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adowed Legacy of the Soulless Messenger RAW novel - Chapter (513)
영혼 없는 불경자의 밤-514화(513/514)
#514. 영혼 없는 불경자의 밤 25
[그대의 육신은 어차피 한계에 도달했다. 육신의 죽음은 찰나지만 그 영혼은 불멸이니.]“그게 싫다고.”
아자딘의 머리 위로 다시금 광휘의 헤일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광휘의 열파가 다시금 발출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열파가 노리는 것은 균열이 아니다.
균열보다 더 깊은 곳, 석영 왕좌의 뿌리로 쏘아진 것이었다.
석영 왕좌가 마치 용광로에 들어간 쇳덩이처럼 달아오른다.
[무슨!] [그만둬라! 이것을 파괴하면 야에가스의 가호가 이 땅에 도달하기 힘들어진다!] [야에가스의 가호가 필요하지 않단 말이냐?!]야에가스의 신령들이 당황했다.
“필요 없어!”
아자딘이 발출하는 광휘가 석영 왕좌를 달구자 석영 왕좌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석영 왕좌 전체가 빛을 발하며 맥동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멈춰라! 그대들은 우리의 가호 없이 이 세계를 감당할 수 없다! 아직 핌불베르트가 끝나지 않았거늘!]“적어도 네더의 권역에서 분리할 수는 있지. 네더의 권역에서 약간 더 멀리 떨어뜨리는 것으로 핌불베르트를 종식할 수 있을 거야.”
아자딘은 야에가스의 신령들의 경고를 일축했다.
젝트가 석영 왕좌에 저주를 걸어서 휘브리스 대륙과 네더 차원의 연결을 쉽게 만들었다.
즉, 현재 석영 왕좌는 야에가스 신령들의 세계와의 연결 통로이자, 네더 차원과의 연결 통로이기도 하다.
석영 왕좌 자체를 파괴하면 야에가스의 가호를 받을 수 없겠지만, 네더의 사신과도 거리를 벌릴 수 있다.
[네가 이미 얼마 되지 않는 수명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 큰 화를 자초하는구나! 아무리 야에가스의 후손에게 박해받았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기를 거부하다니!]“그렇게 말하면 백번 천번 거부할 만하잖아. 나는 그런 이유에서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아자딘은 광휘의 출력을 더 높여 석영 왕좌의 뿌리를 끊어내기 시작했다.
야에가스의 신령들은 아자딘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중 일부는 놀랍게도 아자딘에게 동조했다.
[그것이 당신의 선택이라면 좋습니다. 다들 인정하시지요.] [인간은 선택하고 저희는 그저 인도할 뿐.] [하지만 수양의 힘으로 잘 굴러갔으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안 됐지.] [이제는 잘되지 않겠습니까? 신약의 황제가 탄생했으니. 그가 인간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가 될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필멸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들의 열기, 그들의 한계, 그 모든 것이 즐거움이었으니까.]혼란스러운 야에가스 신령들의 소리를 들으며 아자딘은 광휘의 출력을 더더욱 끌어올렸다.
석영 왕좌의 뿌리가 깨지고 야에가스의 팔왕좌 모두가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아자딘의 의식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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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폐하, 괜찮으십니까?”
아자딘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텔바린 엘프들이 아자딘에게 인공호흡을 취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뜬 아자딘이 주위를 둘러보니 옥좌가 피로 물들어있었다.
“아, 폐하!”
“깨어나셨군요!”
텔바린 엘프들의 입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아자딘의 기도와 폐부에 찬 피를 그들이 빨아낸 것이다.
“어, 그래.”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고 입맛을 다셨다. 입안이 아니라 폐부에, 기관지에 피 냄새가 감돈다.
엘프들이 응급처치하지 않았다면 자기 피에 익사했을 그런 상황이다.
“쿨럭쿨럭.”
재채기하면서 아자딘은 텔바린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복무의 계약 때문인가. 바로 방금까지 적이었는데,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살리다니.’
아자딘은 자기가 무력해졌을 때 죽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살리려고 애쓴 엘프들을 보며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참 나쁜 놈들인데, 기이하게 충성도나 헌신도가 높다.
조직의 목적을 위해서는 개인이 얼마든지 헌신하는 데다가 일단 충성의 방향이 결정되면 상당히 성실하게 충성을 바친다.
권력자들을 현혹하기 딱 좋은 부하들이다.
부하들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권력자가 조종당하는, 그런 상황이 되기 쉽다.
‘위험한 놈들이군. 이러니까 권력자들이 정신 못 차리고 넘어갔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일단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야겠지?’
아자딘은 텔바린 엘프들을 경계하면서도 일단 치하하기로 했다.
“고맙군. 잘해주었다.”
“과찬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그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나저나….”
아자딘이 브투마의 왕좌를 살펴보니 석영 왕좌가 금이 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일어나 보니 그 순간 조각조각 깨지며 흩어진다.
놀랍게도 이렇게 깨진 파편이 땅에 닿는 순간 반투명한 존재가 되며 땅 밑으로 파편이 스며들어 사라진다.
“이럴 수가. 왕좌가….”
텔바린 엘프들은 일제히 아자딘의 앞에 부복해 있으며 몸을 떨었다.
야에가스의 왕좌가 부서졌다.
그것은 참으로 불경하고 무서운 장면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자딘의 머리 뒤로, 동쪽 하늘이 쥐색으로 밝아오고 있던 것이다.
영원히 계속될 밤이 끝나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불경한 밤이 끝나고 인류의 여명이 밝아온다.
왕좌가 부서지는 불경한 모습과, 그런데도 기나긴 밤이 끝나는 일출의 순간.
새벽의 빛을 맞이하는 황제를 본 순간 텔바린 엘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세를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아자딘은 볼을 긁적였지만, 저들이 보기에 아자딘은 불경한 밤을 종식하고 새벽을 가져온 위대한 황제, 현인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저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겠지.’
기나긴 밤이 끝나고 마침내 새벽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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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끝나고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핌불베르트가 마침내 끝나고 한때 세계를 뒤엎을 것 같던 네더 군세가 소멸했다.
거신들, 괴수들의 사체는 곳곳에 쓰러져 야수와 마물들의 먹이가 되었다.
여전히 추위는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해가 뜨고, 괴물들의 군세가 물러났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천사상과 세라마이트들이 일제히 소멸했다.
힘이 다할 때까지 네더 군세와 싸우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천사들의 육체는 석상이 되어 세인트 말로리 지하 성역에 안치되어 있었다.
과거 타락한 지혜교단이 불경하게도 그 천사상을 훼손해 천사의 피를 내어 만든 것이 세라마이트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었으니.
천사상은 여전히 강력한 신성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천사상이 세라마이트 무기들과 함께 일제히 사라진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야에가스 왕좌 또한 죄다 소멸했다.
야에가스의 혈통을 섬기는 왕의 교회는 이 놀라운 일에 당황했다.
왕좌가 사라지고 더 이상 야에가스의 혈통이 백색 마력의 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신약의 황제가 손을 썼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뾰족한 증거가 없다.
아자딘이 왕좌에 앉아서 왕좌가 파괴당하는 현장을 직접 본 이들은 텔바린 엘프들 뿐이고, 그들은 황제에게 복무의 계약을 맺고 황제의 심복이 되어버렸으니 황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나가들과 쿠르트 판테온의 추종자들이 몰래 귀띔해주긴 했지만, 그들의 증언을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자신들이 사교도들과 내통한다는 증거가 될 뿐 아닌가?
하물며 지금 핌불베르트를 종식한 신약의 황제 아자딘을 비판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핌불베르트를 끝내고 태양을 회복한 황제 아자딘의 지위, 신뢰, 인기는 절대적이어서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
그리고 황제가 왕좌를 없앴다면 천사상은 또 왜 없어졌는가?
황제가 왕의 교회보다 구난기사단을 더 선호한다는 건 만인이 알고 있는데 굳이 천사상을 없앨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결국 천사상과 야에가스 왕좌의 소멸은 핌불베르트의 충격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 그렇게 여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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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 황제가 핌불베르트를 종식함으로써 전령일족의 위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영혼 없는 불경자, 신왕살해자, 끔찍한 괴물로 여겨지던 전령일족은 이제 과거의 오명을 벗고 황제의 혈족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황제 야에슬라트와 전령일족의 여두령, 하르코니아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피가 전령일족에 흘러들어와 지금의 전령일족은 야에가스 신족의 후예다.’
과거 같으면 설령 사실이어도 신성모독으로 몰매를 맞았을 말이 이제는 정설이 되었다.
전령일족은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고귀한 황제 혈통의 후예. 그렇기에 아자딘이 다시금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인식이 박히게 된 것이다.
태생과 혈통에 상관없이 미덕에 헌신하고 높은 수양을 쌓으라는 게 아자딘이 펼치는 신약, 수양학파의 가르침이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혈통을 따지길 좋아했다.
“이거 참. 일족의 비원이 이루어지긴 했는데.”
전령일족의 원로원은 회의를 열며 난처해했다.
“아자딘 황제 폐하는 우리들이 박해하던 인물이었지요.”
“아니 그게, 사실 박해를 안 할 수가 없지 않았소? 우리의 일을 방해하고 아라엘 지파와 협력해 공격까지 했으니 말이오. 아라엘과 아자딘, 두 남매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아시오?”
“그러나 결과적으론 황제 폐하가 옳았소. 우리의 비원은 황제 폐하가 이루었고 우리들이 비원을 이루겠다고 저지른 짓은 공식적으로 드러날 경우 인류의 공적이 될 일이지.”
전령일족은 나가들과 손잡고 인류를 배반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텔바린 엘프들처럼 우리들도 다시금 복무의 저주를 받아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엘프 놈들과 달리 폐하께선 우리가 인류를 배반했었던 사실은 공표하지 않았으니 말이오.”
“하지만 그건 폐하의 자비에 의지하는 것 아니오? 언제라도 폐하께서 그 사실을 들먹이시면 어쩌려고 그러오?”
“그럼 어쩌려고? 폐하의 입을 막으려고?”
“…….”
전령일족의 원로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 와서 그들은 감히 아자딘에게 대항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알아서 좀 내놓지요. 폐하께서는 세계를 재건하시는데 자금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십니다.”
시온 에타르는 황제 아자딘을 보필하는 에타르 혈족으로서 원로원 내에서 스스로 재산을 내놓도록 권유했다.
“시온 에타르, 그건 폐하의 의향이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순리가 그렇지 않을까 하고요.”
시온 에타르는 시치미를 뚝 뗐다.
에타르 혈족이 아자딘과 친하고, 심지어 황비가 에타르 혈족의 일원이란 점에서 전령일족의 다른 혈족들은 모두 에타르 혈족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선 우리들이 가져간 선우의 태양을 폐하에게 반납합시다. 폐하께서 이리저리 농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혈족들이 가지고 있는 상회의 물자를 풀어 물가를 안정시키고, 오가는 길에 겸사겸사 마물과 야수들을 사냥해 치안도 안정화하지요.”
“그, 그건 너무 알아서 기는 것 같은데? 황제의 처가라고 너무 그쪽 입장을 대변하는 것 아니오?”
“하지만 어쩝니까? 지은 죄가 있는데. 게다가 폐하께서는 다 보답해 주실 겁니다.”
“흥 보답이라고 해 봤자. 고작 여기 케림 산맥에 땅 좀 떼어주는 것 아니겠소?”
“아니, 그게 아닙니다. 흠.”
시온 에타르는 이걸 말해도 되나 어쩌나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그게 실은 폐하께서 제게 자리를 하나 제안하셨습니다.”
“어떤 자리요? 케림 백작?”
케림 일대는 이미 전령일족이 차지한 산속 험지, 전령일족이 이미 다스리고 있는 땅에 백작위를 붙여서 주면 명분은 챙기고 실속은 없는 명예직이 된다.
그러나 시온 에타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코라사르 국왕입니다.”
“!!!!!”
본래 젝트에게 약속되었던 자리를 아자딘은 시온 에타르에게 제안했다.
전령일족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라서 혀를 찼다.
‘아이고, 이 에타르 혈족 놈들, 막판에 황비 하나 끼워 넣어서 투자 대박을 터뜨렸구나.’
‘말도 안 돼! 왕위를 준다고?’
원로원의 장로들은 전부 허둥지둥거렸다.
“자, 잠깐만. 그럼 시온 에타르, 당신이 왕이 된다고?”
“예. 그리고 휘하의 봉신, 영주들은 아마도 북방 아라가사의 일원들이 될 것 같습니다.”
아자딘 입장에서는 북제 코헨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필요했다.
북제 코헨을 배반하고 돌아선 북방 아라가사에게 적당한 땅과 힘, 직위를 주고, 그들과 정략결혼을 한 시온 에타르가 통제한다.
시온 에타르는 황실의 외척 인사이자 에타르 혈족의 수장이며 북방 아라가사와의 정략결혼을 통해 그들 무리에서도 인정받는다. 이런 점 때문에 아자딘은 시온 에타르에게 무려 왕위를 하사한 것이다.
“와, 왕위라니.”
“그건 참….”
“뭐 마냥 좋은 일은 아닙니다. 코라사르는 쑥대밭이 되어있으니 재건하려면 꽤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쩌시겠습니까? 절 도와서 코라사르를 재건하는 데 힘을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무, 물론이오. 시온 에타르 국왕.”
“이, 이거 참,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폐하를 박해하고 못살게 굴기만 했는데, 폐하께서는 지나간 일은 잊으시고 이리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군요.”
사실 혜택을 받는 건 철저하게 황제의 외척인 에타르 혈족이지만, 전령일족은 아자딘이 베푸는 너그러운 은혜에 감탄했다.
‘외척만 챙긴다 해도 그게 어디냐. 어린 시절의 복수를 하겠다고 다 때려잡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지.’
‘이제 우리도 왕과 황제를 배출한 일족이다. 영혼 없는 불경자니 뭐니 그런 신소리 안 들어도 되겠구나.’
‘어차피 에타르 혈족도 혼자서 나라를 경영하진 못할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한자리 주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겠지.’
이렇게 전령일족들은 황제의 은혜에 기뻐하며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내놓아 코라사르를 재건하겠다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