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0
020/ 백설-1
이빨.
검색해 보고 나서 알았다. 이빨이 어떤 길드인지. 이빨은, 흔히들 말하는 PK길드였다. 레이드를 뛰어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는 다른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것을 주력으로 삼는 길드 말이다.
발할라 안에서 플레이어나 NPC나 몬스터나, 사실은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요는 마음가짐이다. 플레이어든 NPC든 몬스터든, 일단 잡아서 죽인다면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혹자는 플레이어가 몬스터보다 더욱 매력적인 사냥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때로는 몬스터보다 사냥이 쉬웠으며, 때로는 몬스터보다 좋은 아이템을 드랍하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아이템 드랍은 확률이지만 플레이어의 아이템 드랍은 무조건이다. 일단 사망한다면 가지고 있는 장비 아이템 중 하나는 무조건 드랍되기 때문이다.
NPC의 경우에는 더욱 질이 나쁘다. NPC는 플레이어처럼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몬스터는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랜덤으로 아이템을 드랍한다.
NPC는? 만약 기사 NPC를 사냥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치자. 기사니까, 당연히 검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갑옷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NPC를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면, NPC는 장비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내려놓고서 사라진다. 몬스터는 확률적으로 아이템을 드랍하고, 플레이어는 무조건 장비 아이템을 하나 드랍한다. 그리고 NPC는 장비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드랍한다.
그러다 보니 발할라 안에서는 PK나 NPC 사냥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앞서 말한 ‘마음가짐’은, 쉽게 말하자면 양심이다. 다른 플레이어를 몬스터로 생각하고 죽일 수 있는가. 자신을 NPC라고 자각하고 있는, 진짜 사람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발할라의 주민들을 몬스터처럼 죽일 수 있는가.
‘이빨’은 그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 놈들의 집단이다. PK전문 길드. 상황이 허락한다면 NPC도 망설임없이 죽일 수 있는 놈들.
김현성은 PK에 대해서는 딱히 부정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김현성은 판타지아에서부터 PVP 전문 플레이어였고, PVP라고 해 봐야 상대를 죽인다면 PK이기 때문이다.
‘지저분하다고는 하는데.’
피해 사례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빨 길드에게 피해를 입었든 말든 그것은 김현성이 알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김현성은 PK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쪽이니까.
다만.
“이 새끼들이 왜 나를 노리는 거야?”
짜증나는 것은 그쪽이다. 이쪽 방면에서 제법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빨 길드가, 왜 나를 노리는가. 동영상 사이트에서 조금 유명세를 탔다고? 겨우 그것으로 꽤 유명한 이빨 길드가 움직인다는 거냐.
‘루키 밟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단순 시비일 지도 모르겠는 걸.’
전례가 있는 놈들이니까. 마침 놈들이 서량 근처에 있었고, 서량에 저렙 주제에 조금 이슈가 된 플레이어가 있어서 한 번 밟으러 왔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러운가. 김현성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PK를 하든 말든 관심은 없는데. 그 대상이 나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지만 당장은 힘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레벨이 조금 올랐다고는 하지만 라덴의 레벨은 11. 이빨 길드의 전력이 얼마나 될 지는 미지수지만, 못해도 10명은 넘을 것이다.
‘차라리 한 번 죽어줄까.. 아니, 이 경우에는 한 번 죽는다고 해서 끝나지 않아. 저런 새끼들은 집요하니까.’
게임의 목적이 몬스터를 잡는 것이 아니라 PK인 놈들이다. 한 번 노린 사냥감은 집요하게 쫒아오겠지. 재수없게 저런 길드에게 타겟으로 찍힌다면, 최악의 경우 게임을 접는 상황까지 간다.
물론 라덴은 게임을 접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역으로 생각했다. 최악의 상황은 이빨 길드와의 전면전이다. 그나마 최선은 놈들이 찔끔 찔끔 길드원을 보내오는 것 정도. 청아에게 열 명이나 당해버렸고, 놈들도 체면이 있으니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테니까.
‘레벨 업이 급하군.’
결국 생각은 그쪽으로 흘렀다. 가장 정답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
발할라에서 경험치를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업적을 달성하던가, 퀘스트를 깨던가, 몬스터를 잡던가. 저 중에서 가장 달성이 빠르고 하기 쉬운 것이 퀘스트와 몬스터 사냥이다.
퀘스트 중에서는 반복해서 클리어가 가능한 반복 퀘스트가 있다. 이런 퀘스트의 대부분은 몬스터를 몇 마리 잡아라, 혹은 몬스터가 드랍하는 아이템을 모아오라는 종류다.
그런 반복 퀘스트 중에서 가장 빠른 효율을 보이는 것이 ‘인스턴트 던전’이다. 대부분의 던전은 오픈 월드식이지만, 인스턴트 던전은 한 파티가 입장한다면 다른 파티가 개입할 수가 없다.
대형 길드가 빠르게 레벨을 올리거나, 골드와 아이템을 쉽게 파밍할 수 있는 것이 저 인스턴트 던전의 존재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대형 길드는 인스턴트 던전 몇 개를 독점하고 있었고, 막대한 돈을 들여 인스턴트 던전을 만들어 내서 길드의 재산으로 소유하고 있다.
‘지금 레벨로 인스턴트 던전으로 가는 것은 무리야.’
길드가 관리하는 인스턴트 던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료를 내야 한다. 그런 지출을 막기 위해서는 길드가 독점하지 않은 다른 인스턴트 던전을 찾아야 하는데, 가장 레벨 제한이 낮은 곳도 최소 요구 레벨이 30이었다.
‘결국 몬스터 사냥과 퀘스트를 반복하는 것이 답인데.. 백호무술관에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해.’
업적, 퀘스트, 사냥. 이것들 외에도 레벨을 올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킬 수행이다. 제작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반복 제작을 하면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라덴의 경우, 경험치를 수급하는 방법은 백호무술관 안에서 스킬을 수행하거나, 사형들이 주는 자질구레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효율이 나쁘다. 제작 스킬이 아닌 이상 스킬 수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는 너무 적다. 원래는 몬스터 사냥과 병행하면서 추가로 경험치를 얻는 방식인데, 백호무술관에 있는 이상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라덴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백호무술관을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말은 쉽지.”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련이 남았다. 처음 백호무술관에 가입할 때에는, 적당히 스킬을 익히고서 빠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이 들었다. 백호무술관의 사형들에게, 그리고 관주인 백설에게. 생활 자체는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잡일은 익숙해졌고, 대련도 즐거웠다. 성격이 지랄맞기는 했지만 백호무술관 사람들은 모두가 유쾌했다.
그러니까 미련이 남는 것이다.
“한 달.”
불쑥 라덴을 부른 백설은 대뜸 그렇게 내뱉었다. 그 말에 라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백설을 바라보았다.
백설은 어울리지 않게 정좌를 하고서 앉아 있었다. 항상 반쯤 풀어헤치고 있던 앞섬도 단정하게 붙인 모습이었다. 라덴은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백설의 눈을 보고서 꿀꺽 침을 삼켰다.
“..한 달. 무슨 한 달요?”
“한 달 뒤에 백호를 떠나라.”
백설이 말했다. 그 말에 라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네? 왜요?”
“할배가 그러더군.”
돌연 백설이 그런 말을 했다.
“괜한 미련을 남기지 말라고. 한 번 뿐인 삶이라면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 답을 냈지.”
“..여태까지 하고 싶은대로 살았던 것 아니었습니까?”
“하고 싶은대로 살았다면 나는 서량에 남아있지도 않았을 거야.”
백설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 너는 플레이어잖아. 언제까지고 서량에 잡아 둘 생각은 없어.”
그 말에 라덴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거리면서 백설을 바라보았다. 백호무술관을 떠나는 것. 그것은 방금 전까지 라덴이 머리에 두고 있던 생각이었지만, 머릿속에만 둘 뿐 이것을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던 부분이다.
설마 백설에게 이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NPC야.”
우선, 백설은 그렇게 말했다.
“플레이어처럼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아. 스킬도 없지. 스탯도 없고. 이 세계는 아주 엿같은 곳이야. 플레이어는 존나 유리하고, NPC는 존나 불리하지. 플레이어는 쑥쑥 자라나는데 NPC는 존나게 고생을 해야 해.”
백설의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20년을 무의 길을 걸었다. 이미 뒈진 전대 관주의 제자가 되었고, 미친 듯이 몸을 굴려 왔다. 레벨이 없으니까, 스탯이 없으니까. 단련하고 또 단련했지. 정직하게. 편법 없이.”
백설은 플레이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이미 라덴도 몇 번이나 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진짜, 솔직히 말해서. 청성이 서량제일검이라면 나는 서량제일권이다. 아마, 아니 틀림없이. 발할라 세계 전체에서 내 주먹을 받아 낼 수 있는 놈은 다섯도 채 안 될 거다.”
백설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뱉은 말에는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스스로 의심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오만이 아니라 당연한 자신감이다.
그리고 라덴은 백설의 말에 공감했다. 백설은 강하다. 그가 가진 강함은 라덴이 가진, 아니, 가졌던 강함과는 그 궤가 다르다.
“한 달 동안 백호의 무를 배워라.”
백설의 눈이 가늘어졌다. 뾰족하게 세운 창과 같은 시선이 라덴을 꿰뚫었다.
“나의 20년을 한 달 안에 배워라. 완전히 배울 필요는 없어. 보고, 기억해라. 그것으로 족해.”
“..관주님.”
“그리고 이곳을 떠나라. 서량은 시작도시다. 스타트라인이라고. 이곳에서 오래 있어 봤자 플레이어인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까, 서량을 떠나서.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몬스터를 잡든 뭘 하든.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너는 플레이어니까.”
“..갑자기 이런 말은 왜 하는 겁니까?”
“나는 NPC니까.”
백설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뒷짐을 지고서 방 안을 걸었다. 그런 백설의 걸음이 방 밖으로 향했다. 엉거주춤 일어선 라덴은 백설을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죽으면 끝인 NPC. 사실 그건 상관없어. 난 그런 성격이라서 말이야. 죽으면 끝이지. 그래, 뭐. NPC로 만들어졌으니까, 그건 상관없다고. 다만..”
중얼거리던 백설의 걸음은 백호무술관의 낡은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죽기에는,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꽤 많아.”
“..예?”
“유의, 청아, 무풍, 호량. 네 사형들. 내 제자들. 놈들은 아직 다 배우지 않았어. 내가 뒈진다면 놈들은 더 배우지 못해. 그러니까, 나는 아직 안 돼.”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백설의 걸음이 멈추었다. 백호무술관의 뒤쪽이었다.
“네가 백호의 선봉이다.”
백설은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어냈다. 그는 걸치고 있던 상의를 조용히 벗었다. 라덴은 백설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넌 플레이어니까. 죽어도 끝이 아니고, 성장이 빠르니까. 그래서 막내인 네게 선봉을 맡긴다. 백호를 떠나고, 서량을 떠나고. 그 뒤에, 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백설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백설의 손이 주먹이 되었다. 어깨 넓이로 벌리고 있던 백설의 다리가 살짝 굽혀졌다.
“..관주..”
“맹호박투猛虎搏鬪.”
백설이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뱉은 즉시, 백설의 몸이 움직였다. 라덴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의 타격이었다. 튕기듯 뻗어진 손은 권이라기보다는 채찍처럼 보였다. 호선을 그리며 휘두른 손이 허공을 한 번 격타했다.
그 뒤에는 눈으로 쫒을 수가 없었다. 백설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간신히 알았고,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터진다는 것만 알았다. 거듭 될수록 라덴이 보는 풍경이 일그러졌다.
‘아.’
라덴은 뒤늦게 저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청아에게 배웠던 질풍연각. 처음 일격부터 해서 공격을 거듭할수록 속도와 위력이 오르던 그 기술. 그것을 손으로 펼치는 것이 맹호박투다.
“호왕진산虎王震山.”
백설의 발이 크게 들렸다. 꽈아앙! 내리찍은 발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백호무술관 건물 전체가, 아니 이 지역 일대가 백설의 발걸음 하나에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형들이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은 유의에게 배운 철산포의 응용이었다. 아니, 어쩌면 원류일까.
“유유호령柔流虎零.”
크게 일었던 흙먼지를 향해서 백설의 손이 뻗어졌다. 천천히 움직인 백설의 손이 춤을 추듯이 움직였다. 물 흐르듯 부드러웠고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백설의 손이 멈추었을 때, 자욱한 흙먼지와 그의 손 안에 그대로 모여 있었다.
저것은 무풍의 기술이었다.
“대호격타大虎擊打.”
꽈드득. 백설의 주먹이 쥐어졌다. 동작은 크지 않았다. 단순히 앞으로 뻗었을 뿐이다. 하지만 소리가, 그리고 현상이. 라덴이 보는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단순히 앞으로 내지른 주먹이었지만, 라덴은 저 주먹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품고 있었는지 감히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넷. 청아는 맹호박투를 보고 질풍연각을 만들었고, 유의는 호왕진산을 보고서 철산포를 만들었다. 무풍은 유유호령을 보고 유권을 만들었고, 호량은 대호격타를 보고서 파쇄권을 만들었지.”
백설이 펼친 것은 라덴이 각 사형들에게 배웠던 스킬의 원류였다. 그 위력이 하늘과 땅 차이기는 했지만.
“너한텐 이걸 주마.”
백설은 양 손을 들어 올렸다. 펼친 손바닥에서 환한 빛이 어렸다.
“호환백섬虎患白閃.”
백설의 손을 감싸고 있던 하얀 빛은,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며 움직였다. 백설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앞으로 튕겼다.
눈으로 보지 못 할 정도로 빠르다. 라덴은 자연스럽게 백설의 손이 향했던 곳을 바라보았다.
소리조차 없이, 저쪽의 담벽이 소멸해 있었다.
“한 달 동안 백호의 다섯 가지를 가르쳐 주마. 배울 수 있는 만큼 다 배워. 그리고 서량을 떠나. 그 뒤에는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몬스터를 잡든, 퀘스트를 수행하든. 백호의 무술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그제 서야 라덴은 백설이 말했던, 백호의 선봉이 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네가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리는 거다. 나와 네 사형들이 출도할 때까지.”
백설은 벗어 두었던 옷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촌구석인 서량에는, 서량제일검인 청성 말고도 서량제일권인 백설이라는 새끼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서, 백설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백호무술관이라는 곳이 있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