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0
10. 10억
“하, 이 나이에 교복이라니.”
유행운은 넥타이를 하며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경원상고 유니폼을 입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유니폼을 받아 입었을 때는 벅차올랐다.
그토록 입고 싶었던 유니폼이었다.
경원상고 야구부원이 되어 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양한 감정이 깃들었다.
“명찰.”
개학 직전에 엄마는 세탁소에 교복을 맡겼다.
학생이 입는 교복은 전투복이라 말했고 항상 깔끔하게 관리해야 한다던 엄마였다.
유행운은 서랍에서 명찰을 꺼내 달았다.
처음 과거로 회귀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점차 이 순간이 현실로 느껴진다.
“엄마, 뭐해?”
방에서 나오니 고기를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느새 엄마는 식탁에 후라이팬을 놓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삼겹살이다.
“먹고 가.”
그 말과 함께 엄마는 탈취제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칙칙, 탈취제를 뿌리는 모친을 보던 유행운이 다가갔다.
“등은 내가 뿌려 줄게.”
“그래.”
아침부터 삼겹살.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유행운의 아침을 꼭 챙겼다. 저녁은 챙겨주지 못하더라도 아침만큼은 집밥을 먹이려던 사람이었다.
“고기 구웠어?”
“삼겹살이 싸길래.”
“그 이유 때문이야?”
칙칙.
엄마 등과 다리에 탈취제를 꼼꼼히 뿌린다.
“남기지 말고 먹어.”
“응.”
“요즘 고기, 금값이야.”
그리고.
모친이 했던 작은 거짓말은 순식간에 들통났다.
그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모친이 소파에 올려 놓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유행운이 따라가며 코트에도 탈취제를 뿌려주었다.
“엄마.”
“응.”
“삼겹살이 금값이야?”
“······.”
엄마의 미간이 좁혀진다.
자신의 말 실수를 뒤늦게 파악한 눈치였다. 핸드백을 든 엄마가 구두를 신는다.
“오늘 등교 잘하고. 이따 보자.”
“응, 잘 다녀와요.”
그 말과 함께 모자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경원상업고등학교.
줄여 말하면 경원상고.
이 학교는 오래된 명문 고등학교였지만, 지금은 명문이라기에는 다소 모자랐다.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새로운 담임은 유행운을 알고 있는 교사였다.
“네.”
“너 원래 야구 했었니?”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유행운은 야구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생이었다.
갑자기 학교에 야구부가 재창단되었다고 하지만, 교사로서는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네, 저 중학생 때는 야구 했었어요.”
“너 이제 수험생이야. 갑자기 야구라니, 다 이야기 된 건 맞아?”
“네, 이형호 감독님께 여쭤보세요.”
경원상고 야구부는 오전에는 정규 수업을 받고 오후부터 본격 훈련에 들어간다.
“일단 알았어.”
“네, 들어가보겠습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교사와 대화를 나누고 유행운은 교실로 돌아왔다.
기분이 묘했다.
아직 앳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신입생도 아니고 3학년 정도 되면 낯선 반이라 해도 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비싼게 좋긴 하네.”
가방에서 글러브를 꺼내 꾹꾹 주무른다.
며칠 동안 고민해서 고른 새글러브였다. 지금까지 유행운은 최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 사면 오래 쓰는 글러브에 투자할지, 아니면 타격을 위해 배트에 좀 더 투자할지 고민했다.
그 치열한 고민 끝에 픽한 것이 글러브였다.
“행운아, 안녕?”
열심히 글러브를 손에 맞게 길들이고 있는데, 낯선 여학생이 다가왔다.
‘얘 누구였더라.’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유행운의 시선이 교복 명찰로 향한다.
‘아, 김주연?’
이름을 보니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김주연.
쉽게 말하면 야구 광인이었다.
“너 야구부 들어갔다면서?”
김주연 손에는 야구공이 들려 있었다.
고등학생은 야구보다는 아이돌에 더 관심 있을 나이였다.
하지만 김주연은 남달랐다.
다른 친구는 방송국으로 아이돌을 보러 가지만, 김주연은 야구장으로 뛰었다.
“왜?”
유행운이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그럼 나 사인 하나만 받아주면 안 돼?”
“사인?”
“응! 민현웅 우리 학교잖아!”
김주연.
부모님이 대전 출신이라 모태 호크스 팬이었던 불쌍한 아이.
대전 호크스는 만년 하위팀이다.
매번 리빌딩을 한다며 입을 털지만, 그 리빌딩이 끝날 줄 모르는 팀.
만년 하위팀이라는 말도 좋게 포장한 거나 다름 없는 엉망인 팀이었다.
그래서 김주연은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월요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날에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민현웅이 호크스 갈까 봐?”
“당연하지. 이제 우리는 빠따유망주가 필요하니까.”
지금 김주연은 미리 사인을 받아두려는 거다.
김주연이 응원하는 팀, 대전 호크스는 전면 드래프트 시행 이후 투수 유망주를 싹 긁어 모았다.
그 덕분에 현재 마운드는 많이 자리가 잡혔고 문제는 타격이었다.
투수가 점수를 틀어 막으면 타자가 점수를 내줘야 한다. 하지만 호크스는 빈타에 시달렸고 그 결과, 다음 드래프트는 타자 최대어를 노리고 있었다.
그 선수가 바로 민현웅이었다.
“근데, 너 내가 호크스팬인 건 어떻게 알았어?”
김주연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민현웅에게 관심 있다는 건 하위권 팀이라는 뜻이니까.”
“뭐야. 지금 꼴칰이라고 욕하는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예민하다.
그럴 수밖에.
대전 팬들은 항상 화가 잔뜩 나있다.
야구를 못하는 건 호크스인데, 같이 무시당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보살팬이라는 것도 옛말이었다. 야구를 하루이틀 못하는게 아니었기에 대전팬들은 점차 분노로 야구를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못했다.
호크스는 야구를 참 못했다.
“호크스에서 민현웅이 필요하대?”
유행운이 물었다.
대전 호크스는 유행운에게는 의미가 있는 구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유행운에게 손길을 내민 유일한 팀이었고 그 팀에서 잘하고 싶었다.
“당연하지.”
“지금 호크스 가장 큰 구멍은 유격수 아닌가.”
“너 생각보다 우리 팀에 대해 잘 안다? 너도 혹시 칰빠?”
김주연이 내친 김에 유행운 앞에 앉았다.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니, 내가 유격수라서.”
“너 유격수야?”
“어.”
김주연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유행운을 보았다.
갑자기 유행운이 야구를 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김주연이었다.
그녀가 알기로 유행운은 평범한 학생이었고 다시 야구를 하기에는 늦은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너 원래 야구 했었어?”
“응.”
“진짜? 근데 왜 일반고 왔어?”
“사정이 있어서. 그건 네가 알 필요 없고.”
유행운이 말을 이었다.
“난 호크스에 가고싶어. 아니, 갈 거야.”
“네가? 어떻게?”
아직 김주연은 유행운이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우습게 보고 있었다.
포지션이 유격수라는게 의외였긴 했지만, 그래봤자 주전이 아니라 후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난 첫 번째로 이름 불리고 싶거든.”
엥.
김주연이 이상한 소리를 낸다.
“네가?”
다소 무례하지만,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유행운이라는 사람을 김주연은 알고 있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올해 또 같은 반이었다.
김주연은 애초에 유행운이 어떻게 야구부에 들어갔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 자신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더더욱 의아하다.
“공 줘 봐.”
유행운은 김주연에게서 야구공을 받았다.
“매직도 주고.”
“아, 여기. 진짜 사인 받을 수 있어? 너 민현웅이랑 친해?”
유행운은 매직 뚜껑을 열었다.
대답 없이 야구공에 사인을 휘갈겼다. 그리고 그걸 본 김주연의 눈이 커졌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휙.
야구공을 김주연에게 던지듯 준다.
공을 받은 김주연이 눈을 홉뜨며 유행운을 째려보았다.
“야,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얼마 안 하는 거 다 알거든.”
“뭐래, 이거 기념구란 말이야! 미래의 호크스 4번타자에게 받으려고 한 건데······.”
유행운은 화를 내는 김주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는 민현웅이 대전 호크스에 입단한다는 것.
계약금이 무려 10억이었다.
“김주연, 너 주말리그 보러 올 거지?”
“아, 아니?”
김주연이 뜨끔했는지 일단 부정한다.
유행운은 알고 있다. 김주연이 민현웅을 보기 위해 주말에 목동을 찾을 거라는 걸.
“와서 직접 봐.”
“뭘?”
“내가 야구하는 거.”
“경기에 나올 수는 있고?”
“나 주전이야.”
“그 정도로 우리 학교에 선수가 없어?”
김주연은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야구공에 멋대로 사인을 휘갈긴 후로 주연이 더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유행운은 동요하지 않고 글러브를 책상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넌 내 사인볼 받게 된 걸 감사하게 될 거야.”
“지랄.”
김주연이 욕을 한다.
그런 격한 반응에도 유행운은 타격 하나 없었다.
“대체 뭔 자신감이야?”
김주연이 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에 새겨진 유행운의 사인만 봐도 화가 치미는 듯했다.
‘사인은 무슨, 프로 뺨치네.’
당연했다.
유행운이 프로 입단 후에 만들었던 사인이었으니.
“김주연!”
김주연이 등 뒤에서 들리는 유행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너 주말리그 꼭 보러 와라.”
글러브를 든 채로 유행운이 씩 웃었다.
그 얼굴에 김주연이 질색팔색 한다.
“오빠가 보여줄게.”
과거, 유행운은 김주연과 함께 경원상고 경기를 보러 다녔다.
유행운이 부러움에 가득한 눈으로 경기를 봤다면 김주연은 민현웅을 열심히 응원했다.
그리고.
유행운은 그 때 그 시절을 바꾸고 싶었다.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으, 소름!”
유행운은 김주연을 살살 놀리고 있었다.
과거, 김주연과 경기를 보면 유행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감정은 언제나 침울했었다. 야구에 대한 열망은 깊은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언제나 감정이 바닥에 처박혔었다.
지금은 다르다.
’10억이라.’
유행운은 호크스가 민현웅에게 안겼던 계약금을 생각했다.
지금 유행운은 주말리그에서 경원상고에는 민현웅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10구단 스카우트가 모인 자리에서 유행운이라는 선수를 각인시킬 생각이다.
그게 유행운이 설정한 첫 번째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