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27
127. 집 한 채 사주기로 했는데?
지선호에게 대전 호크스는 애증이었다.
처음에는 기회를 받는 것에 감사했고 자신의 힘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었다. 지선호는 팀이 주는 기대만큼 성장하여 어느새 KBO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되었다.
그의 올 시즌 연봉은 4억 3천만 원이다.
지금까지 보여 준 성적으로 보아 이 금액은 굉장히 적었다. 나름 팀 내에서는 상위권 연봉자였지만, 타 팀을 둘러보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계속 꾸준히 3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고 타율도 3할이었다. 수비도 준수한 축에 속했던 강타자인데, 항상 지선호는 연봉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채리원이었기에 조금이라도 긁을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4억에 만족했어야 했을 것이다.
지선호는 최소 8억은 받아야 마땅한데, 어쩌겠는가.
팀이 바닥을 기는데.
‘우승?’
사실 팀에 대한 충성심은 날이 갈수록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조롱을 받으며 운동했다. 개인 성적은 뛰어났지만, 팀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항상 견제를 받는 위치였다.
10구단 팬들 사이에서는 지선호의 서비스 타임이 끝나가자, 합성본을 만들어 퍼트리기 시작했다.
지선호는 어느 날에는 부산 마린스가 되었다가 어느 날에는 대구 드래곤즈가 되었다. 어느 날은 서울 스타즈였고 어느 날에는 인천 바이킹스였다.
즉, 타 구단에서도 탐을 내는 선수였고 그 모습이 처음에는 씁쓸했던 지선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전 호크스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우승은커녕, 최하위도 탈출하기 힘든 팀이었으니까.
‘우리 팀이 우승이라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올해 터졌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대전 호크스를 탈출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팀이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부러진 날개를 평생 고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작은 올 시즌 처음 팀에 합류한 고졸 신인이었다. 유격수였고 같은 에이전시 출신이었다.
거액을 받고 등장한 그 신인은 알까?
아직 지선호도 21억을 벌지 못했다는 사실을.
퍼엉!
미트에 들어온 공을 지켜본다.
“볼.”
솔직히 기분 나빴다.
신인이 거액을 받고 들어왔다. 자신에게는 모기업에서 돈을 주지 않는다며 연봉 인상에 인색하게 굴던 사람이 이영호 단장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다.
그 신인 선수가 이미 자신을 능가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풀카운트 승부! 지선호 선수가 까다롭게 볼을 고르고 있죠?] [이 두 사람 천적 관계죠. 사실 이규성은 4번까지 오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지선호가 가장 많이 홈런을 많이 때린 상대가 바로 이규성입니다. 아쉽게도 요즘 대전 타선이 무서워서 도저히 1회에 4번까지 안 갈 수가 없었죠.] [예, 맞습니다. 지금 지선호만 문제가 아니에요. 다음은 문혁준에 프레드릭까지. 쉽지 않죠, 쉽지 않아요.]투수의 인터벌이 길어진다.
그만큼 긴장이 되는 탓도 있었지만,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서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이유도 있었다.
“싫은데…….”
무기력한 눈으로 한 줌밖에 없는 푸른색의 유니폼을 본다.
원정팀석에서도 대구 드래곤즈 팬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대전 호크스가 우승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로 원정팬이 이곳에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호크스에게 지는 거 싫은데…….”
지금 심정은 그렇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전 호크스는 그에게는 보약이었다. 흔들리고 2군으로 내려갈 위기에 대전을 만나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영점을 잡기에 딱 좋은 팀이었고 지선호만 조심하거나 거르면 되는 팀이었다.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 팀은 이제 지선호만 있는 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타임!”
결국 지선호가 한쪽 팔을 들며 타임을 요청했다.
“투수!”
심판에게 주의를 받은 이규성이 모자를 살짝 벗으며 사과를 건넸다.
투수의 속이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엉켜 복잡하다. 보약이었던 팀에게 일격을 맞는 느낌이기도 했고 이 팀이 우승을 확정 짓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절망감이 함께 찾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팀과 붙는 걸 좋아했을 이규성인데, 올해는 이렇게 다른 마음이 되는 걸 보면 사람은 참 간사했다.
“흡!”
제발제발제발!
공은 이미 이규성의 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는 간절히 빌었다.
신을 믿지 않는 이규성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부처, 예수, 알라, 마리아…….
온갖 신을 다 가져와 빌고 또 빌었다.
빠아아악!
“아.”
하지만 그 신은 이규성의 기도를 외면했다.
지선호는 뚝 떨어지는 커브를 그대로 퍼 올렸다. 유행운은 아직 힘이 모자라서 약점으로 보이는 낮은 코스를 지선호는 충분히 어퍼 스윙으로 홈런을 만들 수 있는 타자였다.
[힘 있게 퍼 올렸습니다! 중견수! 중견수 뒤로! 타구가 힘있게 쭉 뻗어 갑니다! 높은 포물선을 그리는 지선호의 투런포! 시즌 39호포, 이 홈런으로 자신의 홈런 기록을 갈아 치웁니다!]공을 때리는 순간 홈런을 직감한 지선호는 배트를 높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공이 넘어가는 순간, 손에서 배트를 떨어뜨리며 경쾌하게 박수를 친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집중 견제를 벗어난 지선호의 모습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작년 시즌 32개의 홈런을 생산한 지선호거든요? 최고 기록이 38개고요. 이때가 투저타고 시즌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40홈런 근처에도 못 갔던 지선호였거든요. 그 지선호가 드디어 한 단계 스텝업 합니다.]지선호가 천천히 그라운드를 돈다.
처음에는 유행운을 뒤쫓는 것에 집중했다. 팀의 4번 타자로서 밀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는데, 그 덕분에 작년 시즌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었다.
“형, 축하해요.”
유행운이 다가와 반긴다.
“올 시즌, 40홈런도 가시겠네요.”
“얄미운 자식.”
지선호가 피식 웃으며 유행운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 주었다.
* * *
[나 지금 울고 있냐?? 시발 왜케 눈물 나 ㅠㅠㅠㅠ]└ 서노서노야 ㅠㅠㅠ 그동안 고생 많았다
└ 우린 못 잊지… 서노가 우리에게 줬던 걸…….
└ 진짜 지서노 고생 개많았다 집중 견제 다 받고 근데 30홈런 꼬박꼬박 치고ㅜㅜ
└ 이번에 서노가 갇혀 있지 않아서 커리어 하이 찍는 것 같다 ㅠㅠㅠㅠ
└ 아무래도 타선 무게감이 분산이 되니까ㅠㅠㅠㅠㅠ
└ 시발 서노야 종신대전 해 ㅠㅠㅠㅠ
└ 사랑한다 지서노
└ 시발 우리 진짜 우승하냐? 서노야 그거 찐이냐???
└ 하 시발……. 죽기 전에 대전 우승 보는게 꿈이었는데ㅠㅠㅠㅠㅠ
└ 꿈은 이뤄진다 ㅠㅠㅠㅠ
└ 서노야 사랑한다 ㅠㅠㅠㅠㅠ
└ 대전의 자랑 지선호!
└ 이상하다 나 집관인데 왜 울지??? ㅠㅠㅠㅠ
└ 대전 호크스 비상하리라!!!
└ 직관 온 사람들 다 운다 눈물바다임 여기;;;;
└ 시발 감수성 지리네 아재들;;;;
└ 탈꼴찌만 바랐는데ㅠㅠㅠㅠ 우승이라니 ㅠㅠ 이왜진???ㅠㅠㅠㅠ
지선호의 홈런 이후 관중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1회 말부터 넉 점을 따낸 대전 호크스였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우승을 직감한 것이다.
10구단 전부 우승은 의미가 있겠지만, 만년 꼴찌였던 대전 호크스에게는 우승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시즌 초부터 대전 호크스는 갖은 조롱과 무시를 받는다.
그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고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며 매년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이건 선수만 멸시를 받는 게 아니었다.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조차 같이 조롱을 받으며 상처를 입는다.
[기쁜 날, 다들 눈물을 흘리시네요. 저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타선이 터졌거든요. 지금까지의 마음고생을 잊을 수 있는 지선호의 멋진 한 방이었습니다.]시작부터 대전 호크스는 우승을 향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다.
지선호의 홈런에 이어서 프레드릭의 2루타, 그 뒤에 하위 타순에서 적시타를 하나 때려 주며 다시 한 걸음 성큼 달아났다.
“잘했다!”
윤규민이 더그아웃에서 타자들을 마중 나온다.
손에는 글러브를 들고 있었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는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고 있었다.
“모여!”
지선호가 선수들을 소집한다.
마운드로 나가려던 윤규민도 돌아와 손을 모았다.
“우승 코앞이다. 방심하지 말고, 빨리 결정짓자.”
“네!”
“하나, 둘, 셋!”
“우승!”
힘을 모으고 각자 글러브를 챙겨 수비 위치로 돌아간다.
유행운도 모자를 고쳐 쓰고 유격수 자리로 향했다. 5점 차로 넉넉하게 상대를 따돌리기는 했지만, 아직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제 2회였고 대구에도 기회는 충분히 있기 때문이었다.
[스윙! 삼진! 윤규민이 선두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보냅니다. 이야, 작년 꼴찌팀이 올해 우승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이 경기 중계를 맡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대전 호크스는 단순한 하위 팀이 아니었죠. 연속 꼴찌였고 마지막 가을야구가 10년 전이었으니, 말 그대로 반전 그 이상이었습니다.]확실하게 승리를 잡는다.
윤규민은 대구에게 여지를 주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이 한국 시리즈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2회도 삼자범퇴! 윤규민이 완벽투가 무엇인지를 이 순간에도 보여 줍니다. 스코어 5: 0. 이 점수 차가 계속 이어질지, 대전 호크스가 오늘 안방에서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요? 여기는 대전입니다.]* * *
빗줄기가 하나둘 떨어진다.
4회 초가 끝난 후에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고 더그아웃에서 최정환 감독은 초조한 눈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쳐다보았다.
[오늘 분명 일기 예보에는 비 소식이 없었는데요. 지금 최정환 감독 보시면 알겠지만, 엄청 속이 탈 겁니다.]대전은 비가 얼른 그치기 기다렸고 대구는 이대로 비가 멈추지 않기를 기대했다.
“지금 한 시간 기다려 본다는데, 경기 할 것 같아요. 기상청은 이제 곧 그친대요.”
“그놈들을 어떻게 믿어. 오늘 애초에 비 소식이 없었는데…….”
최정환 감독이 야속하다는 듯 내리는 빗줄기를 본다.
조금만 늦게 내렸으면 좋았을 것을.
보통 경기가 시작한 후에 비가 내린다면 그 경기 취소를 5회를 기준으로 한다. 만약 지금 이 경기가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면 중간에 중단이 되었어도 대전 호크스의 승리로 결정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
비가 오는 와중에도 대전 호크스 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맥주를 들이켜며 제발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유행운은 점퍼를 입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계속 기상청을 확인하고 있는데, 비는 곧 그칠 듯했다. 우승을 확정 짓는 중요한 순간에 비가 내리는 것이 야속하지만, 하늘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우리 우승 공약이 뭐였지?”
문득 주장 지선호는 미디어데이에 했던 공약이 생각났다.
“형, 우리 공약 뭐 걸었지?”
솔직히 말해서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대전 호크스가 우승할 가능성은 0%였다. 모든 사람들의 예측도 0%였으며 대전 호크스 팬들조차 우승을 생각지도 못했다.
지선호는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공약을 내뱉었다. 그 순간,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어차피 실현 가능성이 0%라 생각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 말도 안 되는 거 걸지 않았어?”
숙연해진다.
강우성도 물을 마시다가 순간 얼굴이 굳었다.
잊고 있었던 공약인데, 말도 안 되는 만수르가 와도 불가능한 공약을 걸었던 기억이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기에 이 공약에 책임은 강우성에게도 있었다.
즉, 남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무슨 공약인데요?”
하나둘 지선호에게 모인다.
지선호가 난감한 듯 미간을 좁힌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
강우성의 눈도 사정없이 흔들린다.
“대전 호크스 팬들에게 집 한 채씩 사 주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