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39
39. 학습 능력이 없나?
직구, 슬라이더,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
이주영이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총 4개. 포피치 투수였다.
그리고 타자에게 가장 치기 쉬운 구종 하나를 딱 고르라면 슬라이더도 아니었고 체인지업도 아니며, 당연히 커브도 아니었다.
타자가 가장 쉽게 칠 수 있는 구종은 역시 직구였다.
이주영이 유행운의 타격 패턴을 미리 공부한 것처럼 유행운도 마찬가지였다.
주말리그에서도 딱 한 번 맞붙은 경험이 있었고 덕분에 이주영의 투구 패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몸쪽 승부를 좋아하네.’
그 생각이었다.
강수현에게도 초구에 몸에 딱 붙는 직구를 선택했다.
그건 고교 시절에도 150km/h 이상을 던지는 이주영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심지어 강수현은 좌타였다.
좌완이 좌타에게 몸쪽 승부를 망설임없이 시도했다는 건, 그만큼 직구 제구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얘는 학습 능력이 없나?’
유행운은 몸쪽 바짝 붙이는 이 강속구를 기억한다.
주말리그에서 이주영의 공을 경험했을 때, 그리고 그 초구를 노려 홈런을 생산하던 그 순간.
그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어?”
이주영이 바보같은 소리를 내던 그 순간, 망설임없이 유행운은 배트를 돌렸다.
“왜?”
따아아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구가 좌익수 방향으로 거침없이 쭉 뻗어간다.
유행운은 투수가 던질 코스와 구질을 쉽게 예측했다. 즉, 수 싸움에서 타자가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장면이었다.
“왜······?”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투로 이주영은 담장을 넘어가는 공을 보았다.
“어떻게 80% 확률이-”
유행운이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절망을 안겼다.
그 사실을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
“80%가 왜-?”
여전히 이주영은 초구를 타격할 확률 20%는 생각하지 못한 채, 끝없이 80%라는 확률을 되새기고 있었다.
* * *
고교야구는 프로와 달리 투고타저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이주영은 그 투고타저를 만드는데 일조한 투수였다.
150km/h 넘는 강속구를 손도 못대는 타자가 널렸고 직구만 던져도 승률 90%가 넘는 투수. 그리고 강팀 북성고가 믿는 투수였지만.
“수고했다.”
이번에도 경원상고를 만나 1회를 넘기지 못했다.
“더 던질 수 있습니다.”
“알아.”
지금 이주영 투구수는 18구.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가 마운드를 내려오기에는 이른 시점이었다.
“지금 같은 패턴이잖아.”
“감독님.”
이주영은 데자뷰처럼 공을 등 뒤로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주영의 등 뒤에는 민현웅이 서 있다.
북성고 감독 박광윤의 말대로 같은 흐름이었다. 유행운에게 홈런을 얻어 맞고 그 다음, 타자에게 장타를 허용하는.
“드래프트가 코앞이다. 여기서 네 약점 더 드러낼래?”
이미 박광윤은 결단을 내렸다.
이주영은 북성고를 대표하는 전국구 투수로 성장했다. 드래프트 순번 역시도 초유의 관심사였다.
현재 대세는 유행운이나 민현웅이 1번과 2번을 차지할 거라는 흐름이 있었지만,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한다면 결과는 또 달라질 수 있었다.
“그때도 말했지만, 오늘 얻어 맞은 건 괜찮아. 프로가서도 많이 얻어 터질 거라고 감독님이 말했지? 미리 쓴약 먹었다고 생각하자.”
박광윤이 생각하기에 오늘 경기는 타격전이다.
상대 투수는 백유진 외에는 사람같지 않은 투수였다.
이미 타자들에게 백유진과의 승부를 끈질기게 접근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여기서 점수를 내주지 않는 것이 관건이었다.
“감독님, 저 한 번만요.”
“뭐?”
“유행운 한 번만 더 상대하고 내려오면 안 될까요?”
이주영은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주영아.”
이미 박광윤은 알고 있다.
다시 유행운을 상대한들, 이주영이 이길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는 것을.
현재 여론은 고교야구의 스포츠맨십을 강조하고 있다. 경원상고가 주말리그에서 연거푸 패배를 하는 것을 보며 그 전략을 따라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이미 물 건너갔고.’
지금은 북성고가 가진 힘으로 경원상고를 상대해야 한다.
“감독님, 딱 한 번만 더요.”
마운드 위에서 대화가 길어지자, 심판들이 모이고 있다. 이제 그만 해결을 보라는 의미였다.
“주영아.”
말 같지 않은 소리 그만하고.
“공 이리 줘.”
* * *
황금사자기 8강전.
북성고와 경원상고가 맞붙은 이 경기는 투수전이었다.
“으음, 50만 달러는 너무 후려쳤나?”
이 야구장에는 국내 프로팀 10구단만 와 있는게 아니었다.
유행운을 비롯해, 민현웅이나 이주영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팀도 있었다.
“사이즈가 작은데.”
그리고.
유행운을 조금 더 지켜보기 위해 찾은 피츠버그 소속, 검은머리 외국인 해리슨 박도 있다.
“150km/h 넘는 공도 대처가 가능하단 말이지-”
곰곰이 생각한다.
“확실히 재능은 있어.”
지금까지 그의 눈에 띄었던 유행운의 타격 실력은 대부분 수준이 다소 낮은 투수였다.
이주영은 미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투수였고 평가 자체는 타자인 유행운보다 높았다.
“그럼 한 70만?”
재협상을 해볼까-
하는 순간.
“그걸로는 부족하겠는데요. 해리슨 씨.”
등 뒤로 채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해리슨이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지켜봤는지, 알 수 없는 여자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어, 언제?”
“얼마 안 됐어요.”
채리원이 미소를 지으며 해리슨에게 다가갔다.
‘아, 저 여자는 진짜 부담스러워.’
미국 국적인 해리슨도 버거운 상대가 채리원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에게는 권한이 별로 없어요. 좋은 선수가 있다는 것만 구단에 소개할 뿐이죠.”
채리원은 이미 리원 소속의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보낸 경험이 있다.
그리고 해리슨은 익히 들은 소문이 있었다. 미국에는 스캇 보라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돈에 미친 채리원이 있다고.
“알죠, 그래도 70만 달러는 너무 작아요.”
“뭐가 작아요?”
해리슨이 어색한 한국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국 돈으로, 어디보자.”
핸드폰을 꺼내 환율을 알아본 해리슨이 말했다.
“8억, 8억이 넘는 돈인데.”
“유행운 선수는 한국에 있으면 최소 10억부터 시작이에요.”
“그건 KBO에서나 통하는거죠.”
“제가 작년에 FA로 미국 보낸 선수 아시죠?”
“모릅니다.”
“아시면서. 다저스에 간 강윤민 선수.”
“모른다니까-”
“그럴 리가? 지금 3할 치고 있는 좌익수인데?”
해리슨 박이 그 순간 입을 다물었다.
강윤민이라는 선수를 모를 리가 없었다. 작년 FA 제도를 통해 미국 진출한 강윤민은 2년 71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다저스가 아무리 빅마켓이라고 하지만, 위험성이 있는 계약이었고 당초 계약 규모는 5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여기서 채리원은 국제 대회에서의 강윤민 성적과 더불어 미국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강윤민이 강속구 투수에게 강하다는 것.
“강윤민 선수 잘하잖아요.”
돈만 뜯었나?
채리원은 마이너 거부권까지 요구했다. 어떻게 다저스에서 그걸 승인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귀신같은 여자의 협상 실력은 확실했다.
“봐요. 해리슨 씨.”
채리원이 수비에 나선 유행운을 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 유행운 선수는 벌크업 중이에요. 보면 알겠지만, 그냥 멸치? 아니다. 종이인형 같잖아요. 그렇죠?”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친구가 이주영을 상대로 홈런을 날렸네?”
슬슬 해리슨은 또 말리고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아?”
지금 채리원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한 차례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도 유행운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피츠버그의 구미를 확 당기는 것.
그와 동시에 몸값을 부풀리기 위한.
‘한 150만 달러? 그 정도까지만 올려주라.’
이런 생각이다.
“해리슨 씨도 메이저 경험은 없지만, 마이너에서 열심히 운동한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강속구를 던지는 상대로 아직 몸이 미완성이 타자가 홈런을 쉽게 칠 수 없는 거, 아시죠?”
해리슨은 한국어가 서툴다.
어쩌다보니, 아버지 영향으로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하고 있지만, 채리원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딜레이가 걸린다.
해석하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싶다.
“영어 잘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채리원은 미국 유학파 출신이다.
당연히 영어에 능통하지만, 상대의 머리를 휘저으려면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더 유리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이주영 선수가 던진 공, 154km/h였어요. 그것도 몸쪽 꽉찬 코스.”
이걸 잡아 당겼다니까?
“아, 그래도 안 돼요. 지금 일본에 영입해야 할 유망주도 있는데, 불확실한 상황에서 돈을 쓸 여유는 없어요.”
채리원은 끝까지 이성을 붙잡으려는 해리슨을 보며 여전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뭐.”
아직 시간은 있다.
채리원이 생각했을 때, 몸값을 가장 올릴 수 있는 시점은 U-18이었다.
지금 피츠버그가 유행운 자체의 실링을 작게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현민 선수는 190이 넘는 거구잖아요. 너무 작아요. 말했잖아요. 사이즈. 미국 애들 몸이 얼마나 큰데.”
“네, 뭐.”
그렇다.
유행운의 현재 키는 181.
몸무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열심히 몸을 키우고 있음에도 잘 불지 않는 무게였다.
“근데 유행운 선수는 유격수에요. 유격수는 키가 너무 커도 안 되고, 너무 작아도 안 되는데, 저 정도 사이즈면 딱 아니에요?”
“그건 유격수로 미국에서 통할 때 말이고요. 알잖아요? 미국은 괴물들만 모이는 거.”
“으음. 그러시구나.”
두 번째 이유는.
“검증이 안 됐어요. 우리도 다 알아 봤거든요? 저 선수는 야구 공백기가 길어요. 가정환경 탓이라 하지만, 우리로서는 부상의 위험이 있을 거라 판단할 수밖에요.”
그러하다.
“갑자기 운동하면서 생길 부상 위험도 큰데, 어떻게 70만 이상을 투자하겠습니까?”
결국, 하려는 말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뜻이었다.
지금 유행운이 한국 고교리그를 폭격하고 있음에도 메이저리그의 영입 시도가 적은 이유였다.
그 예로 민현웅의 몸값은 대략 120만 달러부터 시작한다.
타고난 거구, 타격폼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순수하게 힘으로 공을 넘겨버린다.
유행운과의 차이점은 꾸준함이었다. 계속 운동을 했던 선수였고 지금까지 보여준 성과가 있었다. 게다가 작년에는 U-18 야구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준 타자였다.
‘쉽지 않네.’
현재 경기 스코어는 1:2.
타이트하게 진행되고 있다. 5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던 백유진의 힘이 떨어지고 있었고 유행운은 타석에 설 준비를 마쳤다.
1회 말에 유행운의 선취점 홈런.
4회 말에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와 연달아 나온 안타로 1득점.
총 2득점을 이룬 경원상고였지만, 백유진이 힘이 떨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6회 말.
‘한 방 더.’
유행운의 타순이 드디어 돌아온다.
2번타자를 시작으로 공격이 시작된다. 류진운은 끈질기게 공을 지켜보고 배트를 참으며 볼을 골라 나갔고, 오랜만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유행운이 타석에 섰다.
“자, 보세요.”
채리원이 사기꾼 기질을 시작한다.
“여기서 투런포 가동됩니다.”
따아아악!
사기꾼의 예언이 맞아 떨어진다.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가 한복판에 공을 던졌고 그걸 밀어 넘겨버리는 유행운이었다.
“보셨죠? 이번에는 밀어쳤네?”
당겨도 넘기고.
밀어도 넘기고.
“예언 하나 더 할게요.”
살짝 눈이 흔들리는 해리슨 박을 보며 채리원이 또 다시 뱀처럼 음흉한 혀를 움직였다.
“이번 U18 야구 월드컵에서-”
일부러 채리원은 느리게 말을 한다. 해리슨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유행운 선수가 MVP 받을 겁니다.”
응, 인생은 도박이야.
“미리 준비하세요. 150만 달러.”
아니다.
“200만 달러.”
인생은 도박이다.
허세가 약간 섞인 도박.