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4
14. 투수는 얻어터지며 크는 거야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다.
경기 초반, 경원상고는 상대 투수의 이름값에 짓눌렸다.
강수현이 아무리 모자란 타자라고 해도 초구에 배트를 내고 힘없이 물러난 것은 기세 싸움에서 밀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주영 표정 봤어? 어?”
유행운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여기저기 부원들이 달려왔다.
어느 누구는 머리를 북처럼 두드렸고 어느 누구는 엉덩이를 걷어찼다.
“봤지.”
“완전 사이다!”
이주영이 상대를 우습게 보고 단순한 볼배합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두 타자를 가볍게 눌렀고 유행운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
이주영이 보는 경원상고는 그랬다.
아니, 북성고가 보는 시선이 모두 그렇다.
민현웅을 제외한 경원상고 일원은 모기를 잡듯이 찍 눌러 죽일 수 있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
“아주 잘했다.”
유행운이 보호대를 풀고 감독에게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칭찬이 이어졌다.
“노렸냐?”
“네, 오늘 제구가 잘 잡힌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걸 쳤어?”
“바보같이 한 곳만 노리니까요.”
“아이고! 귀한 놈, 너만 보면 내가 배가 불러.”
이형호가 흐뭇함을 참지 못하고 유행운의 볼을 꼬집었다.
“아, 아픕니다.”
유행운이 말했던 것처럼 오늘 이주영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프로 진출 후에도 몸쪽 승부를 꺼려하고 어려워하는 투수가 널렸다.
그건 고교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이주영이 직구로만 승부를 펼쳤던 건, 그만큼 영점이 잘 잡혔기 때문이었다.
강수현을 상대할 때, 몸쪽 제구가 잘 들어간다는 걸 느끼고 집요하게 몸쪽을 노렸다.
그 패턴이 앞선 타자들에게는 통했지만, 유행운에게는 입에 먹여 주는 떡이나 다름 없었다.
“몸쪽 승부에 자신감이 있었어요. 제가 유명하지 않으니까, 같은 패턴으로 접근할 줄 알았고요.”
유행운이 단순히 고교 타자였다면 이주영의 승부수는 먹혔을 수 있다.
하지만 유행운은 미래 경험이 있었고 무르익지 않은 투수가 던지는 공에 밀리지 않는다.
“저 약속 지킨거죠?”
“그럼. 아주 제대로 지켰지.”
이형호는 그 말과 동시에 민현웅을 보았다.
지금 민현웅은 작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유행운이 앞서서 경기 분위기를 가져오는 홈런을 날렸다.
상대가 유행운을 우습게 보고 쉽게 승부를 보다가, 일격을 맞은거라 해도 실력이 없다면 홈런을 생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두 눈으로 확인한 민현웅이었고 지금 팀의 4번타자로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온 몸이 안달났다.
‘여기서 하나 더.’
이형호 감독은 초조하게 승부를 지켜본다.
일격을 맞은 이주영은 신중하게 승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초구는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고 그 다음은 바깥 보더라인에 걸치는 예리한 직구였다.
그리고.
부웅!
민현웅의 배트가 헛돌았다.
“체인지업.”
유행운이 미간을 좁힌다.
새로운 구종이었다.
지금 이 나이에 이주영이 사용하는 구종은 주로 슬라이더와 커브, 그 다음 포심이었다.
그리고 지금.
민현웅을 상대로 새로 연마한 체인지업이 배트를 끌어냈다.
어느새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이주영이 숨을 돌린다.
유인구를 연달아 던지고 민현웅은 커트를 하며 틈을 보고 있었다.
‘누가 이길까?’
유행운은 더그아웃에 매달린 채로 이 승부를 지켜보았다.
딱!
그 순간, 끈질기게 승부를 이어가던 민현웅이 배트를 매섭게 돌렸다.
“와아아악!”
다시 경원상고 분위기가 불타오른다.
민현웅은 집요한 승부 끝에 밋밋하게 떨어지는 커브를 퍼올려 장타를 만들었다.
“아까비.”
2루타를 치고도 민현웅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유행운처럼 홈런을 만들고 싶었지만, 살짝 힘이 부족했다.
평소라면 담장을 맞추는 장타로도 흡족했을 민현웅이었다. 하지만 요즘 부쩍 유행운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비교하고 있었다.
“아.”
이주영이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민현웅이 정강이 보호대를 풀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시히발······.”
결국 간신히 붙들고 있었던 이주영의 멘탈이 욕설과 함께 펑 터졌다.
* * *
– 이주영 퇴물 됨? 존나 털리는데?
└ 아직 1실점이다
└ ㅋㅋㅋㅋㅋ 신생팀 상대로 듣보한테 홈런 맞음
└ 저 듣보 뭐냐? 존나 멸치던데 그걸 넘기네
└ 잊지 말자 민현웅 2루타 지렸다
└ 이주영 얘 원래 이래? 마린스 다시 생각해 봐라 듣보한테 털리는 애가 정말 투수 최대어? 맞?
└ 가끔 털릴 수도 있지 마린스는 꿋꿋하게 주영이 먹자 150 찍는 옆구리 투수 냠냠 굿!
실시간으로 이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 하위팀 팬들 사이에서 이주영의 평가가 바닥을 친다.
물론 인천 바이킹스 팬들이 여론을 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이왕이면 될 싹이 보이는 강속구 유망주를 먹는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 지금 이주영 평가 바닥쳤다 그니까 꼴린스 이주영 걸러줘~ 제발~
└ ㅈㄹ 망해도 고다
└ 응 이주영 마린스 꺼
└ 어차피 이주영은 꼴린스 간다
└ 주영이 태업하니?
└ ㅋㅋㅋㅋㅋㅋ 언제는 민현웅이 태업이라며
“이건 정말 예상 밖인데요?”
“야구는 모른다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유망주를 확인하러 온 스카우터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대전 호크스였다.
민현웅이 신생팀으로 전학을 가면서 비상이 걸린 호크스는 오늘 주말리그 전반기 문이 열리자마자, 목동 야구장을 찾았다.
“그 유행운이라는 애가 분위기를 바꿨어.”
야구는 정말 모른다.
매번 10위에 침 바른 것처럼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호크스도 가끔 선두를 달리는 팀의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야구는 정말 몰랐다.
“갑자기 터진 홈런에 이주영이 어질어질 했을텐데, 민현웅이 또 담장을 맞추는 큰 타구를 만들었으니.”
쯧쯧.
어느새 이주영 투구수가 20구가 넘어갔다.
지금 이주영은 멘탈이 터지면서 제구도 함께 터졌다.
처음 좋았던 모습은 사라졌고 계속 제구가 날려 결국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두 타자를 공 4개로 잡을 때는 진짜 대단한 투수라고 생각했는데······.”
“대단은 하지. 사이드암 투구폼으로 150이 넘는 공을 뿌리는데.”
“우연일까요? 홈런?”
“더 두고 봐야지.”
그나저나.
“마린스는 좀 골이 아프겠는걸?”
또다시 볼넷.
이주영이 투 아웃을 잡아놓고 이닝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박광윤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 * *
북성고 감독 박광윤은 두통이 밀려왔다.
오늘 경기는 쉽게 준비했다.
이주영은 내일 선발을 생각했었고 오늘은 기선제압 용도였다.
사실상 오프너 전략이었고 두 타자를 손쉽게 잡을 때는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생각했었다.
“태환이 준비 얼마나 됐어?”
“이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자.”
오늘의 진짜 선발투수 김태환이 준비가 끝이 나자, 박광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직접 올라가시게요?”
“만루 만들고 강판되는 투수가 에이스잖아.”
박광윤은 이주영이 예상치 못한 타자에게 홈런을 얻어 맞았을 때부터 이 상황을 예견했다.
발 빠르게 김태환에게 몸 풀라 지시한 건 신의 한수였다.
감독의 말을 듣지 않고 민현웅에게 승부하여 2루타.
그 다음, 그대로 무너져서 연달아 볼넷을 내주었다.
“주영아, 뭐 하냐?”
이주영은 공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 뒤로 공을 숨기고 있었다.
“내일 경기 안 뛰게?”
항상 에이스에게는 사탕을 주던 박광윤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공 줘.”
묵직하고도 낮은 음성에 결국 이주영이 등 뒤로 숨겼던 공을 내밀었다.
“당장 화장실 가서 찬물 뒤집어 쓰고 오늘 뭐가 문제였는지 생각해라.”
오랜만에 듣는 쓴소리에 이주영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쓸쓸하게 마운드를 내려가던 이주영은 누군가를 응시했다.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이고.”
유행운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이주영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교 리그에서는 홈런을 맞은 적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민현웅 정도 되는 타자에게 급습 당한 정도.
하지만 오늘은 이주영에게 있어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하고 말았다.
“원래 투수는 얻어 터지면서 성장하는 거야.”
원래대로라면 오늘도 이주영은 얻어 터지지 않고 깔끔하게 이닝 청소를 했겠지만, 인생은 원래 변수가 많은 장르였다.
“이주영이 결국 내려가네.”
평화로운 호크스 스카우터와는 달리, 마린스는 혼란 그 자체였다.
오늘 경기에 이주영이 등판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부지런히 목동을 찾았는데,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북성고 투수진이 괜찮으니까요. 원래 선발은 김태환이기도 했고.”
“이주영이 멘탈이 저렇게 약한 줄은 몰랐네.”
“원래 약은 쓰잖아요. 미리 프로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내일 흔들림 없이 본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쓴약이 맞겠지.”
마린스가 김태환이 등판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에이스 이주영에게 가려진 김태환이었지만, 피지컬도 좋고 승부사 기질도 있었다.
“후욱!”
딱!
조심스럽게 승부를 이어가던 김태환은 배트 끝에 맞아 유격수 방면으로 굴러가는 타구를 보았다.
유격수가 빠르게 대시한다.
쉬운 타구였지만.
“아이고, 저걸 더듬네!”
안타깝게도 오래 서 있어서 몸이 굳은 건지, 유격수가 공을 한 번 더듬고 말았다.
“세이프!”
유격수 실책으로 운 좋게 1점을 추가한 경원상고 분위기가 활활 타오른다.
“아싸! 공짜 점수!”
“맛있다! 아, 맛있다!”
더그아웃에서 일부러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북성고를 압박한다.
김태환은 깊은 한숨을 쉬긴 했지만, 자신의 자책점이 올라가는게 아니었기에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웃!”
기어코 상대 배트를 끌어내며 길고 길었던 1회 말을 마무리 지었다.
* * *
믿었던 에이스의 몰락과 믿었던 유격수의 실책으로 두 점 뒤진 박광윤 감독의 얼굴이 굳었다.
“유진아, 1회처럼만 하자.”
그리고 이형호 감독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유행운의 솔로 홈런을 시작으로 만루가 채워지며 이주영을 생각보다 빠르게 마운드에서 끌어 내렸고 그 후에도 운 좋게 추가점을 냈다.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었다.
“네 임무는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키는 거다.”
오늘 경원상고의 선발투수는 백유진이다.
북성고처럼 오프너 전략이 아니었다.
오늘 백유진은 처음부터 있는 힘을 다해 상대 타선을 잠재운다.
그게 임무였다.
이형호 감독은 한 경기라도 확실한 승리를 가져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팀의 첫 경기를 잡아야 그만큼 사기도 올라간다.
“도망가지 말고 야수들을 믿어.”
“네.”
“그럼 잘 부탁한다.”
“네, 감독님.”
2회 초.
백유진이 득점 지원을 받고 마운드에 오른다.
로진백을 톡톡 두드리며 뒤를 돌아 보았다.
처음 이 팀에 왔을 때는 사실 물음표가 더 많았다. 특히 물음표가 많은 건 유격수였다.
하지만 바뀐 유격수는 여러모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늘 그가 보여준 홈런이 기억에 남아 있는 백유진이었다.
“야, 유행운.”
백유진이 잘생긴 얼굴로 유행운을 불렀다.
“너 믿고 던진다.”
피식.
유행운이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오냐.”
짧고 쿨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