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05
105. 방이 왜 두 개야?
백유진은 서럽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는 숙소에서 벗어나 집에서 쉰다. 보통의 선수가 그랬다.
어제만 하더라도 누나인 백유정이 집에 있었고 별다른 낌새는 느낄 수 없었다. 백유진은 아직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유행운도 말하지 않았고 백유정은 아예 비밀로 하고 있다. 백유진이 연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유정의 모친은 알고 있었다.
특히 엄마는 쌍수 들고 환영했고 아버지한테는 비밀이다. 유독 딸인 백유정을 예뻐하던 부친이기에 알게 되는 그 순간, 백유진과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 자연스럽게 함구하게 되었다.
“아들, 밥 먹어.”
누나가 이미 유행운의 차를 타고 순천으로 떠났다.
백유진이 누나의 여행 사실을 알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백유정이 쓰는 방에 들어가 보니 엉망이었다.
옷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화장대도 요란했다.
물론 백유정이 원래도 방을 깨끗하게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도는 지켰는데 오늘 아침에는 아니었다.
딱 봐도 어디론가 떠난 사람의 방이었다.
“안 먹어.”
“먹어.”
“안 먹는다니까.”
“처맞고 먹을래, 그냥 먹을래?”
가만 보면 백유진의 모친은 딱 누나와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인 백유정이 엄마를 똑 닮은 거다. 백유진과 백유정은 외모가 어릴 때부터 출중했다. 특히 백유정은 신생아 때부터 또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했고 백유진은 아기 때는 애매했다가 점차 얼굴이 살아난 케이스였다.
그 얼굴은 엄마를 똑 닮았다.
젊을 때는 길거리 캐스팅을 당할 정도로 외모가 눈에 띄었던 그의 어머니는 회사를 다니다가 백유진을 낳으며 아예 전업주부가 되었다.
애 둘을 모두 외부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되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번역이었다.
덕분에 백유정은 영어를 아주 잘했고, 백유진은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엄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삼계탕 했어. 얼른 나와서 먹어.”
“무슨 점심부터…….”
“너 살 빠졌다더라.”
“누가 그래?”
“우리 사위가.”
“……뭐?”
“아직 좀 아니지?”
“무슨 소리야?”
“그래, 예비 사위가 말해 줬어.”
“엄마!”
백유진의 속이 터진다.
엄마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난 사실도 아들이 알게 되었는데,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너 여자한테 소리 지르는 거 아니라고 했지?”
“엄마가 여자야?”
“그럼 남자니?”
결국, 백유진은 머리를 한 대 얻어터지고서야 움직였다.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는다. 뽀얀 닭이 대추와 인삼을 품고 다리를 꼬고 있었다.
“먹다 모자라면 말해. 한 마리 더 있어.”
“아빠 거 아니야?”
“응, 아니야.”
“그럼?”
“우리 예비 사위 거.”
“엄마!”
백유진의 속이 다시금 터진다.
모친이 아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고기를 잘라 주며 말했다.
“얘, 행운이 정도면 얼마나 괜찮은 남자니? 돈 잘 벌지, 야구 잘하지, 성격 좋지.”
또-
“잘생겼지.”
“뭐, 걔가 잘생겼다고?”
“그럼. 유정이가 엄마 닮아서 남자 보는 눈이 까다로워.”
“엄마 닮아서 보는 눈이 없는 거지.”
“너 왜 그렇게 행운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시기 질투야, 그거?”
“아니거든!”
“먹어. 식기 전에.”
백유진이 뒤늦게 국물을 한 모금 떠먹는다.
“엄마, 내 입장이 돼서 생각해 봐.”
“네 입장이 뭐가 필요하니? 네 누나와 행운이가 좋다는데.”
“아니, 나도 가족이잖아.”
“남녀 관계에는 남동생이 낄 수 없는 거야.”
“내 입장에서는 소름이라니까! 내 누나와 나와 친하게 지낸 동료 선수가 연애를 해? 얼마나 소름인지 알아? 게다가 같은 구단이라고!”
“그게 뭐.”
“뭐?”
“행운이랑 네가 사귀는 것도 아닌데, 뭐.”
“아니, 소름 끼치게 왜 그런 가정을 해? 그리고 여기서 지금 그 말이 왜 나와?”
딱.
같이 식사를 하던 모친이 숟가락을 소리 내어 내려놓았다.
“밥상에서 쓸데없는 말 그만.”
“…….”
“누나 연애 방해할 생각 하지 말고 닭이나 뜯어.”
“딱 하나만.”
백유진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둘이 언제부터야?”
“얼마 안 됐어. 한 달?”
“헐.”
“느이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말할 건데.”
“그러기만 해.”
“말할 건데.”
“말해.”
“어?”
“느이 아빠랑 너랑 같이 내쫓으면 되니까.”
* * *
“운전 피곤하면 나랑 중간에 교대해.”
“괜찮아. 어제 정말 푹 쉬었어.”
“어제도 오후에 운동했던데?”
“괜찮아. 일상 루틴이라 그 정도는 피곤하지도 않아.”
어제는 올스타전을 끝냈고 집에서 푹 쉬었다.
늦잠도 잤고 가볍게 운동을 한 후에 엄마와 함께 유성온천도 다녀왔다. 아예 방을 잡고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몸이 한결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엄마를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여행 일정을 위해 백유정을 데리러 서울까지 간 셈이다.
그의 모친은 아들의 옷을 챙겨 주었다. 야구도 잘하고 인성도 바른 아들이지만, 어째 패션 감각은 없었다.
그나마 머리는 에이전시에서 매달 관리를 해 준다. 짧은 머리에 펌이 들어가서 격한 운동에도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확실히 헤어스타일은 좋았다. 예전 고교 시절에는 머리가 덥수룩해서 영 보기가 좋진 않았었다.
“오늘 되게 멋지게 입고 왔네?”
“아, 이거…….”
“어머니가 챙겨 줬지?”
“어, 알고 있었어?”
별다른 의상은 아니었다.
깔끔한 브랜드 티셔츠였고 바지는 요즘 남자들이 많이 입는 청바지였다. 유행운이 사는 옷이라고는 죄다 트레이닝복이었기에, 그의 모친이 직접 골라 산 의상이었다.
“알지.”
“엄마가 들키지 말라던데. 마마보이 같다고.”
“그런 스타일은 또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내가 옷을 못 입나?”
“그건 아니야. 매일 운동복만 입어서 그렇지.”
“그게 편해서.”
“지금은 불편해?”
“아니, 운동복 사는 게 가장 편하다는 뜻이었어.”
대전과 서울은 가깝지 않다.
이렇게 오래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올스타 브레이크만 기다렸는데, 지루하게 운전을 하는 이 순간에도 기분이 좋았다.
아니, 혼자라면 지루했을 텐데, 둘이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와.”
중간 휴식을 위한 휴게소.
각자 화장실을 다녀오고 가볍게 군것질을 할 생각이었는데, 유행운의 먹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소시지와 소떡소떡을 사고 호두과자와 떡볶이에 알감자도 샀다. 마지막으로 커피 두 잔을 사와 자리를 잡았다.
“운동선수는 진짜 많이 먹는구나.”
“유진이도 이 정도 먹지 않아?”
“걔는 입이 짧아. 애가 좀 까탈스럽잖아. 어릴 때부터 입이 짧아서 엄마 고생 많이 시켰지.”
“그래 보여.”
“그렇지?”
“응.”
그래도 오늘은 좀 조절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미련해 보이기도 했고, 뭔가 데이트를 하는데 먹을 생각만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기도 했다.
“누나도 먹어.”
먹는 걸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예외다. 호두과자를 하나 꺼내 백유정의 입에 넣어 준다.
“맛있다.”
“이거도 먹어 봐. 소시지.”
사실 백유정도 입이 짧다.
그나마 백유진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먹는 양이 늘었지만, 백유정은 그렇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먹는 재미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저 배고프니까 먹는 거였고 월경이 시작되면 가끔 땡기는 정도, 딱 그 수준이었다.
“사실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아.”
어느새 소시지 꼬치를 다 먹은 유행운이 놀란 눈으로 백유정을 보았다.
“아주 가끔 먹고 싶은 게 생길 때가 있긴 한데, 대부분은 그냥 배고파서 배 채우려고 먹는 정도?”
“……와.”
“충격적이야?”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어느새 유행운은 젓가락을 들고 떡볶이를 먹는다.
떡을 두 개씩 입에 넣던 유행운이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 미련해 보여?”
“아니.”
유행운을 보며 백유정이 웃었다.
그의 입가에 떡볶이소스가 묻어 있었고 그게 또 귀엽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소스를 닦아 준 백유정이 미소를 짓는다.
“나와 달라서 귀여워. 복스럽게 먹으니까.”
“귀여워?”
“응, 자긴 되게 어른스러우니까. 이런 모습 신선해.”
엄지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핥아 먹은 백유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자기 입술에 묻은 거라 그런가?”
“응?”
“이건 또 맛있네?”
“어…….”
“나 느끼했어?”
“좀.”
“하지 말까?”
“아니야.”
큭큭.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유행운이 말했다.
“재밌어. 이런 모습, 신선해.”
* * *
순천에 도착해 맛집도 가고 커피도 마셨다.
관광지 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냈고 해가 질 무렵에 맥주와 안주를 사서 호텔에 들어왔다.
유행운이 예약한 호텔은 순천에서 가장 좋은 4성급 호텔이었다. 고급 호텔에서 쉬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 호텔 이상 좋은 곳은 없었다.
“유행운 씨 맞으시죠?”
“네.”
“객실 두 개, 확인 부탁드릴게요.”
종이 두 장이 내밀어진다.
유행운이 펜을 들고 서류에 인적 사항을 적으려는데, 불쑥 백유정의 손이 나타났다.
“잠깐만.”
“왜?”
“방이 두 개야?”
“어?”
“……진짜 두 개야?”
“…….”
“…….”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 순간, 유행운이 당황했다. 사실 이제 연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서로 조심스러운 단계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방 두 개를 잡았다.
그게 백유정에게도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다시금 묻는 백유정을 보며 유행운이 잠시 허공을 보았다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야……?”
“응, 아니야.”
“미안해.”
직원이 눈치 빠르게 응대한다.
“방 하나를 취소하고 룸 업그레이드 해 드리면 괜찮을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기존 방을 업그레이드하고 카드 키를 받아 객실로 움직이는 그 순간, 유행운은 심장이 떨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키스와 함께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다음 단계는 천천히 진행할 생각이었다. 유행운은 과거로 회귀한 사람이라서 속은 삼십 대였지만, 백유정은 아직 이십 대 초반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
서로 별말을 하지 않고 객실 앞에 섰다.
카드 키를 도어락에 대니, 잠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문을 열고 짐을 챙겨 넣는 순간, 백유정이 확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유행운을 벽으로 몰아세우며 입술을 맞춘다.
“유, 유정아……!”
당황한 유행운이 백유정의 어깨를 밀어 내며 진정시키려 하자, 백유정이 미간을 좁힌다.
“싫어……?”
싫을 리가.
지금 유행운은 한창 피가 들끓을 나이였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억눌러 내고 조절한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데, 싫을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필시 게이일 것이다.
이번에는 유행운이 입술을 맞추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살짝 뒤로 넘어질 뻔한 백유정의 허리를 안아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백유정의 다리가 유행운의 허리를 감싼다.
그동안 운동한 보람이 있었다. 조금씩 벌크업을 시작하며 마른 멸치 같았던 몸에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만약 여자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었다면 그 순간, 남자로서의 매력은 급속도로 뚝 떨어졌을 것이다.
“후우…….”
정신없이 입술을 맞추며 침대에 백유정을 눕히는 순간.
“아, 안 돼…….”
유행운이 번쩍 정신을 차린다.
“콘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