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29
29. 휴식
부산 마린스.
열정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팀 성적은 그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프로 구단.
마린스의 팀 마스코트는 갈매기였다. 부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류였고 지역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마스코트였다.
여기서 굳이 부산 마린스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같은 조류 마스코트를 가지고 있는 대전 호크스 때문이었다.
이 두 팀은 ‘조류동맹’이라 불리며 마치 서로 상부상조할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서로 못나갈 때는 ‘조류동맹’이라 입 모아 말했고.
누구 하나가 의외의 활약을 펼치며 상위권을 달릴 때는 그 조류동맹을 탈퇴하려 한다.
아주 콩가루 같은 동맹이었다.
자, 이 두 팀에는 역사적으로 계속 동맹으로 묶이는 이유가 있다.
궁극적인 이유는 대부분 시즌을 하위권에 맴돌기 때문이었다. 그 지울 수 없는 동질감, 공교롭게도 마스코트도 조류다.
조류,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나쁜 새대가리.
갈매기는 새우깡을 얻어 먹는 방법을 잊었고 독수리는 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심지어 이 두 팀은 아주 가끔 예컨대, 10년에 한 번 정도는 상위권 싸움을 한다.
잘 나가는 와중에서도 이 두 팀이 동시에 가을야구를 한 역사는 없었다.
즉, 이 지난한 조류동맹은 잘 나가는 기간이 1년 이상 못간다.
더군다나 성적을 내는 그 순간에도 우승은 턱도 없었다. 21세기가 된지 30년 가까이 되건만, 이 두 팀의 마지막 우승은 20세기였다.
그게 조류동맹의 지난한 스토리였다.
“왜 유행운을 픽해야 하는가.”
지금 마린스의 스카우트팀은 여름이 오기도 전에, 드래프트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지금 경원상고는 고교 주말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조 1위를 예상했던 북성고가 어떻게 됐습니까? 유행운의 홈런에 와르르 무너졌어요. 그 와르르 무너진 투수가 누구죠?”
지금까지는 이주영을 찬양했던 서윤철 팀장은 이제는 되려 그를 깎아내리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네, 투수 최대어라고 불렸던 이주영입니다.”
그는 반드시 유행운을 1라운드에서 지명해야 한다며 들고 일어났다.
이미 수집한 정보를 보면 스타즈는 유행운 원픽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더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주영 좋은 투수죠. 맞아요. 그러니까, 투수 최대어라고 불리죠. 하지만 그 좋은 투수를 털어버린 게, 유행운이네요?”
지금 마린스는 서울 스타즈의 뒤통수를 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똑같이 하위권을 맴돌던 스타즈가 작년부터 대대적인 FA투자를 하더니, 올해는 전력을 더욱 보강하여 상위권 도약을 노리고 있다.
서울 스타즈.
그게 어느 팀인가.
마린스와는 아주 상극의 구단이었다. 이 두 팀이 경기를 치르면 제 시간에 끝나는 날이 별로 없다.
매번 지독하게 연장전.
그것도 명승부가 아니다.
실책의 실책을 더해서, 또 실책의 실책, 거기에 투수의 방화를 더하고 또 더하면, 그렇다, 졸전이었다.
‘아주 꼴보기 싫어.’
유행운은 점점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서울 스타즈가 유행운을 노린다면 기꺼이 이주영을 포기하고 그 뒤통수를 날려버릴 계획을 짜고 있었다.
“다 좋아요. 근데, 호크스가 유행운 가로채면요?”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뭐, 상관 없지 않아요?”
서윤철 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크스가 유행운 지명하면 민현웅이 남잖아요. 적어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손해볼 일이 하나도 없죠.”
대전이 민현웅을 포기하고 거포 유격수를 고른다 해도 마린스는 손해 볼 일이 없다.
지금도 민현웅의 가치는 깎이지 않았다.
유행운과 비교해서 장타 능력은 오히려 더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지켜보면 된다니까?”
마린스는 이주영을 과감하게 포기한다.
“이주영은 논외로 치고. 호크스의 선택에 따라 느긋하게 남는 거포를 꿀꺽하면 된다고요.”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차라리 1라운드 1번 지명권이 있는 것보다 2번이 더 수월할 듯했다.
“우리는 누굴 먹어도 최대어를 먹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머리가 아픈 건 대전 호크스.
그리고 유행운을 탐내고 있는 서울 스타즈 뿐이다.
“그래도 유행운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이왕이면 유행운을 먹고 싶은 서윤철이었다.
* * *
“콜드게임 기념 삼겹살이다!”
오늘 회식은 삼겹살이다.
첫 경기 승리 기념 회식은 살살 녹는 한우였는데, 이번에는 조금 수준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유행운은 좋았다. 질 좋은 고기를 입에 쓸어 넣을 수 있는 찬스였다.
“우리 이러다가 우승하는 거 아니냐?”
오늘의 승리투수.
그리고 벌써 2승을 주머니에 챙긴 에이스 백유진이 류진운의 손에 끌려 온다.
백유진은 시끄러운 걸 싫어한다.
보면 볼수록 얼굴값을 하는 친구인데, 백유진은 출중한 외모만큼 무게를 잡는 경향이 있었다.
“백유진 ERA 미쳤지 않냐?”
현재 백유진은 두 경기에서 총 13.2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자책점은 단 1점이었다.
즉, 현재 백유진의 평균 자책점은 0.6 굉장히 좋은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다 백유진 우수투수상 받을 듯?”
류진운은 비행기를 태우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리고 언제나 입을 닫고 있는 백유진의 입가가 실룩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제법 좋은 모양이었다.
“지금처럼 던지면 충분히 가능하지.”
유행운이 제로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건, 유진이가 마운드에서 단단히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야. 유진이가 선발로 나서면 계산이 서잖아. 최소 6회는 문제 없다는 계산.”
사실이다.
야구는 혼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물론 요즘 투타겸업이니 뭐니, 그런 별종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런 유형은 극히 드물었다.
투수든 타자든,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와, 유행운이 누굴 칭찬하는 건 처음 본 듯.”
그리고 유행운은 공교롭게도 투수에게 관대하다.
“백유진은 에이스잖아.”
단순한 이유기도 하다.
경원상고에는 아직 더 성장해야하는 투수가 많다. 올해 이형호 감독의 계획에는 우승은 없었다.
백유진도 물음표였던 상황에 팀에 대부분 주축 투수가 2학년이었다. 그러니, 경험치를 먹이고 내년을 준비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었다.
“나는 너한테 고마운데.”
유행운을 보며 백유진이 말했다.
“나 전학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뜯어 말렸어. 엄마는 울기까지 했거든. 세안고에서 굳이 왜 험한 곳으로 가느냐고.”
백유진에게는 야구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지금은 울었던 엄마도 응원하고 있지만, 그 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서사가 있다.
그 서사의 무게는 각자 다르지만, 그걸 극복하는 건 개인의 힘이었다.
“우승? 솔직히 생각도 안했고 그냥 나만 잘할 생각이었어. 나만 잘하면 프로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여기에 모인 대부분이 백유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출전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 신생팀으로 왔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프로 지명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 결과, 임영원 같은 부작용이 터졌다.
임영원 역시도 같은 마음으로 신생팀으로 전학을 왔고 출전 기회를 보장 받지 못하자, 스스로 야구부를 그만 두었다.
“솔직히 우리 팀 콩가루 같았잖아.”
백유진은 팀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원래도 말이 없는 성격이었지만, 이렇게 벽을 치고 살지는 않았었다.
민현웅을 주축으로 모인 경원상고 야구부는 콩가루였다.
그건 코칭스태프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미 타자 최대어라고 불리는 민현웅은 실력은 있을지언정, 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오히려 팀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유형이었다. 그것도 지옥의 주둥이로.
“유행운, 네가 와서 콩가루였던 팀이 하나가 됐어. 뭐랄까. 인절미가 된 느낌?”
인절미?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알겠지만, 백유진의 표현력은 어딘가 범상치는 않았다.
“날 너무 높게 평가하지는 마.”
그건 좀 부담스러웠다.
유행운은 괜히 멋쩍어서 조금 탄 고기를 입에 넣는다. 그리고.
“그래, 유행운은 됐고 날 높게 평가해. 오늘 나도 홈런 쳤거든?”
민현웅은 자기를 주목하지 않는 에이스 백유진에게 꼬라지가 났다.
“됐고.”
민현웅이 그 놈의 지옥의 주둥이로 분위기를 흩트리자, 자연스럽게 주장 강민하가 다시 분위기를 바로 잡았다.
“우리 우승하자.”
요즘 경원상고 야구부는 분위기가 최상이다.
분위기가 여기서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강민하가 콜라가 담긴 유리잔을 내밀었다.
“건배 제의 합니다.”
유행운이 의자 위로 올라서는 강민하를 보며 혀를 찼다.
‘꼴깝을 떤다.’
겉은 19살이지만, 속은 서른인 유행운에게는 고등학생이 보여주는 꼴깝이었다.
그럼에도 그 장단에 맞춰준다.
다들 콜라와 사이다를 드는 모습이 퍽 우습기도 하고 그 나이처럼 보여서 귀엽기도 했다.
“경원상고 우승을 위하여!”
경쾌한 목소리를 시작으로.
“우승을 위하여!”
후창이 우렁차게 퍼져 나갔다.
* * *
“어딜가니?”
다음 날, 경기가 없는 일요일.
유행운은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러 나서려던 참이었다.
“오늘은 일요일 아니니?”
딱 걸렸다.
이형호 감독과 유행운은 작은 약속을 했다.
일요일에는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기로.
“아니, 나 산, 산책만 좀 하, 할······.”
단순히 조깅만 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유행운은 계속 말을 더듬게 된다.
“들어와.”
“으응?”
“오늘은 엄마랑 놀자.”
“에엥?”
유행운이 연달아 이상한 소리를 낸다.
잠이 덜 깬 이선영은 짐짓 엄격한 얼굴로 아들을 향해 손짓했다.
결국 유행운이 다시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온다. 도망갈 길도 없었고 도망간다 해도 수습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자.”
“응?”
“아직 여덟 시야.”
오늘 유행운은 정확히 7시에 눈을 떴다.
바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고 조깅을 하기 전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상태였다.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지만, 다시 회귀하면서 철저히 계획적인 인간으로 바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 더 자고 엄마랑 쇼핑 가자.”
“갑자기?”
“운동복 좀 사주려고.”
“나 유니폼이면 됐는데.”
“운동화 좀 사고.”
이선영은 다시 아들을 야구를 시키면서 낡아빠진 운동복부터 바꿀 생각을 했다.
이왕 야구를 가르칠 거라면 제대로 지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야근도 가리지 않는다.
추가 업무가 있다면 자원을 하며 푼돈이라도 긁어 모을 생각이었다.
이미 야구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지원할 생각이었다.
“쇼핑 하고 나서 목욕탕도 가자.”
“갑자기?”
“응, 뜨끈한 물에 몸 지지고 나면 피로가 풀려. 그리고 나서는 영화도 같이 보자.”
“엄마, 그거 완전 데이트네.”
“그래, 맞아.”
이선영이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아들을 다시 방으로 돌려 보냈다.
“엄마 몰래 나갈 생각하지 말고 침대에 누워.”
“누울게요.”
“좁은 방에서 배트 휘두를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귀신이다.
모친이 나가면 배트를 들고 타격폼을 가다듬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야구 장비가 든 가방을 통째로 챙기는 이선영이었다.
“누워.”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유행운이 순순히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는 침대에 누웠다.
“두 시간만 더 자자구.”
이선영이 한숨을 쉬었다.
어제 경기에서 학부모들과 어색하게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아들이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 분위기에서 이선영은 아들이 조금만 덜 부지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게 생각과는 다르게 자랑으로 보일 것만 같아서.
“휴식도 훈련이야.”
이선영은 감독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써먹었다.
“훈련이라 생각하고 주무세요. 아드님.”
딱.
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리며 방에 어둠이 찾아왔다.
이선영이 문을 닫고 나갔다. 그렇게 방에는 고요함이 찾아왔고 유행운은 잠시 적응이 안되는 듯 몸을 뒤척였다.
쉬는 건 어렵다.
회귀를 하고 난 후에 유행운은 도통 휴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궁극적인 이유는 불안함이었다.
다시 주어진 기회.
이제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하려 하지 않는다. 야구를 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은 현실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기에.
‘더 나아가야 해.’
그 생각이 유행운을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침대에 누운 지금 이 순간에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형호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휴식도 훈련이었다. 쉬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생각을 뒤로하고. 잠시 마음을 놓고 오늘 하루 만큼은 최선을 다해 쉬는 일에 매달려 보기로 결심했다.
“자자.”
다시 잠드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전날 치른 경기가 일찍 끝났다고 해도 피로가 몸에 잔뜩 묻어 있었다.
“행운아!”
정신없이 꿈나라를 헤매던 유행운은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독수리와 새우깡을 얻어 먹는 법을 몰라 굶주린 갈매기, 그리고 빛을 잃어버린 거대 별에게 둘러싸이는 꿈을 꾸었다.
“나한테 와!”
그들의 목소리는.
“내게 날개를 줘!”
“눈부신 빛을 줘!”
유행운에게 구걸하듯, 뭘 잔뜩 원하는 말투였다.
“새우깡.”
갈매기가 힘없이 말했다.
“내게 새우깡을 달라······.”
개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