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32
32. 내가 사람이라면
따악!
강수현이 12구 승부 끝에 드디어 출루에 성공했다.
“흐아아아악!”
안타를 친 강수현이 마치 역전 홈런이라도 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미친 놈.”
유행운이 혀를 찼다.
물론 저렇게 오버액션을 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계속 고난을 겪었던 경원상고였다. 다소 과했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강수현이 준비한 세리머니였다.
“하면 되는 놈이.”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강수현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프로에는 턱도 없지만, 고교 야구에서는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만약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선수였다면 신생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 차리고 빠따 돌려.”
류진운의 엉덩이를 두드린다.
지금 원일고는 1승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가져왔다. 그 전략은 몹시 효율적이었다.
상대의 강타자를 모조리 거르고 나머지 타자와 싸움을 한다. 그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수현을 비롯한 나머지 타자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또 투수 교체?”
원일고는 지금까지 5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실점 위기가 오면 어김없이 교체를 활발히 하며 상대 타선을 억제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선두타자가 오랜만에 출루에 성공했고 심지어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 흐름을 끊기 위해, 원일고 감독은 투수 교체를 진행했다.
“슬슬 쓸만 한 자원은 바닥났을텐데.”
방심은 금물.
지금 완벽하게 찬스를 가져오려면 류진운이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그 순간.
“뛴다!”
바뀐 투수가 초구를 던지기 무섭게 리드를 길게 잡았던 강수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촤아아악!
슬라이딩하며 2루 베이스를 밟은 강수현이 주먹을 불끈 쥔다.
“세이프!”
포수가 던진 공은 정확했지만, 원바운드 되면서 강수현의 발이 더 빨랐다.
“우리가 이긴다아아악!”
미친 놈인가?
유행운은 진심으로 당황한 눈으로 강수현을 보았다. 강수현이 흙투성이가 된 몸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건 아니지!”
그 순간, 원일고 감독 김태윤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가 너무한 거 아닙니까?”
3패로 수세에 몰린 원일고 감독 김태윤은 경원상고의 약점을 파고들어 첫 승을 거머쥐려 한다.
그리고 지금 분위기가 경원상고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김태윤은 심판에게 항의하는 방법을 취했다.
“아, 애들이잖습니까.”
덕분에 이형호 감독도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왔다.
“여기가 프로도 아니고 아직 애들인데, 좀 너그럽게 봐주시죠.”
일단 강수현이 이 상황의 빌미를 제공했다.
물론 평소 깝치는 성향이 강한 강수현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형호는 감독으로서 이해했다.
현재, 팀의 분위기가 애매했다.
경원상고의 화끈한 방망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중심타선이 승부조차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수현은 요란스러운 세리머니로 분위기를 가져오려 했다.
“그래도 연속으로 과한 행동은 선을 넘었죠!”
이형호 감독은 웃으면서 상대 감독을 달래려 했지만, 김태윤은 쉽지 않다.
‘김태윤, 이 새끼는 프로 때도 재수가 없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형호 감독이었다.
이형호는 서울 스타즈 출신 선수였고 FA를 통해 인천 바이킹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김태윤은 투수 출신으로 인천 바이킹스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은 짧게 바이킹스에서 함께 활동했는데, 김태윤이 후배였고 이형호는 선배였다.
활약에도 차이가 있었다. 김태윤이 별 활약을 못하고 어깨 부상으로 은퇴를 결정짓던 그 순간, 이형호는 주전 유격수로서 끈질기게 살아 남았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감독으로 맞붙은 두 사람의 감정은 그리 좋지 만은 않을 것이다.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세리머니가 과했다는 건, 감독인 내가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연달아 3,4번 타자를 거르는 팀도 있는데, 아직 어린 선수가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게 뭐 대숩니까?”
고교야구는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낭만이다. 낭만야구.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낭만, 아직 어린 선수가 몸으로 부딪혀 승리를 쟁취한다. 낭만야구를 추구하는 팀은 패배를 한다 하더라도, 낭만이 살아 숨쉰다.
그리고 지금 원일고는 낭만 따위는 없었다. 그저 치졸한 방법으로 상대를 이길 생각만 하고 있다.
“아니, 우리 서로 웃으면서 경기하자는 거죠.”
김태윤의 어깨를 이형호가 두드린다.
그와 동시에 김태윤은 굳은 얼굴로 그 손을 홱 쳐냈다.
“강수현 선수에게 경고를 주겠습니다. 김 감독님, 이 선에서 마무리 짓는게 어떻겠습니까?”
잠시 경기가 중단된 상황.
심판이 양 감독 사이에 껴서 상황을 중재했다.
자연스럽게 주심은 경원상고 측에 경고를 주는 걸로 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을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원일고 감독이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이형호 감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건방진 새끼들.”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다.
거친 항의로 넘어간 분위기를 가져오려던 김태윤은 뜻대로 되지 않자, 타격코치를 불렀다.
“괜찮을까요?”
“내가 책임져. 그렇게 해.”
아주 은밀하게 감독으로서 하면 안 되는 지시를 내렸다.
* * *
“아웃!”
기대도 안 했다.
류진운이 출루를 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 미치겠네.”
유행운이 원하던 그림은 류진운이 안타를 치고 출루에 성공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무사 1,2루. 유행운과 민현웅을 동시에 거를 수 없는 그림이 완성된다.
“승부하자.”
이미 기대도 안 되지만, 혹시 몰라 포수에게 말을 걸게 된다.
“승부는 무슨.”
자리를 잡고 앉은 포수가 미트를 들었다.
반응을 보아 이번에도 두 타자 연속으로 거를 모양이었다.
투수가 셋포지션에 들어간다. 유행운 역시도 배트를 들고 타격 자세를 취했다.
기대감은 전혀 없었지만, 언제나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한다.
“흐이익!”
요란한 숨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든다.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확인한 유행운의 눈이 커졌다.
황급히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악!”
결국 유행운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투수 손에서 빠져 나온 공이 엉덩이에 그대로 꽂혔다. 유행운이 피하려고 했지만, 투수가 맞추려고 작정한 공이었다.
“시발······.”
그대로 주저 앉은 유행운이 작게 욕설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던 유행운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냉정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지금 공에 맞는 순간, 지난 날 그를 괴롭혔던 지독한 부상이 떠올랐다.
모든 선수들이 부상에는 예민하다. 그러니, 빈볼 행위에 화가 치미는 건 당연했다.
“야.”
유행운이 바닥에 떨어진 배트를 밀어내고 투수에게 다가갔다.
“너 일부러 던졌지?”
유행운이 참교육을 위해 마운드를 방문했지만.
“으헉!”
갑자기 튀어나온 곰 한 마리 때문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 * *
– 민현웅 툴 하나 더 생겼다 벤클 ㅋㅋㅋㅋ
└ ㅋㅋㅋㅋ 너 영상 존나 잘 찍더라
└ 근데 빈볼임?
└ 증거는 없는데 정황상 99.9999% 빼박
└ 민현웅 벤클 존나 잘함 ㅋㅋㅋㅋㅋ
└ 얘 힘 존나 쎄더라 멸치 한 마리 걍 날아가던데??
└ 유행운 종이인형 그잡채
순식간에 그라운드 위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경기에서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유행운이었기에, 팀 반응이 더 거셌다.
어차피 유행운을 고의4구로 거를 거라는 건 예상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타자에게 빈볼을 던졌다.
고의4구는 보통 바깥쪽으로 빼기 때문에 몸쪽에 날린 공은 빈볼 가능성이 몹시 컸다.
“그만해! 벤클은 아니라고, 좀!”
사실 유행운은 대화나 하려고 투수에게 찾아갔다.
하지만 타자가 마운드 방문을 하기도 전에 투수가 제발 저려 도망갔다. 외야로 도망간 투수를 잡은 건, 외야수가 아닌 민현웅이었다.
곰 한 마리가 거세게 달려들어 투수를 넘어뜨렸고 그 위로 양팀 선수가 엉겨 붙었다.
“으악!”
선수들을 말리려던 마른 멸치 하나가 힘에 밀려 나동그라진다. 그 상황에서 유행운은 모든 걸 포기했다.
“에라이, 젊은 것들 잘 싸운다.”
아예 이제는 뒤로 물러서서 이 상황을 관망한다.
심판이 나서서 말려도 과열된 분위기는 오래갔다. 뒤늦게 정리가 될 즈음에는 유행운의 기가 쪽 빠진 상태였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양팀 모두 몰수패입니다! 아시겠어요?”
두 감독이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며 주심이 하는 훈계를 듣고 있었다.
감독 싸움에 이어서 선수 싸움이었으니, 빈볼을 지시한 김태윤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경원상고로 흐르던 분위기가 다시 원일고 방향으로 흐르기를 간절히 바랄 뿐.
“하아, 개판이다. 개판.”
1루 베이스를 밟은 유행운은 타석에 들어서는 민현웅을 보았다.
1사 1,2루.
베이스 하나가 비었고 당연히 김태윤 감독은 고의4구를 명령한다.
“비겁한 새끼들.”
씩씩.
민현웅이 거칠게 배트를 던지고 1루로 이동했다.
원일고의 전략은 변하지 않았다. 벤치 클리어링으로 인한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도 그랬다.
1사 만루.
공교롭게도 만루 찬스는 또 다시, 주장 강민하에게 돌아왔다.
‘도망가고 싶어.’
지금 강민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할 수 있다면 쥐구멍을 파서라도 달아나고 싶었다.
타석에 서는 두 다리가 무섭다. 연습 때도 사용해서 익숙한 배트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거운지.
‘내가 너무 의지했구나······.’
문득 그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강민하는 간간히 안타를 치며 팀에 보탬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배트가 한 없이 무겁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난 경기에서는 강민하가 뭘 하지 않아도 타선이 터졌다. 팀의 3,4번타자가 보여주는 화력쇼는 강민하의 어깨를 가볍게 했고 그 결과, 타석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지금은?
경원상고가 자랑하는 강타자는 꽁꽁 묶였다. 그 여파가 강민하에게도 전해졌다.
“아까처럼 병살 쳐주라.”
이 상황에서도 상대 포수는 강민하의 성질을 긁는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강민하의 멘탈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닥쳐.”
강민하는 욕설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이런 거친 말이 나왔다는 건, 심리적으로 쫒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해야만 해.’
배트를 짧게 쥔다.
도망치고 싶음에도 도망칠 수 없다.
그를 대신할 선수도 없었고 주장답게 이 상황을 알아서 해쳐나가야 한다.
계속 야구를 할 거라면 이런 순간은 익숙해져야 한다. 언제까지 남에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었다.
“가자.”
끈질기게 마운드에 버티는 투수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한다.
‘내가 사람이라면.’
자세를 잡는다.
이제 상대 투수는 강민하와 정면 승부를 펼친다.
1사 만루.
투수에게는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지금 상대하는 타자가 강민하라는 사실이 투수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원일고는 3,4번을 제외하면 항상 공격적인 볼배합을 가지고 승부했다.
이윽고 투수의 손에서 공이 흘러 나온다. 강민하의 배트가 매섭게 돌았다.
‘해야만 해!’
따아악!
그 순간, 지금까지 지독하게 침묵했던 강민하의 방망이가 드디어 소리를 내었다.
* * *
0:1.
시원한 안타가 아니었다.
만루 찬스에서 강민하가 쏘아올린 타구는 외야 뜬볼. 즉, 평범한 희생 플라이였다.
그럼에도.
“고급야구!”
어중이떠중이에게는 그저 고급야구였다.
강민하는 안타를 생산하지 못한 것에 아쉬운 듯 미소를 지었지만, 조금은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쨌든, 1점이라도 점수를 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앞으로 필요한 순간에 희생플라이 타점을 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성장한 셈이었다.
“하나만 더.”
백유진은 9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고교 한계 투구수는 105구. 그리고 백유진이 더 던질 수 있는 공은 단 9구.
“후우.”
승리를 위해 백유진은 최선을 다했다.
9회 초, 원일고의 선두타자는 끈질겼다. 선취점을 상대에게 내준 지금, 끈질기게 승부하여 기회를 만들 생각만 하고 있다.
동시에 백유진을 마운드에서 쫓아내려 한다.
“후욱!”
마지막이라 생각한 공이 손 끝에서 빠져 나간다.
그 순간, 원일고의 타자가 반응하며 배트를 냈고 그대로 허공을 헛돌았다.
“유진아.”
이제 백유진이 던질 수 있는 공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형호 감독이 투수코치와 함께 마운드를 올랐고 백유진은 공을 든 채로 고개를 숙였다.
“고생했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백유진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네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해냈어. 내가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오래 싸우게 해서 미안하다.”
백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공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고 그 모습이 이형호 감독에게 들어왔다.
“프로가서 더 열심히 던지면 돼. 지금은 승우를 믿자.”
백유진이 공을 든 손으로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운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그 모습은.
– 존나 멋있다 시발 백유진? 쟤 낭만 그 자체네
└ 얼굴 버프 받음
└ 못생겼음 그냥 질질 짜는 건데 잘생겨서 캬~
└ 저렇게 생기고 싶다
└ 외모랑 별개로 멋있긴 함 상남자야 아주~
└ 내가 야구를 보는 건지, 청춘 영화를 보는 건지.
마치 영화 같았다.
결국 백유진이 들고 있는 공을 감독에게 건네고 마운드를 내려간다. 여전히 쓸쓸한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하나의 명작 같았다.
그 날, 치열하고 치열했던 원일고와의 경기 결과는.
“이겼다!”
0:1.
경원상고의 신승이었다.
“거참, 경원상고가 갈길이 멀군.”
그 말이 맞다.
지금 경원상고는 조 최하위팀을 맞아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하마터면 패배할 뻔한 경기였고 백유진의 역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승리였다.
[8.1이닝 무실점 역투, 고교 야구계에 새로운 우완 유망주 백유진]치열했던 원일고와의 혈전.
MVP는 단연 백유진.
[TODAY HIT] 낭만투수 그 자체, 경원상고 얼굴천재 백유진.jpg +1002그리고.
최대 수혜자 역시도 백유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