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28
28. 거포 유격수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소리가 있다.
그 말은 고교리그에도 통하는 말이었다. 신우고와 승부를 펼칠 때는 득점 지원을 넉넉히 했음에도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경원상고가 달아나면 신우고가 다시 따라 붙는다. 그 모든 것은 경원상고의 투타의 조합이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오늘 경기는 달랐다.
아직 미지수에 가까운 투수 백유진이라 하더라도 괜히 에이스라는 호칭이 붙은게 아니었다.
“찬스다.”
이형호 감독이 이제야 한시름 놓는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1회 유행운의 선취 득점을 시작으로 잠시 타선은 침묵을 지켰다.
경원상고 타선이 대폭발하기 시작한 건, 주태양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였다.
1회는 5번타자까지 타석에 섰고 2회에는 삼자범퇴로 끝났다.
그리하여 3회 초.
9번타자 유일한 1학년 신해원은 웬만하면 배트를 내지 않았다.
앞서 선배들이 헛스윙으로 물러서는 걸 보고 작전을 다시 짠 것이다.
말하자면 타격으로 살아남을 확률은 적으니, 볼을 골라서 걸어가겠다는 전략.
물론 자기만의 스윙을 가져가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1점 차로 타이트한 상황이 이어지는 순간에는 선구안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해원이가 볼넷으로 걸어간게 컸죠.”
9번타자가 치열하게 볼을 고르고 커트를 해내며 기어코 걸어갔다.
주태양은 팀의 에이스였지만, 제구가 날리는 경향이 있어서 언제나 오래 던질 수 없는 투수였다.
투구수는 어느새 70구에 육박했고 그 상황에서 상위타순을 맞이했다.
“삼연속 볼넷.”
그렇다.
어떻게든 볼넷을 주지 않으려던 주태양은 생각지도 못한 9번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며 흔들린다.
안 그래도 잡히지 않는 제구인데, 강수현부터 류진운까지 쉽게 배트를 내지 않았다.
주태양이 결국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만루를 만들어 버렸다.
“드디어 행운이 앞에 밥상이 차려졌어.”
이형호 감독은 지금 이 순간, 가장 믿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민현웅에게도 각별한 정을 갖고 있지만, 유행운은 결이 달랐다.
같은 유격수로서 자신을 능가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제자였다.
눈부신 재능이 중간에 꺾일 뻔 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걸출한 인재였다.
어찌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
“타점 먹방하기 딱 좋네.”
주태양은 결국 조기 강판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사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가끔 주태양은 오늘처럼 영점이 잡히지 않아, 조기 강판 당하는 일이 숱했다.
주태양이 상위라운더로 꼽히는 이유는 실링이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고교 시절부터 강속구를 뿌릴 수 있는 강한 어깨.
‘차라리 직구로만 승부하지.’
그런 생각도 든다.
굳이 변화구를 섞어 쓰는 것이 주태양에게는 패착이었다.
차라리 구위를 앞세워서 승부를 보는게 몇 배는 더 좋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제구가 안 잡히는데, 도망가는 피칭은 되려 상대에게 도움만 될 뿐이었다.
“반찬 남겨.”
민현웅이 루상을 꽉 채운 주자들을 보며 유행운에게 말했다.
“글쎄.”
유행운은 크게 스윙을 돌리며 말했다.
“반찬 남길 자신이 없는데.”
오랜만에 반찬이 가득 찼다.
이런 기회는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유행운이 가동한 홈런포는 거의 영양가가 없었다. 루상에 주자가 쌓일 일이 손에 꼽았기 때문이었다.
타석에 서는 타자 입장에서는 진수성찬 그 이상이었다. 그러니 맛있게 먹어주는게 타자의 예의였다.
‘유진이는 투구수가 현재 29구.’
이 페이스라면 최소 6회까지 마운드에 서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오늘 이형호 감독은 백유진의 한계 투구수를 105구까지 끌어 올린 상태였다.
그 뜻은 반드시 이 경기를 잡겠다는 의미.
파앙!
“스트라이크!”
무사 만루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등판한 유청고 투수는 초구부터 온 힘을 다했다.
미트에 박히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배터박스에 바짝 붙고 히팅포인트를 뒤로 둔다.
무사 만루였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 즉 내야 플라이라던가 밋밋한 공만 아니면 1점은 난다.
상대는 병살타를 잡을 기회라면 점수 하나와 아웃카운트 두 개를 교환 할 것이다.
하지만.
‘아웃카운트를 곱게 줄 생각은 없지.’
그래봤자 고교수준이다.
상대 투수는 주태양보다 구위도 한결 가벼우며 구속도 떨어진다. 주태양보다 나은 점을 하나 찾으라면 단연 제구였다.
하지만, 그게 뭐.
“후욱!”
상대 투수가 온 몸을 비틀며 공을 뿌린다.
자세를 잡고 날아오는 공을 응시한다.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치는 직구.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배트를 돌렸다.
따아악!
‘똥볼이 제구가 잡히면 배팅볼이지.’
딱 그 수준일 뿐이다.
지금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잘해야 하위라운더에 간신히 지명받을 수 있는 투수.
웬만하면 대학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유행운이 소속된 경원상고도 마찬가지였다.
투수 중에 프로 지명을 노릴 수 있는 선수는 백유진 뿐이었고 전학을 오면서 재능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우와악!”
경원상고 더그아웃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유청고 더그아웃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나?’
유행운이 배트를 던지고 스타트를 끊었다.
정확히 타구를 밀어쳤지만, 히팅 포인트를 뒤로 둔 터라 힘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우익수가 뒷걸음질치며 공을 따라가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절망에 찼다.
“갔다.”
더 뒤로 갈 수도 없게 단단한 담장이 그의 등을 막아세웠기 때문이었다.
유행운이 홈런을 확인하고 뛰는 속도를 늦췄다. 홈런의 묘미는 용써서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미쳤다!”
이 탄성은 경원상고에서만 터져나오는게 아니었다.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유행운 역시도 주먹을 쥐고 하늘 위로 들어올리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린다.
이 순간, 단 한 사람만이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하, 진짜.”
바로 경원상고의 4번타자 민현웅이었다.
분명 그의 눈 앞에는 반찬이 가득했었다. 고기 반찬도 있었고 김치도 있었으며 계란말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없었다.
“왜 맨날 지가 다 처먹냐고!”
곰 한 마리가 굶주려서 폭주했다.
* * *
유행운은 유명한 고교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명세라는 건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터질 수 있다.
지금 유행운이 그랬다.
지난 두 경기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는, 유청고를 상대로 날린 만루포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스포츠 한양] 경원상고에는 민현웅만 있는게 아니다. 새로운 거포 유망주 탄생!그 누구보다 빠르게 유행운을 발견한 기자가 있었다. 바로 경원상고에서 유행운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신지원이었다.
오늘 유청고와의 대결에서 경원상고에는 위기라는 것이 없었다.
유행운의 만루포를 시작으로 타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유청고가 불을 끄기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만루포만 맞아도 어지러운데, 굶주린 곰 한 마리가 솔로포까지 가동했다.
그렇게 경기는 다소 싱겁게 끝이났다.
3회 초, 총 5득점을 쓸어 담아 6:0으로 앞서가던 경원상고가 5회 초에는 또 다시 중심타선이 불을 뿜으며 무려 6득점을 추가했고 에이스 백유진이 경기를 깔끔하게 끝내버렸다.
그 말은 유청고에게는 만회할 기회조차 앗아가 버렸다는 뜻이었다.
– 와 얘 뭐지? 진짜 만루포 지렸네;;;
– 유행운? 얘 듣보라며
└ 이제 듣보 아님…
└ 유행운 스타즈 온대
└ 아님 유행운 마린스 올 거임
└ 닥쳐라 행운이는 대전상이다
└ ㅈㄹ 민현웅리그 우승자는 꺼지시고
유행운은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서 스타트가 한 발 늦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실력으로 유명세를 가지고 왔다.
“얜 잘 될 거라니까.”
신지원은 기사 하나를 쓰는데, 선배들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다.
차라리 민현웅을 주제로 쓰라는데, 신지원은 이미 유명한 사람보다는 아직 덜 알려진 유망주가 더 좋았다.
비록 순식간에 기사가 묻히더라도 처음으로 유행운에 대해서 기사를 쓴다는 것이 의미가 더 있었다.
“분명 이 기사 나중에는 끌올될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직은 드래프트가 프로야구의 중심은 아니지만, 여름만 되면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
드래프트 시기가 다가오는 여름이면 야구 커뮤니티에서 고교 유망주에 대한 글로 넘쳐난다.
그러니, 지금도 걸출한 거포 유망주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TODAY HIT] 프로 못지않은 유행운 유격수비 모음 +102지금 시점에서 타격 뿐만 아니라, 한층 더 좋아진 유행운의 수비가 빛을 보았다.
유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수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유격자원이 부족한 팀은 침을 줄줄 흘리며 탐낼 수밖에 없었다.
– 얘 타격만 잘하는게 아니었어???
– 수비범위 뭐야 돌앗??
– 얘 이형호 제자래.. 알지? 이형호… 수비천재
└ 앗… 광고를 부르는 그 남자요?
└ 이형호가 발굴한 애면… 수비 납득완;;
└ 얘는 진짜 유재원보다 나은데? 유재원 방출하고 유행운으로 유격수 대체하자 제발 똥칰아
└ 유재원 퇴출 서명 완
└ 아 진짜 미치겠다 머리는 민현웅인데 마음은 유행운이야… ㅅㅂ
고교시절은 야구 인생의 짧은 한 페이지다.
유행운은 고교 시절에서 날아다녀봤자, 아무 소용 없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칭찬을 해주고 떠받들어 줘도 중요한 건 프로였다.
프로 진출에 성공 후에 자리를 잡는 건, 고교 성적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환영하는 10구단 팬들의 반응에도 유행운은 담담함을 유지했다. 들뜨는 건 지금 처지에서는 사치였다.
10구단 팬이 유행운을 인식한다.
그것도 침을 질질 흘리며.
– 얘 먹자 그냥 수비만 잘하는 유격수가 아닌데? 거포 유격수? 못 참지
└ 22 거포도 먹고 죽어야 하는데 거포 유격수요??
└ 333 똥칰은 거포 그냥 드시고요 우리는 거포유격수 먹을게요 (마린스팬)
└ 44 부산~ 가즈아~
└ 555 못 먹어도 고
└ 66 꼴린스는 이주영 잡수시고요 스타즈가 가져갈게요~
유행운은 발전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고교리그였고 무명이었던 유행운이 보여주었던 경기는 고작 세 경기였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걸출한 경쟁자를 제치고 자신만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19살이라는 나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나이가 맞다. 하지만 이렇게 경이로울 정도의 성장 속도를 보여준 유망주는 손에 꼽는다.
“더 볼 것도 없어. 이 정도면 뽑으라고 시위하는 수준이야.”
지금까지 숨 죽이고 눈치 싸움을 펼치던 10구단 스카우터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주영은 포기하고.”
그 중 가장 빠르게 드래프트 계획을 수정하는 팀은.
“유행운 올인하자.”
바로 부산 마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