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90
190. 나 같은 추레한 놈이
“정말 YU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아주 다방면으로 말이야.”
시즌 초와 달리 보스턴 레드삭스의 슈나이더 감독에게선 여유가 느껴졌다.
어제 승리로 다시 5할 승률까지 한 걸음이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보스턴은 완벽한 최하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연패를 하다가도 다시 부활하고 연승을 기록한다. 아직은 패배가 조금 더 많지만, 이 흐름을 이어 간다면 탈꼴찌도 시간문제였다.
작년 슈나이더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복통을 달고 살았었다.
이놈의 팀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 어떤 것도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리빌딩을 한다면서 왜 선수 수급은 되지 않으며, 기존에 있던 선수들은 왜 하나같이 맛이 간 것 같으며, 이런 재료를 주고 어떻게 성적을 내라고 요구하는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보스턴 레드삭스에 버티고 있었던 건 단 하나였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귀한 자리였으니까.
“다른 선수가 내뱉은 말이라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래도 YU니까, 이 정도로 끝난 거죠.”
타격 코치가 어제 유행운이 했던 발언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느 누가, 그것도 외국인이 MLB더러 낡고 늙은 리그라고 일침 놓겠어요.”
“암, YU니까 가능하지. 요즘 리그를 씹어 먹고 있는 유격순데, 그 누가 뭐라 하겠어!”
슈나이더가 호탕하게 웃는다.
처음에는 유행운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슈나이더였다. 이름 모를 리그에서 뛴 선수보다는 확실하게 MLB에서 자리 잡은 타자 한 명이 더 안전하다고 믿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안전한 선택을 해야 전력 보강이 확실했다. 하지만 신임 사장은 기어코 거액을 안기며 유행운을 데려왔고, 서서히 그 진가가 드러났다.
“사실 투수진은 올 시즌 트레이드로 변화가 있었지만, 타선에는 딱 한 명만 바뀌었네.”
“유격수죠.”
“효과가 대단해. 수비에서 안정감이 있으니 그 영향이 투수들에게도 가. 공격에서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 준 덕분에 YU를 피해 프랭키에게 기회가 가지.”
“YU가 스스로 해결도 잘 하고요.”
“내년에 딱 한 명만 YU를 받쳐 줄 선수가 있으면 더 올라갈 수 있을 텐데…….”
“메이슨 사장이 생각이 있겠죠. 확실히 그가 온 후에 레드삭스가 견고해진 것 같습니다, 감독님.”
슈나이더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유행운 없이 경기를 치르라고 하면 이제는 못할 것 같다. YU에게 지명 타자 자리를 주며 휴식을 취하게 한 횟수가 고작 두 번이었다. 그만큼 유행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감독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 심지어 선수들도 유행운에게 의지한다.
“내가 보스턴 레드삭스를 맡게 된 이유는…….”
어쩌면…….
“YU 때문이 아니었을까?”
슈나이더 감독이 때아닌 운명론을 내세웠다.
* * *
[아메리칸리그 / 동부] [1] 탬파베이 레이스 [2] 볼티모어 오리올스 [3] 뉴욕 양키스 [4] 보스턴 레드삭스 [5] 토론토 블루제이스요즘 보스턴 레드삭스가 상승세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서 2승을 가져왔고, 이어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서 또다시 위닝시리즈를 가져오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간신히 4위에 버티다가 보스턴과의 3연전에서 2패를 안으며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 꼴찌로 추락했다.
물론 아직 1경기 차였다.
지금 동부 지구는 1위 다툼이 치열했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4연승을 달리며 볼티모어에게서 1위 자리를 빼앗았고, 볼티모어는 호시탐탐 1위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는 간신히 3위에 붙어 있다.
이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차이는 고작 2.5경기였다.
확고한 1위 싸움과 그 외의 하위권 경쟁이 치열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의 승률이 높아 뚜렷한 하위권이 없었다. 본격적인 시즌을 치르기 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완벽한 꼴찌에 머물 거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예상외로 레드삭스가 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그사이.
“오랜만이야, YU.”
고교 시절, 야구 월드컵에서 만났던 그레이슨 버드가 알은체를 하며 유행운에게 다가왔다.
“그러네.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는걸?”
그레이슨 버드는 U18 야구 월드컵 시절 미국의 4번 타자였으며,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공들여 키우는 유망주였다.
올 시즌, 유행운은 그레이슨 버드를 처음 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레이슨 버드가 부상으로 시즌 전반기를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여기서 널 다시 볼 줄 알았어.”
그레이슨의 얼굴은 예전과는 달랐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수염이었다. 턱수염을 어찌나 길렀는지, 멀리서 보면 할아버지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벌크업을 해서 예전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야구 월드컵에서 너무 놀랐거든.”
“그래?”
“어. 이런 애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난 MIN만 알고 있었거든.”
“그때 나는 무명이었으니까.”
“네가 바로 미국 올 줄 알았는데, 안 와서 좀 서운했어.”
“왜 서운하지?”
“함께 성장하면 좋잖아? 나도 MIN도 결국 미국에 자리 잡았잖아.”
“성장은 혼자 하는 거야.”
물론 유행운은 여전히 냉정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레이슨 버드는 아주 착실하게 성장했다. 화이트삭스에서 주는 경험치를 잘도 받아먹으며 민현웅보다 더 빨리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물론 민현웅도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빨리 메이저 데뷔를 했을지도 모른다.
“난 너와 같은 팀으로 뛰어 보고 싶어.”
“음.”
유행운이 짧게 생각한다.
“나는 돈에 따라 움직여.”
“오.”
“돈 많이 주는 곳 갈 거야.”
“오…….”
“너와는 다르지?”
그레이슨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이해관계가 다르다. 유행운은 미국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레드삭스에 적응도 했고 만족했지만, 몸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 버릴 것이다.
물론 메이슨 사장은 유행운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플레이어였다. 아마 화이트삭스는 유행운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거액을 안길 자신은 없을 것이다.
“오늘 잘해 보자.”
“응.”
오늘 그레이슨 버드의 타순은 4번.
미국에 진출하면 다시 만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현실로 이뤄지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볍게 몸을 푸는 유행운과 그 뒤를 따라가거나 함께 호흡을 맞추며 뛰는 그레이슨.
그레이슨은 사실 U18 대표팀 시절에도 유행운에게 관심이 많았다. 약간 민현웅과 비슷한 성격이었는데, 천재는 자신과 어울리는 선수를 그리워한다. 서로 같은 스타일인 민현웅보다는 유격수인 유행운이 더 궁금했던 그레이슨이다.
“혹시 술 마셔?”
“마시긴 하는데, 시즌 끝나고 마셔.”
“그렇군. 그럼 내일 아침이라도 같이 하겠어?”
솔직히 내키지는 않지만…….
“네가 사는 건가?”
용돈 받는 유부남은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한다.
“좋은 곳으로 안내하지.”
덕분에 내일 아침 식사 비용이 절약되었다.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하며 몸을 푸는 그 시간, 유행운을 쫓는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화이트삭스의 주전 유격수 라킴 콜리어였다.
시선이 노골적이다.
유행운이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라킴은 계속 유행운을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라킴 콜리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좋은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
타격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데, 아직 완성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화이트삭스에서 그를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는 이유는 아직까지는 수비 때문이었다.
작년 시즌, 라킴 콜리어가 유격수 자리에 깜짝 등장했다.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였다. 기대 없었던 이 유격수가 수비율에서 1위를 찍었고 수비 이닝에서도 1위였다. 실책은 최소 기록으로 골드글러브 후보까지 올랐지만, 타율에서 다소 모자란 활약을 했기에 수상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올 시즌은 라킴 콜리어의 타율이 0.278로 작년보다 타격에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격수에게 강한 타격을 원하지 않는 만큼 만약 유행운이 없었다면 올 시즌 골드글러브 수상자는 라킴 콜리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레이슨.”
유행운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그레이슨을 보았다.
“저 녀석은 뭐지?”
“음.”
그레이슨 버드가 유행운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러자 밤톨 같은 머리를 한 혼혈 라킴 콜리어가 보였다.
그 눈빛.
살벌한 눈빛이 보인다.
“아, 우리 팀 루키.”
그레이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직 한참 어린 친구였다. 물론 그레이슨도 젊은 나이지만, 라킴은 더 어리다. 그레이슨은 라킴을 좋게 보고 있었다.
단 2년 만에 마이너리그를 탈출하고 작년에는 팀의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었다. 그 무수한 경쟁을 뚫고 수비 하나로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안정감 있는 수비로 투수들의 지지를 받았고 올 시즌은 타격에서도 한 단계 스텝업하며 성장을 이어 가고 있었다.
“라킴 콜리어.”
“이름은 나도 알아.”
수비가 꽤 괜찮아서 유심히 지켜보던 선수였다.
“네 팬이야.”
“……?”
“너 엄청 좋아해.”
지금도 라킴 콜리어는 유행운을 죽일 듯이 노려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지는데, 도저히 팬으로 보이지 않았다. 보통 팬이라고 하면 원정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빛 같지 않은가?
유행운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눈을 빛내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영원히 함께하자며 우렁차게 외치는 저 아재들 같지 않은가……?
“YU, 네가 나온 기사를 전부 스크랩하더군.”
“믿을 수 없어.”
“심지어 네가 표지를 장식한 잡지도 구입했다고. 그것도 두 권이나. 하나는 소장용이라던가……?”
“근데 왜 표정이 저 모양이지?”
“글쎄, 라킴은 나도 잘 모르는 캐릭터야. 어려서 그런가? 이해 불가능.”
유행운이 혀를 찼다.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 * *
라킴 콜리어.
한국 나이로 이제 24세.
순발력이 좋고 발도 빨라 수비 범위가 넓다. 다이내믹한 수비가 인상 깊은데, 못 잡을 것 같았던 타구를 엄청난 점프력으로 낚아채고, 급하면 몸으로 막아 내며 수비를 하는 수비형 유격수.
물론, 작년까지는 완벽한 수비형 유격수였다.
“야, 라킴.”
그레이슨이 더그아웃에 들어오며 라킴을 불렀다.
“그렇게 YU가 보고 싶으면 가까이 가서 인사라도 하지 그랬냐.”
라킴은 언제나 무표정이다. 그리고 언제나 뚱한 얼굴이었다. 여전히 라킴은 힐끔대며 유행운을 찾아 쫓고 있었다.
“나 따위가 어떻게 감히…….”
“오. 미친놈이군.”
사실 처음 라킴은 유행운을 우습게 생각했었다.
동양인 선수가 2년 6천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레드삭스가 그래서 암흑기에 허덕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라킴 콜리어는 처음 유행운과 맞대결했을 때, 그 생각이 철저히 부서지는 걸 느꼈다.
타격은 이미 대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라킴이 보는 앞에서 홈런을 쏘아 올렸고 그 모습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신이에요! 유격수의 신!”
라킴 콜리어의 생각이 깨진 건 바로 수비에서였다.
라킴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타구 판단을 빠르게 하고 정석적으로 포구해 안전하게 송구하는 스타일.
필요할 때는 몸을 날려서 빠지는 타구를 건져 내며 물샐틈없는 수비를 보여 주었다. 작은 태블릿 PC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라킴은 타고난 운동 신경과 흑인 특유의 탄력성으로 야구를 하는 스타일인데, 그 순간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라킴의 수비는 투박하다. 정교함이 없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유행운의 평가는 정교하고 세밀하며 정확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오늘 YU의 플레이를 볼 생각에 설렌다고요.”
그 순간부터 라킴 콜리어는 유행운에게 빠져들었다.
송구는 무조건 강하게 던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악송구가 종종 터졌던 라킴이었다. 그래서 유행운의 부드럽고 정확한 송구를 따라 했다.
이미 어깨가 강했기에 한결 힘을 빼는 것만으로도 투박한 송구가 한층 더 세밀해졌다. 모든 걸 자신의 운동신경에 기댔던 수비에 기본기를 더했다.
혼자 풋워크 연습을 하고 유행운처럼 타구 판단을 빨리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자 타구 반응 속도가 조금 더 늘어났다. 타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배트를 돌리는 데에만 노력했던 라킴이 수비에서도 한 단계 성장했다.
“YU가 대단하긴 하지.”
“네,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죠.”
“근데 나도 대단한 사람이지 않냐?”
“…….”
라킴 콜리어가 입을 다문다.
오늘 경기에 앞서서 라킴 콜리어는 메모장을 준비했다. 유행운의 플레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보완할 점을 적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YU의 사인을 받고 싶었다.
“라킴, 나도 대단한 사람이잖아. 라킴?”
지금 라킴은 덕질하느라 바빴다.
두 눈으로 유행운을 쫓느라 바빠 죽겠는데, 옆에서 계속 귀찮게 구는 그레이슨이었다. 결국 라킴이 깊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저 바빠요.”
그 모습에 그레이슨이 낄낄 웃는다.
“나 내일 YU와 아침 식사 하기로 했는데.”
장난기가 샘솟는다.
유행운의 추종자 라킴 콜리어가 그 말에 움찔하며 반응했다.
“너도 올래?”
라킴의 동공이 흔들린다.
롤모델과의 아침 식사? 생각만 해도 설렌다.
하지만…….
“어떻게…….”
라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같은 추레한 놈이 YU와 식사를…….”
역시 미친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