄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허나 참았다.
절대 몸에 힘을 줘서 빠져나가려고 하거나 억지로 헤엄을 쳐선 안 됐다.
그랬다간 강에 사는 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푸르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정면에서 하얀 형체가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잡아먹히는 줄 알고 눈을 감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니 하얀 사자는 유리를 통과하고 강줄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하얀 형체들이 저 멀리서 더 많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망자들!’
교국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강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강 따위가 아니었다.
망자들의 통로이자 죽음을 매듭짓는 강, 스틱스였다.
‘작가 놈, 이럴 땐 쓸 때 없는 설정이나 쓰고.’
스틱스 강은 카이도 모르는 설정집에만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했었는지 이런 식의 버려진 설정들이 종종 있었는데, 버려진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중 스틱스 강은 망자들이 실재한다는 설정이 씌워졌다.
빠지면 망자들에게 끌려가서 죽는다는 쌈박한(?) 설정은 덤.
이곳을 통과하는 법은 간단하다.
‘급류에 몸을 맡긴다. 단, 숨을 쉬어서 산 자임을 증명하면 안 된다.’
살아있음을 들키는 순간 망자들이 역류를 역행해서 끌고 간다. 그랬다간 수면 구경은커녕 저승부터 구경할 터.
파르르르르르르르르르!!!
삽시간에 수백, 수천의 망자들이 유리를 통과했다. 이질적인 기운이 연달아 지나가자 머리가 더 어지러웠다.
[반응하면 안 돼~ 반응하는 순간 산 자로 인식해서 끌려간다고.]‘알……아!’
아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숨도 못 쉬어서 산소 부족으로 뇌가 터질 거 같은데, 망자들까지 자극하는 바람에 죽을 맛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쿵!
‘벽!’
드디어 목적지가 보였다.
스틱스 강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 같아도 과거엔 이 강을 인간의 힘으로 수로로 개척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물론 실패했지만, 그때 완공된 벽이 남아있었으니.
그 벽에 다다르자 유리는 양손에 한 자루씩 마검을 짧게 뽑아 벽에 박았다.
쿠드드드드!
벽에 박혔는데도 강한 물살을 따라 몸이 흐르면서 기다란 홈이 파였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멈출 수 있었고.
“꾸륵!”
동시에 참았던 숨이 터질 뻔했다.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마나를 쥐어짜서 벽에 박히지 않은 마검에 주입했다.
그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파라라라라라락!!!
갑자기 몇몇 망자들이 유리를 향해 덤볐다. 놈들은 다른 망자들과 달리 회색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들은 통과하려는 게 아니라 정확히 옷자락을 잡아서 당겼다.
“……!”
어째서?!
설마, 마검 때문에?
추측할 여유 따윈 없었다. 유리는 아무렇게나 마나를 흩뿌려서 망자들을 떨쳤다.
그러나 마나를 뿌리면 뿌릴수록 더 많은 망자들이 달라붙었다.
‘빌어먹을!’
유리는 망자들을 내버려 두고 본래 하려던 작업에 집중했다.
마나가 응집된 마검에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아칸 검법, 2식.
어둠 송곳이었다.
검은 기운이 마검을 뾰족하게 감싸자 그것을 벽으로 찔렀다.
순두부를 파고들듯 검이 들어갔고, 검끝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자 바로 뽑았다.
푸화아악!
구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갔다. 그 압력이 강해서 구멍 주변의 벽들이 안쪽으로 같이 휘말리면서 점점 구멍이 커졌다.
이윽고 건장한 사내가 들어갈 정도로 커지자 유리는 몸을 들이밀었다.
‘됐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교국 바로 아래에 있는 하수도와 이어졌다. 여기는 원작에서 카이가 종종 이용하던 루트라서 확실히 기억했다.
그러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파락파락파락파락파락파락!
괴기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회색 망자가 유리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놀란 그는 뒤를 훽 돌아봤다.
여태 봤던 망자들 중 가장 거대해서 형체를 바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입을 벌린 채 혓바닥으로 유리를 잡았고 구멍 저 너머 벌어진 주둥이가 잡아먹으려고 움찔거렸다.
그것은 어떤 육신이 있던 영혼이라기보다 마치 스틱스 강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놈 같았다.
왠지 몰라도 그런 직감이 들었다.
그것이 입을 벌려 유리를 삼키려 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영혼의 정체를 알았다.
‘락타샤!’
일전에 채럿을 만났던 언더하울에서 흑마법사가 기르던 락타샤였다.
영혼이긴 해도 느껴지는 기운이 당시의 놈과 비슷했다.
‘빌어먹을 파충류가 죽어서도 날 괴롭히냐?!’
더 이상 독니 같은 위협은 없었어도 위력은 어딜 가지 않았다.
혓바닥만으로 잡고 있는데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구멍이 더 커져서 유리를 삼킬 수 있었다.
그것만이 문제냐.
‘숨……이……!’
삼켜뒀던 산소는 한계치를 벗어나서 전부 소모했다. 귀에서 티르빙이 뭐라고 떠들었으나 이마저도 안 들렸다.
슬슬 근육에 공급될 산소마저 떨어지려던 찰나.
사악!
뭔가를 베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혓바닥에 힘이 빠졌다. 구멍 너머 머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유리도 힘이 빠지긴 마찬가지.
의지를 잃은 몸뚱어리는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여간, 귀찮게 하네.]보다 못한 티르빙이 유리의 손끝으로 실처럼 흘러나왔다. 가느다란 실은 수면 위를 향해 빠르게 올라갔다.
그렇게 바깥으로 티르빙이 다다르고.
누군가가 실을 힘껏 잡아당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신분증 만들 수고가 덜어졌으니 유리의 행동도 빨라졌다. 바로 짐을 싸고 교국으로 출발했다.
교국 아링턴은 동남부의 따듯한 해안 지대를 따라 형성된 작은 도시 국가다.
그 주변으론 여러 중립국들이 교국의 교리를 수호하고자 군사 협조를 통해 사방을 지켰다.
마나 열차로 남부 지역까지 내려간 유리는 부랑자 행세로 변장한 뒤 짐마차를 얻어 탔다.
중립국들을 지나는 동안에는 준비한 신분증 덕에 큰 제지가 없었다.
마지막 관문으로 교국 국경에서 다다르자 짐마차가 멈췄다.
“어이! 여기서부턴 직접 걸어가야 해! 난 다른 곳으로 가야 해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려, 성지 순례 잘 마치고. 나중에 또 보면 썰이나 풀어주게나. 젊은이의 이야기는 재미있을 거 같구먼.”
인상 좋은 마부와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던 유리는 가야 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강 위로 아치교가 놓여 있다. 위로는 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교국으로 들어가는 국경은 강을 건너야 했다. 이곳 말고는 건널 방법이 없다.
강 아래에는 바다만큼이나 깊고 물살이 빨라서 휘말렸다가 살아나오기가 힘들었다.
‘도망 나올 때가 문제네.’
[소동이라도 벌이려고?]‘만에 하나 그렇다는 거지. 되도록 조용히 처리할 거야.’
사람들 틈에 끼어서 유리는 심사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많은 인파에 비해 입국 심사는 신속히 이뤄졌다. 유리도 1시간쯤 지나서 심사 직원과 맞닥뜨렸다.
작은 창구 너머 여자 직원이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신분증이요.”
“여기.”
“이름이…… 율 하레이?”
“그렇습니다.”
참고로 율이란 가명은 채럿이 지었다. 발음이 안 되어서 가끔 율이라고 부르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
하레이는 릴림이 붙였다. 뜻이 뭔지 묻자 별 의미 없이 지었단다.
당분간 이 이름으로 대외 활동을 할 계획이었다.
“성지 순례를 다니셨다고요?”
“이곳이 최종목적지입니다.”
“음.”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나름 후드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늘 아래 젊은 티는 그대로였다.
성지 순례를 다니는 사람치곤 워낙 어려 보이는지라 직원은 한참 동안 그를 뚫어져라 살폈다.
“당신, 성지 순례자 맞아요?”
“맞습니다만.”
“이상한데.”
앞서 빠른 심사들에 반해 유리를 맡은 직원은 깐깐했다.
그렇게 여러 질문을 꼬치꼬치 묻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옆에 있던 벨을 과감히 눌렀다.
“여기요! 성기사 좀 보내주세요!”
위잉! 위잉!
갑자기 경고음이 울렸다.
다리가 반으로 갈라져서 올라가고 갑작스레 생긴 비탈에 사람들이 우왕좌왕 인파에 밀려난다.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은 유리와 검문소를 둘러쌌다. 교국 안쪽에서 훨씬 중무장을 한 성기사들 한 무리가 몰려왔다.
이 모든 게 고작 30초 만에 일어났다.
[꼬맹이.]“알아.”
이거, X됐다.
편두통이 물밀듯 몰려왔다.
설마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성지순례자 자격을 의심받을 줄이야.
아니, 의심은 괜찮다.
세상 어떤 입국 심사원이 의심만으로 성기사 전체를 호출하는 버튼을 누르겠는가.
‘플랜 B다.’
유리도 고민하지 않았다.
시작을 망쳤어도 마무리만 좋으면 되니까.
“윈드 붐, 아이스볼트!”
전과 똑같은 마법 조합식, 그러나 사용 방법은 달랐다.
응축된 공기가 터지기 직전, 거대한 아이스볼트를 연달아 시전하면서 공기 위에 씌우듯이 생성시켰다.
작은 송곳으로 시작한 아이스볼트가 쌓이고 쌓이자 단숨에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울산바위보다 큰 덩어리로 변했다.
이미 윈드 붐 시전은 끝났지만, 얼음의 두께와 강도 때문에 당장 폭발하진 않았다.
당장은 말이다.
“어억! 피, 피해!”
가까이서 포위하던 병력들이 하늘을 가릴 기세로 커지는 얼음 덩어리를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오던 본대도 전진을 멈추곤 진열을 짜서 방패를 들었다.
“읏! 차!”
도망가는 성기사 무리를 향해 얼음폭탄을 던졌다. 다행히 기사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진 않았다.
대신 바닥과 부딪히자 충격을 이기지 못한 얼음이 갈라졌다.
그 틈으로 응축됐던 바람이 단숨에 터져 나왔다.
퍼어엉!!!
제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얼음들이 세열수류탄 터지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방패에에!!! 들엇!!!”
투두두두둑!
훈련이 된 기사들답게 명령 한 번만으로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방패를 들고, 진열에서 빠진 이들은 다른 동료들이 대신 방패를 들었다.
얼음들이 무지막지하게 그들을 난타했다.
그 사이 유리는 갈라져서 올라간 다리 끄트머리 쪽으로 달렸다.
가팔랐으나 유리에게 경사와 중력이 주는 저항은 더 의상 의미 없었다.
꼭대기에 매달린 유리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도 다치진 않았군.”
얼음 폭탄의 여파로 기사단들은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피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정없는 폭탄 같았어도 유리 나름대로 부서질 때 뭉툭하게 부서지도록 조절했었다.
원래라면 아이스볼트 자체가 얼음을 날카롭게 만드는 마법이라 불가능했지만, 솔리드녹스의 마법서를 통해 마법의 근간에 대해 익힌 덕분이었다.
“가 볼까.”
[난 말했어. 추천하지 않아.]“추천대로 물건 고르면 재미없지.”
[그 놈의 재미, 재미……. 재미 보다가 요절할 뻔한 과거는 벌써 잊었니?]“어.”
성기사들이 헤매고 있는 걸 확인한 유리는 강으로 뛰어 들었다.
첨벙!
누군가가 “강에 빠졌다!”라며 소리쳤다.
뒤늦게 다른 경비 병력과 성기사들이 몰려와서 강을 내려다봤다.
거센 물살이 서로 묶여서 굽이치는 강에는 검은 흙탕물만이 튀어 올랐다.
성기사 한 명이 상관에게 물었다.
“어찌할까요?”
“뭘 어떡해. 놔둔다.”
“하지만…….”
“저 강에 빠져서 살아남은 자는 없어. 설령 용인이 와도 저긴 못 건너.”
그리 말하며 상관은 한 마디 덧붙였다.
“괜히 스틱스 강이라 불리는 게 아냐. 망자들이 산 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다.”
* * *
강에 빠진 유리는 숨을 참은 채 물살에 몸을 맡겼다.
눈앞에는 검은 강물과 흙빛이 들이쳤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우윽, 어지러워.’
계속해서 몸이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현기증이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헤엄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허나 참았다.
절대 몸에 힘을 줘서 빠져나가려고 하거나 억지로 헤엄을 쳐선 안 됐다.
그랬다간 강에 사는 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푸르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정면에서 하얀 형체가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잡아먹히는 줄 알고 눈을 감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니 하얀 사자는 유리를 통과하고 강줄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하얀 형체들이 저 멀리서 더 많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망자들!’
교국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강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강 따위가 아니었다.
망자들의 통로이자 죽음을 매듭짓는 강, 스틱스였다.
‘작가 놈, 이럴 땐 쓸 때 없는 설정이나 쓰고.’
스틱스 강은 카이도 모르는 설정집에만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했었는지 이런 식의 버려진 설정들이 종종 있었는데, 버려진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중 스틱스 강은 망자들이 실재한다는 설정이 씌워졌다.
빠지면 망자들에게 끌려가서 죽는다는 쌈박한(?) 설정은 덤.
이곳을 통과하는 법은 간단하다.
‘급류에 몸을 맡긴다. 단, 숨을 쉬어서 산 자임을 증명하면 안 된다.’
살아있음을 들키는 순간 망자들이 역류를 역행해서 끌고 간다. 그랬다간 수면 구경은커녕 저승부터 구경할 터.
파르르르르르르르르르!!!
삽시간에 수백, 수천의 망자들이 유리를 통과했다. 이질적인 기운이 연달아 지나가자 머리가 더 어지러웠다.
[반응하면 안 돼~ 반응하는 순간 산 자로 인식해서 끌려간다고.]‘알……아!’
아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숨도 못 쉬어서 산소 부족으로 뇌가 터질 거 같은데, 망자들까지 자극하는 바람에 죽을 맛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쿵!
‘벽!’
드디어 목적지가 보였다.
스틱스 강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 같아도 과거엔 이 강을 인간의 힘으로 수로로 개척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물론 실패했지만, 그때 완공된 벽이 남아있었으니.
그 벽에 다다르자 유리는 양손에 한 자루씩 마검을 짧게 뽑아 벽에 박았다.
쿠드드드드!
벽에 박혔는데도 강한 물살을 따라 몸이 흐르면서 기다란 홈이 파였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멈출 수 있었고.
“꾸륵!”
동시에 참았던 숨이 터질 뻔했다.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마나를 쥐어짜서 벽에 박히지 않은 마검에 주입했다.
그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파라라라라라락!!!
갑자기 몇몇 망자들이 유리를 향해 덤볐다. 놈들은 다른 망자들과 달리 회색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들은 통과하려는 게 아니라 정확히 옷자락을 잡아서 당겼다.
“……!”
어째서?!
설마, 마검 때문에?
추측할 여유 따윈 없었다. 유리는 아무렇게나 마나를 흩뿌려서 망자들을 떨쳤다.
그러나 마나를 뿌리면 뿌릴수록 더 많은 망자들이 달라붙었다.
‘빌어먹을!’
유리는 망자들을 내버려 두고 본래 하려던 작업에 집중했다.
마나가 응집된 마검에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아칸 검법, 2식.
어둠 송곳이었다.
검은 기운이 마검을 뾰족하게 감싸자 그것을 벽으로 찔렀다.
순두부를 파고들듯 검이 들어갔고, 검끝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자 바로 뽑았다.
푸화아악!
구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갔다. 그 압력이 강해서 구멍 주변의 벽들이 안쪽으로 같이 휘말리면서 점점 구멍이 커졌다.
이윽고 건장한 사내가 들어갈 정도로 커지자 유리는 몸을 들이밀었다.
‘됐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교국 바로 아래에 있는 하수도와 이어졌다. 여기는 원작에서 카이가 종종 이용하던 루트라서 확실히 기억했다.
그러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파락파락파락파락파락파락!
괴기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회색 망자가 유리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놀란 그는 뒤를 훽 돌아봤다.
여태 봤던 망자들 중 가장 거대해서 형체를 바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입을 벌린 채 혓바닥으로 유리를 잡았고 구멍 저 너머 벌어진 주둥이가 잡아먹으려고 움찔거렸다.
그것은 어떤 육신이 있던 영혼이라기보다 마치 스틱스 강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놈 같았다.
왠지 몰라도 그런 직감이 들었다.
그것이 입을 벌려 유리를 삼키려 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영혼의 정체를 알았다.
‘락타샤!’
일전에 채럿을 만났던 언더하울에서 흑마법사가 기르던 락타샤였다.
영혼이긴 해도 느껴지는 기운이 당시의 놈과 비슷했다.
‘빌어먹을 파충류가 죽어서도 날 괴롭히냐?!’
더 이상 독니 같은 위협은 없었어도 위력은 어딜 가지 않았다.
혓바닥만으로 잡고 있는데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구멍이 더 커져서 유리를 삼킬 수 있었다.
그것만이 문제냐.
‘숨……이……!’
삼켜뒀던 산소는 한계치를 벗어나서 전부 소모했다. 귀에서 티르빙이 뭐라고 떠들었으나 이마저도 안 들렸다.
슬슬 근육에 공급될 산소마저 떨어지려던 찰나.
사악!
뭔가를 베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혓바닥에 힘이 빠졌다. 구멍 너머 머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유리도 힘이 빠지긴 마찬가지.
의지를 잃은 몸뚱어리는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여간, 귀찮게 하네.]보다 못한 티르빙이 유리의 손끝으로 실처럼 흘러나왔다. 가느다란 실은 수면 위를 향해 빠르게 올라갔다.
그렇게 바깥으로 티르빙이 다다르고.
누군가가 실을 힘껏 잡아당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