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43
143. 패배감
우승을 했다.
물론 유행운에게는 이제 한 시즌이 끝난 셈이었다.
지난밤은 우승에 젖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야구장에서 진행된 시상식과 기념식에 이어서 구단주까지 모인 뒤풀이까지 정신없이 이어 갔다.
그 자리에서는 차마 술을 피할 수 없었고 유행운 역시도 구단주가 따라 주는 와인과 샴페인을 연거푸 마셔야 했다.
“아…….”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좋지 않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을뿐더러, 어제는 제법 과음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백유정에게 문자를 보내고 방에서 나왔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기상이었고 부엌에서 좋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술 많이 먹었지?”
이선영이 뭔가를 열심히 끓이며 물었다.
“속 안 좋을 것 같아서 콩나물국 끓였어. 넌 북엇국은 안 좋아하잖아.”
“아, 고마워. 엄마.”
물을 마시고 바로 씻으러 들어간다.
숙취는 차가운 물로 날려 버리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식탁에 앉았다. 콩나물국과 계란프라이에 김치. 단출한 아침 식단이었다.
“닭 가슴살 구워 줄까?”
“지금은 괜찮아.”
닭 가슴살이 입에 들어갈 것 같지 않다.
“삼겹살 좀 구웠어.”
유행운이 새로운 반찬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야구를 잘하니까 엄마가 고기를 챙겨 준다. 계란프라이에 국만 있어도 아침으로 충분했는데, 삼겹살까지 구워 주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엄마, 집에서 고기 굽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도 운동선수 아들을 뒀는데, 고기 정도는 챙겨 줘야 할 것 같아서…….”
“고마워. 잘 먹을게요.”
밥을 먹는다.
시원한 콩나물국을 먹으니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밥을 말아 한술 뜨고 고기도 반찬 삼아 먹었다. 숙취가 있어도 식욕은 여전했다.
이선영이 잘 먹는 아들을 지켜본다. 별거 없는 식단에도 항상 맛있게 먹어 준다. 그 모습이 예쁘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다.
“한 그릇 더 줄까?”
“아니야. 아침이니까, 이 정도만 먹을래. 딱 좋아.”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이미 밥 한 그릇도 고봉밥이었다. 그걸 다 먹고 삼겹살까지 모두 먹었으니 배가 부를 만도 했다.
“행운아.”
“응.”
“이제 아빠 데리고 올까……?”
“…….”
순간 유행운은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잠시 뇌가 멈췄다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 엄마 남자친구 생겼어?”
“…….”
“아니구나. 미안.”
“계속 서울에 두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유행운 입장에서는 엄마가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긴 것보다 죽은 아버지를 대전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놀라웠다.
아버지에 관련된 일에는 항상 과민한 반응을 보였던 어머니였다. 조금씩 심리 상담을 통해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 생각은 어때?”
“엄마가 좋으면 그렇게 해요. 나는 엄마 말에 따를게.”
별거 아닌 이야기다.
이선영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이 감정은 사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다.
용서?
그런 건 하지 않았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매듭을 지었든,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고 의지했던 사람이며 가족이었다.
“너희 아빠는 외로운 사람이었어. 다정한 사람이고 웃는 게 예쁜 사람이었지만, 늘 혼자여서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야.”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지만, 늘 혼자였기에 외로움이 많았던 사람. 가족을 그리워했고 그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와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었다.
그저 정이 많았던 그 탓에, 거절을 못 하는 그 성격 때문에 스스로 가족을 저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저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를 아프게 했지만, 그냥 저렇게 혼자 두는 게…….”
“마음에 걸려?”
“응. 걸려, 체한 것처럼.”
유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엄마도 참 착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질지 못해.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을 놓친 거야. 아마 지금 후회하고 있을 거야. 엄마, 엄마가 편한 대로 해. 나는 다 괜찮아.”
엄마의 손을 잡아 준다.
이선영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얼굴도 편해 보인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 * *
비시즌.
우승과 함께 호크스 한마당이 다시 부활했다.
호크스 한마당은 팬들을 위한 무료 행사로 옛날에는 성적이 부진하여 그걸 만회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했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우승이라는 값진 열매를 받은 만큼 올해는 다시 부활되어 우승 반지 수여식을 진행했다.
그와 더불어 유행운은 장기 자랑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게 굉장히 어려워서 백유정의 도움을 받았다.
요즘 유행하는 춤을 추긴 했지만, 사실상 잘 추지는 못했다. 유연하기는 한데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 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는 건 당연하다.
비시즌 동안 유행운은 욕심내지 않고 지금 몸무게에서 3kg 정도 증량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었다.
동시에 결혼 준비를 한다.
상견례가 코앞이었고 대전에 신혼집도 계약을 해 두었다. 한동안은 서로의 생활을 지켜 주기로 했기에, 사실상 주말 부부였다.
대전 아파트는 18평형으로 작은 아파트였지만, 주말 부부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한 크기였다.
“누나.”
집을 계약하고 청소를 모두 마쳤다.
가전제품과 가구까지 넣어 두었고 유행운은 프러포즈를 준비했다. 계약금으로 받은 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KBO 최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채리원이 2년 차 역대 최고 연봉 인상률을 가져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능성 있는 말이다. 충분히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을 보여 주었으니 그만큼 최고 연봉 인상률은 당연했다.
돈에 관련된 문제를 뒤로하고 유행운은 자신이 할 일을 착실하게 했다.
“이게 뭐야?”
현관부터 명품이 즐비하다.
백유정이 하나하나 주우며 거실로 다가가자 유행운이 무릎을 꿇고 반지 케이스를 열고 있었다. 반지는 두 개였다.
하나는 우승반지였고 남은 하나는 결혼반지였다.
“이게 다 뭐야…….”
백유정이 품에 안은 명품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서로 눈높이를 맞추자 유행운이 반지 케이스를 내밀며 말했다.
“누나, 나랑 결혼할래?”
그 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백유정이 손을 내밀었다.
“응!”
청혼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았다.
골드글러브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공개적으로 고백을 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건 모 아니면 도였다.
서로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우승반지로 청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유행운이 우승 반지를 엄지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남자 사이즈에 맞춘 반지라 여자에게는 조금 컸다. 그리고 청혼반지를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준다.
“유정아, 사랑해.”
* * *
[민현웅: 어디냐] [민현웅: 나 도착 야 어디냐] [민현웅: 새끼들 시작부터 지각이냐????]오늘 동창회가 열리는 건 아니다.
[민현웅: 근데 왜 너네 읽씹함???] [민현웅: 야 강수현이 찐 대학 올스타임??] [민현웅: 세상에 대학 다 뒤졌냐??] [민현웅: 읽씹하지 말라고!]민현웅이 비시즌을 맞이하여 한국에 돌아왔고 강수현은 무적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과 더불어 대학 올스타로 뽑혔다.
즉, 오늘은 대학 올스타와 무적야구가 맞붙는 이벤트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 경기를 보기 위해 경원상고 동기가 뭉치긴 했는데, 뭉쳤다기보다는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주영: 강수현이 누구?] [민현웅: 이 샛기는 북성고 가서 놀지 왜 자꾸 경원상고에 껴들어???] [이주영: 마상…….] [민현웅: 마상이고 나발이고 북성고 가서 놀아라] [이주영: ㅅㅂ 존나 너도 경원상고에서 왕따잖아 븅아] [민현웅: 뭔 개솔???] [이주영: 나니까 너랑 대화해주는 거야 ㅅㅂ] [민현웅: 말 다 했냐?] [이주영: 다 했겠냐??]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왜 경원상고 동기들이 모이는 까톡 방에 이주영이 끼어 있을까.
“얘네 왜 이렇게 시끄럽냐?”
“몰라.”
“넌 또 왜 그렇게 삐쳤냐?”
“닥.”
유행운과 백유진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운전은 유행운이 하고 조수석에는 백유정이 있었다. 그리고 뒷좌석에는 백유진이 삐딱하게 타고 있다.
백유정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 백유진이 움찔한다.
“다 왔다.”
오늘 경기는 고척돔에서 열린다.
사실 일반 관중은 고척돔에 주차가 불가능한데, 유행운이나 백유진은 KBO 소속 선수였기에 관계자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야!”
주차를 하고 고척돔 근처 카페에 가니, 민현웅이 선글라스를 쓰고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유행운 뒤에 있던 백유정이 앞으로 나아가며 모습을 드러내자,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여…… 여자……?”
유행운은 옆에 나란히 걷는 백유정의 손을 찾아 잡았다.
그 모습을 보는 민현웅의 눈이 커진다.
“저 관종 새끼. 실내에서 선글라스 쓰고 있는 거 봐라.”
“사람은 쉽게 안 변하지.”
백유진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민현웅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고 백유정과 유행운을 번갈아 보았다. 유행운이 그 누구보다 빠르게 결혼을 결정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자친구의 존재를 실물로 직접 보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다.
너무 예뻐서 놀라울 지경이다.
기절할 지경이다.
“안녕하세요! 누나!”
이주영이 벌떡 일어나 백유정에게 90도 인사를 시전했다. 그 모습을 보던 민현웅도 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주영이는 오랜만이다. 여기가 그 경원상고 4번 맞지?”
“응, 맞아. 나보다 홈런 적게 때린 주제에 미국 간 놈, 그놈 맞아.”
“아, 진짜?”
“응. 진짜.”
민현웅은 약간 멍한 눈빛이었다.
어떻게 유행운은 이런 여자를 만났을까.
백유진과 닮았으면서도 또 다른 미인이었다. 백유진이 성인이 되면서 선이 조금씩 굵어졌다면 백유정은 얇았다. 그러면서도 날카롭다.
눈은 엄청 크고 입술도 작고 도톰하다. 코는 어찌나 높은지, 콧날에 베일 듯했고 피부는 투명하고 하얗다.
“나 잠깐만 화장실 좀…….”
순간 민현웅은 눈물이 났다.
쉽게 말하자면 패배감. 미국 진출을 한 뒤 민현웅은 태어나서 다시 없을 정도로 야구라는 걸 정말 열심히 했다.
올 시즌, 더블A까지 초고속으로 달려 나갔고 내년 시즌에는 트리플A에서 야구를 할 확률이 굉장히 높아졌다.
메이저리그에서 3루수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부족하다는 평가에 열심히 기본기를 다지고 수비 연습도 했다.
그간 민현웅은 빠따로만 승부하는 선수였는데, 처음으로 수비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나름 만족할 만했다. 이렇게 노력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당당했다.
노력했고 성과를 보여 주었고 양키스에서 믿고 키우는 유망주라는 걸 증명했다. 유행운이 KBO에서 보여 준 눈부신 성적은 그저 작은 물에서 터진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야구를 두고 보면 분명 자신이 이긴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냐…….”
마음이 서글프다.
그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다. 세수를 연거푸 하고 붉어진 눈을 선글라스로 가린다. 화장실에서 나와 멀리 보이는 유행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민현웅은 그때 깨달았다.
유행운 어깨에 살포시 기댄 백유정의 모습.
그런 백유정의 손을 잡고 있는 유행운의 모습.
대화하다가도 고개를 돌려 백유정과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짓는 유행운의 모습…….
“졌어…….”
눈물이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질투가 섞인 패배감.
민현웅이 야구로만 성과를 냈다면 유행운은 야구를 열심히 하면서 연애에도 성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결혼까지 앞둔…….
안타깝게도 민현웅은 여자를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었고 여자 앞에서는 숙맥이었다. 남자들 앞에서는 입이 모터 달린 것처럼 날아다녔지만, 공교롭게도 여자 앞에서는 입이 열리지도 않았다.
“재수 없어, 멸치 새끼…….”
유행운의 등 뒤로 민현웅이 부들거린다.
선글라스로 가린 눈은 물기에 젖어 있었고 결국 눈물 한 방울이 힘없이 흘러 턱에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