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28
128. 역사적인 순간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고 사라져 간다.
다행히 30분이 지난 즈음에 비가 그쳤고 그 후에는 그라운드 정비에 돌입했다.
“공약 어떡할까……?”
“정규 시즌 우승도 우승은 우승이니까.”
“솔직히 통합 우승까지 해야죠.”
사실상 대전 호크스의 정규 시즌 우승은 확정됐다.
이것도 우승이라면 우승이었기에, 지선호는 공약을 이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집 한 채를 나눠 주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전 모기업 회장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그건 불가능했다.
“그 작은 집 있잖아요, 그 레고로 만든 그런 장난감.”
“장난감?”
“네, 이번 시즌 홈 막경기에 방문하는 팬들에게 나눠 주는 건 어때요?”
“음, 그걸로 될까……?”
“그걸 선수들이 나눠 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아예 우승 기념으로 주문 제작하면 그것도 기념이 될 것 같긴 하다.”
나름 대체할 만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홈 막경기에는 우승 기념 행사도 잡혀 있었다.
대전 호크스의 두 번째 우승.
최하위에 머물러 있던 대전 호크스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홈 피날레가 될 것이다.
“오늘 경기 끝나고 제가 수습해 볼게요.”
사람은 이래서 입이 중요하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면 큰 화가 덮친다. 그 사실을 오늘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지선호였다.
강우성이 그라운드 정비를 마무리 짓는 걸 지켜보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이기는 거에 집중하자. 우승이 먼저야.”
“그건 맞죠.”
“내가 진짜 미국에서도 못한 우승을 대전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우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선수에게 우승은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팀 스포츠는 누구 하나가 잘한다고 해서 우승을 할 수 없었다.
만약 개인의 역량이 큰 스포츠였다면 강우성은 이미 전성기 시절에 우승을 경험해 봤어야 한다.
“가자.”
어느새 그라운드 정비가 끝났다.
4회 말 선두 타자는 유행운이었다. 오늘 2타수 1안타를 신고한 유행운은 보호대를 착용하고 환호성을 들으며 더그아웃에서 나왔다.
[자,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스코어 7: 0. 큰 점수 차로 앞서고 있는 대전 호크스, 4회 말 선두 타자는 유행운입니다.]유행운이 스윙을 크게 한 번 돌린다.
마운드에는 아직 앳된 얼굴의 투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구 드래곤즈는 4회에 선발 투수를 내리고 불펜진을 기용했는데, 선발이 계속 털리면서도 계속 기용했던 건 투수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다음 주에 드래곤즈는 더블헤더를 하루 치러야 한다. 그때는 투수가 소모될 수밖에 없었고 이규성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따아아악!
초구부터 타격음이 크게 울려 퍼진다.
경기를 빨리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유행운은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스윙을 가져왔다. 마침 몰리는 공이라 그대로 잡아당겼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이야. 기어코 홈런을 만드네요. 초구를 잡아당겨서 타구를 멀리 보내버립니다! 유행운이 오늘도 팬들을 향해 홈런을 선물합니다! 시즌 44호 포! 유행운!]배트 플립도 빠르게.
그라운드를 도는 것도 빠르게.
혹시 모르니 최대한 경기 시간을 줄인다. 1점을 추가한 유행운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더그아웃에 들어왔고 최정환 감독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경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 이후에는 차곡차곡 아웃카운트가 쌓였고 윤규민은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윤규민은 8회까지 무력한 대구 드래곤즈 상대로 무결점 투구를 마쳤다.
[이제 아웃카운트 세 개만 잡으면 대전 호크스가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1999년 이후 두 번째 우승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지금 모든 이목이 대전 호크스에게 향해 있는 이 순간, 팀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은 루키 백유진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현재 스코어 9: 0. 넉넉한 점수 차에 마무리 투수가 등판한다는 건, 더 늦기 전에 우승을 확정 짓겠다는 생각으로 느껴지는데요.] [그렇죠. 대전도 다음 주에 더블헤더가 잡혀 있어요. 올 시즌 비도 많이 왔고 폐지되었던 더블헤더가 부활했는데, 이거 체력 소모 크거든요. 지금 대전은 우승을 결정짓고 마음 편히 더블헤더를 치르겠다는 생각이에요. 하루라도 빨리 우승하면 내일 당장 주전들에게도 휴식을 부여하고 백업 선수에게는 경험을 줄 수 있거든요.] [자, 대전의 클로저 백유진.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됩니다.]백유진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팬들이 박수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새로운 마무리 투수를 반겼다. 백유진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마운드에 오른다. 로진백을 움켜쥐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보았다.
윤규민은 젊은 에이스답게 점수를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 백유진은 점수를 1점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대전 호크스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로 시즌 중반 기용된 백유진 선수, 올해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시즌 초에는 선발 자원으로서 등판하는 일이 많았고요. 팀이 새로운 마무리 투수를 찾지 못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받게 되었는데, 그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현재 18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는데, 올 시즌 20세이브만 달성해도 대전이 기대하는 클로저의 모습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승으로 가는 길에 결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지금 백유진의 임무였다.
부웅!
타자가 헛스윙을 한다.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보니, 생각한 공이 아니었던 듯했다.
[구속이 147km/h 찍힙니다. 시작부터 강속구를 뿌립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신인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공을 던지는 거 부담스럽거든요. 점수 차가 벌어졌어도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순간 아니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지금 굉장히 신중하게 사인을 받고 던지고 있는데, 지금 대구 드래곤즈가 곱게 우승 길로 보내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거든요. 쉽게 말해 영봉패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어차피 오늘 경기는 이미 대전에게로 기울어졌다.
대구 드래곤즈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1점을 내서 흙을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은 설사를 뿌리고 싶지만, 벌어진 점수 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악!
[김진수, 타격!]유행운이 타구음을 듣자마자 전진한다.
공을 안전하게 포구한 유행운이 가볍게 1루에 송구했다.
[원 아웃. 이제 정규시즌 우승까지 두 걸음 남은 대전 호크스!]백유진이 심호흡을 하고 온 힘을 다해 공을 뿌렸다. 한 점도 내주지 않고 팀의 승리를 가져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타자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간다.
따아악!
초구를 두드린 타자가 배트를 집어 던지고 1루를 향해 내달렸다. 1, 2간을 꿰뚫는 안타였고 백유진의 인상이 구겨졌다.
“성급했다. 천천히 승부해야 했는데…….”
마음을 다시 가다듬은 백유진이 숨을 고르며 스파이크에 박힌 흙을 박박 긁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행운이 두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야.”
그 목소리에 백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쫄?”
그 순간, 백유진의 혈압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고 오른다.
유행운이 실실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고 백유진은 로진백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재수 없어.”
요즘 두 사람은 자주 티격태격한다.
그 시작은 유행운이 연애를 하면서부터였는데, 백유진은 가끔 유행운을 보면 혈압이 올랐다. 가끔은 친누나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백유진을 괴롭히는데, 그게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흐아압!”
파앙!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149! 백유진 선수가 본인 최고 구속을 돌파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유행운이 쓴 처방은 효과적이었다. 쉽게 말해 분노로이드였다. 백유진은 분통이 터지면 공이 더 살아난다.
“끄아압!”
백유진이 눈을 부릅뜨며 공을 뿌렸고 두 번째 아웃카운트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을 잡아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걸음.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아내면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된다.
딱!
내야에 공이 두둥실 떠오른다.
“마이 볼!”
유격수 유행운이 두 팔을 벌리며 신호를 보냈다.
투수 백유진은 이미 자리를 피해 주었고 주변으로 다가오던 조석찬과 문혁준도 걸음을 멈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야에 높이 뜬 공에 집중되었다.
덥석.
안전하게 공을 잡은 유행운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유격수가 내야에 뜬 공을 잡으며 경기를 끝냅니다! 긴 터널 끝에 대전 호크스가 다시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합니다!]촤아아아악!
사방에 불길이 확 치솟는다.
대전 호크스 모기업 회장의 성질머리처럼 불과 불꽃이 사정없이 터졌다.
[불꽃 대전 호크스! 역사적인 순간이 오늘 찾아왔습니다! 대전 호크스 정규시즌 우승! 아직도 대전은 배가 고픕니다. 통합 우승까지 할 수 있을지, 그 순간에도 MBS스포츠와 함께해 주십시오.]펑펑펑!
어둡던 하늘이 불꽃으로 화려하게 빛난다.
팬들은 응원가를 불렀고 이 진풍경을 모든 사람이 함께 구경했다.
* * *
“저희가 오늘 정규시즌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팬분들 덕분입니다. 대전 호크스가 바닥에 처박혀 빌빌 길 때도 저희를 응원해 주시고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주셔서 항상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마음의 빚이었는데, 이렇게 일부 갚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선호가 울먹인다.
긴 시즌을 치르면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였는데, 지나간 세월이 기억나는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다음 마이크는 유행운에게 전달되었다.
“저희가 이제 겨우 이자 상환을 했잖아요. 원금은 손도 못 댔는데, 일단 통합 우승으로 저는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올해 대전 호크스 소속이 되어서, 팬분들께 빚을 진 게 별로 없거든요.”
유행운다운 화법이었다.
“강우성 선배도 미국에 다녀오신 지 얼마 안 돼서, 통합 우승이면 빚 상환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선호 형님은 좀 힘들지 않을까요?”
눈물을 참던 지선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유행운을 흘겨본다. 팬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사방에는 맥주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빚을 한 방에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선호 형이 장기 계약으로 종신대전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아!
유행운의 말에 팬들이 화답한다.
지선호의 FA는 29시즌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고 올 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주가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었다.
“혁준이 형도…….”
고개를 돌려 타깃을 바꾼 유행운이 입을 열었다.
“인생 처음으로 우승해 보신 건데, 종신대전 추천드립니다.”
유행운이 사랑받는 이유는 팬들이 원하는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공격이 들어왔다.
백유진이 마이크를 건네받았고 유행운을 보며 조준했다.
“너는?”
“뭐.”
“너는 종신대전 할 거야?”
유행운이 눈을 굴린다.
여기서 옳은 대답은 종신대전이었지만, 사실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제가 국내에서 뛰는 동안에는 종신대전입니다.”
짧게 생각하고 대답을 내놓는다.
언젠가 유행운은 미뤄 두었던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그 도전이 미국이었다. 미국에 가서 더 넓은 물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형, 형도 한마디 하세요.”
유행운이 이번에는 시즌 중도에 은퇴를 철회하고 대전 호크스로 돌아온 이승현에게 마이크를 주었다.
“네, 이승현입니다.”
이승현은 우승이 확정되고 눈물을 쏟았다.
여기저기서 샴페인이 터지고 관중석에서 맥주를 뿌리며 기쁨을 표현했는데, 이승현은 샴페인을 맞으면서도 흐느꼈고 얼음물을 맞으면서도 울었다.
“제가 올해 빚도 못 갚고 이자도 못 드렸는데, 중간에 은퇴를 할 뻔했어요. 발목이 부러졌을 때, 야구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운다.
“이렇게 다시 저를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승현이 울면서 팬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를 격려하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유행운 역시도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다. 선수에게 우승은 굉장한 의미였다.
고교 시절에도 못 해 봤던 우승.
U-18 대표팀에서도 못 해 본 우승을 이렇게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공약에 대해서 말씀드릴 게 있는데…….”
다시 주장 지선호가 마이크를 들었을 때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강우성이 시선을 회피한다. 어떻게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고 지선호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제가 공약에 대해 실언을 했는데, 차마 집 한 채를 모두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홈 막경기에 우승 기념 집을 모형으로 작게 제작하려 합니다. 선수들이 직접 나눠 드릴 거고요.”
이 순간, 갑자기 야유가 쏟아진다.
장난기 어린 야유였지만, 지선호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있었다.
“혹시 이걸로는 안 될까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