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98
제98화
키메라는 사방으로 제 몸에 붙은 점액질을 흩뿌렸다.
산성액이었다.
닿는 것마다 연기를 내면서 녹는다. 성기사들이 든 방패조차 구멍이 났다.
더 사단이 나기 전.
유리는 검은 마나, 아니. 검은 성력을 끌어모아 발산했다.
우우우웅.
새카만 초승달처럼 검기가 날았다. 무형의 마나는 소리 없이 키메라의 머리통에 직격으로 맞았다.
그륵?
아가리를 벌리고 전진하던 키메라는 제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지 못했다.
눈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느릿하게 끔뻑거렸다.
이윽고 속도가 느려지더니 정확히 세로로 몸의 절반이 갈라졌다.
투둑, 두둑, 쿠두두둑!
갈라진 단면에서 온갖 것들이 쏟아졌다.
돌, 철, 시체, 뼈, 뭔지 알 수 없는 내장이 범벅된 채였다.
쿵!
좌우로 놈의 시체가 떨어졌다.
아직 죽지 않았다.
진흙이 계속 나왔으며 곳곳이 꿈틀댔다. 튀어나온 내장들도 발작 비슷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시 하나로 합쳐질 수도 없었다.
이어 붙으려고 서로 촉수가 뻗어 나와서 닿아 봐도 바로 무너지길 반복했다.
단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검은 성력 때문이었다.
“아, 피.”
유리는 입가에 흐른 피를 소매로 대충 닦았다.
역시 아직은 반발력이 있나.
태연자약한 그의 태도에 밀리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네가 어떻게, 성기사 검술을……!”
“좋은 스승이 있어서.”
“대체 누가 성기사 검술을 너한테 알려준다고!”
“전직 성녀? 전직 성녀 후보? 그 정도로만 말해둘게.”
보통 하얗다는 성력과 색이 다른 검은 성력.
그래도 분명히 성력이었다.
이를 가르쳐 준 사람은 당연히 유리의 스승인 릴림이었다.
마검을 다루는 유리에겐 절대 불가능한 기술이라며 릴림은 쓰지도 말라고 했었다.
마검에 성력이라니.
당연히 반발성 때문에 무리가 올 게 빤했겠지.
물론, 그건 별빛나무의 힘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성력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한 마나인 별빛나무를 얻은 유리는 성기사 검술에 성력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마나와 성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알려졌지만, 이것도 아니었지.’
별빛나무의 마나를 성력으로 치환하는 방법은 솔리드녹스의 마법서를 통해서 알았다.
성력도 결국은 마나처럼 보이지 않는 에너지원.
종류가 다를 뿐이지, 결국 마나를 끌어들이고 쓰는 방법과는 같았으니.
‘카이가 쓰던 방법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배운 건 릴림으로부터였지만, 발상은 카이로부터였다.
원작 속 카이는 반대로 검은 마나를 성력으로 치환해서 성기사 검술을 썼었다.
왜 그리 했느냐?
‘보여주기 식이지.’
비록 색이 까맣긴 했으나 자리에 있던 모두가 성력이라는 걸 부정하진 못했다.
설령 성력이라 느끼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유리는 그런 성력을 이용해 흑마법사들이 검은 마나로 만든 키메라를 죽였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대신 카이와 다르게 미뭉이 아닌 마검을 목격당해 버렸다.
“야, 저거 마검 아냐?”
“근데 성력을 썼잖아.”
“성기사들 중에 마검을 쓰는 자가 섞여 있었나?”
“그럴 리가. 그랬으면 이미 죽었을 거라고.”
벌써 곳곳에서 의문이 피어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유리는 마검을 지우고 밀리샤를 향해 말했다.
“밀리샤 경, 뒤처리를 맡겨도 되겠지?”
“할 수 있는데, ……왜.”
“튀어야지.”
“뭐?”
이상한 말을 남긴 채 유리는 키메라를 향해 달렸다.
밀리샤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시체를 넘어 무너진 건물로 뛰어 올라가더니 그 뒤로 모습을 감췄다.
그야 말로 순식간이었다.
키메라가 나타나고, 검은 성력으로 죽이고, 마지막엔 도망가고.
“이 뭔…….”
우두커니 서 있던 밀리샤는 간신히 한마디를 뱉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마검을 내놓는 바람에 도망친 걸까? 하지만 성력을 썼는걸? 아니면 성력이 검은색이라 오해받을까 봐?
‘그것도 아니라면 무책임하게 나한테 모든 걸 맡기고 도망친……?’
그녀의 머리가 혼란으로 그득하게 돌아갔다.
“쪼, 쫓아라!”
구경만 하던 무리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다급한 목소리에 이목이 쏠렸다.
이단심문국의 상급 요원이었다.
“치, 침입자가 도망갔잖나! 얼른 좇아! 성기사단! 네놈들은 저년을 잡고!”
“하, 하지만…….”
“마검을 보고도 뭘 망설이는 거냐! 마검의 주인이 어찌 교국에 침입했는지 몰라도, 분명 저 년이 도왔을 게야! 그러니 얼른!”
중년의 그는 안 그래도 구깃구깃한 주름이 더 일그러질 정도로 격앙되었다.
밀리샤는 이를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았다.
‘여기서 나도 도망쳐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그녀는 잘못한 게 없었다. 이단심문국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유리와 싸웠을 뿐.
도망치면서까지 더 큰 오해를 사긴 싫었다.
허나 다행이랄지.
누구도 선뜻 밀리샤를 체포하러 나서지 않았다.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확실치는 않아도. 어쨌든 다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검의 주인이니까 쫓아야, 하……나?”
“그렇지만 악마를 죽이고 달아났잖아. 조, 좋은 일을 한 걸지도 몰라.”
“자기가 뿌려놓은 악마일 수도 있지!”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자기가 교국 안에 악마를 풀어놓고 죽인다고?”
“그렇긴 하네.”
사람들 사이에선 유리의 등장을 놓고 작은 설전이 오갔다.
마검의 주인은 확실했으니, 그가 무슨 이유로 교국 내에서 악마와 같이 등장했으며, 어째서 악마만 죽이고 달아났느냐였다.
하지만.
“멍청한 기사 놈들 같으니! 이단심문국 요원들이라도 들어라! 이단자가 교국에 침입했다! 비상대기조는 추적을 시작해!”
“네!”
“나머지는 저년을 잡아라! 필시 악마와 소통하는 놈이다!”
상급 요원의 명령에 다른 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뭐가 되었든 마검의 주인을 체포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를 도운 밀리샤도 마찬가지.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쌌고. 그녀도 졸지에 교국 사람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선두에 있던 낯익은 성기사가 조용히 타일렀다.
“밀리샤 경. 무기를 버리고 얌전히 투항하라.”
“내가 왜?”
“마검의 주인과 같이 나온 걸 모두가 봤다. 악마와 내통하고 있는 죄는―”
“사형.”
그것만이겠는가. 밀리샤는 담담하게 제 죄목을 읊었다.
“교국의 침입을 도왔고, 공공시설 파괴, 이단심문국 무단출입 등등. 사형으로 모자라겠어.”
“알면서도 투항하지 않겠다는 거냐?”
“더 잘 아는 건 당신들이지.”
“우리가 뭘…….”
“이단심문국이 이단 행위를 한다는 거.”
사실 오래 전부터 밀리샤는 이단심문국의 이단 행위를 의심했다.
교제 앞에서 욕설을 뱉은 사건만 해도 그랬다.
그 자체만으로도 신을 향한 모욕 그 자체였다.
헌데 다른 추기경들과 성기사단 누구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의심했다.
“당신들 모두 이단심문국의 비행을 눈감아 주고 있었어.”
그 밖에도 여러 사건이 많았다.
이단심문국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억울한 누명을 씌워도, 어느 누구 하나 죄를 고하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신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건가?
그럴 자격이나 있나?
“그런 이단심문국 안에서 악마가 튀어나왔어. 근데 당장 나와 마검의 주인을 악마로 몰고 죽이려고 하고 있다니. 우습지도 않지.”
“창조주께서 만든 이 세계에 악마는 절대적인 해악이다. 그건 당연한 거야!”
“근데 어떡하지. 난 신 따위 안 믿어. 그 ×새끼를 왜 믿어?”
“밀리샤 경! 방금 발언은 지극히 불경하다!”
“진실을 보고도 외면하는 늬들 눈깔과 대가리가 더 불경스러워.”
밀리샤는 여전히 태연자약하니 말했다.
감정 없이, 무심하게. 그렇기에 더더욱 살벌하게 느껴진다.
“다들 악마가 나타난 걸 봤잖아. 그걸 마검의 주인이 죽여줬고. 그리고 그 악마는 이단심문국에서 나왔어.”
“설마 그 마검의 주인이 우리를 도왔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제대로 조사를 받아서 진술하면 돼.”
“조사라고 거짓말하는 거 질리지도 않나. 어차피 죽일 거잖아.”
“죽이긴 누가!”
“나 특무대야. 내부 사정쯤은 나도 안다고.”
어차피 이 사태를 마무리 짓는 사람은 성기사, 추기경, 교제가 아니다.
악마와 이단을 조사하는 이단심문국.
이번 사안도 악마가 등장했으니 그들이 사건을 맡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조사를 한 적이 없었다. 좀 더 간편하게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을 테지.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러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알고도 모른 척했다.
“신께선 대체 무슨 정신으로 저런 자들에게 성력을 나누어 주셨는지…….”
“더 이상의 신성모독은 즉결 처분 감이다!”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각오쯤은 했었다.
이단으로 몰리는 거?
진짜 이단을 두고 억울함을 풀고자 할 마음 따윈 없다.
그래봤자 이미 교국은 썩을 대로 썩었다.
이단심문국 안에서 키메라가 발견된 것만으로도 그녀는 치가 떨렸다.
‘적어도 어머니께선 이런 교국을 바라지 않았어.’
신의 대행자.
신의 대리인.
온갖 수식어로 사람들에게 자애와 평화를 가르치던 이들이 왜 이리 되었는가.
밀리샤는 지금까지 받아온 배움이 한 번에 부정당하는 기분에 억울함보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만두세요.”
그때.
복잡한 무리 사이로 몇몇 사람이 등장했다.
기사단과 요원들은 그들의 등장에 모든 동작을 멈추고 길을 텄다.
갑자기 등장한 그들의 선두엔 겨우 10살을 넘긴 어린 소년이 있었다.
키가 작은 탓에 소년이 입은 하얀 성복과 손에 든 황금 지팡이가 유독 커보였다.
그가 바로 교제 그랑스.
그 뒤로는 휠체어를 탄 엘카를 비롯한 12명의 추기경, 성기사 특무대가 따랐다.
그들의 등장 한 번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검과 방패를 든 성기사들은 재빨리 납도하고 방패를 등에 맸다.
“교제 성하를 뵙습니다!”
“교제 성하를 뵙습니다!”
“교제 성하를 뵙습니다!”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 한편, 밀리샤는 꼿꼿이 허리를 세웠다. 구태여 검을 거두지도 않았다.
근처에 있던 선배 성기사가 뭐라뭐라 떠들며 눈치를 줬으나 그녀는 당당했다.
이윽고 교제가 밀리샤 앞에서 멈췄다.
“겨, 경은 나에게 무릎을 꾸, 꿇지 않는 건가?”
“…….”
어린 교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만큼 밀리샤가 위협적이었으나, 반대로 위엄이 부족하기도 했다.
이러니 코앞에서 욕을 해도 벌을 주지 못했던 거겠지.
솔직히 밀리샤에겐 짜증나는 꼬맹이에 불과했다.
“전 성하께 무릎 꿇을 자격이 없습니다. 악마라 하는 마검의 주인을 도왔거든요.”
“마, 마검?! 마검이 나타났단 말인가!”
“예, 성하. 그러니 절 파문하셔야 하며 제 앞에 계시면 안 됩니다. 그랬다간 제가 성하를 죽일지도 모르거든요.”
“헉!”
그랑스는 황급히 엘카의 뒤로 몸을 숨겼다.
엘카는 지끈대는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밀리샤가 무례했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다들 말리기를 포기했다.
말려봤자 나아지는 건 없다.
“그, 근데 경은 어째서 마검의 주인을 도왔지?”
그랑스가 물었다.
순간 밀리샤는 흠칫했다.
처음부터 받았어야 할 질문을 이제야 받다니.
우스운 일이었으나, 이는 천만 다행이었다. 그나마 교제 성하께선 상식이 통하는 듯했다.
“마검의 주인이 저와 신을 도와주려고 해서 도왔습니다.”
“마검의 주인은 악마인데 어찌 신을 도와준다는 건가?”
“저기 악마의 사체가 보이지 않습니까.”
밀리샤는 검으로 아직도 파르르 떨고 있는 키메라를 가리켰다.
뒤늦게 괴물 사체를 본 그랑스가 다시금 고개를 숨겼다가 조심히 내밀었다.
“저, 저런 악마가 어찌 교국 안에 이, 있는 거지!”
“글쎄요. 거기까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마검의 주인이 저 괴물을 죽이고 싶어해서 저는 그 자를 도왔을 뿐입니다.”
“마검의 주인이 악마를 주, 죽이려 했다고?”
“예, 보다시피.”
“말도 안 돼. 이상해. 마검으로 악마를?”
“이상하지만 사실입니다, 성하. 그래서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수습해야 할 증거들이 있는데…… 다른 이들이 절 방해하더군요.”
“그야 네년이 마검의 주인을 도왔기 때문이 아니더냐!”
고개를 처박고 있던 한 노인이 얼굴만 들고 소리쳤다.
밀리샤가 그를 째려보자 겁먹은 개 마냥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다시 성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 변명할까요?”
“아, 아니. 그러니까 변명은 모르겠어. 근데…….”
우물쭈물하던 그랑스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아, 악마가 영혼으로 있을 순 있어도 육체로 강림할 수 없다고 했던 건 이단심문국 아니었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