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adowed Legacy of the Soulless Messenger RAW novel - Chapter (514)
영혼 없는 불경자의 밤-515화 (완결)(514/514)
#에필로그. 그리고 새벽이….
지벡은 아자딘의 말을 듣고 놀랐다.
“저, 절, 브투마의 국왕으로 세우시겠다고요?”
“그래.”
“하지만 저는….”
“젝트 경을 처치했지.”
“그거야 거의 마지막에 숨만 끊은 거 아닙니까. 이미 폐하가 다 손질해 놓은 걸 가로챈 것 같습니다만.”
지벡은 그렇게 말했지만 네더 아바타가 되었던 젝트 경은 아무리 아자딘에 의해 반죽음 당했어도 강력한 존재였다.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대외적으로는 가장 훌륭한 무훈이고, 브투마는 앞으로도 계속 나가들과의 최전선이 될 테니까. 브투마에는 과거 차드라 고원의 병력을 배치할 생각인데, 그들을 통제하려면 기사다운 당신이 필요해. 당신이 아니면 그나마 리전이 차선책인데 그는 솔직히 왕을 할 재목은 아니지.”
“제 다음이 바로 리전인 걸 보니 폐하의 고충을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칼린츠 왕자는 안되는 겁니까?”
“북제의 아들이라서.”
파이어 글리프의 챕터마스터를 맡았던 칼린츠 왕자는 뛰어난 기량과 인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북제의 아들이고 남부의 주민들은 그를 왕으로 세우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렇다면 그대가 재상 자리를 안겨줘도 되겠군. 백작 위를 줘도 되겠고. 마음대로 해. 인재를 썩혀둘 입장은 못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지벡은 칼린츠 왕자에게 중책을 맡겨도 된다는 아자딘의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을 굳혔는지 예를 표했다.
“황금왕 만자-자덱의 아들 다르한-자덱의 유지를 이어서 제가 브투마를 부흥시켜 보겠습니다.”
지벡은 황금왕 만자-자덱 사후 그 아들인 다르한-자덱의 군에 들어가 쿠르트 판테온 세력과의 전쟁에 종사했었다.
브투마 지역에서 이미 무명을 높였던 만큼 그가 브투마의 국왕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브투마 농장주들은 기꺼이 환영의 의사를 표했다.
다르한 자덱의 유지를 잇겠다는 지벡의 발언이 브투마 인들의 환심을 샀다.
또한 아자딘 군의 중진이던 리전, 칼란, 셀림이 브투마에 들어오게 되고 칼린츠 왕자가 브투마의 재상직을 맡게 되면서 브투마 부흥 사업이 활기를 띄고 돌아가게 되었다.
*********
아자딘의 가르침을 받은 신약 교단과 구난기사단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다.
같은 백색 마력을 사용하는 왕의 교회가 몰락했으니 이들이 부상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다만 신약 교단은 제대로 된 성직자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던 터라 왕의 교회 출신의 성직자와 성기사들이 가장 중요한 핵심 파벌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신약 교전의 이름하에 구난기사단과 왕의 교회가 합일을 이루는 기이한 형상의 동맹이 맺어지게 되었다.
북제나 다른 이들이 이루고자 했던 두 신앙 세력의 합치가 아자딘 황제의 신약 교단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그 합치는 온전하지 않아서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형국이었다.
그래도 황제가 있는 한, 이들은 분열하지 않을 것이다.
*********
오크 사령술사, 그리고 소크 경의 후계자인 스콧 맥그린은 새벽 전장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는 핌불 호드, 아니 불사 여단의 수장 소크 경을 대신하여 네크로 타이탄을 운용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버려 불사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두개골 밖에 남지 않았다.
“괜찮아. 육신은 단명하나 지성은 위대한 법!”
머리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콧 맥그린은 전혀 기세가 죽지 않았다.
황제 아자딘은 그런 스콧 맥그린에게 대마법사의 칭호를 내리고 반릉 아카데미를 재건, 그곳에서 후학을 위한 집필을 할 것을 권했다.
야에가스의 혈통을 중시하던 왕의 교회가 힘을 잃게 된 지금 수양학파와 구난기사단의 백색 마력만으로는 앞으로 인류를 수호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지 모른다.
그래서 아자딘은 마법사들을 키우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으로 반릉 아카데미를 재건하기로 했다.
*********
반릉의 드워프들은 아랑기 왕국과 화해하고 아카데미의 재건으로 많은 이득을 보았다.
그들의 적색 마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연금술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자 엄청난 이득을 올리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자딘 황제의 황실이 반릉 왕국에 위치하고 있으니 교역의 이득도 전부 챙길 수 있었다.
코라사르의 시온 에타르, 반릉의 드워프 왕조, 아랑기의 스람, 브투마의 지벡.
남부 4 왕국은 아자딘 황제의 측근들이 왕위를 잡아 국가의 기틀을 바로 세웠고, 치타이 또한 선비 가라산이 적법한 북방왕조 혈통을 찾아 왕으로 옹립하여 그 조정을 다시 바로잡았다.
남부 4 왕국에 치타이까지 다섯 왕국은 확고부동한 아자딘의 동맹이 된 것이다.
다만, 이 동맹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신약의 황제, 아자딘이 점점 잠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세 시진(6시간)을 자더니 어느새 네 시진이 되고, 이제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들어 있었다.
마치 양초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황제의 생명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운명이란 가혹하군요. 폐하.”
미디암은 잠들어 있는 아자딘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아자딘은 몸을 뒤척이며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것만 보면 편안하게 잠든 것으로 보이지만, 어지간한 자극을 주어도 쉽게 깨어나지 못한다.
그 생명이 꺼져가는 게 느껴진다.
“폐하. 당신께서 뜻하신 바를 이미 다 이루어 삶에 미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달라요. 저는 당신을 그렇게 쉽게 보내줄 수 없어요. 왜냐면 저는 당신의 아이를 품었으니까요.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를 안아 주셔야 하지 않겠어요? 영혼 없는 불경자로 모독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당신에게도 뜨거운 영혼이 있고, 그 영혼과 혈통을 계승할 아이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셔야 해요.”
미디암은 닿는지도 모를 말을 아자딘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아자딘은 대답하지 않고 잠에 빠져들어 있다.
“어흠.”
그리고 아자딘을 대신해 헛기침을 한 것은 이스마일이었다.
어느새 황제의 어가에 들어온 그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이스마일?”
“황비님. 구난기사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천사상이 사라진 곳에서 빛나는 깃털이 하나 놓여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셀레스철 파이어들이 일제히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하더군요.”
“같은 꿈?”
“예. 네 번째 천사의 꿈이라고 합니다.”
“네 번째 천사?”
미디암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네 번째 천사라니?
삼위의 대천사의 뒤를 잇는 천사를 말하는 것인가?
“어쩔까요? 카르나 경과 이즈밀라 경은 폐하께서 직접 세인트 말로리에 오셔서 현장을 보셨으면 하는 데요.”
“하지만 그렇게 먼 거리를 지금의 폐하가 어떻게….”
“자비 교단에서 녹색 마법으로 문을 열어주겠다고 합니다.”
“수녀원장님이? 그녀의 힘도 과용하면 위험할 텐데.”
자비교단의 수녀원장, 전향한 셰이드 해그인 그녀는 핌불베르트 전쟁 때 많은 병력을 옮겨주어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매우 커서 그녀 또한 거의 소멸해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힘을 빌려주겠단 말인가?
“개인적으로는 사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폐하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폐하께 말씀해 보지요.”
미디암이 그리 답했을 때였다.
“으음.”
아자딘이 침상에서 눈을 떴다.
“이런, 요새 잠이 많아지는 군.”
“기침하셨나요? 폐하?”
“물론이야. 황비. 세인트 말로리로 가볼까?”
“네?”
“그런데 황비, 몸은 괜찮겠어? 아이가 있다면 몸을 조심해야 하는 게….”
놀랍게도 아자딘은 잠에 빠져든 상태면서도 주위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있던 모양이었다.
미디암은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전령이니까요. 여염집 아낙보다는 훨씬 단련되어 있지요.”
“단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쨌건 세인트 말로리로 가보자.”
*********
구난기사단의 총본산 세인트 말로리의 지하도 안에는 천사상이 보관되어 있던 성역이 있었다.
원래 고대 도시의 광장이었으나 도시 지반이 가라앉아 그 위로 새 도시가 지어지면서 지하도가 된 이곳은 과거 지혜 교단이 관리했다.
하지만 지혜 교단이 타락할 때 연구하던 끔찍한 비술로 인해서 온갖 마력 생물들과 괴수, 그리고 죽음의 힘으로 타락한 천사의 사체가 들끓게 되었으니, 성역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지옥도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핌불베르트 전쟁이 끝난 이후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심혈을 기울여 그 모든 마물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머리만 남은 리치 대마법사 스콧 맥그린과 혈마법사 버나드,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와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도 이 토벌 작업에 참여해 성역으로 가는 길을 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임산부인 미디암을 대동하고도 별문제 없이 성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때, 이곳에 와서 천사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꿈이었지.”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성역을 거닐었다.
미디암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아자딘은 그녀의 도움을 거부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깨어있을 때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아. 아프지도 않고. 신성 마법만 쓰지 않으면 피도 흘리지 않지.”
그저 조금씩 쇠약해져서 천천히, 잠들 듯 죽어간다.
아자딘의 상태는 그러했다.
미디암은 그런 아자딘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어떻게든 아자딘의 수명을 늘리고 싶지만, 뱀파이어나 언데드가 되는 것을 아자딘은 거부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긴 하다.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황제가 사술에 기대어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오셨군요 폐하.”
“여기입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단장 카르나 경과 부단장 이즈밀라 경은 아자딘을 맞이하며 기뻐했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거지?”
“네 번째 천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꿈이 인도하는 대로 이곳 성역에 도착했더니 빛의 깃털이….”
“빛의 깃털은 어디 있지?”
“가끔 보일 뿐, 우리들로서는 닿을 수 없습니다.”
“마치 과거 네더의 균열처럼 우리들의 차원과 다른 위상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보일 시간입니다만….”
과연 카르나 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역 한복판에 갑자기 눈 부신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아자딘은 그 빛을 받으며 흠칫 놀랐다.
빛 안에서 누군가가 아자딘을 부르고 있었다.
[이리 오라. 삼위의 대천사를 해방한 자여.]“누구지?”
[나는 아라엘.]“뭐?!”
아자딘은 익숙한 이름을 자처하는 존재의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아라엘이 승천이라도 했나? 하지만 아라엘의 목소리는 아닌데?
그 의문은 당사자가 풀어주었다.
[인간들이 정의의 천사라 부르는 자다.]“….”
아자딘과 아라엘의 이름은 본래 전령일족의 옛 신화에서 따온 것, 정의의 천사 아라엘과 무안의 사룡 아사흐딘이 우주의 창생과 파멸을 두고 전투를 벌이는 옛 아라가사의 신화였다.
그런데 눈앞의 존재가 바로 그 아라엘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 이 경우 내 이름이 좀….”
아자딘의 이름은 아라엘의 대적자, 사룡 아사흐딘에서 따온 것이다.
[삼위의 대천사를 해방한 자여.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계에 어둠이 밀려오고 있으니 사룡 아자딘의 군세가 우리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사룡 아자딘….”
정의의 천사 아라엘도 휘브리스 식 발음으로 사룡의 이름을 불렀다.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파멸의 사룡 아자딘이라니. 내 이름은 정말 악취미적인 이름이었군. 전령일족 놈들, 너무 악의적으로 이름을 지은 거 아니냐? 아 이 경우는 두령 하티르 놈의 소행인가.’
“여건만 된다면 저도 돕고 싶군요.”
바닥에 떨어진 깃털이 떠올라 아자딘의 앞으로 날아왔다.
아자딘은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깃털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저를 치유한다고요?”
[그렇다. 부족하지만 그 깃털은 나의 피와 살이니, 그대를 갉아먹는 공허의 상당수를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만약 제가 치유되고 나서 사명을 나 몰라라 거절한다면요?”
[병든 자를 치유한 것으로 만족하겠다. 물론 이것은 나의 힘 상당수를 떼어 낸 것이라 나는 약해지고, 우리의 세계는 더더욱 쉽게 사룡 아자딘에게 침탈당하겠지만 그대가 이미 휘브리스를 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바친 것을 안다. 내 형제자매들이 그대의 헌신에 고마워하고 있으니 그대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어버렸다.
“천사님이 참 사람 마음을 움직일 줄 아시는군요.”
아자딘은 기꺼이 깃털을 받아들였다.
빛의 깃털을 아자딘이 입에 머금으니 한줄기 핏물이 되어 아자딘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폐하. 괜찮으신가요?”
미디암이 당황해서 아자딘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자딘은 몸을 움직여보고 미디암을 돌아보았다.
“괜찮은 것 같아. 미디암. 어, 잘하면 우리 아이를 볼 수 있겠는데?”
[그대는 아이를 볼 것이다. 아이는 딸이고, 그 이름을 나를 따서 아라엘이라 짓도록 하라.]정의의 대천사 아라엘은 아자딘과 미디암의 자식이 딸일 것을 예견하고 축복을 내려주었다.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뜨끔했다.
사실 딸이면 아라엘이라 지으려고 예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 이름의 원천, 정의의 천사 아라엘에게 그것을 허락받을 줄은 몰랐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다를 건너 아라가사들의 고향으로 오라. 그리고 그대의 기량과 지략, 무예와 역랑, 그 모든 것을 다해야 하리라. 말해두건대 나는 그저 천사이니 전지에 못 미치고 전능에 못 미치며 그저 필멸자들의 운명에 정의와 자비가 비추기를 바라는 자로다. 나의 힘은 유한하고 선은 이루기 어려우니 내 그대를 치유하였어도 그대에게 감히 헌신을 바랄 자격이 없구나. 그럼에도 부탁하노니 아라가사들의 고향으로 오라.]정의의 천사 아라엘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기, 기적이다.”
“오 맙소사.”
기적을 목도한 카르나 경과 이즈밀라 경, 구난기사단의 성기사와 성직자들은 대천사로부터 직접 축복을 받은 아자딘을 보며 경탄하며 무릎을 꿇었다.
*********
황제가 정의의 대천사에게 지명받았다.
그 사실은 곧 구난기사단의 입을 통해서 세계 각지로 퍼졌다.
아자딘으로서는 북제 코헨이라는 까다로운 존재가 있으니까 자기가 휘브리스를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좀 나중에 알리고 싶었는데 흥분한 성직자, 성기사의 입을 단속하기란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황제 폐하가 떠나신다고?!”
“아아 맙소사. 아직 우리의 세계도 안정되지 않았는데!”
어째 황제가 떠나는 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하긴 정의의 대천사가 자신의 일부를 떼어서 줬다는 데 그걸 처먹고 나 몰라라 하고 입 싹 씻을 인물은 못 된다.
그걸 받아먹은 시점에서 아자딘이 휘브리스를 떠나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문제는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뭐 그건 저희가 좀 힘써보겠습니다. 괜히 글줄깨나 읽은 건 아니거든요.”
선비 가라산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시온 에타르와 전령일족, 북방 아라가사들은 아자딘이 없더라도 휘브리스를 잘 경영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외항로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라가사의 고향, 트라키아눈에는 저희 텔바린 엘프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텔바린 엘프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자딘의 안내를 자처했다.
“그리고 대장, 새로운 지역에 간다면 인류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날카로운 지성, 그 찬란한 불꽃 뿐이지. 여기 때마침 휴대하기 좋은 인류의 지성의 총아가 있는데?”
스콧 맥그린은 해골만 남은 상태에서도 어찌나 떠드는지 모르겠다. 이제 데미 리치라 불리는 스콧 맥그린은 아자딘의 동행을 자처했다.
아자딘과 동행하겠다고 자처한 것은 스콧만이 아니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이스마일이 나섰다.
“황비님이 가시는 데 제가 안 갈 수 없지요.”
“음. 이스마일 네 경우는 좀.”
“황비님과 태어날 따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부디 동행을 허락해 주십시오.”
“고향에 평생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황비만 계속 따라다니면 너 평생 결혼은 못하는 거 아니냐?
아자딘은 이스마일의 상황을 걱정했지만 이스마일은 아자딘이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열심히 충성을 어필했다.
“폐하와 황비님이 계신 곳이 제 고향입니다.”
“그래. 알겠다.”
아자딘은 이스마일의 장래를 걱정하면서도 그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정의의 대천사 아라엘의 부름이라면, 우리 아라엘 지파가 빠질 수 없지.”
화조풍월의 3인 인딤과 세라프, 디미아도 아자딘과 함께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 아라엘이 아닌데?”
“상관없어. 나는 이미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아, 그리고 디미아가 황비님 시중 잘 들어주니까 어차피 필요할 거야. 일행에 여자가 좀 있는 게 아무래도 편하지 않겠어?”
인딤은 억지를 부렸다. 아자딘이 황비 미디암을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미아 언니는 큰 도움이 돼요.”
어느새 언니라고까지 부르는 걸 보니 꽤 친해진 모양이다.
“아라가사의 고향이라. 저희도 정말 가보고 싶군요. 사룡 아자딘과의 싸움이라면 아무래도 실력 있는 강자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실력이 어디 처지지는 않는데 말이지요.”
“그건 그렇지.”
아자딘은 화조풍월의 3인이 따라오는 것도 허락했다.
“그럼 폐하. 청의 처형인의 자루를 완성했습니다.”
드워프들은 휘브리스 대륙을 떠나는 아자딘을 위해 아자딘이 쓰던 아주어스틸 도끼창인 청의 처형인의 자루를 만들어 주었다.
역시 아주어스틸로 만들어진 이 금속자루는 짧게는 손도끼에서 길게는 도끼창까지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무기로 그림스로운의 곤봉이 하던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폐하. 어딜 가시더라도 무운장구하시길 빕니다. 저희는 언제고 폐하께서 승리해 정의를 이루고 돌아오시길 손꼽아 기다리겠나이다.”
드워프들은 청의 처형인과 아주어스틸 장검을 내어주었다.
여기에 웬디고의 단도와 활통 가득 아주어스틸 화살을 채운 아자딘은 배에 올라탔다.
구난기사단은 숫제 자신들의 기함 니슬라프까지 내주려고 했지만, 아자딘은 니슬라프를 가져가는 것은 극구 사양했다.
“그런 귀중한 배는 앞으로 구난기사단에게 더 필요하겠지. 어차피 많지 않은 인원이니까 엘프들의 배로 충분해.”
황제 아자딘이 떠나는 날 세인트 말로리 항구에는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결국 폐하는 모든 걸 다 이루어 놓고 다시금 떠나시는군요. 영혼 없는 불경자라 모독과 멸시를 받았다가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복락은 누리지도 못하고 다시 먼 길을 떠나는 것에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미디암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고 날 따르는 가신들도 있는데 아예 빈손은 아니지. 그리고 정의의 대천사는 자신이 배신당하건 말건 생명을 내어주었는데 그것에 응하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겠어?”
“그래도 가진 것을 놓고 가는 것은 아깝지 않나요? 그리고 고향은요. 어쩌면 영원히 고향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언젠가 휘브리스가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이를 동반하고 이곳이 엄마 아빠의 고향이라고 소개해 줄 그런 날이 오겠지?”
“후후. 그러면 좋겠네요.”
“하지만 정의의 천사 아라엘에 사룡 아자딘이라.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일족들이 나에게 너무했는데?”
“그, 그러게요.”
미디암도 그런 점에선 일족을 옹호하지 못했다.
“기분 상했어. 그러니까 정떨어졌을 때 가자고. 이렇게 정나미가 떨어졌으니 향수병도 조금은 덜하겠지. 자 닻을 올려! 아라가사의 고향으로 가보자!”
아자딘은 선원들에게 명령하고 혹시 모를 멀미에 대비해 미디암을 선실로 안내했다.
*********
황제가 휘브리스를 떠나며 그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전설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황제는 신과 천사들의 선택을 받아 세상을 악에서 구해냈으며 끝없는 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마침내 새벽을 쟁취했다고.
새벽의 황제 아자딘의 이름은 불멸의 위상을 가지고 이 땅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의 음유시인들은 또 이렇게 노래한다.
황제는 본래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던 불가촉천민이었으며 그들 사이에서도 박해받는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대한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천사와 신들의 가호만이 아니라 그가 가슴에 별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그 별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덕에 대한 갈망과, 타인들과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그리고 언젠가 이 땅에 다시금 어둠이 찾아올 때 황제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