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51
151. 부진의 끝
9회 초.
여기서 동점을 만들지 못한다면 경기가 끝이 난다.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만 선발 투수가 등판했다. 한국에게는 마지막 공격이 될 수도 있는 이닝이었다.
9번 타자를 시작으로 공격이 시작된다.
뭐든 선두 타자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응원이 귀에 들린다.
경기 후반, 상대에게 질질 끌려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똑같이 무기력해졌지만, 8회 말에 터진 유행운의 호수비에 분위기가 살아났다.
따악!
“오!”
한국 더그아웃 분위기가 들썩인다.
애매한 타구였다. 발 빠른 타자라면 살 수도 있는 애매한 내야 타구. 3루수와 유격수가 대시하고, 젖 먹는 힘까지 다해 내달린 타자가 베이스를 힘 있게 밟는다.
“세이프!”
드디어 선두 타자가 출루에 성공했다.
동시에 상위 타순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느린 속도에 애매한 위치로 굴러가는 타구를 보지도 않고 내달린 결과였다.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주루를 하면 때때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무사 1, 2루가 만들어집니다. 선두 타자가 내야 안타로 출루에 성공했고, 뒤이어 후속 안타가 터지며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고 있습니다!]흐름이 좋다.
대만이 투수 교체를 진행하며 흐름을 끊으려 했고 2번 타자 박선우가 묵묵히 배트를 돌리며 준비한다.
유행운 역시도 배트 손잡이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타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좋은 기회는 붙잡아야 한다.
박선우는 승부를 끈질기게 이어 갔다.
풀카운트 끝에 마지막 배트를 냈지만 유인구였고, 결국 헛스윙으로 물러나야 했다. 대만의 기세가 다시 올라간다.
“병살타만 치지 마라, 제발.”
박선우가 고개를 떨구며 들어가고 이제 3번 타자 정찬원이 들어선다. 팀의 중견수로 이번이 마지막 군 면제 기회가 될 선수였다.
그 어느 선수보다 금메달에 대한 열망이 큰 선수. 홈런 한 방이면 경기는 원점이었고 출루에 성공만 해도 다음 타자가 유행운이었다.
“볼.”
대결의 첫 시작은 볼이었다.
정찬원은 손바닥에 땀이 차는 걸 느꼈다. 그만큼 덥기도 했지만,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배트를 내려다가 멈춘다. 가까스로 배트를 멈췄고 투수의 커브는 바닥에 뚝 떨어졌다.
포수가 블로킹을 하며 공을 막아 냈고 3루 도루를 하려던 주자가 원 자리로 돌아온다. 생각보다 수습이 빨랐고 타이밍도 늦었기에 무리하게 도루하면 아웃될 확률이 높았다.
따악!
따악!
연거푸 커트를 해 낸 정찬원이 잠시 뒤로 물러나 숨을 돌렸다. 긴장되는 건 투수도 마찬가지였다.
3점 차, 주자가 쌓인 상황이라도 유리하다. 그럼에도 심적으로 쫓기는 기분이 든다.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니 여기서 실점을 하면 상황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싹을 밟아야 한다.
“볼.”
[정찬원, 선구안 좋습니다. 풀카운트 승부를 가져왔고요. 커트를 하는 모습을 보면 또 투수의 공을 잘 공략하고 있습니다. 안타 하나면 대한민국의 첫 득점이 나올 수 있습니다.]슥슥.
뒷발을 고정하고 자세를 잡는다. 큰 한 방을 노리는 것보다는 흐름을 끊지 않고 살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왔다. 정찬원이 자세를 잡고 배트를 내려다가 멈추었다.
이번에도 유인구였고 슬라이더가 바깥으로 멀리 뻗어 나갔다.
“볼!”
1사 만루.
최고의 밥상이 유행운에게 차려지는 순간이었다.
* * *
기회는 주어질 때 잡는 거다.
1사 만루.
이 상황에서 유행운을 쉬이 거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다시 대만의 투수가 교체된다.
유행운을 고의 사구로 거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대만은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선발 자원까지 끌어 쓰며 승리에 대한 투지를 보인 한국처럼 대만도 이 경기를 잡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좋습니다! 대한민국의 4번 타자! 한국을 이끌어 갈 천재 타자가 타석에 섭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타자가 유행운이었어요. 가장 좋은 찬스가 유행운에게 찾아왔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유행운을 외치는 관중의 함성이 귀에 들린다.
자세를 잡는다. 투수는 좋은 공을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주자가 꽉 찬 상태였기 때문에 볼 하나를 던지는 것도 두려워할 것이다.
따악!
초구부터 강하게 배트를 돌렸다.
바깥 라인에 흐르는 투심이었지만, 유행운이 잘 따라가며 걷어 냈다. 정보를 머리에 얼추 입력한다.
실제로 체감되는 상대의 구위와 구속을 생각하고 다음 공을 기다렸다.
“볼.”
컷 패스트볼이 깊게 들어왔다.
유행운은 배트를 내지 않았고 신중히 승부를 이어 간다.
다음 타자는 강진. 요즘 죽을 쑤고 있는 타자이니 대타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경기를 내줄 위기라면 감독은 그대로 강진을 기용할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기 패배 시에 강진에게 그 탓을 돌릴 수도 있었고 만약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믿음 야구를 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아악!
서클 체인지업을 그대로 밀어 쳤다.
투수가 지나치게 신중을 기했고 그 덕분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떨어지는 각이 밋밋했다.
공에 힘이 제대로 실렸다. 유행운이 배트를 던지고 1루를 향해 내달렸고 3루 주자는 걸어서 홈을 밟았다.
[2루 주자 홈인! 1루 주자, 1루 주자, 3루 돌아서 돌아서 돌아서! 슬라이딩!]2루를 밟은 유행운은 홈 승부를 확인하자마자 3루로 쇄도했다. 그사이, 슬라이딩을 한 정찬원이 엎드린 채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세이프! 세이프으으으으! 경기를 순식간에 원점으로 만드는 유행운의 3타점 싹쓸이 3루타!! 이런 경기가 있습니다! 9회 초, 벼랑 끝에 몰린 대한민국을 유행운이 기어코 살려 냅니다!]유행운의 3루타로 순식간에 동점을 만들었다. 유행운이 가볍게 손뼉을 치고 손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베이스를 밟은 채로.
괜히 베이스에서 발을 뗐다가 아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가 간혹 나왔기 때문에 유행운은 방심하지 않고 세리머니를 했다.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만이 고개를 떨궜고,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역전이었다.
[갓행운 고마운데 혹시 뒤 봤어? 네뒤강ㅋ]└ 아 시발 욕나오네
└ 왜 하필ㅋㅋㅋㅋㅋㅋ
└ 진아 쿨타임 찼다 홈런 쿨타임 ㅠㅠㅠㅠㅠㅠ
└ 감독이 생각이 있으면 여기서 대타 내겠지
└ 생각 없을 듯
└ 믿음야구 시전할 듯
└ 이게 믿음이냐? 방치고 방임이지!!!
└ 하 시바 ㅠㅠㅠㅠ 강진 어쩌지
└ 일단 동점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냐? ㅠㅠㅠㅠㅠㅠ
└ 잘 들어 강진 네가 할 수 있는 건 안타 아니면 볼넷 아니면 홈런이야 만약 아카를 쓸 거라면 혼죽혼이다 알앗지?
└ 알겠냐
* * *
강진은 숨고 싶다.
감독이 대타 카드를 사용해 주길 기대했다. 비겁하지만, 도무지 자신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뜬볼만 나와도 1점을 추가할 수 있다.
1사 3루.
이번 시즌 19호 홈런을 터트리며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타자가 강진이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다.
‘아홉수에 걸려서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리그 경기를 뛸 때도 19호 홈런 이후에 좀처럼 홈런을 만들 수 없었다.
아시안게임에 가기 전에 20호 홈런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했는데, 그 덕분에 타격 밸런스도 무너진 상태였다.
서서히 홈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타격폼을 다시 가다듬었는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형!”
유행운이 대기 타석에 서 있는 강진을 보며 소리쳤다.
“잡생각 하지 마세요!”
짧고 굵은 한마디였다.
또다시 투수 교체가 진행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유행운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고개를 끄덕인다.
후배가 보기에도 머리에 잡생각으로 가득 찬 것이 보였나 보다.
“후우.”
어깨를 가볍게 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지지리 못한 자신에게도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감독의 의중과 상관없이 벽을 넘어야 하는 사람은 본인이다.
그걸 되새기고 타석에 선 강진이 다리 사이에 배트를 세우고 헬멧을 벗어 땀을 닦았다. 다시 푹 눌러쓰고 이번에는 배팅 장갑을 고쳐 낀다.
아주 천천히 타격 루틴을 진행한 강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가볍게 푼다.
[강진, 지금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데 여기서 부진을 떨쳐 내길 기대합니다.]아마 모든 사람들이 대타 기용을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성길은 고심 끝에 강진을 그대로 내세웠다.
그 고집에 타격 코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강진이 배트를 아낀다. 초구는 볼이었고 투수에게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따악!
커트를 해 낸 강진이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일단 상대의 공에 배트가 따라가고 있다.
유행운은 3루에서 신중하게 주루 플레이를 하고 있다.
강진이 배트를 내는 순간, 스타트를 끊었다. 커트가 되면서 다시 뒤로 돌아갔지만, 이 행동은 투수에게 경계심을 줄 수 있었다.
짧은 타구에도 뛰어 들어올 수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 준다.
[유행운, 주루 플레이 정말 좋습니다.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져요. 투수가 뛰어 들어오려는 그 몸짓에 굉장히 놀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플레이 하나하나가 승리 기운을 가져오는데, 유행운은 그런 걸 아주 잘하는 선수죠.]강진이 자세를 잡는다.
3루에서 열심히 투수를 흔드는 유행운 덕분에 힘을 받고 있었다. 사인을 신중하게 정한 투수가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다.
[원 볼 원 스트라이크. 투수, 세트 포지션에 들어갑니다.]투수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온다.
강진이 눈을 부릅뜨며 순간적으로 손가락의 위치를 확인했다. 벌어진 두 손가락, 투심 패스트볼이다.
구종을 알아챘고 휘어 들어가는 투심의 궤적을 되새기며 배트를 냈다.
따아아악!
아시안게임에서 제대로 정타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강진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타구를 멀리 쏘아 올렸다.
* * *
[유행운 싹쓸이 동점 3루타 …… 침몰하던 대한민국을 살렸다]└ 갓행운
└ 써보니 정말 좋네요 성능 미쳤어요
└ 진짜 만루 상황에서 싹쓸이 3루타 지림 실제로 찐 지림
└ 배트 스피드 미쳤고 수비도 미쳤음
└ 오늘 유행운 없었으면 졌어
└ 같은 팀일 때 제일 든든한 선수 ㅋ
└ 행운이 우리 꺼 대전 꺼 ㅋㅋㅋㅋㅋㅋ
└ 한국의 자랑! 유행운!
유행운은 자신의 기량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대한민국을 살리는 동시에 결승 진출 청신호가 켜졌다. 동점 3루타는 경기 후반, 리드를 가져가던 대만을 기어코 울렸다.
“네, 제가 요즘 너무 못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리그에서 19호 홈런 이후로 제대로 손맛을 못 봤거든요. 제 슬럼프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셨을 텐데, 이렇게 늦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강진이 운다.
사실 이미 울었다. 역전 홈런을 터트리고 붉어진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는데, 마음고생에 대한 눈물이었다.
[믿음에 보답했다! 강진, 눈물의 역전 2점 홈런! ……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 청신호 켜졌다]└ 시발 나도 지렸다
└ 이건 솔직히 감독 살린 거 아니냐? 대타 기용 안했잖아
└ 보통은 대타 쓰지 ㅋㅋㅋㅋ
└ 믿음이 통했네
└ ㄴㄴ 믿음이 아니라 방치였는데 선수가 해낸거임
└ 이겼다 내일 중국은 껌이고 이제 결승 남음
└ ㅋㅋㅋㅋ 그래서 결승전 상대 누군데 ㅋㅋㅋ 일본? 대만?
└ 둘 다 만만치 않아 이기긴 했는데 시발 타격 죽 쑨 거 봐
└ ㅇㅈ 약팀 상대로만 잘해;;;
└ 양민학살만 하는 대한민국ㅋ
└ 강진 살아난게 고무적이다 ㅋㅋㅋㅋㅋ 홈런 터졌으니 쉽게 유행운 못 거를 듯
└ ㅇㅇ 유행운이 혼자 고군분투했어
└ 갓행운 거를 때마다 혈압 옴 ㅋㅋㅋㅋㅋㅋ
└ 가즈아 금메달!
강진의 2점 홈런으로 두 점 앞서간 대한민국은 9회 말, 백유진이 타이트한 점수 차를 지켜 내며 역전승을 거두었다.
질질 끌려가다가 9회 초에 역전을 이룬 한국은 팀 분위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두 경기.
중국전을 가볍게 넘기고 맞붙을 상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백유정: 갓행운! 3루타 너무 멋있었어!] [백유정: 백유진 걔는 왜 항상 투 아웃 잡고 볼넷 내주는 거야?] [백유정: 내 남동생이지만 진짜 별로다] [백유정: 사랑해! 보고싶다!] [백유정: 금메달 따고 돌아오기! 약속!]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까지 마친 후에 숙소에 돌아온 유행운은 쌓인 문자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유행운: 응, 누나! 꼭 금메달 따서 돌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